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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Zero - 나의 모든 것이 감시 당하고 있다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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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터넷, 정보화 사회, 빅데이터, 인공지능, CCTV, 스마트폰 등은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용어들이다. 손에서 잠시만 스마트폰을 놓아두어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현대인들에게 이 용어들은 너무나도 친숙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것이 겨우 이십 몇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도 스마트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분노하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정보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자본으로 바뀐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알지만 무시하거나 너무나도 많이 털린 개인정보 탓에 무감각해졌다. 가끔은 이런 정보를 팔아 돈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런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작가는 하나의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 우리에게 긴장감과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CCTV를 보는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 CSI 드라마를 볼 때 이 정보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하다. 흔히 다루어지는 소재처럼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상황에 따라 도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신시아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개인정보가 바로 떠올랐다. 개인의 익명성이 사라졌는데 이 과정 속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정보를 팔거나 업데이트한 것과 관계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신기한 일이겠지만 이런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 정보가 알려지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주 기분 나쁠 것이다. 이 장면 하나로 작가는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 상황 하나를 경고한다.
제로라는 단체는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휴가 중인 미 대통령을 드론으로 촬영한다. 순간적으로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생겼고, 이 장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하나의 이벤트가 그들로 하여금 세계인의 시선을 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테러 단체로 불린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단체를 쫓는 미국 정보조직을 활약을 그렸겠지만 작가는 제로가 알렸던 감시 사회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 시작 중 하나로 신시아가 회사에서 받은 스마트안경을 빌린 딸의 친구 중 한 명이 수배자를 쫓다가 죽게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프로미라는 프로그램이 전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하나씩 보여준다.
회사에서 제로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신시아가 딸의 친구가 죽은 사건을 겪으면서 딸 비올라의 바뀐 생활의 원인을 알게 된다. 앱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팔고, 앱의 코치를 받아 자신의 가치를 조금씩 높인다. 정보가 돈이란 단순히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선량한 방향으로만 앱이 작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앱의 지시를 따른다는 설정은 다른 문제를 나을 수밖에 없다. 거의 2억 명이 사용하는 앱이니 개개인에게 어떤 특정한 역할을 지시할 수 없겠지만 알고리즘을 바꾸면 프로그래머의 의도가 앱 사용자에게 작용한다. 물론 그 사용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아주 세련된 세뇌작업이다. 이 사건 때문에 제로를 뒤쫓는 신시아의 기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해고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시아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조건으로 광고가 들어온다.
현재의 복잡한 인터넷 세계에서 익명성은 점점 사라진다. 내가 올린 글이나 정보가 광대한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저장되고 가공된다. 이미 십대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사용한 사진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CCTV로 교통정보를 보는 정도에 머무는 나와 달리 이미 정보는 어딘가에 축적되고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만을 골라 다닌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외부와 연결만 되어 있다면 특정한 인물을 뒤따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고화질영상이란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이것 외에 개인들이 자신의 장비를 가지고 특정한 인물을 쫓는 것도 가능하다. 1인 방송 시대에 이런 영상도 돈이 된다.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과 영상들이 SNS 등을 타고 범람하는 현상은 이제 일상적이다.
이런 광대한 정보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배후 세력에 의해 휘둘린다. 더 많은 감시와 조작을 원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1984>를 인용한 것보다 더한 세상이 왔다. 처음에 악처럼 보였던 제로가 어느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개인 혹은 조직은 자신들의 방해물을 없애는데 주저함이 없다. 제로의 정체를 파헤치는 사람들과 프로미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 등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속도감을 높인다. 음모는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들이 펼치고, 신시아와 제로 등은 이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것이 감시 가능한 사회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곳은 편리함이 사라진 곳이다. 인터넷이 없는 공간이다. 인공위성조차 조사할 수 없는 곳이다. 과연 이런 곳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