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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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가 곁들여 있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이다. 단편소설집이 아니라 딱 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일러스트가 없다면 64쪽의 분량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후기에서 알려주는데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된 단편인데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일본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한국 번역은 정말 늦은 것 같다. 정확한 연역은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만.

 

하루키의 단편소설 이야기에 앞서 카트 맨시크의 일러스트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취향에 맞지 않는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붉은 색과 굵은 선은 이야기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좀더 간결하고 흐릿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문체의 간결함과 이야기의 모호함과 신비로움이 강렬한 일러스트에 의해 깨어지는 느낌이다.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이 일러스트를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스무 살의 생일 이야기다. 나의 경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스무 살이라고 특별히 무엇인가를 한 기억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날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소설 속 여자의 회상은 그 날로 옮겨간다. 생일 때문에 쉬고 싶었던 그녀는 대타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출근했다는 기억과 함께 모호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홀 매니저가 아파서 그녀에게 사장의 방으로 대신 저녁 식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미스터리를 던져주는 것은 바로 이때다.

 

스무 살의 청춘에게 누군가가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최소한 소설 속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외모나 부는 아니다. 하루키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 이 이야기의 핵심이 소원이 무엇인가에 있지 않고 스무 살 생일에 사장을 만나 일어난 기묘한 분위기의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만남까지 가는 과정에 그녀의 삶과 주변을 간결하게 그려 보여준다. 간결한 하루키의 문체는 읽는 재미를 준다. 일러스트 사이에 등장하는 하루키의 일러스트는 반가움과 함께 즐거움을 전해준다.

 

생일. 시간.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물리적으로 24시간은 똑같다. 하지만 삶의 현실에 따라 심리적 시간을 다를 수 있다. 하루키는 이런 심리적 시간은 깊이 파고들지 않고, 물리적 시간과 그 속에 있는 작은 만남을 통해 아주 작은 생일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의 실체를 독자가 모른다는 점이 아쉽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녀와는 대화는 안정감을 준다. 의문도 같이 준다. 어둠이 깃들지 않는 삶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왠지 그녀가 바란 삶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다시 한 번 스무 살 생일의 나를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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