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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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작가 서유미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는 해일 것이다. 두 편의 장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로 받은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과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받은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이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편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이 한 노처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에 전작은 백화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군상들의 삶과 마음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론 전작이 더 재미있었다. 아마 취향 탓일 것이다.

 

32살의 직장여성 연수는 몇 년 사귄 남자친구와 멋진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멋진 레스토랑을 오면서 점퍼를 입고 오고, 그 위에 스테이크를 떨어트리고, 여자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유명한 모텔을 잡고 DVD를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불만과 조금씩 생긴 균열은 크게 벌어지고 헤어지게 된다. 여기에 회사마저 휘청휘청한다. 그래서 먼저 사표를 쓴다. 백수의 삶에 빠진다.

 

소설은 여기서 한 노처녀의 마음과 그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려낸다. 나이 드신 아버지나 갱년기 엄마의 눈물을 보게 되고, 직장을 다닐 때 그냥 덤덤했던 일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한다. 이런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변화 속에 연수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다시 생각한다.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평으로 상을 받고, 영화 기자나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이룰까?

 

불과 10년 전이었다면 삼십을 넘긴 여자를 노처녀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주변에 너무 많은 여자들이 삼십을 넘겼다. 내 주변에 미혼 30대가 넘쳐나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노처녀들이 나이가 든 만큼 내적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내적 성장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녀의 몇 개월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그 윤곽을 잡게 된다. 물론 이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책 속엔 재미난 등장인물이 많다. 그녀의 부모만 해도 현실적이면서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시선이 가는 인물은 연재와 선영이다. 연재는 어릴 때부터 미모가 뛰어나고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가 부자 남편을 만나 강남 넓은 아파트에서 산다. 근데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뒤늦게 사춘기에 빠진 것이다. 시집을 읽고, 시를 쓰고,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수와 동갑임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다시 투기를 위해 땅을 보러 다닌다.

 

연재가 어릴 때부터 노는 것과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면 선영은 대학 4학년 전까지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일탈과 다양한 경험과 모험의 세계에 빠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자신을 좋아하는 안과의사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자신감 가득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남자에게 자신의 밑천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IMF여파 속에서도 대기업에 취직할 정도고 뛰어난 외모를 가진 남자들과 무수히 사귄 그녀가 말이다.

길게 나오지 않지만 인상적인 인물들이다. 인상적인 인물 속에 안타까움을 주는 인물도 있는데 그가 바로 동남이다. 가끔 가는 도서관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30대 공무원이나 입사 시험 준비생들의 한 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추리한 모습에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으로 숨을 돌리는 그들의 초상과도 같다. 삶의 가장 높은 곳에서 희망이란 바람을 타고 날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땅으로 추락한 그의 모습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어른으로서의 발판을 다지는데 실패한 삼십대의 전형으로 작가는 설정한 인물이다. 그 효과는 잘 드러났다.

 

변함없이 문장은 재미있다. 가슴에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서 보인다. 한 문장에서 삶의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한 문장에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다른 문장에선 웃음을 살포시 터트린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다룬 부분에서 나도 저랬지 하고, 다른 성으로 인한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은 그런가? 하는 의문을 준다. 삶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된다. 그 계속되는 삶에서 한걸음을 어떻게 내딛는가에 따라 그 변화의 가능성은 달라진다. 소설 속 연수는 과연 제목처럼 쿨하게 큰 걸음을 내딛었을까? 아마도 아직은 답을 기다리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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