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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책을 읽다 몇 년도 작품인지 찾아본다. 알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추측만 가지고 읽다가 책 속에 나오는 분위기나 시대가 조금 다른 경우는 거의 대부분 찾는다. 이 소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초기작에 속한다. 1991년도 출간된 듯하다. 요 근래 읽은 책들과 분위기나 문체 등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기에 찾았는데 역시 최신작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한 문장이나 문체는 최근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을 살려내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이 소설은 복수와 미스터리라는 두 줄기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여인과 복수의 대상을 찾는 추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 복수는 예쁘지 않은 자신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추억에 대한 것이고, 미스터리는 과연 그 누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과정을 교묘하게 숨기고 비틀어서 독자의 시선을 가려놓는다. 복수하고자 하는 여인 기리유의 추억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더욱 이 늪에 빠지게 된다. 의도된 연출이지만 왠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반년 전 회랑정에 불이 났다. 그 화재 속에서 한 남자가 죽고, 한 여자가 화상을 입었다. 죽은 남자는 사토나카 지로, 그 여자는 기리유 에리코다. 경찰은 지로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고, 그녀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동반자살시도로 추측한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났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지로는 죽었다. 그녀는 이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살로 가장하고 자신을 도와줄 혼마 여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죽어있었다. 그래서 그녀로 변신하고 복수를 하려고 다시 복원된 회랑정에 온다. 화재의 그 날 회랑정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회랑정의 주인인 다카아키 씨의 유언장 공개를 기다린다. 거대한 부의 상속자가 누군인지 가려지는 그 순간을.
기리유는 복수를 위해 덫을 놓는다. 하지만 예상외의 인물이 그 덫을 밟는다. 덫을 밟은 인물을 찾아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죽어있다. 누굴까? 다잉 메시지가 남겨져 있지만 애매하다. 살인사건으로 새롭게 경찰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녀의 추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경찰들이 찾아내는 단서들은 그녀를 위태롭게 한다. 30대가 70대 노파로 변장하면서 생긴 위화감을 놓치지 않는 몇몇의 시선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한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점점 조여 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범인은 왜 그녀를 죽이려고 했을까? 답은 예상한 범위 안에 있다. 아마 이 소설과 비슷한 소설을 읽었기에 예측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부의 다른 인물이 없는 제한된 인원 속에서 벌어지는 이 추리소설이 최근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고전 추리소설의 모습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수와 추리 일변도의 진행과 전개다. 사회 문제라거나 깊은 심리묘사가 담겨 있지 않다. 덕분에 간결한 느낌을 주지만 새로움이나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반전조차도 약간은 예측한 부분이 있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오히려 작가의 교묘한 기술이 정당하다는 느낌보다 그렇구나 하고 호응하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인물의 특성들도 역시 입체적인 느낌보다 겉돌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 이후 다양한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자주 본 듯한 인물들이기에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큰 기대 없이 읽거나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가 주는 속도감과 간결함에 재미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