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가운데 밀리언셀러 클럽 134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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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스커더 시리즈 2권이다.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조금 힘이 떨어진다. 그것은 아마 소재가 지닌 충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탐정의 활약은 변함없다.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을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보여준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경찰들의 부패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1976년의 미국 뉴욕의 현실이 그랬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케이블에서 <투캅스>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매튜 스커더의 그 시대와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경찰을 고소한 콜걸을 찾아가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고소당한 경찰은 제리 브로드필드다. 그는 경찰 비리를 특별검사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경찰들의 적이 된다. 그를 고소한 콜걸은 포샤다.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제리에게 육체도 제공하고 매주 100불을 상납했다. 이런 상황이 그녀가 제리를 고소할 정도는 아니다. 그 시대 경찰 분위기에 의하면. 제리가 매튜를 고용한 것은 그녀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달라는 것이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의 시체가 제리의 집에서 발견된다. 그는 구속된다.

 

부패한 경찰이 부패 경찰 비리를 왜 까발리려고 할까? 첫 번째 생긴 의문이다. 경찰은 유대감이 강해 자신들의 비리가 까발리는 경찰을 용서하지 않는다. 제리를 위해 일하는 매튜에게까지 분노를 토해내는 그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튜의 조사가 시작된다. 그의 직감은 제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상황이나 정보 등이 다른 이유와 범인상을 가리킨다.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과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간다.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동시에 점점 깊어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빠져든다.

 

형사는 발로 생각하는 존재다. 그는 형사였다. 경찰이 가진 사고방식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무면허 탐정이 경찰 방식을 따라가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정보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하는 제약도 있다. 전직 경찰인 그는 경찰 방식을 지우면서 그 장점을 취하고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 과정은 책 분량 때문인지 아주 간결하다. 이것도 사실 조금 불만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분명 풀어낼 수 있는데. 하지만 이 불만을 넘어선 매력이 있다.

 

매튜의 행동과 심리 묘사를 보면 건조하다. 잠깐 정을 붙이려고 한 제리의 아내도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한다. 이런 관계의 파탄과 파편들이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고독이 얼핏 보인다. 고소와 죽음의 이면에 숨져진 진실이 드러날 때 인간의 추악한 욕망도 드러난다. 최근 스릴러 장르에서 보여주는 잔혹하고 긴박한 전개는 없지만 좀더 현실적인 모습이다. 점점 폭력과 액션 등이 강해지는 요즘 경향을 생각하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에 빠져드는 것은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욕망과 폭력과 공포 등. 마지막 반전같은 장면은 역시 조직과 시대의 풍경을 아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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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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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은 육체에 흔적을 남기고 고이는 시간은 가슴에 흔적을 새긴다.”(6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디에선가 본 것도 같은 느낌이 있지만 가슴 한켠에 조용히 와 닿는 문장이다. 제주 잠녀 출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에서 이 문장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 고여 있는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이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해금과 미유. 이 두 여자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다. 이 둘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해금의 어머니 구월과 아들 켄의 이야기가 이 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가족사를 타고 흐르는 한국 근현대사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있다. 낯선 것들 대부분은 바로 일본에 살았던 조선인들의 삶이다.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의 고난과 선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어져 왔는지 차분히 설명해줄 때 나의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한국 역사에서 살짝 비켜나 있거나 지워져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제 치하 대한민국 국민의 삶은 궁핍했다. 최근에 고소득 직업으로 우대받는 제주 해녀들의 삶이 일제 시대로 가면 어떤 억압과 서러움을 겪었는지 잘 알 수 있다. 권리는 억압당하고 소득은 줄어든다. 조합을 만들지만 일제는 강하게 탄압한다.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일본행이다. 그곳에서 돈을 벌었다고 해도 제주도에서의 삶이 윤택하지 못하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것이 일본행이다. 낯선 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 바다 속을 들어간다. 하지만 2차 대전의 광기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모든 것을 전쟁에 맞춘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고 좋은 일본 사람을 만나면 실날 같은 희망이 보인다.

 

구월이 생존을 위해 미야케지마에 온 것이나 해금이 아들 켄의 미래를 위해 일본인 마츠가와 후쿠오와 결혼한 것 등은 모두 동일선상에 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도 비극은 있다. 구월의 남편은 핵폭탄에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해금의 남자 한태주와 동생 기영은 북한으로 간 후 소식이 없거나 죽었다. 어쩌면 그 시대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을 했을 텐데 그들은 흔적조차 없다. 왜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당시 일본에서 일어난 동족간의 다툼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설명해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에 일본의 간악한 술책이 더해져 비극은 더욱 심해진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술 속에 제주 잠녀 4대 이야기는 오히려 간결한 느낌이 든다. 미유와 켄을 통해 재일동포의 삶이 어떤지 알려주지만 그 이전 세대가 겪은 아픔이나 고통이 역사의 서술에 파묻힌 것 같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이것이 그들만의 아픔이란 느낌보다 그 시대를 산 모두의 고통이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인지 미유의 삶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더 생동감 있다. 하지만 미유의 감정이 너무 감상적으로 표현되면서 깊게 다가오지는 못한다. 오히려 켄의 과거가 그 시대 재일동포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왜 그가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동의하지 못하지만 이성적으로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누구도 물리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 구월에서 시작해 미유로 이어지는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구월, 해금, 켄, 미유 등의 마음에 새겨진 시간은 멈춰있다. 어쩌면 사람의 삶이란 이 마음에 시간을 새기고 지우는 과정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간은 영원히 새겨진 채 고여있기만 하겠지만. 일제 치하의 제주 잠녀와 재일동포의 삶을 간략하게 역사와 연결해서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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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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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바로 삼촌 라이오넬 때문이다.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가 복권이 당첨된 후 보여주는 행동은 정말 정신이 없다. 뭐 당첨 전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때는 디스턴이란 조그만 도시의 양아치 정도였다. 하지만 거액의 당첨금을 받은 후 모든 매체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다. 단순히 주목받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사건 사고를 만들어낸다. 그 행동의 끝이 어딜까 궁금해진다. 또 당첨금을 단순히 낭비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투자 등을 통해 돈을 불리는 것을 보면 반사회적 행동과 폭력 뒤에 가려진 지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이 모든 지성은 사실 모계 전승인 듯하다. 할머니가 십자말풀이에 재능을 보여주고, 삼촌도 공부에 뜻이 없어 그렇지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화자인 데스도 역시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또는 나쁜 가족 환경에서 그가 성취한 학업 성적은 대단하다. 홀로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간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할머니와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사실이 소설 첫머리에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할머니와 데스 엄마의 출산 나이가 나오면서 한 번 더 놀란다. 둘 다 열두 살에 첫아이를 낳았다.

 

열다섯 손자와 서른아홉 할머니의 근친상간.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보다 더 문제는 바로 삼촌 라이오넬이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금지가 손자를 유혹하게 만든 것 같다. 이후 둘의 관계가 정리되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이 관계의 정리도 도덕적 자각보다는 삼촌이 깔아둔 첩자인 옆집남자의 염탐 때문이다. 자신의 엄마와 자는 남자에게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가 성욕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여자보다 포르노를 더 좋아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두 주인공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라이오넬과 데스. 반사회적인 인물 라이오넬을 통해 인간의 숨져진 혹은 숨겨둔 욕망을 마음껏 밖으로 토해낸다면 데스는 평범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학구적 조카다. 이 둘이 대비되는 와중에 라이오넬은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독자는 그 속에서 데스가 겪고 있고, 겪을 사건에 가슴을 졸인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역시 할머니와의 근친상간이다. 이것을 제외하더라도 라이오넬의 폭력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돈이 있기 전에는 감옥에 들어가면 한동안 잠잠했지만 거부가 된 후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법이 든든히 후원자가 된 것이다.

 

타블로이드 신문의 단골 주인인 라이오넬을 통해 드러나는 블랙유머와 풍자는 사실 대단하다. 욕망의 순수한 결정체 같다고 해야 하나. 직설적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우리의 숨겨진 속내와 비슷하고, 엄청난 부를 쌓은 후 보여주는 행동은 가진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의 소설에서 어느 정도 절제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는 멈춤이 없다.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연출도 쉴새없이 벌이고, 넓은 자신의 집을 놓아두고 조카와 같이 살았던 단칸방을 휴식 공간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이때 개 두 마리를 끌고 들어오는데 나중에 갈등의 원인이 된다. 제목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데스다. 삼촌에게 단 한 푼도 요청하지 않고 힘든 택시를 몰면서 살아가는 그를 보면서 언제 그가 무너지고 삼촌의 도움을 요청할지 상당히 궁금했다. 그 결과는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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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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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첫 작품 <일식>을 아쿠타가와 상 수상 후 읽었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다음 소설 <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작품인 <장송>은 그 두께 때문에 사놓고 언젠가 읽자는 마음으로 묵혀두었다. 솔직히 말해 여유있게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 <결괴>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생각보다 문장과 이야기가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특유의 현학적인 문장과 전개는 나의 인식을 넘어섰다. 그렇지만 예상외의 속도감으로 읽을 수 있었다. 상당한 재미도 같이.

 

결괴(決壞).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 검색했다. 결궤(決潰)와 같은 말이고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을 뜻한다. 왜 이런 제목을 사용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날선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품격 있는 범죄소설의 등장’이란 광고 문구도 책 중반이 되기 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4장 악마와 5장 결괴가 진행되면서 범죄소설이란 문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이 사이에 날선 문제의식이 다키시와 주변 사람을 통해 드러날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왜 결괴란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칭찬했을 때 작가의 이름을 제대로 읽지 않고 왜 미스터리 소설을 칭찬하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작가 이름을 ‘히가시노 게이치’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책에 한 번 눈길이 간 것은 사실이다. 범죄소설이란 단어가 현학적이고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는 평범한 미스터리 소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들이 가진 약점을 콕 찝어 한 방에 밀어붙인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결괴란 단어가 지닌 의미가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고 왜 칭찬하고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사와노 다카시. 그는 천재다. 운동도 공부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냉정하다. 그 냉정함은 어릴 때 어른들도 공포를 느낄 정도다.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개인적이다. 업무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을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열정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다카시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 제목처럼 그가 무너져갈 때도 그의 가슴 한 곳에서는 얼음 같은 냉정함과 이성이 꿈틀거린다. 이루고자 하는 열정을 담은 목표가 없는 그의 삶은 불안정하고 지루하다. 그 때문인지 경찰들의 무식하고 계속적인 취조 앞에 흔들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질 때 그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이성은 감정의 해일 앞에 무너져내린다.

 

본격적인 범죄 이야기의 시작은 악마와 중학생 도모야의 결합에서부터다.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혹시 하는 느낌도 있었다. 그 혹시는 악마가 다카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짐작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 악마의 폭력과 파괴가 냉정한 다키시와 엇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악마에게 다카시의 동생 료스케가 납치, 고문, 토막 살해당하고 악마의 범행성명문이 나오면서 한 개인의 문제가 사회로 번져나간다. 이 성명문은 개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악의를 폭발시키고 무차별 테러와 폭력으로 이어진다.

 

료스케의 토막난 시체가 발견된 후 제1용의자로 다카시가 지목된다. 이유는 가장 마지막에 만났고 헤어지기 전 다투었다는 이유다. 여기에 료스케 아내의 추측이 더해지면서 이후 벌어진 모든 사건의 핵심 인물로 다카시를 지목한다. 그의 이력과 탁월한 능력을 감안해서 경찰이 무리하게 밀고 들어간 것이다. 증거를 숨기고 정보를 왜곡하고 감정을 앞세워 무리하게 자백을 받고자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다카시가 보여주는 행동은 입다물기다. 묵비권의 적극적인 활용인데 잠시 그의 지식이 빛을 발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인물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바로 이 지점이 천재와 일반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전한 사회 체제는 인간에게 규칙을 강요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모든 시스템에서 에러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교육에 따라 이 에러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에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소홀하게 대한다. 가해자에 대한 원인을 쫓아가서 왜? 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지만 피해자들의 그 후 삶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든다. 최근 일본 소설에서 가해자 중심에서 피해자 가족 중심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종종 보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카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 강압적인 취조가 이것에 딱 맞는 상황이다. 그것보다 더 한 장면은 수영하는 료타를 보면서 엄마 요시에가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다. 사회와 자신을 돌아볼 때 미래의 분명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악마는 늘 시험하는 존재야! 결단은 인간 자신의 몫이고!”(343쪽) 라고 악마가 말할 때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악마가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악마를 불러내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살인한다면 악마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다카시도 이 악마의 시험에 빠진다. 앞에 자살의 욕구가 살짝 나오는 장면은 삶의 의지가 나약해졌을 때 드러난다. 환상을 가지고 바닷가로 달려가는 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의식은 분열되고 가족은 산산조각났다. 자신의 의지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다카시의 이성이 열변을 토할 때 집중하게 된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 살인자는 그 누구에게도 용서를 받을 수 없다. 당연하다. 용서할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왜 생겼는지 조금은 알겠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읽은 후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그 삶이 하나 하나 살아있고, 그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천재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악마라고 스스로 말한 그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바로 악마가 던진 시험이 개인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악의를 건드리고 전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를 밖으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억눌려 있던 개인들이 드러날 때 에러의 범위는 점점 커진다. 전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 부분만 덮어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점점 범죄의 강도가 강해지고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요즘을 생각할 때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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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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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작가다. 그녀의 다른 책이 한 권 정도는 집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시간이 지난 책에는 손길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재난 여행을 설계하는 주인공의 직업 때문이다. 이미 다른 소설 등에서 재난지나 폐허를 여행 상품화한 것을 읽은 적이 있기에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일본 소설에 가끔 폐허 마니아들이 등장하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와 직원이 주인공인 경우는 처음이다. 소개글에 나온 몇 가지 정보가 아주 흥미로웠다.

 

주인공 이름은 고요나다. 요나란 이름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요나가 떠올랐다. 이 둘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직업은 여행설계사다. 여행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재난당한 곳. 현실에서 이런 상품을 판다면 아마 사람들의 비난을 엄청 받을 것이다. 물론 뒤로는 이곳을 가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어느 날 그녀의 업무가 바뀌고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불쾌감보다 불안감이 먼저 온다. 그에게 성추행 당한 사람들이 짤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불확실은 그 무엇보다 그녀를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여행사 이름은 정글이다. 그냥 지은 이름일까? 이름처럼 이 여행사는 강자존의 세계다. 성추행을 규탄한 사람들이 오히려 처분 받는다. 기업 문화는 사내 연애를 장려한다. 화목한 외양 속에는 누군가의 피와 땀이 깔려 있다. 적자생존이라고 했던가. 회사가 바라는 인재로 자라지 못한 사람은 언제 짤릴지 모른다. 이것은 대부분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정글은 더 심해 보인다. 그리고 여행 상품의 경우 금방 그 실적이 드러난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상품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여행지 사람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다. 이 소설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표를 던진 그녀에게 성추행 상사가 제안 하나 한다. 한 달 동안 회사 여행지 중 한 곳을 선택해 둘러본 후 보고서 한 장을 제출하면 출장으로 처리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선택한 곳이 무이다. 사막에 싱크홀이 생긴 것 때문에 재난 여행지로 발탁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제 그 수명이 다되었다. 볼거리가 거의 없다. 그녀와 함께 간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큰 리조트는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다. 몰락한 여행지의 풍경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녀가 적어낼 조사서의 내용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통의 재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요나는 이 순간을 놓친다. 바로 기차 속 화장실 때문이다. 분리된 열차는 그녀를 두고 떠났다. 돈도 여권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홀로 남겨졌다. 이 순간 그녀에게 조그만 도움의 손길이 온다. 리조트 매니저다. 요나의 정체를 처음에 몰랐는데 정글의 직원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 완전히 바뀐다. 적극적으로 이 여행 상품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요나 기준으로 볼 때 상품의 가치가 없는 곳이다. 이때 놀랍고 무시무시한 계획을 듣게 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이 없다면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카프카가 떠올랐다. 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장면 때문이다. 폴은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할수록 멀어진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가장 첨예한 모습이다. 공정 무역을 내세우고 그 지역의 경제를 앞세우지만 실제 모든 이익의 주체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본이다. 무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본 앞에 하나의 부품이 되어 소모되어진다. 결국에는 요나도.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설정과 계획도 결국 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도 무력해지는 반전은 놀랍다. 이 반전으로 처음의 욕망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고개를 들고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자본이고 인간들의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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