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예상한 것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읽었다. 이전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프랑스 문학상 수상작을 아주 힘겹게 읽은 적이 있기에 조금 걱정했다. 이 작품도 2015년도 메디치상 수상작이다. 이전에도 메디치상을 받은 작품들을 몇 권 읽었지만 그렇게 힘겨웠던 적은 없다.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표현해서 이 책 쉽지 않다. 구성도 특이하다. 현대의 베레니스가 티투스와의 실연을 프랑스 극작가 장바티스트 라신(1639~1699)의 전기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도입부와 중간의 아주 작은 부분과 마무리 장을 제외하면 베리니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제 베레니스가 나올까 기다렸다.

 

라신. 이름은 한두 번 들어본 것 같다. 몰리에르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에 반해 그의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라신이란 성보다 장이란 이름으로 계속 나온다. 무식한 나는 장이란 아이가 누군지 모르고, 시대로 잘 모른 상태에서 계속 읽었다. 그러다 나의 시선을 끄는 장면이 나왔다. 문법과 라틴어 번역에 대한 장의 이해와 열정이다. 하나의 문장을 다듬기 위해 그가 어떤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지 볼 때 감탄하게 되었다. 중국의 퇴고 고사가 떠오른다. 좋은 번역가 혹은 작가는 이렇게 한 문장에 자신의 혼신을 싣는구나 하고. 이렇게 장의 성장과 그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장은 어릴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란다. 이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수도원의 모습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수도원에서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문법 등을 배운다. 그리고 아몽을 만난다. 그의 라틴어 해석은 다른 학생보다 월등하고 선생들보다 나아 보인다. 언어에 대한 그의 이해와 열정은 수도원 안의 공간이 좁아 보인다. 더 많은 텍스트를 원하지만 수도원과 선생은 신에 대한 찬양이 없는 텍스트를 금지한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다. 그러다 파리로 떠난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살롱, 여자, 연극, 문학 등이다. 그가 쓴 시 한 편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몰리에르가 희극으로 왕을 사로잡았다면 장이 선택한 길은 비극이다. 무명의 극작가는 연봉도 적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은 그를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문장을 만들고, 시어를 다듬는다. 왕을 찬양하고, 더 좋은 시어를 쓴다. 자신의 쓴 문장을 여배우가 제대로 읊조리게 계속 훈련시킨다. 작은 실패가 있었지만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기도 하고, 자신의 꼬투리를 잡는 무리도 만난다. 처음 경험했던 신비로운 여체는 이제 그의 일상이 된다. 17세기 절대왕정의 프랑스는 이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작가는 이 흐름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장의 나이도 알려주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걸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는지도.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문장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지우고, 다시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 너무 간결하고, 어떤 부분은 깊은 곳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덕분에 단숨에 책을 읽는 것은 무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나의 집중력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다. 제목과 책소개에 대한 오해는 계속해서 티투스와 베레니스를 과거 속에서 이해하게 만들었다. 로마가 실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입부에 분명하게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라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더불어 누군가의 실연이 한 작가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재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발전한다면 왠지 장려(?)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나의 문장이 조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살짝 반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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