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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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을 말한다.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중국이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티베트도 중국이란 나라의 자치구이니 중국과 중국인은 다른 점이 많다. 여기서 중국인이란 좁게 본다면 한족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읽는 나에겐 머릿속에 한족을 계속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9개의 단어로 중국인을 말한다. 그 아홉 가지는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한담이다. 음식에서 시작한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우린 흔히 중국 사람은 네발 달린 것 중 탁자 빼고는 모두 먹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홉 단어가 풀어내는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음식은 생존의 바탕이자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앞에 나온 것이다. 이 음식은 단순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단어들과 연관성을 맺고 있다. 훠궈에 대한 이야기나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를, 의복을 통해 서열 관계를, 체면이나 인정이나 단위를 통해 개인의 사회관계를, 가정과 결혼을 말하며 사회의 기본 조직에 대해서, 우정을 말하며 다시 인정이나 용기 등을 말한다.

 

단순히 단어만으로 보면 피상적이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를 풀어내면서 해설한 것을 읽다보면 예상 외로 우리와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한다. 이것은 아마도 같은 유교 문화권이고, 조선시대 주자학을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으면서 더욱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저자가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듯이 국외자인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비록 한자를 같이 사용했다고 하지만 다른 생활환경 등으로 인해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니 그 실체를 좀처럼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한 번 되집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다.

 

기본 시각은 비판적이다. 하지만 무조건 비판적이 아니라 잘잘못을 나름대로 잘 분석해서 말하고 있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면서 ‘세월아, 네월아!’ 외치는 만만디 성격이나 내 것은 내 것이고 국가의 것도 내 것이란 생각은 상당히 재미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의복에 대한 이야기는 왜 중국에서 ‘예’에 대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 유익한 설명이었다. 복장에서 서열이 정해지고, 장례에서 어떤 복장을 몇 년 할 것인가가 정해지는 대목에선 조선시대를 예송논쟁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렇게 충효를 중요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중국에서 나라보다 중요한 것이 가족이란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체면과 인정에 대한 설명에선 중국 영화나 소설에서 중재자로 힘 있는 사람이 끼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글에선 유학자의 이념이 부부간의 정보다 거리를 우선시 했다는 점과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게 되고 현재는 소황제란 존재까지 생겼을 정도라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변해가는 세태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강조하는데 우리의 급속한 세태를 생각하면 지금 중국도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장유유서라는 대목은 지배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이어지면서 현재의 중국인을 만들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한자를 풀어서 설명하는 내용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중국인을 가장 선한 민족이라고 칭하는 대목이나 예전에 중국 변경의 동이나 서융이나 남만이나 북적 등의 오랑캐에 대한 글에서 살짝 눈썹이 찌푸려진다. 선한 민족이라는 이유가 동정심이 약자 편으로 기운다는 예를 들었는데 그들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살육과 침공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의 티베트 사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이란 단어에서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그 외 민족이나 국가를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하는데 이 의미를 잘 새겨보면 그들이 가진 공포심이 묻어난다.

 

책 속엔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하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처세술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오는데 이 책 속에 담긴 중국인의 인간관계나 살아온 여정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처세술에 대해 배우게 된다. 두툼한 이 책을 한 번 읽고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일독으로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알게 된다. 한자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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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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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 몇 년도 작품인지 찾아본다. 알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추측만 가지고 읽다가 책 속에 나오는 분위기나 시대가 조금 다른 경우는 거의 대부분 찾는다. 이 소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초기작에 속한다. 1991년도 출간된 듯하다. 요 근래 읽은 책들과 분위기나 문체 등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기에 찾았는데 역시 최신작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한 문장이나 문체는 최근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을 살려내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이 소설은 복수와 미스터리라는 두 줄기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여인과 복수의 대상을 찾는 추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 복수는 예쁘지 않은 자신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추억에 대한 것이고, 미스터리는 과연 그 누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과정을 교묘하게 숨기고 비틀어서 독자의 시선을 가려놓는다. 복수하고자 하는 여인 기리유의 추억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더욱 이 늪에 빠지게 된다. 의도된 연출이지만 왠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반년 전 회랑정에 불이 났다. 그 화재 속에서 한 남자가 죽고, 한 여자가 화상을 입었다. 죽은 남자는 사토나카 지로, 그 여자는 기리유 에리코다. 경찰은 지로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고, 그녀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동반자살시도로 추측한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났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지로는 죽었다. 그녀는 이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살로 가장하고 자신을 도와줄 혼마 여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죽어있었다. 그래서 그녀로 변신하고 복수를 하려고 다시 복원된 회랑정에 온다. 화재의 그 날 회랑정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회랑정의 주인인 다카아키 씨의 유언장 공개를 기다린다. 거대한 부의 상속자가 누군인지 가려지는 그 순간을.

 

기리유는 복수를 위해 덫을 놓는다. 하지만 예상외의 인물이 그 덫을 밟는다. 덫을 밟은 인물을 찾아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죽어있다. 누굴까? 다잉 메시지가 남겨져 있지만 애매하다. 살인사건으로 새롭게 경찰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녀의 추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경찰들이 찾아내는 단서들은 그녀를 위태롭게 한다. 30대가 70대 노파로 변장하면서 생긴 위화감을 놓치지 않는 몇몇의 시선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한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점점 조여 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범인은 왜 그녀를 죽이려고 했을까? 답은 예상한 범위 안에 있다. 아마 이 소설과 비슷한 소설을 읽었기에 예측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부의 다른 인물이 없는 제한된 인원 속에서 벌어지는 이 추리소설이 최근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고전 추리소설의 모습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수와 추리 일변도의 진행과 전개다. 사회 문제라거나 깊은 심리묘사가 담겨 있지 않다. 덕분에 간결한 느낌을 주지만 새로움이나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반전조차도 약간은 예측한 부분이 있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오히려 작가의 교묘한 기술이 정당하다는 느낌보다 그렇구나 하고 호응하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인물의 특성들도 역시 입체적인 느낌보다 겉돌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 이후 다양한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자주 본 듯한 인물들이기에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큰 기대 없이 읽거나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가 주는 속도감과 간결함에 재미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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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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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들고 생각한 것은 단숨에 읽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기 전에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한 남자의 기나긴 자기 변론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까지 끌어들여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가 벌인 ‘놀이’를 보면 상당히 냉정하고 얼음 같을 것이란 느낌도 들지만 그 자신도 다른 놀이자들의 상대가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비정하고 냉정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소설은 자신이 왜 그 남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성장하면서 마주하게 된 몇 가지 일들이 평범한 삶으로부터 정상적이지 못한 삶으로 이끈다. 그 긴 변명을 듣다보면 자신의 변호사에게 보내는 변론서 역할보다 오히려 자서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상당히 비틀린 자서전 말이다.

 

범죄소설이고 공공장소에서 살인을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이 남자가 살인을 하고, 왜 하는지 상당히 궁금했다. 하지만 작가는 책의 마지막까지 살인에 대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철학을 길게 풀어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닮은꼴로 나폴레옹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범죄를 변론한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것이 단순히 멈추거나 타협해야할 역사적 순간에 멈추지도 타협하지도 않고 자신이 만든 놀이판에서 놀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아전인수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뭐 일면 그의 이론에 수긍을 하게 된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 이런 장면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보이는데 그 보이는 길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호이징가가 말했던가? 호모루덴스라고.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은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그의 인간관을 여기에 직접 대입하는 데 무리가 있다. 하지만 책속의 화자가 말하는 놀이도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호이징가가 말한 인간의 본질이자 문화의 근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쉽고 편하고 단순한 길이 아닌 창조적이고 변화가 무궁한 놀이다. 이런 놀이의 개념을 자신의 긴 인생 역정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분명히 계획된 살인인데.

 

그 계획 살인을 그는 불가피한 살해라고 주장한다.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당구를 빗대어 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처럼 살인도구로 당구 큐를 이용한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살인도구가 나중에 반환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다른 큐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을 알면 그의 재판에서 분명히 나쁜 결과를 가져올 텐데 말이다. 하지만 변호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서 이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중에 그 변호사를 자신의 공모자로 만들려고 하니 대단한 사람(?)이다.

 

만약 이 소설에서 살인사건을 둘러싼 형사들이나 탐정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왜냐고? 그런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오는 인물이라고는 화자와 관련된 몇 사람뿐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양어머니와 계모의 아들 정도랄까? 그 외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인물들이 그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이들처럼 길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이를 보면 성장기의 중요성을 은연중에 표시하는 것은 아닌가 짐작한다. 이 부분은 화자가 앞에서도 자신의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평범한 공장 사장으로 아이들을 낳고 살았을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 반복된다.

긴 자서전적 독백을 읽다보면 당구와 놀이라는 두 가지를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체스보다 더 다양한 가능성과 능동성을 말하고, 나폴레옹 같은 인물들의 놀이에 대한 열렬한 숭배와 권태를 벗어나려는 모습은 활동적인 화자를 보게 된다. 비록 그의 놀이에 대한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냉소적인 문장과 블랙유머는 그 황당함을 가볍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근대의 평등이론을 교육 받고, 부조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생각하면 결코 이 책속에 담긴 이야기가 가벼운 놀이로, 이야기로 취급할 것은 아니다. 이 책 역시 다음에 다시 정독해봐야 그 맛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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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세계신화여행 1 - 세상을 바꾼 창조적 상상력의 시원을 추적하다
이인식 지음 / 갤리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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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좋아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난다. 하나는 전 세계 전래 동화였고, 다른 하나는 신화였다. 지금은 유명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잊었지만 그 당시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생각난다. 그 후 여기저기에서 세계 각국의 신화와 관련된 단편적이거나 부분 이야기를 보았지만 이 책처럼 정리된 신화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세계 신화 전설을 21세기 과학기술의 눈으로 읽으면서 신화 속의 꿈같은 이야기가 과학기술에 의해 마침내 실현되는 위대한 순간을 집대성해 놓은 신화 해설서란 점은 더욱 관심을 끈다.

 

이번 책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는 모두 16꼭지다. 우주의 탄생에서 델포이 신전까지 다루는데 한 번씩은 들은 이야기다. 물론 몇 가지 세부적인 내용은 새롭게 느껴지고, 나의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지만 현대 과학과 연결해서 해설한 부분은 신화가 단순히 지나간 전설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되고 연구될 가치가 있는 역사적 기록처럼 느껴진다. 첫 장에서 세계 각국의 우주의 탄생 신화에서 현재의 카오스 이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책의 의도를 아주 잘 나타내어준다.

 

가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등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신화를 현대 과학에서 구현하고. 인류가 새로운 위기로 이전 같은 암흑기를 거친다면 현재의 우리 이야기가 신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상상한다. 과거의 상상력이 현재의 과학으로, 다시 신화로 이어지는 이런 상상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신화나 전설 때문에 더욱 부채질한다.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즐거움 이 책 곳곳에 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두고 세계 각국의 신화를 풀어내고 있다. 너무 유명한 홍수 신화부터 창조 신화 등은 익숙하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의 대부분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그 바탕을 두고 있어 다른 나라의 신화가 많이 없다. 이것은 지금의 과학이 서양에 의해 발전하고 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잘 정리된 중국과 인도의 신화는 많이 나오지만 우리의 신화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가끔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다가 느끼는 허전함과 아쉬운 대목이다. 분명히 우리도 수많은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읽다 보면 단위 때문이나 단어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중국 연금술을 다룬 부분에서 서양의 무게 단위인 파운드니 온스니 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폴론이 히아킨토스의 죽음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대목이다. 서양이라면 하프나 다른 악기명이 있을 텐데. 어쩌면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즐겁게 읽는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오면 옥의 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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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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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작가 서유미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는 해일 것이다. 두 편의 장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로 받은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과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받은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이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편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이 한 노처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에 전작은 백화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군상들의 삶과 마음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론 전작이 더 재미있었다. 아마 취향 탓일 것이다.

 

32살의 직장여성 연수는 몇 년 사귄 남자친구와 멋진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멋진 레스토랑을 오면서 점퍼를 입고 오고, 그 위에 스테이크를 떨어트리고, 여자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유명한 모텔을 잡고 DVD를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불만과 조금씩 생긴 균열은 크게 벌어지고 헤어지게 된다. 여기에 회사마저 휘청휘청한다. 그래서 먼저 사표를 쓴다. 백수의 삶에 빠진다.

 

소설은 여기서 한 노처녀의 마음과 그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려낸다. 나이 드신 아버지나 갱년기 엄마의 눈물을 보게 되고, 직장을 다닐 때 그냥 덤덤했던 일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한다. 이런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변화 속에 연수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다시 생각한다.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평으로 상을 받고, 영화 기자나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이룰까?

 

불과 10년 전이었다면 삼십을 넘긴 여자를 노처녀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주변에 너무 많은 여자들이 삼십을 넘겼다. 내 주변에 미혼 30대가 넘쳐나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노처녀들이 나이가 든 만큼 내적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내적 성장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녀의 몇 개월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그 윤곽을 잡게 된다. 물론 이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책 속엔 재미난 등장인물이 많다. 그녀의 부모만 해도 현실적이면서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시선이 가는 인물은 연재와 선영이다. 연재는 어릴 때부터 미모가 뛰어나고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가 부자 남편을 만나 강남 넓은 아파트에서 산다. 근데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뒤늦게 사춘기에 빠진 것이다. 시집을 읽고, 시를 쓰고,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수와 동갑임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다시 투기를 위해 땅을 보러 다닌다.

 

연재가 어릴 때부터 노는 것과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면 선영은 대학 4학년 전까지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일탈과 다양한 경험과 모험의 세계에 빠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자신을 좋아하는 안과의사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자신감 가득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남자에게 자신의 밑천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IMF여파 속에서도 대기업에 취직할 정도고 뛰어난 외모를 가진 남자들과 무수히 사귄 그녀가 말이다.

길게 나오지 않지만 인상적인 인물들이다. 인상적인 인물 속에 안타까움을 주는 인물도 있는데 그가 바로 동남이다. 가끔 가는 도서관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30대 공무원이나 입사 시험 준비생들의 한 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추리한 모습에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으로 숨을 돌리는 그들의 초상과도 같다. 삶의 가장 높은 곳에서 희망이란 바람을 타고 날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땅으로 추락한 그의 모습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어른으로서의 발판을 다지는데 실패한 삼십대의 전형으로 작가는 설정한 인물이다. 그 효과는 잘 드러났다.

 

변함없이 문장은 재미있다. 가슴에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서 보인다. 한 문장에서 삶의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한 문장에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다른 문장에선 웃음을 살포시 터트린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다룬 부분에서 나도 저랬지 하고, 다른 성으로 인한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은 그런가? 하는 의문을 준다. 삶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된다. 그 계속되는 삶에서 한걸음을 어떻게 내딛는가에 따라 그 변화의 가능성은 달라진다. 소설 속 연수는 과연 제목처럼 쿨하게 큰 걸음을 내딛었을까? 아마도 아직은 답을 기다리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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