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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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첫 단편 <담요>를 읽고 나의 취향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서사가 분명해서 읽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서장이 순찰을 돈다거나 하는 세부적인 의문사항이 있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이 잘 묻어났다. 친구의 상사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썼고, 그 친구가 죽은 후 그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는 구성이다. 많은 것이 생략된 상태에서 작가의 순진한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감정 한 곳을 건드린 것이다. 담요가 지닌 의미가 새로운 인연으로 넘어가면서 풀릴 때 어쩌면 나 자신이 안도했는지 모른다.

 

<애드벌룬>은 읽으면서 바로 <담요>가 떠올랐다. 화자의 출생과 파셀이란 밴드의 사고와 경찰 아버지 등이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그 소년은 죽지 않았다. 살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담요> 속 소설을 비난하고, 이 단편집에 실린 다른 소설도 살짝 끼워넣는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의 연장선상에서 베이브 루스를 야구선수가 아닌 배우로 변신시킨다. 이때 이 소설은 평행우주 속 다른 세계임을 깨닫는다. 애드벌룬이 실제로는 UFO라고 믿든 화자의 말이 그 이야기 속에선 현실이 된 것이다. 앞에 나온 소설들의 세계를 뒤흔들면서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 단편이 가장 마지막에 실린 것은 당연한 순서다. 물론 가장 나중에 발표되었다.

 

<폭우>는 다른 부부를 번갈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음에는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끝으로 오면서 연결점이 생긴다. 이 두 부부가 느꼈던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지 않고 왠지 겉돌았다. 평안한 모습으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고메식당의 주인도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침묵>은 더 낯설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한 외판원은 코믹하지만 불쌍하게 다가왔다. 이 부부의 미래가 왠지 모르게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여자들의 세상>은 자기만의 세상아 갇힌 한 남자의 불행한 이야기다. 그의 사랑은 머릿속에서만 진행된다. 이것은 <육 인용 식탁>에서 다시 벌어진다. 화자의 아내와 친구 윤의 아내가 내뱉는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이 현실을 뒤흔든다.

 

<과학자의 사랑>은 작가를 번역자로 등장시켜 한 과학자 고든 굴드의 사랑을 말한다. 그의 사랑은 한 가정부에 의해 흔들리고 오해를 불러온다. 공식화되지 못한 자신의 이론을 들어줄 사람을 찾던 한 과학자의 삶이 어떤 변천사를 거치는지 보여주는데 그렇게 흥미롭지 않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서 힌트를 빌려 쓴 듯한 느낌이 든다. <달콤한 잠-팽 이야기>는 추측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팽이 게이가 아닐까 하는 것과 런던의 스트립걸과 연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 안정적이어야 할 사랑이 흔들릴 때 살짝 내비치는 불안이 여운으로 남는다.

 

표제작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린디합’ 대신 ‘린다합’으로 계속 잘 못 읽고 기억했다. 린디합이 스윙댄스의 한 장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것은 현실의 인물들이나 잡지를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살짝 바꾼 채 풀어낸 것이다. 영화 잡지 <키노>의 정성일 편집장을 성일정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한 유명감독의 다큐 영화<댄스, 댄스, 댄스>를 중심에 놓고 풀어내는 영화판의 이야기는 인용과 차용으로 가득하다. 다큐의 제목도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에서 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감독이 자살한 이유를 찾기보다 영화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 것은 아쉽지만 박수를 치고 싶은 구성이다. 개인적으로 장편으로 만들어서 자살 원인과 그 속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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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혼자서 할 수 있어 언니공감만화
모리시타 에미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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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싱글 직장 여성의 삶을 다룬 만화다.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애인이나 결혼할 사람이 없는 그녀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내었다. 그녀가 살면서 경험한 일상을 그려내었는데 남자인 내가 보아도 재밌다. 다른 문화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기에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가끔은 그녀의 행동이나 심리 속에 나의 모습도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간결한 그림체가 현실적인 대사와 어우러져 공감대를 형성한다. 30대 중반의 싱글인 직장 여성이라면 더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끔은 자신이 나이 든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덕분에 자신보다 어린 사람과 비교할 때 깜짝 놀란다. 이런 생활 속에서 “너무 젊게 차려입으면 나이 든 얼굴이 부각된다.”와 “수수하게 입으면 나이 든 티가 확 난다.”라고 말할 때 심하게 공감한다. 그리고 그녀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 훈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회사에서 가끔 보는 장면이다. 남자라면 미모의 여성들이겠지만. 결혼적령기를 지난 그녀가 멋진 남자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찾는 장면을 보고 과거의 한 장면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얼굴에 나이가 새겨지지만 육체에도 노화는 변함없이 진행된다. 뮤직 페스티발 에피소드는 우리가 가장 흔히 듣고 말하는 내용이다. 한해 한해가 더 힘들어져 가는 나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리고 한때는 신곡이 나오면 다운받아서 차에서 듣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노래방에서 신곡도 잘 부르지 않는다. 잘 가지도 않지만. 이런 경험들이 작가의 만화로 흘러나올 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편함이 조금씩 나오지만 현대 사회는 이들을 위한 도구들이 또 나오고 있다. 결혼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가볍게 읽으려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일본 문화가 드라마 등을 보면서 익숙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슷한 연령대의 싱글 여성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나면서 간접 경험할 기회가 풍부해진 것이다. 물론 노총각으로 생활했던 나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누구나 늘 하는 말처럼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다 똑같다’는 진리가 그대로 통용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평범한 만화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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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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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군대 내부의 부조리한 상황을 다룬 소설로 바로 다가온다.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군대 내부 문제보다 오히려 다양한 인간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예상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약간 어리둥절하다.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던진 내면의 절규이자 제목인 ‘살고 싶다’의 의미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아니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아라’로 바뀐다. 어두운 절망의 참혹한 터널을 지난 사람만이 이런 말이 지닌 무게를 견디면서 정확하게 내뱉을 수 있다. 바로 그곳에서 삶의 의지가 샘솟아 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 이필립 병장은 야간조 근무를 나갈 준비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은 내뱉는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가 복무하고 있는 군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군대 병장이라면 이제 편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는 자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군인이다. 그 원인은 바로 무릎 부상이다. 아픈 무릎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지 못했다. 군인이라면 배우고 익혔어야 할 기술도, 전우애를 쌓을 시간도 없었다. 두 번의 국군통합병원 행이 만들어낸 기수 열외 상황이다. 얼마 전 전방에서 벌어진 총격과 탈영이 읽으면서 겹쳐 보인 것도 부대 내부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임병과 탄약고 근무를 서는데 한 장교가 다가온다. 기무사 장교다. 그가 두 번이나 다녀온 병원에서 친했던 친구 선한이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말한다. 자살은 분명한데 그 이유를 몰라 이필립 병장이 가서 그 이유를 알아봐줬으면 한다. 아직도 좋지 않는 무릎과 함께 세 번째 입원을 위해 광주국군통합병원으로 간다. 낯익은 공간에 돌아오니 반가운 사람도 있지만 군병원 특수성에 의해 환자들 물갈이가 많이 되었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를 작가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선한이의 자살에 관계가 있을 것이란 촉이 온다. 그런데 작가는 한 번 더 이것을 꼬아놓았다. 내면이 파괴된 사람과 고장난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필립은 엄청난 독서가다. 활자 중독 수준이다. 그는 책읽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그가 선택한 책이 추리소설이란 것은 이 소설의 얼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군대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조금씩 부각시킨다. 먼저 건강한 병사와 아픈 병사의 구분을 외형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판단 오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군이란 특수성 때문에 더 쉽게 생긴다. 사회라면 병원의 진단서가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겠지만 군에서는 이런 진찰도 쉽지 않다. MRI 하나 찍기 위한 대기 시간을 볼 때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단체 생활에서, 특히 징집된 군인들에게 병원에서 편하게 이병과 일병 생활을 한 상병이나 병장을 자신들의 집단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이 때문에 필립은 겉돌게 된다. 억지로 그 조직에서 선임이라고 뻐기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아웃사이드였던 그의 친구인 선한도 마찬가지다. 정형외과병동에서 만나 마음이 맞았지만 완치와 상관없이 자대로 돌아간다. 군 병원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수성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각각 다른 부대와 군에서 온 그들이지만 계급은 존재한다. 병원 관리의 효율성 때문에 병실장이니 도우미니 하는 직책도 생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여기서도 권력이 발생한다.

 

계급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곳, 바로 군대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편한 부대에서 만난 최악의 선임이다. 사병이 편한 곳은 장교가 없는 곳이고, 장교가 없는 곳에서 병장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예전에 나보다 먼저 군에 간 친구가 끔찍한 경험을 말했다. 자신의 내부반에서 병장이 신병에게 성희롱 이상의 행동을 한 것이다. 내부반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첫 휴가 나와서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병장이 되어 말년 휴가를 왔을 때 이 기억이 흐려지고 빨리 제대해야지만 편한 곳으로 바뀐 것이다. 상황에 따라 기억이 왜곡되고 변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악의 사슬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발생한 군 사고를 생각하면 그렇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선한이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이필립 병장을 병원에 다시 입원시켰다. 그런데 이필립은 자신도 모르게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탐정 역할을 한다. 또 한 명의 병사가 죽은 후, 그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은 후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살짝 금이 가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고 외친 것도 마음에 생긴 금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금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된 인물이 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고장난 사람도 있다. 한 인물은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인물은 재미 때문에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무서운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서, 특히 선한의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살짝 힘이 빠졌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들이 죽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두 달만에 썼다고 하기엔 놀라운 문장과 구성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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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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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논객 아홉 명 중 유일하게 읽지 않는 작가가 김규항이다. 씨네21에서 그의 글을 읽어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 중 읽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많이 있었느냐 물으면 그 답은 아니다, 다. 비교적 많이 읽은 작가라면 역시 강준만이고, 그 다음은 박노자다. 진중권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느낌인데 찾아보니 사 놓고 그냥 두었지 읽은 책은 두 세 권 정도다. 박노자보다 못하다. 오히려 우석훈보다 적다. 유시민이나 김어준, 고종석, 홍세화 등도 읽은 책은 딱 한 권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낯익고 출간되면 가끔 사는 작가들이다. 이 낯익음이 바로 이 책의 저자로 하여금 그들을 논객이라고 부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 아홉 명을 논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나에게 논객으로 다가온 사람은 여섯 명이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어준 등이다. 그럼 나머지 세 명은 뭘까?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일으킨 대중적인 논쟁이나 인지도가 앞의 여섯 명보다 약한 논객들이다. 홍세화의 출세작인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가 내세운 프랑스의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는 논객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진중권이나 김어준과는 시대와 상황을 달리한다고 해도 강준만이나 박노자와 비교해도 역시 사람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

 

고종석의 경우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소설이다.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헌책방에서 고종석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듣고 한 후다. 그 이후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기자, 작가의 이력이 보였다. 그 후 간단한 에세이 한 권을 읽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문장이 좋다고 하지만 역시 문장의 힘을 알 정도의 능력이 없는 나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저자도 말했듯이 그는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진보 논객으로 그를 올려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 많이 읽은 강준만은 90년대 나의 책읽기에 큰 변화를 준 인물이다. 인물과 사상사 책이라면 일단 사놓고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사놓은 책 중 읽은 것은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 죽이기> 등이 있고, 몇 권의 다른 책들도 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의 책을 읽었다. 참 많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나의 취향과 맞는지 술술 잘 읽혔다. 그를 통해 나 역시 조선일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게 되었다. 한 명의 정치인을 어떻게 언론이 죽였다 살렸다 하는지 그 이면을 살짝 엿보게 되었다. 이후 다른 진보 저자들에게 조금씩 나의 지분이 빼앗겼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관심의 대상이다.

 

어디에도 없는 남자, 박노자. 그의 책을 읽고 놀랐다. 그의 해박함과 깊이에 감탄하고, 그가 소련 출신이란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초기에 읽은 것이 대부분인데 신문 사설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이방인이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은 결코 우리가 이전까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이 부분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우리의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진중권과 유시민은 책으로 유명해진 듯하지만 실제 읽은 것을 보면 언론을 통해 친숙해졌다. 진중권의 책 중 미학에 대한 책만 겨우 두세 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논객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언론이나 시사대담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너무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엄청난 말빨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토론자로 먼저 다가왔다. 김어준 역시 한때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었던 ‘나는 꼼수다’가 없었다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지 못했을 것이다. 우석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88만원 세대>다. 세대 분석은 좋았지만 그 이후를 풀어내는 힘이 약했다. 오히려 ‘나는 꼽사리다’가 그를 더 친숙하게 만들고 논쟁을 불러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기 열전을 참고해 논객 열전 식으로 기획한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한 것이 그들의 출판물이다. 책이다. 물론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트위터도 인용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방법은 저자의 주관적인 책읽기를 통해 글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아홉 명이 그의 취향이자 그에게 영향을 끼친 논객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글이 상당히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이 논객들을 본다고 해도 그가 가진 철학과 정당성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곳곳에 흘러나오는 그의 정치색은 이 논객들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반갑고 재미있었고 어떤 순간은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저자가 이들에 대한 논객 시대를 쓴다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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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무더워지고 있는 요즘 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몇 권을 선택해봅니다.

  1. 킹 : 존 버거

  ‘킹’이라는 이름의 개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 노숙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작가의 책을 한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열 명 남짓의 사람이 등장한다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갈 풀릴지도 궁금하네요.

 

 

 2. 일곱 성당 이야기 : 밀로시 우르반

 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면 충분할 듯!.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말에 이번에는 어떤 비밀이 흘러나올지 관심도가 올라갑니다.

 

 

 

 

 3. 1030 :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늘 기다려지는 시리즈 중 하나다. 리처의 옛 특수부대 동료들이 등장해 진정한 액션의 합合을 보여준다니 기존 시리즈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도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봅니다.

 

 

 4 러버 소울 : 이노우에 유메히토

 <메두사>의 작가다. 이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비틀스의 앨범 제목과 곡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요정의 숲에 사는 괴물의 이야기입니다'란 작가의 말에 호기심은 더 깊어진다.

 

 

 

  5. 탐정 매뉴얼 : 제더다이어 베리

 탐정 소설과 환상 문학, SF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든다니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튈지 궁금하다. 탐정 소설의 규칙을 깨는 새로운 탐정 소설이라니 기존의 다른 탐정 소설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적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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