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 제41회 일본 문예상 수상작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질펀한 섹스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열아홉의 나와 서른아홉의 유리의 사랑 이야기다. 불륜으로 가득하거나 청춘의 고민이나 나이 많은 유리의 애절함이 담겨있을 것 같지만 역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짧은 분량의 소설에 그런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기보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려낼 뿐이다.

 

사실 제목 때문에 약간 주저하였다. 문예상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나에게 수상작의 제목이 거부감을 준 것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나라면 눈에 불을 켜고 읽을 제목이지만 지금은 내용이 더 중요하다. 읽고 난 지금 느낌은 뼈에 조금의 살이 겨우 붙어있는 소설을 본 기분이다. 세부적인 묘사나 관계의 무거움이 나오지 않고 과거의 기억에 충실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유리와의 관계가 준 즐거움과 시간과 지금 남아있는 그리움이 자극적이거나 도발적인 모습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한 어린 청년의 감정과 삶의 변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이 평소 생각하든 이상형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되고 생각해보지 못한 그리움과 모습은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상형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모습일 뿐 일상의 우리는 자신과 가장 편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만남으로 이어져있지 않은가?

 

억지로 살을 붙이거나 과장된 표현이 없는 문장이라 읽기에 편하고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치중하거나 감정의 밑바닥까지 풀어내는 소설도 즐거움이지만 가끔 이런 소설이 더욱 좋을 때가 있다. 문장은 짧지만 감정의 깊이를 잘 표현하고 그리움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곳곳에 느끼는 바가 많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번보다 한 명 적고, 같은 사람이 모두 5명 있는 말 그대로 두 번째 방문하는 한국공포단편선이다. 개인적으로 지난번보다 약간 완성도가 떨어진다. 아직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공포문학을 생각하면 나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높아진 독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것도 아니니 더욱 아쉽다.

만족과 불만족이 교차하는 것이 단편집이라면 이번 단편선에서 만족한 것은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와 이종호의 ‘폭설’이다. 나머지 작품들이 불만족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몇몇 작품은 아쉬움을 남겼고, 몇몇은 긴장감 자체를 가지지 못했다. 김종일의 ‘벽’과 장은호의 ‘캠코드’와 김준영의 ‘통증’과 황희의 ‘벽 곰팡이’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최민호의 ‘길 위의 여자’는 공포와 상황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묘사가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였고, 김미리의 ‘드림머신’은 너무 드러난 결말과 변화가 힘이 딸리고, 신진오의 ‘압박’은 뻔한 결과에 실험자의 생각이 중반에 나오면서 마지막과의 일관성이 떨어졌다.

장 마음에 든 ‘레드 크리스마스’는 보는 내내 분노를 자아낸다. 결말의 잔혹함에 통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아이와 부모들의 몰지각하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책을 덮은 후 재미있다는 감정과 이런 통쾌함을 느껴도 되나?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내었다. 빈부격차와 더불어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지역(이 부분에서 특정지역이 생각났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할아버지의 개인사에서 보여주는 비극이 크리스마스라는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 시기에 벌어진 사건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그 과정이 너무 잘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종호의 ‘폭설’은 읽는 도중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고, 어느 순간은 스티븐 킹의 소설도 생각났지만 한 조난자의 시선처리나 감정묘사가 잘 드러나 재미있었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조차 긴장감을 놓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킹이 생각나는 구성이나 마지막의 사족 같은 장면은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이종일의 ‘벽’은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들과 부모를 등장시켜 우리사회에 문제되는 층간소음을 다루고 있지만 중간에 초자연적 존재를 드러내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행복했던 아내와 남편의 충돌이 좀더 진행되고 다른 파국으로 흘러갔다면 하는 마음이 있다. 장은호의 ‘캠코드’는 약간 평이한 결말이 아닌가 한다. 혜성과 캠코드가 만들어낸 분위기를 끝까지 살려내지 못하고 마지막에 힘을 잃은 것이 아쉬웠다. 김준영의 ‘통증’은 괴이한 일들로 가득하고 공포감을 고조시키면서 살인자의 심리가 들쑥날쑥하는 장면을 잘 살려내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공포나 뒤통수를 서늘하게 하는 공포감이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황희의 ‘벽 곰팡이’는 중반까지 가장 기대한 단편이지만 뒤로 가면서 일상적인 스릴러로 변하면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벽 곰팡이에서 발전한 대립과 공포감이 살아나지 못하고 인종문제에 의한 살인으로 변하면서 전체적인 구성과 엇나간 느낌이다.

지난번 소설이 그 시기까지 각 작가의 손꼽히는 작품이 나왔다면 이번에 새로운 작가와 시도가 보인다. 국내에 번역되는 외국공포소설들이 그 나라에서 이미 인정받은 작품들이기에 우리의 것이 조금 모자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 몇몇은 한국적 공포소설로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수준에서 아직 부족하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더 많은 단편과 작가들이 나온다면 더 좋은 작품집도 만들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세 번째, 네 번째 방문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참 특이한 소설이다. 사전에 정보를 가지지 못했다면 희곡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화만으로 구성된 소설이지만 재미있는 대목이 많은 소설이다. 여기자와 저자 볼프 하스의 대화로만 진행되는데 대화의 대상이 되는 소설은 실재하지 않지만 대화 속에 실재하는 묘한 소설이기도 하다.

 

제목을 생각하면서 15년 전 당시를 생각해보지만 날씨는커녕 그때 있었던 중요한 일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화 속 소설의 주인공인 비토리오 코발스키는 15년 전 그날부터 현재까지의 날씨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소녀와의 첫 키스가 있었던 그 날부터 말이다. 이 특이한 지식을 가진 숫기 없는 남자가 유명한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 나가 우승하면서 작가와 시청자들에게 호응과 관심을 불러온다. 작가는 이 남자를 대상으로 한 편의 소설을 썼고, 이 소설을 가지고 5일 동안 여기자와 대화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존재하지 않은 소설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줄거리가 만들어지고 동시에 이에 대한 작가와 여기자간의 토론이 주는 공방과 해석으로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지기도 한다. 만약 소설의 줄거리에 대한 요약이라도 있다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겠지만 작가는 대화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독자는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예상이 거의 불가능하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약간은 황당하지만 황당함을 뒤덮는 작가의 해설에 또 한 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무시하고 곳곳에 드러나는 냉소적 유머와 추리소설 같은 구성을 즐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대화 속 소설은 사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의 잊어버렸지만 완전히 잊지 못한 사랑이 한 지역에 대한 15년간의 날씨 정보를 기억하게 만든 것이다.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배경도 그녀가 연락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코발스키의 심리에 대한 묘사나 행동을 그려내기보다 주변적인 상황이나 어쩌면 사소한 일들에 대한 나열로 가득 채우고 있다. 소설 속 대화 속의 소설이 보여주는 특이한 구성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변론 때문인지 모르지만 혼란을 불러온다. 그러나 퍼즐이나 그림 맞추기 같은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특이한 구성과 대화체와 신랄한 문장 등으로 속도감이 많이 붙지는 않지만 몰입하게 하는 힘은 상당하다. 다시 이런 구성의 소설이 나온다면 읽겠냐고 묻는다면 아마 고개를 가로 젓겠지만 이 작가의 다른 책이 나온다면 이라는 질문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겠다. 미로 같은 느낌도 추리소설 같은 느낌도 비평에 대한 비평 같은 느낌도 주는 묘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냉정한 작가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작가에 대해 냉정하다고 해야 하나? 비정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혼란스럽고 잘 모르겠다. 영어권 스릴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속도감이나 몰입도가 대단하다. 연쇄살인과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1980년 한 소년이 대형 쇼핑몰에서 사라진다. 90년대 말쯤 추정되는 시기 아리따운 심리학과 여학생 줄리에트는 채팅으로 알고 있던 한 남자에게 납치된다. 그 전에 포틀랜드에선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연쇄살인범은 포틀랜드 인간백정이라고 불린다. 이를 쫓는 형사들 중에 프로파일러로 현장에서 근무하고 싶어 FBI를 뛰쳐나온 주인공 조슈아 브롤린이 있다. 그는 과학수사대가 찾은 단서를 쫓던 중 줄리에트를 구하고, 동시에 인간백정 릴랜드 보몬트를 살해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다시 인간백정과 동일한 살인방식으로 죽은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요약해보았다. 물론 초반에 대한 것이지만 중요한 단서들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생각이 이 책 처음에 나온 한 소년의 실종사건이다. 또 하나 줄리에트가 사라지기 전과 1년이 지난 후 현재 들은 수업에서 스톡홀름 신드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둘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면서 형사들이 밝혀내는 단서들에 의해 하나의 윤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작가는 이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 듯하다. 아니면 나만의 착각인가?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프로파일러로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로 범인상을 추론하고 상황을 재구성하는 브롤린이나 1년 전 사건의 악몽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지만 브롤린과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면서 단서를 제공하는 줄리에트나 풍부한 경험과 넉넉한 살을 가진 래리 샐힌드로나 낙하산 인사로 처음부터 수사단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했지만 가끔 놀라운 관찰력을 보여주는 벤틀리 코틀랜드 등이 그렇다. 이들이 범인과의 대결에서 보여주는 팀웍과 노력들은 다른 수사원들의 노력과 더불어 이 소설의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다.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이다 보니 작가는 범인의 심리를 직접 묘사하기보다 브롤린을 통해 드러낸다. CSI나 제프리 디버라면 열심히 범인이 남긴 단서나 흔적을 뒤쫓고 분석하겠지만 브롤린은 범인의 심리와 동기에 더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전개나 진행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현장과 증거물만으로 범인상을 추론하는 그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이나 연구가 있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백정은 브롤린에 의해 일 년 전에 사살되었다. 새로운 유사범죄가 나오면 대부분 모방범죄이거나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다른 살인자의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서를 찾아낸 경찰의 DNA 분석 결과는 죽은 인간백정 릴랜드라고 한다. 여기에 작가는 교묘하게 흑마술을 삽입하여 시체부활 등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동시에 단서도 같이 제공한다. 아마 조금만 눈치가 있다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많이 다루어진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로파일링한 결과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단독범행이 아닌 지시자와 실행자가 별도로 둘 있는 경우다. 여기서 누가 살인을 직접 하는 실행자고, 누가 지시를 내리는 자일까? 생각에 빠져든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작가에 의해 약간 혼란을 가져온 부분이다.

 

두 권이지만 역시 빠르게 재미있게 읽었다. 예상했던 재미를 주었고,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여 놓았다. 영어권 스릴러 형식으로 전개되어 할리우드적인 결말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비정한 작가는 살인 현장이나 해부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마무리에서도 냉정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악의 영혼을 불러오는 불길을 묘사한 것은 다음 등장을 암시하는 것일까? 한 사건은 끝났지만 다시 다른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형사들은 쉴 틈이 없지 않을까 한다. 덕분에 우린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되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과 광기라! 이 추리소설에 강하게 흐르는 분위기를 잘 표현한 두 단어가 아닌가 한다. 정신의학과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얼마나 많은 연구와 관심이 있었는지 알게 하고, 요한계시록과 황충을 이용한 이상심리와 행동은 연쇄살인에 대한 호기심을 높여준다. 아트 사이코 팩션이란 생소한 단어에 적합한 구성이자 전개라고 생각한다.

 

초반부터 연쇄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보여준다. 그가 범인임을 우리는 알지만 정보가 부족한 형사들은 그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구성은 이미 많이 본 것이고, 두 상대방의 심리묘사와 쫓고 쫓기는 과정이 큰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긴박감이 부족하다. 중간에 겉으로 드러난 세 번째 피해자의 숨겨진 애인이 범인을 잡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건 해결이 쉬울 것으로 방심하게 만들지만 불법적인 일과 자신의 면목 때문에 살인자를 놓아주는 일이 생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긴장감과 속도감이 붙는다.

 

오디오에 둔감한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엔 엄청난 지식이 풀어지고, 음악에 대한 지식과 해석이 나열되고, 정신병에 대한 병명과 약들이 나오면서 약간 주눅이 들게 만든다. 섬세하게 표현된 감정과 감각에 대한 묘사는 잘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이 왠지 나에겐 책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와 잘 맞물려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광기를 발산하게 만드는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음악을 찾아 듣고 작가가 연출한 분위기에 빠져들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긴장감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부족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영미권 스릴러 등을 읽으면서 그들의 구성과 전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황충과 아바돈에 대한 묘사와 살인사건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 겉도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둘의 연관관계가 치밀하기보다 구성의 바탕 중 하나로 머물고 있는 듯하다. 아마 이런 느낌은 외국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소설들이 너무 단서들에 집착하는 것을 보아온 탓이기도 하다. 사건의 단서와 동기에 경찰 등이 계속해서 파고드는 소설에 많이 익숙해져 부족한 느낌이 더 강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 소설은 군데군데 즉흥적인 진행이 눈에 들어온다. 신문기사로 인한 납치, 살인과 마지막에 범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책임에 틀림없지만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범인의 이상 심리 묘사나 형사들의 범인 찾기나 연쇄살인의 단서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해석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오디오나 음악이나 발작에 대한 묘사에선 감탄과 주눅을 주지만 다른 부분에 가면 그 깊이와 이해가 약간 표층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전체적인 구성도 역시 느슨하고 마지막 대결 또한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못한 단점이 있다. 물론 한국추리소설가들이 잘 보여주지 못한 상상력은 보는 내내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에게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어 안타깝다.

 

이번에도 역시 느낀 것이지만 전문적인 추리소설가보다 한두 편의 팩션류를 쓰는 작가들의 전문적인 지식이 담긴 소설이 더 재미있고 사람을 흡입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일반화 할 생각은 없다. 이전에 읽은 한국추리소설에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놀라운 재미를 준 것도 있고, 팩션을 지향하지만 완성도나 재미가 형편없는 소설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 팩션과 연쇄살인에 대한 소설 중 최고는 아니지만 십 수 년 전 이 정도의 추리소설이 나왔었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