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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앞부분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라틴어는 개념을 충분히 잡기에 부족했다. 번역도 매끄럽지 않아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낯선 개념과 이야기는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이해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모두 읽고 페터 슬로터다이크를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에 읽은 독자의 서평은 내가 이해한 것과 달라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분노.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이자 주제다. 저자는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 역사를 재해석했다. 고대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이슬람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이해의 깊이만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분노의 은행 개념이다. 이 분노 은행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작동하게 되었는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고, 나머지 하나는 새롭게 다가온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라 혹은 이슬람이다. 너무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서구의 역사 속에서 이 시기들은 구분이 충분히 가능한 범주다.
이 책의 서문은 상당히 길다. 거의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이 서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인용하면서 풀어내는 라틴어의 개념은 아주 낯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철학자의 글에서 한 단어의 개념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단어는 티모스다. 저자는 “티모스는 자랑스러운 자아의 충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수용하는 감각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검색한 번역으로 보면 용기, 기개, 분노 등이 보인다. 어떻게 이해할지 모른 상태에서 저자의 분노의 정치심리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분노의 은행에서 “폭발적이고 복수심에 찬 도덕적 프로젝트를 위한 저장고인 분노의 은행을 세움으로써 개별적 분노의 숙주는 하나의 관리체계에 의해 주도되는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폭발한 것이 혁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그렇다. 저자는 이 혁명을 낱낱이 해부하고 혁명의 오류와 잘못을 끄집어내어 진열한다. 이것 이전에는 기독교의 허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분노의 신이란 개념이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교리 변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분석한다. 연옥을 발명했다고 했을 때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또 한 번 깨어졌다.
혁명과 공산주의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둘을 근현대사에서 자발적으로 이룬 나라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모두 실패했다. 러시아의 쿨라크 정책이나 사회민주주의자의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드러났다고 해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서구의 지성인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고 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서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이런 바 문빠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하고.
중국의 혁명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 글은 낯익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으로 죽은 인원이 몇 명인가 하는 것은 러시아의 대기근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은 이 사실에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당연히 출판은 금지다. 마오주의가 한때 유럽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왜곡되고 선별적인 정보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현재도 마오주의가 변형된 채 제3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하니 조심하고 더 유의할 부분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몇 가지 사실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저자가 주장하는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은 사실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눈길이 머문다. 다만 그가 성공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알바니아와 루마니아의 대규모 투자 사기극에 대한 부분은 이전에 한 번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있지만 다시 봐도 놀랍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이런 대사기극이 가능한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당하는지 등. 물론 한국에서도 조희팔의 거대한 피라미드 사기가 있었다. 이 모든 사기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고, 그 탐욕은 허술한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개인들과 사회 시스템 부재와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저자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폭동을 보여주고, 새롭게 자라는 이슬람의 테러를 조금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온 시기가 2006년이란 부분이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어난 이슬람 테러가 저자가 주장하는 분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뭐 독일에서는 저자의 논문이나 주장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쉽지도 않다. 냉소로 가득한 문장과 사실 지적은 저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다면 오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번으로 이 책을 이해하기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번역의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국의 분노 은행이 어떤 식으로 적립되고 이것이 어떻게 폭발했는지 연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역시 나의 이해력과 지식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