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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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며칠 사이에 가족과 어머니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그리움과 미안함과 사랑으로 눈물을 자아낸다면 시노다 세츠코의 <도피행>은 가족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보다 자신의 삶에 치중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가족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삶이 우선이다. 이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엄마인 타에코 또한 예외가 아니다.

 

타에코가 애정을 가지고 기르던 개가 옆집 아이를 물어서 죽인다. 1차 원인은 그 아이에게 있다. 유순한 골든 레트리버 포포를 괴롭혀 왔던 것이다. 그 괴롭힘과 공포 때문에 아이를 공격하고, 그 아이는 죽었다. 분명 아이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과연 아이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여기서 가해자로 변한 타에코의 집안이 겪게 될 일들은 눈에 선하다. 보기 드문 사건이니 선정적인 방송이 이어진다. 주변에선 그 개를 안락사 시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갱년기를 지나고 병으로 자궁을 들어낸 그녀가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를 포포에게 받는다. 그런 포포를 죽인다는 것은 가족을 죽이는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야밤에 포포를 데리고 도망을 간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도망을 그린 소설이다.

 

초반엔 로드 무비의 형식을 따라간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달아나는 그녀의 행적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 있고, 결국 한 장소에 안착하면서 마지막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결혼 후 편안한 생활을 유지한 그녀가 세상의 현실에 둔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남편을 내조하고, 두 딸을 키운다고 바쁜 삶을 살았다. 남편은 그녀가 40이 되었을 때 여자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말하고, 딸들은 그녀의 병을 갱년기 증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녀가 들인 정성과 애정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보잘것없다. 하지만 포포는 다르다. 그들보다 적게 받았지만 받은 것 이상의 애정으로 보답한다. 자궁을 들어내어 허해진 마음과 몸을 그녀는 포포에 대한 사랑으로 채우려고 한다. 다 자란 자식이 바쁜 일상과 새로운 연인에 몰입할 때 그녀는 자신과 함께 하지 못하는 그들이 타인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결국 포포의 죽음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벌어진 것은 당연하다. 화목하고 함께 고난을 넘어가는 가족의 모습이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음은 멀리 떠났다.

 

포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그들의 삶이 보인다. 타에코는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위안을 포포에서 받았기에 무엇보다 소중하다. 남편과 딸들은 포포가 한 마리의 애완동물일 뿐이다. 비록 아이가 잘못한 점이 있다고 하여도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 없고,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결국 포포를 둘러싼 가족들의 대처방안은 모두 도피행이다. 타에코는 현실에서 도망을 가고, 다른 가족들은 희생양을 만들어서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한다.

 

미난 점은 포포의 존재다. 도망 다니면서 야성을 눈뜨는데 사실 놀랍다. 실제 그런지는 둘째로 치고, 가끔 나오는 그의 활약은 야수의 느낌도 풍긴다. 한 마리의 애완견이 야성으로 돌아가 살아가는 모습과 인간과 함께 하는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도 타에코는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포포의 모습에 실망을 한다. 하지만 여기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인간으로 치면 거의 100살에 가까운 포포가 야성으로 돌아간 것을 인정한다. 가족들이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실망하고, 포포와 함께 달아났는데 이젠 그 일탈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많지 않은 분량에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이어져 쉽고 빠르게 읽힌다. 살인과 가족과 도피라는 소재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점은 대단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으로 파고드는 감성은 없다. 아마 이것은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후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가족이란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에서 그녀의 도피가 불편한 것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악하지도 못하고 용기가 많지도 않은 그녀가 지닌 여자이자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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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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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르 클레지오는 나에겐 어려운 작가다. 나의 내공이 그가 보여주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부족하다. 몇 권의 책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적응하려고 하였다. 나의 독법을 조금 바꾸고, 좀더 세밀하게 읽으려고 했다. 그래도 아직 그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소설로 그에 대해 한 발짝 더 다가 간 것은 사실이다.

 

아담 폴로, 그는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의 결합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글들은 신화적 글쓰기란 평을 얻고 있다. 이런 기본 지식을 가지고 책 내용에 접근했다면 좀더 이해하기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읽기 전에 가진 정보라고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 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정도뿐이었다. 이것은 책 마지막에 가서 그가 정신병원에서 젊은 수련의들과 토론하는 장면과 퇴행하는 모습을 통해 조금은 단서를 드러내지만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어증을 가지고 자궁 속으로 퇴행하는 환상은 책 전반에 깔려 있는 그의 행동과 상상을 매조 짓는 역할을 한다.

 

아담을 이방인의 뫼르소와 많이 비교하는데 사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담의 행동과 환상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한 발 더 다가갈 수밖에 없다. 또 그와 미셀의 관계도 어떻게 풀어야할지 의문사항이다. 처음엔 단순히 아담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등장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하자 여동생이 그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실존하는 인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녀와 그가 만난 그 사실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그녀를 강간했다고 신고한 이야기와 그와의 만남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에 나온 신문 기사에서 강간 사실만 나오면서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왜 이 사실에 집중할까? 그것은 아담의 이야기 대상이 대부분 미셀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상상의 벽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아담은 상상하고 몰입하면서 동화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가 동물원을 방문하여 상상 속에서 동화되면서 나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표범을 향해 손을 내민다. 이때 표범이 달려든다. 만약 이 동화가 사실이라면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포감을 느낀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 정도다. 이 사건으로 그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환상은 단순한 상상력의 발현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그가 떠돌이 개를 뒤따르는 장면이나 익사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도 머릿속에서 많은 부분 구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을까? 이 의문은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도 알 수 없다. 처음에 탈영병인 것처럼 도망 다니는 장면에선 보통의 사람처럼 보인다. 경찰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모습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환상 속에 자주 빠지는 그를 만나게 된다. 물론 상상의 세계에 자주 빠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면 다른 문제다.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냉철한 이성도 보여주지만 그것은 논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일뿐이다.

 

그렇게 난해한 문장도 문체도 아니다. 극도로 세밀하게 정돈된 세계를 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방식들은 처음엔 낯설게 다가온다.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여 신문을 인용하고, & 나 [ ]를 이용한 장면에선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를 한 여자의 문장에서 받은 혼란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겠지만 현실의 눈을 닫고 상상의 공간으로 자신을 은폐하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난해한 만큼 이해할 내용도 많고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책이나 이 책으로 얻을 것이 많을 것 같다. 아직도 이 작가는 나에겐 이해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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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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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 자신이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지 몰랐다. 아마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평소처럼 지하철이나 커피숍에서 읽었다면 흘러내린 눈물과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괜히 부끄러워 우왕좌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엄마가 실종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오시다 서울 역 지하철에서 사라졌다. 흔히 텔레비전이나 소설들에서 자주 보던 상황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상황을 파고들기보다 어머니와 각각의 과거를 연결하면서 그 존재의 상실이 주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나의 성장과 삶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위치를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그 이야기 하나 하나가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었던 일들이다. 그냥 무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일들이 엄마가 사라진 순간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이자 기억으로 되돌아온다. 그 과정들 속에서 읽는 나 자신의 경험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일치하면 그때부터는 가슴속으로 수많은 감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고, 닦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읽혔다.

 

셋 째 딸이자 저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장남을 지나, 애를 먹인 아버지를 거쳐, 엄마의 영혼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중간쯤 읽으면서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로 이어지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가족들 중 한 명인 둘째의 이야기가 비워져 있다.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이 의문은 우리 사회에서 은연중에 숨겨진 삶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첫째 장남은 첫 아이라서, 셋째 첫딸은 처음 나은 딸이자 화자라서, 둘째 딸이자 막내는 마지막에 낳은 자식이라 그렇다면 그 둘째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지나가는 문장에서 얼핏 존재가 드러나지만 진지한 대상은 아니다. 단지 가족의 한 명일 뿐. 차라리 집이 점점 황폐해짐에 따라 집을 알뜰하고 화사하게 꾸미는 재능이 있는 둘째 며느리가 더 등장한다. 왜 일까? 그렇게 보인 책이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이 문장은 한 여자가 아닌 아내로, 엄마로, 할머니로 규정지어진 삶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다른 작가들은 이 문장을 자아실현의 기회 상실로 보고, 한 여자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 책에선 그런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역할을 더 강화시킨다. 언제나 자신들의 삶속에 자리 잡고 있고, 짜증을 받아주고, 힘겨울 때 기댈 수 있는 존재로 항상 그곳에 있다. 그러니 이들의 삶에서 엄마가 아내가 사라진다는 것이 어떨지는 분명하다. 받기만 했으니 사라지고 난 후 주지 못한 사랑과 관심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것은 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닿아있다. 그래서 막을 수 없는 감정들의 홍수에 사로잡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가온 책이다.

 

만약 이십 대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슴속으로 절절하게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도 없었을 것이다. 한 번만 다시 보고 싶다고 외치는 너무 뻔한 문장에 눈시울을 붉히고, 무심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말을 던졌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자식들과 아버지의 텅 빈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눈물을 닦았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부끄러워하고, 주저하는 우리의 정서에 이 소설은 은근하게 비판을 가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나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들에 비해 엄마가 힘겹게 내뱉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하다. 엄마의 마지막 긴 여정의 종착점이 엄마의 엄마임을 보면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가 피에타 성모상에게 엄마를 부탁하는 그 모습은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가장 진솔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게 느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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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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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콜롬비아 사바나에서 시작한 작은 생태공통체에 대한 이 표현은 최상의 찬사이자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 여정을 보다 보면 많은 문제점도 노출한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뚫고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번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극도로 정국이나 치안이 불안한 콜롬비아에서 이런 건전하고 풍요로운 공동체가 생존했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기적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과도한 칭찬의 이면엔 많은 문제점도 있고, 어려움도 있다. 그렇지만 이 아름답고 놀라운 공동체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생각하게 된다.

 

가비오따쓰의 설립자 파올로 루가리가 처음 불모지에 생태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실 초기엔 많은 지원을 받아야만 그 생존이 가능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수많은 발명품이 경제적 원조의 기초 위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공동체에서 미래를 보고, 대안을 찾았기에 그런 원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노력은 세상의 편리함과 타협하기보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동수단이나 화석연료를 조금만 이용해도 편안하게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었을 텐데 고집스럽게 태양력을 실험하고 발전시켰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배운다.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을 가진 미국이 지미 카터에서 레이건으로 바뀌면서 태양력을 이용한 연구가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런데 콜롬비아의 한 작은 공동체가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올로가 연로한 박사인 제텔리우스와 한 대화 한 자락은 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점을 보여준다. 박사가 가비오따스를 유토피아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보고 말하자 파올로가 현실이 되길 바라고 유토피아가 아닌 토피아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98년과 10년 후 서문이 다시 붙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노력의 결실 일부를 만났다. 처음에 서문을 읽으면서 낯설었던 내용들이 모두 읽은 후 다시 읽으면서 10년 동안 변한 모습을 반갑게 만났기 때문이다. 엄청난 진전이나 현실화된 유토피아의 모습은 분명 아니지만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고, 그 나라 그 어디보다 평화롭고 평온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은 그 미래를 더 밝게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성공한 생태공동체가 세상으로 퍼져나가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분명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파올로는 말한다. 가비오따쓰에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카오스에서 무작위로 태어난 것들의 총체라고. 그들은 탄생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단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그 어느 것도 계획한 바 없이 발전하였는데 그것은 그 속에 협동심과 열정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이 올바르다면 주저 없이 채택하면서 성장했다. 그 많은 발명품들도 이런 자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문화의 차이나 지역 상황에 따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걸림돌이다.

 

콜롬비아의 치안 부재와 좌우 대립의 현실은 책을 읽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만들었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이 성공적인 공동체가 정치, 사회 문제 때문에 혹시 불행한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근심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여러 사람의 협력과 노력에 의해 하나의 현실로 바뀌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적이다. 초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미국이나 유럽에서 해결책을 가져올 수도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해결책을 들여온다면 그들의 문제점도 들여온다고 지적한 부분은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 뒤에 올 문제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들이 그들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지만 그 힘든 시기를 넘기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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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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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단테의 <신곡>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이 책도 그렇지만 다른 책에서도 <신곡>의 일부가 많이 인용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번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난해하고 주석이 많이 달려 있어 읽기가 상당히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말하길 이 책을 완독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고 한 말에 위안을 얻기도 했는데 점점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더 많이 보기 위해서 말이다.

 

책 소개에도 나오지만 두 개의 죽음이 실려 있다. 하나는 400년 전이고, 다른 하나는 불과 십 수 년 전이다. 이 두 사건이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행은 결코 연관성을 드러내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이 그 저택으로 불려온 것도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1958년 5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애덤은 지도교수로부터 여름방학 프로젝트를 제안 받는다. 이탈리아 대저택의 정원을 연구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애덤은 대저택으로 초대 받아 오고, 그 정원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 집안의 장남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도 듣게 된다. 정원과 그가 방문한 시골은 아름답다. 그것보다 더 그를 끌어당기는 것은 자신이 머무는 여관 주인과 저택의 외손녀딸이다. 로맨스를 잔잔히 깔면서 정원의 비밀을 풀어내는데 그 아름다운 정원이 단순히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조성된 정원에서 과거의 비밀을 밝혀내는 애덤의 능력은 책 소개에 나오는 단테의 <신곡>과 그리스 신화의 만남으로 풀린다. 뭐 <신곡>을 잘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욕구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정원을 둘러싼 비밀이 풀린 후 그를 사로잡는 것은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살해한 장남 에밀리오의 죽음이다. 사실 그를 누가 죽였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왜 그랬는지도 역시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작가는 누가, 왜 살인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너무 쉽게 그 범인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관계를 꼬고, 과거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고, 현실의 사실을 보여주면서 교묘하게 진실을 숨겨놓는다. 정교하게 짜놓은 구성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잔잔한 진행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가 조율되면서 진행되기에 단숨에 읽힌다. 욕망과 사랑이 교차한다. 진실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비밀을 은근하게 하나씩 의도적으로 보여주지만 애덤은 그 이상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바로 이런 은근한 진행과 애덤의 탁월한 추리에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의 충돌과 사랑이다. 2차 대전 후 이탈리아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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