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후카마치 아키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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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소설이다. 실종된 딸을 찾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부성애가 이 소설에는 없다. 아니 부성애는 있다. 하지만 그 부성애와 이 부성애는 다르다. 딸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노력이 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하다. 끝없는 갈증이란 원제처럼 아버지 후지시마는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지우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어둠과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성보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행위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그 극단 중 일부를 보여준다.

 

후지시마는 전직 형사다. 현재는 경비회사 직원이다. 출동신고를 받고 간 편의점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를 발견한다. 현장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했다는 이유와 그의 이력 때문에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이때 전처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딸 가나코가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될 텐데 집에 와서 보라고 말한다. 딸의 방을 조사하다 발견하게 된 수많은 각성제는 그가 생각했던 딸이 아니다. 각성제를 먹는 수준이 아니라 판매자가 가질 수 있는 양이다. 공부 잘 하는 딸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경찰에 신고하면 언론에 알려지고, 딸의 미래가 깨어진다. 전직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딸의 흔적을 쫓는다.

 

후지시마가 이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내의 불륜 대상을 폭행한 것이다. 나쁜 술버릇 때문이다.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술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 폭주한다. 이 술버릇이 아주 큰 문제를 만든다. 이혼한 아내의 집에서 아내를 강간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다시 평범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그의 바람은 잠깐의 상상에 머물 뿐이다. 진심으로 이것을 바랐다면 그의 행동은 달랐을 것이다. 좀더 신중하고, 조심하고, 냉정했을 것이다. 딸 걱정과 아내의 강간으로 이어진 폭주는 이제 한계를 넘어간다. 딸의 숨겨진 과거는 그의 폭주를 더 거침없게 만든다.

 

후지시마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3년 전 소년의 이야기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야구부를 떠난 후 친구들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던 그는 자살하려고 한 곳에서 가나코를 만난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음날부터 그에 대한 폭행은 사라진다. 폭력조직 아포칼립스의 힘이다. 가나코와 연결된 조직이다. 그는 가나코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어느 날 밤 가나코를 만나기 위해 그들의 차를 타고 간다. 그곳에서 가나코가 가진 거대한 구멍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보면 보통의 폭력조직과 다를 바가 없지만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 그들이 판 함정은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파괴한다. 그것은 강간이다.

 

소년이 당하는 강간과 그 이후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 등은 아주 참혹하다. 사실이 알려질까 두렵고,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몸을 씻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강간당한 후 자살한 이야기를 본 적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는 처음이다. 남자 아이를 여자를 바꾸면 여성 피해자의 심리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수다. 그리고 아직도 가나코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이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은 인간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이후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또 다른 파국을 만든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가나코의 삶을 정면에서 보게 한다.

 

이전에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한지 읽은 적이 있다. 숨겨지고 감춰진 욕망을 이성이 제어하지 못하면, 아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은 언제나 약자로 향한다. 대부분 소아와 청소년과 여성들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벌어질 추문과 여파는 기득권층이 결코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것과 딸을 찾으려는 아빠의 노력은 같은 방향으로 간다.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참혹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는 의문은 현실 앞에 너무 무력하다. 가나코의 삶이 이렇게 깊고 어두운 허무에 휩싸인 이유가 밝혀질 때, 후지시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은 끝없이 추락하고 이성은 사라지고 잔혹성만 남는다. 결코 이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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