-
-
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칙릿 소설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된다. 이 소설도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처음에 주인공 조안나를 가짜 공주로 만들어 놓고 그녀가 느끼는 불안을 고조시키면서 한 명의 직장 여성으로 만들어간다. 다른 신데렐라들이 처음의 고난을 뚫고 왕자비가 되는 것과 반대로 그녀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또 감각적인 광고 문구와 간결한 장면 전환으로 속도감을 높이고 독자를 끌어당긴다.
조안나는 일류 광고회사에 되고송을 부르고 합격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 캠퍼스 출신이고, 그녀가 속한 애드스타라는 광고 동아리 사상 최초의 쾌거다. 자신의 학력과 외모를 생각하면서 그녀가 혹시 전산 오류나 다른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대목은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실력으로 뽑혔다. 헌데 문제는 그녀의 이름이 로열패밀리와 비슷하고 회사 내 실세인 회장 아들이 동생이라고 부르면서 발생한다.
흔히 직장인들은 말한다. 회장 가족은 회사 내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지위라고. 대통령은 5년에 한 번 바뀌지만 회장은 망하지 않는 한 영구집권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단한 지위의 여자가 나타났으니 사람들이 은근히 위축되고 아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녀 자신이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그녀 앞에 실제 회장의 딸이 근무한 사실이 있으면서 말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힘들고 고된 광고대행사에서 그녀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리고 그녀 앞에 멋진 한 남자가 등장하여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일에 대한 열정을 곳곳에 내세우고, 그녀의 노력이 조금씩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 열정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아마도 구성과 전개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발생한 오해에 적당히 타협하고, 사실이 드러나자 고민하고 아파하지만 그것도 순간 사라지고 만다. 너무 쉽게 해결되어 긴장감이 사라진다. 하지만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신데렐라와는 분명히 다른 길을 간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인상적이고 깔끔하게 느껴진다. 만약 멜로에 빠졌다면 아마도 앞에서 느낀 재미들이 순식간에 날아갔을 것이다.
칙릿을 읽다보면 그녀들의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이다. 화려한 업무를 가지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고가품을 걸치고 다니며 허세를 부린다. 주인공의 외모는 중상 정도? 이런 포석을 바탕으로 그녀들의 일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사랑과 버무려 놓는다. 이 소설도 그런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발랄하고 감각적인 문체와 익숙한 광고 카피를 이용한 감정 표현은 읽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면 과연 깊이 있는 읽기는 어떨까? 사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읽고 즐겁고 재미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