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판매원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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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단편 소설의 거장 호시 신이치의 단편 모음집이다.

3권으로 구성되어 나온 단편집 중 두 번째 단편집이다. 나머지 2권도 읽고 싶다.

2000년대 후반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로 31권까지 나왔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기에 한동안 이 시리즈를 모았다.

결국 다 모으지 못했고, 모은 것도 거의 읽지 않는 습관으로 묵혀만 두었다.

언젠가 읽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한 채.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리즈를 찾아 읽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 들었다.


모두 42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 있다.

초단편의 대가답게 몇 쪽 되지 않는 초단편이 대부분이지만 분량이 되는 단편도 몇 편 있다.

<처형>과 <순교>가 대표적으로 분량이 좀 있는 소설이다.

<처형>은 범죄자가 외딴 행성에 유배된 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물이 나오는 은색 구슬이 전부다.

물이 없는 행성에서 물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 은색 구슬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햇수가 채워지면 이 구슬이 폭발한다. 러시안 룰렛의 공포가 심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움직이고 살아가는 죄수의 행동과 심리를 그려낸다. 황량한 풍경이 가슴에 파고든다.

<순교>는 죽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기계의 발명과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그린다.

이 기계 앞에서 죽으면 바로 그 기계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현생에 지친 사람들이 이 기계 앞에서 자신이 만나고 싶은 죽은 자를 만난 후 자살한다.

상당히 황당한 설정인데 생략된 사후세계와 현생의 힘겨움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짧은 단편들이 대부분이다. 읽기 정말 부담 없다.

너무 짧다 보니 갑작스러운 마무리와 반전에 깜짝 놀라는 순간도 여러 번 생긴다.

당연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앞을 뒤적인다.

인간의 관점으로 풀어가다 관점이 바뀌면서 생기는 반전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짜 반딧불이가 등장한다. 한국의 도식적인 지역 홍보 행사보다는 낫지만.

진짜 반딧불이는 그 빛이 약한데 이것이 우리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서로 가짜 역할을 하면서 싸우지만 결국 서로 아는 사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또 어떤가.

자신이 주문한 것이 엇갈려 오면서 생기는 해프닝은 마지막을 덮을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특별한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생략한 채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었고, 왜 이런 과학적 현상이 벌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분량도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오해, 착각, 복수, 사랑 등을 짧지만 강렬한 단편 속에 아주 잘 녹여내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훌륭한 마케팅 교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표제작 <사색 판매원>은 인류에게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고사 ‘모순’을 떠올렸지만 전혀 예상하지 방식으로 풀어낸 <신용 있는 제품>도 있다.

인간이 최고라는 시선을 가볍게 벗어 던진 단편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런 유연성에 놀란다.

데뷔작 <섹스트라>의 내용과 <텔레비전 쇼>는 그 과장된 설정에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만약 그런 사회가 된다면 사람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할까? 범죄가 진짜 줄어들까?

간결한 이야기 속에 단순화한 설정은 예상하지 못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단편의 매력이다.


처음에는 이 단편집 속 단편들을 요약하고 분류하고 싶었다.

솔직히 귀찮은 일이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목을 보면서 단편의 내용을 떠올리고, 단편 속 감정에 잠시 잠긴다.

몇몇 단편은 인간을 식량으로 만들었는데 섬뜩했다. 물론 코믹한 설정도 있다.

제목을 보고, 책을 잠시 펼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오래 전 굳어 있던 내 생각을 깨트렸던 말들이 떠오른다. 다른 시선을 지적했던 그 말들.

열심히 검색하니 이전에 나온 <지구씨 안녕>의 목차와 몇 편을 제외하면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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