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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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의 특별한 능력과 작가가 참여한 단편소설 모음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 때문에 선택했다.

판타지 능력에 대한 착각과 기대로 생각보다 힘들게 읽었다.

정통 판타지 소설처럼 이 능력을 이용해 특별한 활동을 펼칠 것이란 기대를 했던 것이다.

좀더 읽으면서 이런 기대를 걷어내고 이야기 속에 더 집중했다.

그러니 한 소녀의 성장과 한 가정의 불안과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연히 발현한 능력이 어린 소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저주와도 같았다.

결코 알고 싶지 않는 음식에 담긴 감정들이 소녀를 괴롭힌다.

보통의 판타지에서 이런 재능이 너무 쉽게 특별한 능력으로 다루어지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로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아홉 살 생일을 앞둔 로즈는 엄마가 자신을 위해 만든 레몬 초콜릿 케이크를 맛본다.

초콜릿의 달콤함 뒤에 따라오는 낯선 맛은 소녀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이 케이크를 만들 때 엄마의 감정이 그녀의 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순간만 느낀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 능력은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그대로 재현된다.

타인의 감정이 자신의 혀를 통해 들어오면서 느끼는 혼란은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그 감정을 씻어내고 싶어 외치는 장면은 그 고통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스턴트 음식과 몇 사람의 음식만이 그녀를 지탱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녀의 미각은 더욱 단련되고 특별해진다.


음식의 맛을 통해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엄마의 진실을 알게 된 로즈.

이 비밀을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숨긴 채 살아간다.

이 능력을 조지프 오빠의 절친 조지 오빠에게 말하지만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특별하게 없다.

하지만 조지 오빠는 로즈가 동경하고 좋아하는 오빠다.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느 순간 정리가 되지만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

그녀의 오빠 조지프는 가끔 어린 로즈를 돌보는데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들이 있다.

집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는데 돌연 나타나 로즈를 놀라게 한다.

이 비밀스러운 능력은 후반부에 실체가 드러나는데 머릿속에 ‘히키코모리’가 떠올랐다.

조지프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이 그런 생각으로 이끈 것이다.


특정한 시기만 다루지 않고 긴 세월 속에 로즈의 삶을 녹여내었다.

그 과정에 이 집안 사람들의 괴이한 특징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엄마는 조금 다르다.

아빠는 병원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도 병원 밖에 머물렀다.

사랑하는 아들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병원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아는 의사들의 도움만 요청할 뿐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하는지, 이 집안의 특별한 능력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알려준다.

원하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 삶에서 어떤 반작용을 불러오는지 보여준다.

물론 로즈처럼 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로즈가 이 능력을 다른 사람 앞에서 멋지게 드러낼 때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단순하고 가볍게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무거운 이야기다.

특별한 능력을 걷어내고, 이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면 불안하고 집착하고 헛헛한 감정들이 보인다.

보통의 소녀들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로즈의 삶과 숨겨야만 했던 비밀들은 또 어떤가.

조금 더딘 듯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가독성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함께 하는 듯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그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다.

이야기를 멈추어야 하지만 삶은 계속되기에 그 후 일어날 그녀의 삶이 궁금하다.

여운이 길게 남고, 현실적인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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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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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룬 삼부곡 첫 권이다.

2편을 먼저 읽었고, 3편이 나와 1편을 꺼내 먼저 읽었다.

2편가 외전 성격이었다면 3편은 1편의 연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3편을 더 잘, 더 재밌게 읽기 위해 시간 내어 읽었다.

그리고 2편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사건을 이 속에서 마주했다.

2편을 읽으면서 나온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이 책에서 봤다. 기분 좋은 일이다.

연쇄살인마 잭 조직원들을 사냥하는 스녠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역시 잔혹하고 잔인하고 처참한 묘사는 이번에도 여전히 나온다.


스녠은 살인마다. 그는 연쇄살인마 잭 조직원만 죽인다.

2편의 주인공 장페이야 남매를 죽이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설정만 놓고 보면 안티 히어로 덱스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편에서는 스녠의 도움으로 잭의 손길에서 벗어난 샤오쥔이라는 직장 여성이 등장한다.

재수 없게 잭의 일원에게 살해당하려고 할 때 스녠의 살인으로 살아난 여성이다.

이후 샤오쥔과 스녠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가끔 샤오쥔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단순히 잭에게 복수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옆에서 이런 상황을 즐기는 사람도 같이 나온다.

정신과 의사 야오 박사와 정보상 다비도프 등이 대표적이다.

이 둘이 자신들의 유흥을 위해 벌이는 작업은 아주 잔인하고 참혹하다.

자신들의 설계대로 스녠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을 때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섬뜩하다.


스녠의 과거를 읽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람은 잔혹하게 죽이고, 심지어 인육까지 먹는다.

자신의 살인을 예술에 비교하는 행동을 하는데 이 뒤틀린 심정과 행위는 아주 역겹다.

살인자의 시선으로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만약 피해자라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런 살인마를 죽이는 스녠을 응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법의 그늘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도 이런 살인은 아니지만 성 착취물과 관련된 사건을 보지 않았던가.

물론 이런 이야기는 현실에서 가능성이 거의 없다.


2편처럼 대단한 속도감을 보여준다. 역시 재밌다. 물론 역겨운 부분도 많다.

정체가 모호한 다비도프와 시체 수거업자 등도 여전히 궁금하다.

3편에서 잭의 반격이 나온다고 하는 데 어떻게 이 위기를 넘어갈까?

2편의 인물들이 3편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을까? 장페이야와 만나게 될까?

심리 조작을 너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간 장면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뭐 세상은 내가 예상하고 예측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무섭고 두려운 곳이다.

후일담인 번외 3편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어떤 이야기는 읽다가 웃기까지 했다. 빨리 3편으로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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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판매원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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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단편 소설의 거장 호시 신이치의 단편 모음집이다.

3권으로 구성되어 나온 단편집 중 두 번째 단편집이다. 나머지 2권도 읽고 싶다.

2000년대 후반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로 31권까지 나왔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기에 한동안 이 시리즈를 모았다.

결국 다 모으지 못했고, 모은 것도 거의 읽지 않는 습관으로 묵혀만 두었다.

언젠가 읽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한 채.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리즈를 찾아 읽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 들었다.


모두 42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초단편의 대가답게 몇 쪽 되지 않는 초단편이 대부분이지만 분량이 되는 단편도 몇 편 있다.

<처형>과 <순교>가 대표적으로 분량이 좀 있는 소설이다.

<처형>은 범죄자가 외딴 행성에 유배된 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물이 나오는 은색 구슬이 전부다.

물이 없는 행성에서 물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 은색 구슬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햇수가 채워지면 이 구슬이 폭발한다. 러시안 룰렛의 공포가 심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움직이고 살아가는 죄수의 행동과 심리를 그려낸다. 황량한 풍경이 가슴에 파고든다.

<순교>는 죽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기계의 발명과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그린다.

이 기계 앞에서 죽으면 바로 그 기계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현생에 지친 사람들이 이 기계 앞에서 자신이 만나고 싶은 죽은 자를 만난 후 자살한다.

상당히 황당한 설정인데 생략된 사후세계와 현생의 힘겨움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짧은 단편들이 대부분이다. 읽기 정말 부담 없다.

너무 짧다 보니 갑작스러운 마무리와 반전에 깜짝 놀라는 순간도 여러 번 생긴다.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앞을 뒤적인다.

인간의 관점으로 풀어가다 관점이 바뀌면서 생기는 반전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짜 반딧불이가 등장한다. 한국의 도식적인 지역 홍보 행사보다는 낫지만.

진짜 반딧불이는 그 빛이 약한데 이것이 우리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서로 가짜 역할을 하면서 싸우지만 결국 서로 아는 사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또 어떤가.

자신이 주문한 것이 엇갈려 오면서 생기는 해프닝은 마지막을 덮을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특별한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생략한 채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었고, 왜 이런 과학적 현상이 벌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분량도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오해, 착각, 복수, 사랑 등을 짧지만 강렬한 단편 속에 아주 잘 녹여내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훌륭한 마케팅 교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표제작 <사색 판매원>은 인류에게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고사 ‘모순’을 떠올렸지만 전혀 예상하지 방식으로 풀어낸 <신용 있는 제품>도 있다.

인간이 최고라는 시선을 가볍게 벗어 던진 단편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런 유연성에 놀란다.

데뷔작 <섹스트라>의 내용과 <텔레비전 쇼>는 그 과장된 설정에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만약 그런 사회가 된다면 사람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할까? 범죄가 진짜 줄어들까?

간결한 이야기 속에 단순화한 설정은 예상하지 못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단편의 매력이다.


처음에는 이 단편집 속 단편들을 요약하고 분류하고 싶었다.

솔직히 귀찮은 일이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목을 보면서 단편의 내용을 떠올리고, 단편 속 감정에 잠시 잠긴다.

몇몇 단편은 인간을 식량으로 만들었는데 섬뜩했다. 물론 코믹한 설정도 있다.

제목을 보고, 책을 잠시 펼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오래 전 굳어 있던 내 생각을 깨트렸던 말들이 떠오른다. 다른 시선을 지적했던 그 말들.

열심히 검색하니 이전에 나온 <지구씨 안녕>의 목차와 몇 편을 제외하면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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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당신을 위하여
김다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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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STORYUM×NOVEL 스토리움 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다.

책을 읽으면서 <데스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대학생 다온에게 어느 날 전달된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라는 책 때문이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으면 죽는 것처럼 이 책에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 과정이나 각각의 사연들은 다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사연 등이 중요하다.

작가는 그 범위를 좁히고, 조금은 과격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온이 벌을 주는 것을 보면서 모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화한 이야기 때문이다.


[불행한 이들을 위하여]는 ‘붉은 책’이라고 부른다.

왜 이 책이 다온에게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시리즈로 나오면 작가가 그 이유를 넣을까?

이 책을 받은 다온이 한 여성을 살해하는 장면을 책을 통해 본다.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택배기사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다.

책 속에서 그 남자를 따라가면서 차량 번호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경찰에 바로 말할 수 없다.

다온에게는 연우라는 배우 친구가 있다. 연우의 인스타그램(인별)를 이용하려고 한다.

이 사건을 연우의 인별에 올리고, 제보자의 글로 차량 정보를 제공한다.

사건은 해결되고, 다온은 범인에게 잔혹한 처벌을 내린다.


다음 사건은 학교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다.

성희롱 고발자 애준을 오히려 공격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계단에서 밀어 부상을 입히는 일까지 한다. 하지만 해준은 입을 다물고 있다.

붉은 책을 통해 이것을 본 다온은 해준을 찾아간다. 이 사건을 다시 공론화하기 위해서다.

해준이 한 발 더 나가지 못한 것은 피해 여성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항상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긴다.

학교의 대처는 또 어떤가?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기 보다는 덥기에 급급하다.

다온은 해준을 통해 피해 여성들의 의견을 들은 후 역시 단호한 처벌을 한다.

통쾌한 부분이 있지만 좀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나아갔으면 하면 아쉬움이 생긴다.


깊이에 대한 아쉬움은 읽는 내내 이어진다.

불행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내리는 처벌은 단호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이 많다.

불행한 다온 편에서 왜 그녀가 이런 처벌을 내리게 되었는지 알려주지만 충분히 납득할 정도는 아니다.

다온과 연우의 과거사가 나오는 부분은 우리 사회의 가정 폭력에 대한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법이 가진 한계와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는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 녹여내었다.

하지만 그 해결 방식은 단호하고 자극적이다. ‘불행한 이들’도 한정적으로 정한다.

가해자의 후회와 눈물을 좀더 깊이 다루지 않는 것은 읽는 내내 아쉬운 점이다.

만약 그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 단호함에 동의하지만 갱생의 여지까지 싹을 자르는 것은 아쉽다.


작가는 다온과 달리 이해준에게 푸른 책을 주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 책은 선행을 한 자에게 축복을 주는 주는 책이다. 다온도 이 책에 나왔다.

역시 이 책도 왜 주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 범위도 붉은 책과 비슷하다.

소설 초반에는 익숙하지만 신선함이 있었지만 중반 이후로 가면서 힘이 떨어진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인데 어딘가에서 막힌 듯한 느낌이다.

피해자의 삶을 좀더 세밀하게 다루고, 가해자의 모습도 같이 다루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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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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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배명훈의 소설집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다른 지면에 실린 것을 모았다. 마지막에 출처가 표기되어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도 실려 있어 다음에 부담을 살짝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것과 달리 책 제목이 입에 달아 붙지 않아 상당히 고생했다.

한국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미래과거시제’란 단어 때문이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도 그 용례를 보고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소설의 내용은 상당히 SF적인 설정으로 꼬아 놓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상당히 실험적인 문체를 사용한 작품도 있다.

바로 <임시 조종사>다. 판소리 SF소설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재미를 느끼려면 몇 번 더 읽어야 할 듯.


9편이 실려 있다. 적지 않은 수의 단편들이다.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키워드 두 개가 떠올랐다.

하나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접는 것이다.

언어를 다룬 단편들은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미래과거시제>, <임시 조종사> 등이다.

종이 접기 같은 세계를 다룬 단편은 <접히는 신들>, <인류의 대변자> 등이다.

물론 창작을 다룬 단편들도 있다. <홈, 어웨이>와 <알람이 울리면> 등이다.

<미래과거시제>는 시간과 언어를 사용해 시간의 순서를 뒤섞었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격음과 파열음이 사라진 미래의 단어가 가독성을 방해한다.

하지만 한 시대를 가두어 둔다는 설정과 언어의 변화 등은 상당히 재밌고 신선하다.

판소리 SF <임시 조종사>는 처음에는 ‘뭐지?’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작가가 팬데믹 덕분에 쓴 소설이란 말처럼 노력과 열정과 시간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접기에 눈길이 간 것은 <접히는 신들>에 등장한 친구와 <인류의 대변자>의 외계인 때문이다.

나의 공간 지각력이 떨어져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제대로 재현하지 못해 아쉽다.

1차원이 3차원으로 바뀌는 현상과 문명을 엮은 기발함은 강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인류의 대변자>에서 롯데타워에 우주선을 주차한 외계인이 인류와 처음 접촉할 때 이 부분이 나온다.

이 단편은 이 접기보다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 더 눈길이 간다.

정치적 야합에 의해 뒤틀린 성남공항의 문제나 대입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창작자에게도 야구장 응원 같은 일이 필요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시작한 <홈, 어웨이>도 기발하다.

작가가 글을 쓰면 이에 프로그램이 응원의 환호성을 지른다.

이 환호성이 작가의 창작 의욕을 북돋는다. 물론 선택을 잘못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알람이 울리면>은 모두 읽은 지금도 그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두 개의 스토리 생성기와 SF 플롯, 우주 여행 등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풀리지 않는다.

우주로 나간 사람의 시간과 지구에서 사는 사람 사이의 시간 흐름은 흔한 SF소설의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지구에서 보내는 통신 등을 넣어 좀더 이 세계를 확장했다.


아직 말하지 않은 두 편은 <수요곡선의 수호자>와 <절반의 존재>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 중 하나가 <수요곡선의 수호자>다.

로봇 등이 인류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생산성이 극대화된 미래를 멋지게 뒤틀었다.

소비만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의 존재가 인류의 파멸을 막는다는 조금 과한 설정.

하지만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조금씩 ‘그럴 수도 있지’하고 공감한다.

<절반의 존재>는 사고로 절반을 잃는 사람이 나머지를 안드로이드로 대체한다.

작가는 여기서 우리의 일반적 상식을 뒤집는다. 바로 상체를 안드로이드로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존재는 원래의 존재가 맞을까? 철학적 문제로 넘어간다.

모두 읽은 후 표지를 유심하게 보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잠깐 시간 내어 천천히 그림을 보면서 읽은 소설을 복기하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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