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Zero - 나의 모든 것이 감시 당하고 있다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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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보화 사회, 빅데이터, 인공지능, CCTV, 스마트폰 등은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용어들이다. 손에서 잠시만 스마트폰을 놓아두어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현대인들에게 이 용어들은 너무나도 친숙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것이 겨우 이십 몇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도 스마트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분노하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정보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자본으로 바뀐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알지만 무시하거나 너무나도 많이 털린 개인정보 탓에 무감각해졌다. 가끔은 이런 정보를 팔아 돈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런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작가는 하나의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 우리에게 긴장감과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CCTV를 보는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 CSI 드라마를 볼 때 이 정보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하다. 흔히 다루어지는 소재처럼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상황에 따라 도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신시아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개인정보가 바로 떠올랐다. 개인의 익명성이 사라졌는데 이 과정 속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정보를 팔거나 업데이트한 것과 관계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신기한 일이겠지만 이런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 정보가 알려지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주 기분 나쁠 것이다. 이 장면 하나로 작가는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 상황 하나를 경고한다.

 

제로라는 단체는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휴가 중인 미 대통령을 드론으로 촬영한다. 순간적으로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생겼고, 이 장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하나의 이벤트가 그들로 하여금 세계인의 시선을 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테러 단체로 불린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단체를 쫓는 미국 정보조직을 활약을 그렸겠지만 작가는 제로가 알렸던 감시 사회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 시작 중 하나로 신시아가 회사에서 받은 스마트안경을 빌린 딸의 친구 중 한 명이 수배자를 쫓다가 죽게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프로미라는 프로그램이 전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하나씩 보여준다.

 

회사에서 제로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신시아가 딸의 친구가 죽은 사건을 겪으면서 딸 비올라의 바뀐 생활의 원인을 알게 된다. 앱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팔고, 앱의 코치를 받아 자신의 가치를 조금씩 높인다. 정보가 돈이란 단순히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선량한 방향으로만 앱이 작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앱의 지시를 따른다는 설정은 다른 문제를 나을 수밖에 없다. 거의 2억 명이 사용하는 앱이니 개개인에게 어떤 특정한 역할을 지시할 수 없겠지만 알고리즘을 바꾸면 프로그래머의 의도가 앱 사용자에게 작용한다. 물론 그 사용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아주 세련된 세뇌작업이다. 이 사건 때문에 제로를 뒤쫓는 신시아의 기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해고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시아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조건으로 광고가 들어온다. 

 

현재의 복잡한 인터넷 세계에서 익명성은 점점 사라진다. 내가 올린 글이나 정보가 광대한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저장되고 가공된다. 이미 십대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사용한 사진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CCTV로 교통정보를 보는 정도에 머무는 나와 달리 이미 정보는 어딘가에 축적되고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만을 골라 다닌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외부와 연결만 되어 있다면 특정한 인물을 뒤따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고화질영상이란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이것 외에 개인들이 자신의 장비를 가지고 특정한 인물을 쫓는 것도 가능하다. 1인 방송 시대에 이런 영상도 돈이 된다.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과 영상들이 SNS 등을 타고 범람하는 현상은 이제 일상적이다.

 

이런 광대한 정보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배후 세력에 의해 휘둘린다. 더 많은 감시와 조작을 원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1984>를 인용한 것보다 더한 세상이 왔다. 처음에 악처럼 보였던 제로가 어느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개인 혹은 조직은 자신들의 방해물을 없애는데 주저함이 없다. 제로의 정체를 파헤치는 사람들과 프로미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 등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속도감을 높인다. 음모는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들이 펼치고, 신시아와 제로 등은 이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것이 감시 가능한 사회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곳은 편리함이 사라진 곳이다. 인터넷이 없는 공간이다. 인공위성조차 조사할 수 없는 곳이다. 과연 이런 곳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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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 -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
이선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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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독특한 SF소설이 한 편 나왔다. 본격 전원 SF란 문구가 보이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원일기>가 떠올랐다. 소설 속 드라마 <농사의 전설> 때문이다. 몇 사람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데 작가의 노골적인 풍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풍자는 소설 끝까지 변함없이 유지된다.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제목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캐릭터는 조금 바뀌어서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설정 몇 가지는 기존에 SF소설하면 가졌던 과학지식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이 기이한 SF에서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게 된다.

 

장수 프로그램 <농사의 전설> 출연진들이 라비다 행성으로 납치된다. 라비다 행성에서 유행하는 지구 프로그램이 <농사의 전설>이다. 라비다 행성의 주식은 <소군>이란 식물과 동물의 결합물이다. 나무에서 자라다가 땅에 떨어져 움직이는데 이것을 벗겨 먹는다. 그런데 행성감기에 걸리면서 이 소군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떨어트리면 설익는다. 라비다 행성의 농업사령관 띵이 이들을 데리고 온다. 소군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다. 방송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허점을 노린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가. 또 출연진은 띵의 등장을 몰래카메라 정도로 생각한다. 속는 척하는 행동을 하지만 진짜 납치되었다.

 

농사에 대해 무지한 연예인들이 라비다 행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먹을 것이라고는 통조림 밖에 없다. 농사 지식을 가진 인물이라고는 블루베리 농사짓는 것을 도운 조조조연 정도다. 그런데 이 행성에서는 지구의 아이돌 재이니가 아주 큰 인기을 얻는다. 노래도, 춤도, 연기도 되지 않는 그녀지만 라비다 행성 등에서는 초우주아이돌이다. 바뀐 환경과 문화가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녀의 팬클럽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일이 항상 있다. 재이니가 바란 것은 실제 아빠를 찾기 위해 연예계에 데뷔한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조세열은 나이 오십이지만 얼굴 사기꾼으로 불릴 정도로 동안이다. 인기의 정점을 찍었지만 계속 하락세다. 이 소설에서 띵과 함께 주연으로 활약하는데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른 출연진의 분량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때문이다. 김수미를 연상시키는 출연진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다. 이들의 대화 속에 밝혀지는 삶의 이면은 연예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조세열에게는 숨겨진 과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딸 재이니다. 이들의 관계가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상상력을 뛰어넘고 일상의 허점 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만화적인 상상력이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은 띵의 라비다 행성이다. 순수하고 느긋한 삶을 사는 이들인데 순간적인 판단 실수도 한다. 이 때문에 생긴 문제 중 하나가 행성감기다. 또 자기정화를 위해 오랫동안 떠나있는데 이 기간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행성감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육체공유법이란 것을 만드는데 한 사람의 몸속에 세 명의 뇌를 넣는다. 물론 우리가 가진 것 같은 뇌의 용량과 모양은 아니다. 라비다인들은 세 번째 손이 있어 큰일을 볼 때 마사지를 해서 도움을 준다.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세 손을 다 드는 경우도 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소군>이고, 더 황당한 것은 우주선이다. 우리의 물리학 이론을 뛰어넘은 이 우주선은 자의식도 있고, 소재도 다양하다. 천으로 만든 우주선도 있는데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다. 이런 황당한 설정들에 불쾌함과 거부감이 강하지 않다면 이 블랙 풍자 코미디는 즐겁게 즐길 수 있다. 가끔 물리학의 세계를 벗어난 SF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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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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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분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고? 논픽션에서 다루는 소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리비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정확한 위치도, 이 나라의 독재자가 카다피란 것도 몰랐다. 카다피가 독재자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랍의 나라 중 하나로만 알고 있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을 거의 모른다고 뭐라고 할 수 없다. 역사를 좀 안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이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나.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과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있는 리비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귀환. 히샴 마타르가 33년의 시간을 지나 고국 리비아로 돌아온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된 그이지만 리비아에서 그의 소설은 금서다. 2012년 3월 카이로 국제공항을 떠난 그의 동행은 아내와 어머니다. 이 공항에서 시작하여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히샴과 그의 아버지와 리비아의 역사를 조용히 풀어낸다. 그 내용은 아주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는데 구성이나 진행 방식이 소설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있었던 역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다. 그의 바람은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의 생사여부다.

 

자발라 마타르는 1939년생이다. 카다피의 쿠데타에 처음에는 호의적인 시선을 보였지만 그의 정체를 알고 곧 반체제 인사가 된다. 이 부분은 박정희 쿠데타를 떠올린다. 그의 주 활동무대는 카이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집트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진다. 그날은 1990년 3월 12일이다. 1993년 아버지의 편지가 가족에게 전달되지만 1996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1996년 6월 29일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정치범 1270명이 학살되었다. 심정적으로는 이때 아버지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시기에 그를 만났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진실은 목격자의 증언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히샴은 돌아온 고향에서 친척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아버지와 삼촌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촌 동생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려줄 때 내전의 비극이 한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현실 사이에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반체제 인사의 가족이 되어 겪게 된 위험이나 근대 및 현대 역사 속 리비아의 모습 등 말이다. 더불어 히샴이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노력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도.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과거는 완전히 새로웠다. 히샴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우리들의 선조들이 어떤 독립운동을 했었는지 떠올려보게 만든다.

 

히샴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친척들을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는 한 무리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리비아의 민중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카다피가 어떤 폭압과 학살을 저질렀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관심사는 교도관들에게 도달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독재 타도 후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작가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면회를 시도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영치해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는 더욱 뚜렷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 이야기가 개인을 떠나 시대와 민중 전체로 번졌다.

 

한 개인의 역사가 한 민중으로 번질 때 그 개인은 일개의 독립된 개인이 아니다. 그의 기록과 흔적은 역사가 된다. 히샴이 아버지의 생존과 석방을 위해 노력할 때, 증언들이 조금씩 모일 때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아부살림 교도소 이야기와 이조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기록은 단순하고 건조한 문체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긴 문장을 역자가 다듬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읽기 편했다.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최북단에 자리한 이 나라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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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후카마치 아키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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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소설이다. 실종된 딸을 찾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부성애가 이 소설에는 없다. 아니 부성애는 있다. 하지만 그 부성애와 이 부성애는 다르다. 딸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노력이 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하다. 끝없는 갈증이란 원제처럼 아버지 후지시마는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지우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어둠과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성보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행위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그 극단 중 일부를 보여준다.

 

후지시마는 전직 형사다. 현재는 경비회사 직원이다. 출동신고를 받고 간 편의점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를 발견한다. 현장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했다는 이유와 그의 이력 때문에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이때 전처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딸 가나코가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될 텐데 집에 와서 보라고 말한다. 딸의 방을 조사하다 발견하게 된 수많은 각성제는 그가 생각했던 딸이 아니다. 각성제를 먹는 수준이 아니라 판매자가 가질 수 있는 양이다. 공부 잘 하는 딸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경찰에 신고하면 언론에 알려지고, 딸의 미래가 깨어진다. 전직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딸의 흔적을 쫓는다.

 

후지시마가 이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내의 불륜 대상을 폭행한 것이다. 나쁜 술버릇 때문이다.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술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 폭주한다. 이 술버릇이 아주 큰 문제를 만든다. 이혼한 아내의 집에서 아내를 강간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다시 평범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그의 바람은 잠깐의 상상에 머물 뿐이다. 진심으로 이것을 바랐다면 그의 행동은 달랐을 것이다. 좀더 신중하고, 조심하고, 냉정했을 것이다. 딸 걱정과 아내의 강간으로 이어진 폭주는 이제 한계를 넘어간다. 딸의 숨겨진 과거는 그의 폭주를 더 거침없게 만든다.

 

후지시마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3년 전 소년의 이야기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야구부를 떠난 후 친구들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던 그는 자살하려고 한 곳에서 가나코를 만난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음날부터 그에 대한 폭행은 사라진다. 폭력조직 아포칼립스의 힘이다. 가나코와 연결된 조직이다. 그는 가나코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어느 날 밤 가나코를 만나기 위해 그들의 차를 타고 간다. 그곳에서 가나코가 가진 거대한 구멍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보면 보통의 폭력조직과 다를 바가 없지만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 그들이 판 함정은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파괴한다. 그것은 강간이다.

 

소년이 당하는 강간과 그 이후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 등은 아주 참혹하다. 사실이 알려질까 두렵고,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몸을 씻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강간당한 후 자살한 이야기를 본 적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는 처음이다. 남자 아이를 여자를 바꾸면 여성 피해자의 심리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수다. 그리고 아직도 가나코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이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은 인간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이후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또 다른 파국을 만든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가나코의 삶을 정면에서 보게 한다.

 

이전에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한지 읽은 적이 있다. 숨겨지고 감춰진 욕망을 이성이 제어하지 못하면, 아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은 언제나 약자로 향한다. 대부분 소아와 청소년과 여성들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벌어질 추문과 여파는 기득권층이 결코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것과 딸을 찾으려는 아빠의 노력은 같은 방향으로 간다.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참혹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는 의문은 현실 앞에 너무 무력하다. 가나코의 삶이 이렇게 깊고 어두운 허무에 휩싸인 이유가 밝혀질 때, 후지시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은 끝없이 추락하고 이성은 사라지고 잔혹성만 남는다. 결코 이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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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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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가 곁들여 있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이다. 단편소설집이 아니라 딱 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일러스트가 없다면 64쪽의 분량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후기에서 알려주는데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된 단편인데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일본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한국 번역은 정말 늦은 것 같다. 정확한 연역은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만.

 

하루키의 단편소설 이야기에 앞서 카트 맨시크의 일러스트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취향에 맞지 않는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붉은 색과 굵은 선은 이야기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좀더 간결하고 흐릿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문체의 간결함과 이야기의 모호함과 신비로움이 강렬한 일러스트에 의해 깨어지는 느낌이다.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이 일러스트를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스무 살의 생일 이야기다. 나의 경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스무 살이라고 특별히 무엇인가를 한 기억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날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소설 속 여자의 회상은 그 날로 옮겨간다. 생일 때문에 쉬고 싶었던 그녀는 대타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출근했다는 기억과 함께 모호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홀 매니저가 아파서 그녀에게 사장의 방으로 대신 저녁 식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미스터리를 던져주는 것은 바로 이때다.

 

스무 살의 청춘에게 누군가가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최소한 소설 속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외모나 부는 아니다. 하루키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 이 이야기의 핵심이 소원이 무엇인가에 있지 않고 스무 살 생일에 사장을 만나 일어난 기묘한 분위기의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만남까지 가는 과정에 그녀의 삶과 주변을 간결하게 그려 보여준다. 간결한 하루키의 문체는 읽는 재미를 준다. 일러스트 사이에 등장하는 하루키의 일러스트는 반가움과 함께 즐거움을 전해준다.

 

생일. 시간.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물리적으로 24시간은 똑같다. 하지만 삶의 현실에 따라 심리적 시간을 다를 수 있다. 하루키는 이런 심리적 시간은 깊이 파고들지 않고, 물리적 시간과 그 속에 있는 작은 만남을 통해 아주 작은 생일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의 실체를 독자가 모른다는 점이 아쉽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녀와는 대화는 안정감을 준다. 의문도 같이 준다. 어둠이 깃들지 않는 삶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왠지 그녀가 바란 삶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다시 한 번 스무 살 생일의 나를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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