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세계를 바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사 지음, 강신규 옮김 / 가나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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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도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유럽 등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정책에 농담을 하곤 했는데 이젠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인구 중 65세 이상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구분하는데 2000년에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 세계 유래 없는 빠른 속도라고 한다. 이에 파생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연일 언론매체를 채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정관수술을 권유하는 것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은 인구 문제를 중심으로 현 세계와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인구가 중심이다 보니 중국과 인도를 많이 다룬다. 특히 중국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인구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예전에 읽은 소설 ‘황화’를 생각나게 한다. 십억이 넘는 인구의 대이동을 다룬 이 소설과 달리 현재는 경제활동인구와 이민이라는 측면을 다루면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이미 몇 년 전 중국이 세계 원자재의 블랙홀 역할을 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책의 영향으로 중국이 옥수수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면서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재 세계 인구 추세는 선진국은 줄어들고 개발도상국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외형적 차이와는 달리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도시화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빈부격차를 불러오는데 이에 따른 문제점과 그 사회의 미래상을 예상하게 만든다. 특히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에서 빈부격차가 점점 커지고, 부유층이 자식을 많이 낳지 않음으로 인한 문제 등을 보면서 노령화 사회가 어떤 미래를 펼칠지 놀라게 된다.

 

저 출산, 고령화 사회는 분명 사회의 건강도를 떨어트린다. 의학과 식생활 개선 등으로 생존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고령 인구가 더 많아지고, 그 고령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젊은 경제 활동인구가 충분히 존재하지 않으면 분명히 사회문제와 세대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이런 문제 중 하나가 연금이다. 서양의 실례를 통해 만난 연금 운영에 비추어 한국과 일본의 연금 방식은 그 시작부터 문제가 있음을 이 책에서 지적하는데 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불신의 늪이 깊어진다.

 

재미있는 가정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사라지면”이라는 설정이다. 이 설정을 한국의 상황에 맞춰 “조선족이나 동남아 사람들이 사라진다면”으로 바꾸면 어떨까? 아마 수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거나 힘겹게 운영될 것이고 많은 중소기업들이 납기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이제 수많은 저임금 외부 인력의 도움으로 굴러가고 있다. 헌데 법이나 사람들의 인식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저 출산이나 중국의 한 가족 한 자녀 등으로 인한 ‘소황제’의 탄생이나 저 출산과 높은 자살율을 보이는 러시아나 자국의 교육 받은 전문가가 해외 인력시장으로 빠져 나가는 필리핀이나 동유럽의 모습은 새로운 문제를 생각한다. 높은 교육열이나 ‘소황제’는 분명 부모의 부가 받쳐주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고, 술 등에 의한 러시아의 높은 자살율과 저 출산은 넓은 영토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필리핀 등에서 높은 교육을 받은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감으로 인한 자국의 슬럼화는 악순환의 고리처럼 느껴진다.

 

미국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 필립 롱맨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우면서 무서운 내용을 만났다. 종교원리주의 대두와 과학 경시나 계몽운동의 쇠퇴 등으로 미래는 중세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종교의 보수화와 출산율에 대한 연관성을 그는 지적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전쟁보다 연금이나 안정을 추구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른 학자들도 주장하는 바이기는 하다.

 

인구라는 하나의 시선으로 세계의 미래를 들여다보니 무리하고 과장된 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과장된 내용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학의 발달로 식량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지역과 국가 간 인구 성장 불균형이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인구 문제는 이제 새로운 세계 인식을 위한 또 하나의 시각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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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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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베타운라’ 이 말은 네팔말로 ‘서로를 다시 볼 때까지’라는 의미다. 네팔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학교 도서관을 보고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읽을 때 내 가슴은 아픔으로 다가왔고, 결과를 알고 있기에 감동을 느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이사로 정신없이 일하다 휴가를 위해 온 아름답지만 가난하고 문맹률이 높은 이 나라가 수많은 나라에게 도움을 주는 재단을 설립하고 발전할 것으로 누가 생각했겠는가!

 

룸 투 리드(room to read)재단 CEO인 존 우드의 수많은 도서관과 백만 권의 도서에 대한 이 기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시작은 비록 대단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앞에 놓인 성공을 뒤로하고 이 사업에 뛰어든 그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성공을 가감하게 박차고 나간 그의 이 기록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만약 편안하고 스트레스 없는 저임금의 일로 움직였다면 놀랍지만 대단하고 존경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정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회사에서 일한 것 이상으로 일하고 있다. 그 열정과 노력과 헌신은 보는 나로 하여금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게 만든다.

 

그의 수많은 업적은 수치로 환산되어 나타난다. 3000개의 도서관, 200개의 학교, 백오십만 권의 도서. 하지만 그 수치 뒤에 있는 열정과 도전은 과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보여준다. 또 다른 비영리재단과 분명히 차별되는 모습이다. 자신이 기업에서 배운 수많은 방법을 재단 운영에 도입하고, 재단 운영에 필요한 경비 등을 줄이면서 하나라도 더 많은 도서관 등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이 투명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되는 방식은 후원자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쓰이는지 알게 만들어 기쁨을 배가시킨다.

 

기부금 조성 방법에서도 다른 재단과 다른 모습이다. 굶주리고 가난하고 빈곤한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비록 이런 영상들이 사람들의 죄책감을 건드려 마케팅에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도 모두 이 사업으로 혜택을 받은 곳과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처음 시작은 힘들었지만 그를 찾아와 함께 정열과 밝은 미래를 가진 인물들은 그가 이 사업을 계속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든 주요한 동력이다. 또 이런 정열적인 사람과의 만남과 더불어 자신들의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하지만 정확하게 기부금이 사용되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장을 발견한 것은 사업가로써의 그의 감각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책 곳곳에 나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경험한 일들과 스티브 볼머의 이야기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숫자와 열정과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마음 자세는 성공의 밑그림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풍경이다. 우리나라 벽촌 오지에서도 이런 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소한 우리의 문맹률은 세계 최소다. 위대한 한글의 효용을 넘어 높은 교육열과 비교적 잘 갖추어진 학교시설 덕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가 높은 문맹률을 기록한다. 특히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지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누군가와 배움의 기회를 원천에서 부여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점이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가 중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할 때다. 실제 필요한 사람들보다 잠재적인 고객을 위해 자선과 기부가 이루어지게 기획하는 회의에 대한 것이다. 기업의 자선사업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외국의 예가 아니고 우리나라만 하여도 학교 등에 기부를 하고 이를 기업이미지 광고에 활용하는 내용을 많이 보았지 않은가! 물론 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홍보를 위한 행위다. 기업의 홍보 예산이 줄어들면 갑자기 사라지는 현실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알게 되면 좋게만 볼 수 없다. 이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자선과 기부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저자가 보여준 수많은 결과물과 과정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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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김종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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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남자가 쫓긴다. 그의 뒤를 사신이 따라온다. 헌데 이 남자의 정체는 토악질을 할 정도로 잔혹한 살인마다. 그의 회상을 따라가면 이유 없는 살인이 나온다. 궁금해서 쾌락을 느끼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이런 그를 쫓아와 잔혹하게 죽이는 어둠의 존재가 있다. 그 과정은 참혹하고 잔인하여 그 살인마에 버금간다. 그 최후의 순간 한 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악몽이다. 그리고 빠진 하나의 손톱.

 

첫 장면부터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섬뜩하다. 간결한 문장과 직접적인 표현은 읽는 사람이 숨을 고를 틈을 주지 않는다. 단숨에 읽고 빠져 나와 마주한 장면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그 참혹한 악몽과 현실의 홍지인을 만나다. 그리고 다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마주한다. 그녀 홍지인의 딸이 일 년 전 목이 졸려 죽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악몽과 손톱은 하나씩 되풀이되면서 그 진실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라만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주술 단어다. 그는 손톱을 먹는 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존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 존재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약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긴 하지만 공포소설에서 이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공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 존재 자체가 공포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에 나오는 의미는 의미심장하고 사건을 풀어내는 단서이기도 하다.

 

손톱. 사람의 손가락은 모두 10개다. 이 말은 곧 열 명의 죽음을 의미한다. 사이코패스 같은 첫 번째 악몽에서 만난 악당과 살인청부업자와 퍽치기를 지나 고문 기술자에 이르면 조금 윤곽이 잡혀야 하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물론 소설은 앞에서 단서를 널어놓았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중반 이후 마무리가 되기 전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인을 찾아내는 즐거움보다 악몽과 연결되는 사람들의 사연과 놀라운 과거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 사실들이 더한 재미를 주는지도 모른다.

 

기억. 우린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억은 선택적이고 암시 등에 의해 왜곡되기도 한다. 자신의 잘못을 오래 기억하기보다 왜곡이나 합리화 시키고 잊기를 더 좋아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 소설 속엔 고문 기술자 조성필이다. 참혹하게 사람들을 죽여 놓고 소위 말하는 빽으로 풀려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가 저지른 잔인하고 무서운 일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 기억은 부정확하고 왜곡되고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이런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반복된다.

 

6월 15일. 이 모든 사건이 발생한 날짜다. 모든 죽음이 이 날에 이루어졌다. 그 시간은 동일하지 않지만 공통되는 날짜다. 긴 시간을 들여다보면 마주하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있다. 비록 그들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날 벌어진 사건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사건들이다.

 

거울. 이상의 시와 더불어 이 소설을 풀어내는 또 다른 단서다. 이상의 시로 시작한 몇 편의 한국 소설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최근에 다시 재간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도 이상의 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음모론과 모험을 다룬 것이지만 이 소설은 공포를 다루고 있다. 다시 이상의 시집을 읽어야 하려나? 거울의 이미지와 이상의 시는 또 다른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모든 단서들이 풀어내는 공포는 굉장히 직접적이다. 힘들게 돌아가지 않고 직접 그 상황과 장면을 그려낸다. 피가 흐르고 신체의 일부가 드러나는 장면과 그 고통과 공포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간결한 문장과 차분한 시선으로 더 가속화시킨다. 감정이입 되는 순간 몸을 타고 오르는 괴이한 기분은 섬뜩하다. 그래서인지 단숨에 읽지는 못했다.

 

라만고를 만난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다르다. 자살로 삶을 끝내거나 타인에게 살해당하거나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수하거나 아니면 타인에게 그 죄를 덮어씌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어놓은 하나의 가능성은 이 무시무시한 사건들과 현실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준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가장 힘든 것인지 모른다. 그 고통과 비극을 직접 마주하고 인정하고 껴안고 살 때 비로써 그 고통을 넘어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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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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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나 소설은 많다. 이 소설도 그런 많은 소설 중 한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 등과 달리 한 사람만의 이동이 아닌 두 사람의 시간 이동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같은 나라의 그렇게 먼 시간이 아닌 두 세대가 조금 못 미치는 57년이다. 현재의 2001년과 1944년에 이 둘은 서로 다른 시간대로 들어간다.

 

왜 1944년으로 정했을까? 일본 군국주의가 2차 대전 마지막 광기에 휩싸인 그 시대로 정한 것은 왜일까? 현재의 풍족하고 전통적 가치관이 많이 사라진 시대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극적 효과만을 위한 시간대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자나 역자가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자 적어주었으면 하지만 책에서 그 흐름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겐타는 서핑을 좋아하는 19세 소년이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서핑을 즐기려고 바다를 찾는다. 과거 1944년의 고이치도 19세 소년이다. 그는 연습항공대 소속 예비조종사로 홀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그런 중 이 둘은 예기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고 서로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현재는 바뀐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서로 바뀐 환경은 낯설다. 겐타에게 과거의 모습은 불과 몇 십 년 전인데도 낯설다. 한창 전쟁 중임을 생각하면 그 낯선 풍경과 환경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처음 그가 낯선 환경에서 생각한 것이 몰래 카메라임을 생각하는 장면은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어서 만나게 되는 현실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자신의 시대와는 다른 군국주의와 폭력과 광기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살기 위해,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고이치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어 적응한다.

 

고이치에게도 현재는 낯선 곳이다. 머리를 다양한 색으로 물들이고, 몸 여기저기 피어싱을 하고, 자신의 시대에 비해 맨몸을 드러낸 여자들로 넘쳐나는 거리는 휘황찬란한 건물 모습과 더불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깨어나는 병원에서 보여주는 반응은 재미난 모습이지만 불과 57년만의 엄청난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적국과 스파이에 대한 것이니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지배를 받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도 또한 자신을 겐타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적응한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 두 시대의 다른 일본인을 통해 바라본 일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다. 현재의 겐타가 마주한 과거는 이미 자신이 결과를 알고 있는 과거라는 점이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은 쉽게 견디기 어렵다. 고이치가 과거 역사를 읽고 전쟁의 결과를 알게 되는 장면과 전쟁에서 졌는데도 현재 일본인들이 풍요롭게 잘 살아가는 현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이성과 강요된 정보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마주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재미있다. 여기에 미나미라는 여자의 존재는 두 남자가 현재라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다. 그리고 그녀와 관련된 정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이 통로가 이상하게 틀어지며 혼란에 휩싸이게 만든다.

 

가끔 시간여행을 꿈꾸곤 했다. 나의 시간여행은 이런 어렵고 힘든 여행이 아니다. 과거로 간다면 알고 있는 정보로 부를 이루거나 지식으로 엄청난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이 내 마음대로인 경우가 태반이다. 미래로 간다고 해도 정보를 얻어 현재에 부를 쌓거나 멋진 관광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소설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

 

소설을 보다 재미있는 표현 한 구절이 있었다. 고이즈미 외모에 대한 고이치의 생각인데 ‘반백의 머리를 작가처럼, 서양 개 같은 용모의 일본인’(187쪽)이란 묘사다. 겐타의 시각에서 본 일본 군국주의 마지막 상황묘사와 더불어 그의 정치색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고이치가 현재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은 극우파들이 현재 모습이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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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55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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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나이트 워치’에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린 탓에 이 책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비록 전편을 읽은 것이 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읽다보니 몇 가지는 새록새록 기억을 새롭게 하였다. 반가운 등장인물들도 보이고, 비슷한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전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과 전개방식은 마지막을 보기 전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각각 완결되어 있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 각 장이 이어진 것처럼 전작의 이야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차이라면 ‘나이트 워치’가 안톤의 시선으로 진행된 부분이 많았다면 이번엔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나오고 안톤이 조연으로 사건의 핵심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톤의 멋진 활약을 조금 기대한 나에겐 약간은 불만스럽기도 하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은 독특한 세계관과 세심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전개와 예측하지 못한 결말이다. 이번도 전혀 결말을 예측한 것이 맞지 않았고, 각 장마다 나온 이야기와 마지막 결말과의 관계를 추측하지 못했다.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책 뒤표지에 나온 적그리스도라는 인물과 관련하여 보통의 상상으로 예상한 잘못이 크다. 미국 영화나 소설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상황을 이 소설에 대입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지만 출판사에도 약간은 불만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책 소개 글을 적은 것인가 한다. 이 때문에 각장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모두 적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상상하느라 다른 쪽으론 생각조차 못하였으니 정말 멋지게 당한 것이다. 뭐 다른 곳에서도 워낙 많이 당했고, 마지막 이야기에서도 살포시 그런 분위기를 풍기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이런저런 것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역시 독특한 세계관이 아닌가 한다. 선과 악의 균형과 가끔씩 툭툭 터져 나오는 멋진 문장과 비유는 본 듯한 부분도 있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본적인 이분법에 의한 선악 대결이 아닌 치밀하게 구성된 균형을 이룬 다툼이라는 부분은 다시 보아도 놀랍고 즐거운 대목이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에 가서 드러나는 모든 비밀에 대한 단서들이 작가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선 약간 불만이 있다. 아니면 내가 그 단서들을 찾지 못한 것일까?

 

현재 3번째 작품인 ‘더스크 워치’도 러시아에서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빠른 시간 안에 번역 출간되길 기대한다. 이번엔 또 어떤 대립과 갈들이 두 경비대 사이에 벌어질지와 어떻게 두 대장의 불꽃 튀는 두뇌 대결로 이어질지가 궁금하다. 우리의 안톤은 이번엔 좀 비중 있게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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