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이야기
니시 카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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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얇은 책이다. 밥과 추억을 적절하게 엮어 쓴 글이다. 이 책 내용 중 일부는 이전에 네이버에서 본 것이다. 그때 아주 인상적이었던 몇 개의 상황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카이로에 살았던 저자가 먹었던 달걀밥이다. 요즘은 거의 먹지 않지만 어릴 때 나 자신도 마가린과 달걀과 간장을 넣고 비빈 이 밥을 아주 좋아했다. 지금도 가끔 가족들을 만나면 이 당시 먹었던 이 달걀밥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 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추억의 맛이 현실로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순간 재료가 없는 것일까?

 

작가의 어릴 때 경험은 부족한 식재료에서 비롯한 것이 많다. 달걀밥도 그 연장선이다. 어머니가 쌀알에서 벌레와 돌을 하나씩 핀셋으로 찾아내었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우리 부모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유난히도 자주 씹고는 했던 돌들을 생각하면 작가의 어머니처럼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이 책 속 이야기는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그리고 활자밥으로 넘어가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로 표현된 음식의 매력은 독자의 상상력과 맞물려 최상의 음식이 된다. 요즘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본 음식들이 되겠지만. 물론 현실과 상상은 언제나 차이가 있다.

 

작가의 음식 취향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불어터진 면발들이다. 국물을 빨아들여 원래 부피의 세 배까지 된 그 음식을 생각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뭐 개인의 취향이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글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작가가 남의 시선을 아주 많이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혼자 초밥집에 가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첫 데이트나 주문 등까지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일본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성향인지 의문이 생긴다. 잠깐 과거를 돌아보면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실제로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나의 소재가 되면서 과장되게 표현된 것일까?

 

뉴욕의 맛이란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한식 외는 잘 먹지 못하는 주변 지인들이다. 사골 육수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도 이 음식을 작가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언제나 여행을 갈 때면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인 나에게 이 의문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만 활자밥의 위력은 먹고 싶다는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에세이의 마지막을 장식한 제이나브의 홍차는 맛보다 추억이란 식상한 문구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 달걀밥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놈>은 신의 다른 표현이다. 도발적인 표현인데 이런 경험을 한다면 나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유도 마시지 못할 만큼 부은 목을 가졌던 그녀의 이 경험은 제대로 실감할 수 없지만 링겔 속 영양만으로 살이 쪘다는 표현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먹지도 못하는데 살까지 찌다니 얼마나 억울한가. 이 단편 마지막에 가면 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데 나의 마음은 이 새로운 시각보다 그녀가 아침까지 취한 자세에 관심이 더 많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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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정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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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출간된 엘비스 콜 시리즈다. 콜 시리즈라고 해서 조 파이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작품의 도입부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은 조 파이크다. 전작 <L.A. 레퀴엠>을 재밌게 읽었기에 이번 선택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아니 전작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 취향에 더 맞는 설정과 전개였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콜의 수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그의 수다에 적응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는 유괴라는 설정 탓에 이 수다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이 부분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 이 긴장감은 뒤로 가면서 더 고조되었고, 늦은 밤 출근을 앞두고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콜의 여자 친구 루시의 아들 벤이 납치되었다. 루시의 전화를 받는 짧은 순간 동안 사라졌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했고, 다음에는 다친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했지만 벤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납치된 것이다. 루시가 돌아오고, 경찰을 불러 실종 신고한다. 그러다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유괴범이 콜의 과거를 말한다. 레인저 시절에 있었던 사고를 왜곡한 내용이다. 이 전화 한 통으로 벤의 유괴 원인이 콜에게로 넘어간다. 이때 등장한 벤의 아버지 리처드는 이 모든 원인을 콜에게 떠넘긴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이 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콜은 잠도 자지 못한다.

 

전편에서 이미 한 번 큰 어려움을 겪었던 루시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콜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면서 이 둘의 관계는 더 악화된다. 밖으로 드러난 악화는 없지만 파국의 기미가 잔잔히 흐른다. 여기에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로 스타키가 등장한다. 다른 작품의 주인공인데 이런 시리즈를 볼 때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 둘은 주변을 둘러보고, 탐문을 이어간다. 그러다 한 가지 단서를 발견하고, 이 단서를 통해 한 인물에게로 다가간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인물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의 과거를 모를 뿐이다. 이 과거는 나중에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유괴 사건이란 설정 때문에 분초로 나눈 시간이 표시된다. 동시에 한 인물이 아닌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전작처럼 콜의 과거가 작품 전반에 조용히 깔려 나온다. 그의 군 이력과 훈장들에 대한 이야기들, 어린 시절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 한 명의 수다쟁이 탐정이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그가 과거의 아픔을 어떻게 넘어갔는지, 현재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리고 유괴범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하지만 콜과 파이크 콤비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활약은 작은 단서와 과거의 인연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콤비의 활약과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 바로 벤이다. 유괴범들의 위협에 겁을 먹었지만 항상 도망갈 생각을 한다. 한 번은 거의 탈출에 성공할 뻔 했다. 이 소년의 노력은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연출한다. 태풍의 눈 속에 잠시 멈춘 고요가 이 행동 하나로 다시 폭발한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액션 장면은 정말 긴장감이 대단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무협 고수들의 긴박한 대결처럼 펼쳐진다. 이 과정까지 오는 마지막 한두 시간은 정말 멈출 수 없는 가속 페달을 밟은 느낌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이 액션과 함께 흥미롭게 본 것은 기존 캐릭터의 재활용이다. 전작과 다른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을 이 시리즈에 아주 잘 녹여내면서 다음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과 문제를 다시 풀어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전작과 같이 두 주인공의 과거가 암울하게 흘러나오는데 이런 과거가 또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네. 특히 조 파이크의 과거 속 활약이 보여줄 과격한 액션은 살짝, 아니 많이 기대하게 된다. 아! 마지막으로 이 유괴 설정은 조금 밋밋한 부분이 있다. 살짝 비틀었지만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금방 알아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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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망고 아일랜드
이진화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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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집이다. 마음먹고 읽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간 곳의 추억을 더듬고, 가고 싶은 곳의 이미지를 떠올리다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나의 경우는 전자와 후자 사이다. 여덟 곳의 섬과 도시들 중 내가 가 본 곳은 겨우 세 곳이다. 홍콩, 마카오, 방콕. 다른 곳은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최근에는 다낭과 호이안을 다녀온 지인들이 많아지면서 관심이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이 사진집은 그곳의 삶을 담아내기보다는 예쁜 풍경과 잘 차려입은 여행자를 보여줄 뿐이다. SNS나 가이드북에 올리면 좋을 듯한 사진들이다.

 

보라카이에서 시작하여 발리로 끝나는 사진들은 내가 가본 곳조차 낯설게 느끼게 만든다. 일상의 여행자가 자신의 눈으로 본 것과 다른 빛의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낯설음이 여행지에서 현실로 가끔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반가움과 즐거움이란.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 속 뒤에는 더럽고 짜증나는 여행의 순간들이 숨겨져 있다. 굳이 이런 사진까지 실어야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행을 하는 순간과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순간은 언제나 어긋난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순간과 장면들일 것이다.

 

사진들 사이에 짧게 쓰인 글들은 그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추억이 덧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럼 어떤가. 아름다운 바다와 뜨거운 태양과 그 사이에서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있는데. 하지만 어떤 사진은 나의 상상과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다낭의 바닷가는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지인들이 이곳을 다녀왔던가. 그들이 왜 호이안을 더 칭찬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겠다. 그래도 이 사진과 다른 다낭의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렇게 이 사진집은 나의 기억과 추억과 상상으로 비록 짧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었다. 올해가 가기 전 한두 곳은 다녀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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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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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칼릴 지브란의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이 책도 그때 읽었을 것이다. 문고판으로 나왔던 그 당시 책들은 사실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내용이 아니고, 감성적으로 파고들지도 못했다. 이런 기억만을 가지고 있던 중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 낯익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류시화의 번역이다. 집에 이 시인의 책이 몇 권이나 있지만 늘 묵혀두고만 있다.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보다 젊었던 당시에는 이런 종류의 책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처음 접하는 류시화의 번역이란 점이 다시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스물여섯 가지 삶에 대한 주제를 시적 언어로 썼다고 한다. 이전까지 이 책을 시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도 읽으면서 시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떠오르는 이야기 방식이다. 물론 훨씬 간결하고 읽기 쉽다. 이런 생각들 사이로 칼릴 지브란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크게 공감을 하고, 어떤 부분은 이해하지 못함의 영역에 머물고, 또 어딘가는 내 이성의 쓸데없는 구별로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다. 아마도 먼 훗날 다시 한 번 더 읽고 새로운 감상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다른 책에서 이미 본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도 거의 백 년이 다 되어가는 현실과 이 책을 읽었던 수많은 작가들을 감안하면 이해가 충분히 된다. 여기에 시인에게 영향을 줬던 책들을 더하면 완전히 새로운 글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더해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내가 읽으면서 감탄했고, 다시 기억을 되살렸던 대부분은 차분하게 읊조리는 시인의 목소리와 이성과 감정과 선과 악에 대하여 풀어낸 이야기들이다.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오르팰리스 성에서 살다가 떠나는 순간에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배를 타고 떠난다는 설정을 죽음으로 해석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동의한다. 사랑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고 작별을 말하는 알무스타파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잠언집에 더 가깝다. 신비주의가 강하게 드러나는 문구들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계속해서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도 많고, 말의 혼란 속에 헤맨다. 나 자신 또한 이런 순간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진리를 발견했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보다는 ‘나는 한 가지 진리를 발견했다.’라고 말하라.”는 문구는 이런 경우에 딱 맞다. 이성과 감정을 바다 위를 향해하는 배에 비유한 것이나 선과 악의 구별을 다르게 풀어낸 부분은 조용히 읊조리면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 책은 부분과 전체를 구분하기보다 하나의 것으로 다루면서 조용히 나눈다. 개인적으로 고통에 관해서 풀어낸 부분은 나의 이해와 충동했다. 현실 너머를 말하는 이런 글을 볼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감이다.

 

칼릴 지브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두 개의 글이 있다. 하나는 번역자 류시화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 키랄라의 글이다. 조지 키랄라의 글은 칼릴 지브란의 삶을 신비화하고 과장한다. 현실에 덧칠했는데 이 부분을 지우는 역할을 역자가 한다. 몇 가지 분명하지 않은 에피소드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평가가 거의 없는 시인에 대한 아쉬움을 내뱉는다. 그리고 한 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말한다. 조지 키랄라의 글과 달리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시인의 삶과 비교하면 글과 현실의 차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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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오브리 파월 지음, 김경진 옮김 / 그책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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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앨범 커버를 잘 모른다. 크게 관심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예전에 LP를 샀을 때도 앨범 커버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CD를 살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음반을 사지 않는 순간이 왔다. 가끔 헌책방이나 바자회 등에 가면 좋아하거나 듣고 싶었던 뮤지션의 CD를 사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처럼 신보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CDP 등도 어딘가로 치워놓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얼마나 열심히 들고 다니면서 들었던가. 저자가 LP에서 CD로 넘어가고, 뮤직 비디오 시대가 되면서 전업한 것이 저절로 연상된다.

 

앨범 커버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최근에는 아주 조금 생겼다. 앨범을 사지 않으면서 그냥 둘러보다가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는 정도지만 이전보다 더 열심히 본다. 하지만 관심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이 분야의 지식이 너무 없다. 역자가 쓴 글에도 나오지만 대부분 앨범 커버에 관심을 두는 음악 애호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이제 음악 애호가도 아니지 않는가. 이런 내가 힙노시스란 음반 커버 제작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책에서 한두 번 정도 언급되었다면 봤을지 모르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름은 아니다. 이런 회사의 앨범 커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책 소개에 나온 뮤지션의 이름들 때문이다.

 

1967년부터 1984년까자 힙노시스는 373장의 음반 커버 디자인을 했다. 집에 있는 CD를 찾아보면 한두 장 정도는 분명히 있을 텐데 찾기가 귀찮다. 어느 날부터 CD를 듣지 않으면서 포장해서 처박아두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피터 크리스토퍼슨, 오브리 ‘포’ 파월, 스톰 소거슨, 이렇게 세 명의 친구가 모여 만들어진 힙노시스는 현대 뮤지션의 수많은 명반의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이 뮤지션의 이름 몇몇만 말하면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블랙 새버스, 피터 가브리엘 등이다. 이 이름들은 내가 즐겨 듣거나 언제나 주변에서 듣고 기억하는 이름들이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의 이름들이 나온다. 아는 만큼 더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피터 가브리엘이 쓴 서문과 저자의 인트로와 앨범 커버 카탈로그와 아웃트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카탈로그다. 이 카탈로그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그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이 작업 속에 힙노시스가 추구한 것은 무엇인지 등이 나온다. 어떤 커버는 매니저와 뮤지션의 갈등을 불러오고, 어떤 커버는 절대적 신뢰를 얻기도 한다. 이 짧은 글 속에서 그 시대와 앨범 커버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짝 들여다볼 수 있다. 앨범 커버를 보는 재미에 덧붙여 그 시절 음악가들의 성향이나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가끔은 내가 알고 있는 뮤지션의 앨범이 없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글을 읽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재밌는 글은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왜?’에 대한 모범 답안은 항상 ‘왜 안 돼?’입니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채화 채색이 꾸준히 지속된 이유도 재밌다. “영국 날씨는 자주 험악하거나 우중충해져서 컬러로 찍은 사진은 대부분 우울해 보였다.” 이런 날씨라면 채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작업과 다른 사진이나 풍경 등을 오려붙여 만든 앨범 커버도 적지 않게 나온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아니 지금 기준이라도 남자나 여자의 나체 사진이 나오는 것은심의 등에 걸릴 수 있는데 꽤 많은 앨범 커버가 이 나체 사진을 담고 있다. 영국이라 가능한 것일까?

 

이들이 벌인 작업 내역을 보면 현재 포토샵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 아니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이들은 오려붙이고, 덧칠하고, 긁어내고, 뒤틀면서 한 장의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앨범 커버가 나오게 하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아주 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사진이 정면에 아주 크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앞부분에 이들이 어떻게 의뢰 금액을 올렸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부분은 사업 혹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간 앨범 커버 속에 담긴 의미와 의도가 새롭게 다가왔다. 천천히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아주 재밌는 설정과 도구들이 보인다.

 

373장의 앨범 커버를 본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이야기가 곁들여진 앨범은 크게 나와 더 잘 보이고, 제작 동기나 방법 등도 나와 비교적 쉽게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면에 몇 개의 앨범 커버가 나오면 이전보다 대충 보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시간도, 집중력도, 보이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안까지 있으니. “천천히, 차분히, 오래 두고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책”이란 평가에 동의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앨범 커버 속에는 힐끗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나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패션이나 머리 스타일 등 때문에 낡아 보이지만 그 시도나 구성 등은 결코 낡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부터는 앨범 커버를 결코 힐끗 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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