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오브리 파월 지음, 김경진 옮김 / 그책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말해 앨범 커버를 잘 모른다. 크게 관심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예전에 LP를 샀을 때도 앨범 커버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CD를 살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음반을 사지 않는 순간이 왔다. 가끔 헌책방이나 바자회 등에 가면 좋아하거나 듣고 싶었던 뮤지션의 CD를 사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처럼 신보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CDP 등도 어딘가로 치워놓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얼마나 열심히 들고 다니면서 들었던가. 저자가 LP에서 CD로 넘어가고, 뮤직 비디오 시대가 되면서 전업한 것이 저절로 연상된다.

 

앨범 커버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최근에는 아주 조금 생겼다. 앨범을 사지 않으면서 그냥 둘러보다가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는 정도지만 이전보다 더 열심히 본다. 하지만 관심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이 분야의 지식이 너무 없다. 역자가 쓴 글에도 나오지만 대부분 앨범 커버에 관심을 두는 음악 애호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이제 음악 애호가도 아니지 않는가. 이런 내가 힙노시스란 음반 커버 제작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책에서 한두 번 정도 언급되었다면 봤을지 모르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름은 아니다. 이런 회사의 앨범 커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책 소개에 나온 뮤지션의 이름들 때문이다.

 

1967년부터 1984년까자 힙노시스는 373장의 음반 커버 디자인을 했다. 집에 있는 CD를 찾아보면 한두 장 정도는 분명히 있을 텐데 찾기가 귀찮다. 어느 날부터 CD를 듣지 않으면서 포장해서 처박아두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피터 크리스토퍼슨, 오브리 ‘포’ 파월, 스톰 소거슨, 이렇게 세 명의 친구가 모여 만들어진 힙노시스는 현대 뮤지션의 수많은 명반의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이 뮤지션의 이름 몇몇만 말하면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블랙 새버스, 피터 가브리엘 등이다. 이 이름들은 내가 즐겨 듣거나 언제나 주변에서 듣고 기억하는 이름들이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의 이름들이 나온다. 아는 만큼 더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피터 가브리엘이 쓴 서문과 저자의 인트로와 앨범 커버 카탈로그와 아웃트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카탈로그다. 이 카탈로그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그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이 작업 속에 힙노시스가 추구한 것은 무엇인지 등이 나온다. 어떤 커버는 매니저와 뮤지션의 갈등을 불러오고, 어떤 커버는 절대적 신뢰를 얻기도 한다. 이 짧은 글 속에서 그 시대와 앨범 커버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짝 들여다볼 수 있다. 앨범 커버를 보는 재미에 덧붙여 그 시절 음악가들의 성향이나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가끔은 내가 알고 있는 뮤지션의 앨범이 없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글을 읽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재밌는 글은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왜?’에 대한 모범 답안은 항상 ‘왜 안 돼?’입니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채화 채색이 꾸준히 지속된 이유도 재밌다. “영국 날씨는 자주 험악하거나 우중충해져서 컬러로 찍은 사진은 대부분 우울해 보였다.” 이런 날씨라면 채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작업과 다른 사진이나 풍경 등을 오려붙여 만든 앨범 커버도 적지 않게 나온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아니 지금 기준이라도 남자나 여자의 나체 사진이 나오는 것은심의 등에 걸릴 수 있는데 꽤 많은 앨범 커버가 이 나체 사진을 담고 있다. 영국이라 가능한 것일까?

 

이들이 벌인 작업 내역을 보면 현재 포토샵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 아니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이들은 오려붙이고, 덧칠하고, 긁어내고, 뒤틀면서 한 장의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앨범 커버가 나오게 하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아주 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사진이 정면에 아주 크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앞부분에 이들이 어떻게 의뢰 금액을 올렸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부분은 사업 혹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간 앨범 커버 속에 담긴 의미와 의도가 새롭게 다가왔다. 천천히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아주 재밌는 설정과 도구들이 보인다.

 

373장의 앨범 커버를 본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이야기가 곁들여진 앨범은 크게 나와 더 잘 보이고, 제작 동기나 방법 등도 나와 비교적 쉽게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면에 몇 개의 앨범 커버가 나오면 이전보다 대충 보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시간도, 집중력도, 보이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안까지 있으니. “천천히, 차분히, 오래 두고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책”이란 평가에 동의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앨범 커버 속에는 힐끗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나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패션이나 머리 스타일 등 때문에 낡아 보이지만 그 시도나 구성 등은 결코 낡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부터는 앨범 커버를 결코 힐끗 보지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