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지음, 이다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위안부와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는 점 때문에 읽기를 주저했다. 한 여성의 참혹했던 삶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읽는 내내 떠올리며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떨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저는 자꾸 눈에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졌다. 결국 읽게 되었고, 예상한 아픔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마지막 장으로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혀지고, 눈물이 흘렀다. 과거의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달라고 할 때, 아미가 소녀상을 보고 떠난 언니를 떠올릴 때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은 두 명의 여인이 주인공이다. 하나와 아미다. 이 둘은 자매다. 제주 해녀의 딸들이다. 하나가 언니고, 아미가 동생이다. 1943년 하나는 물질을 하다가 일본군이 동생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그 앞에 나섰다. 일본이 어린 소녀들을 공장으로 데려가는 것을 알기에 이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선택은 두 자매를 역사의 비극 속으로 끌고 가는 갈림길이었다. 하나는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고, 아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아픔을 간직한 채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을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하나에게는 1943년이란 과거 시간만 다루고, 아미는 현재 속에서 과거를 말하게 한다.
과거는 그 시점에서 현재다. 하나는 자신이 끌려갈 때 어떻게 될지 몰랐다. 모리모토가 그녀를 겁탈하고 그녀에게 집착할 때도 그녀는 자신이 삶이 성 노예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제주에서 시작한 이동이 만주로까지 이어져 한 건물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기다린 것은 성욕에 휩싸인 수많은 군인들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십 수 차례 겁탈이 이어졌다. 도착 첫날 한 여성이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이것을 안 게이샤 출신 위안부 케이코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 참혹한 시간 속에서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케이코가 뺨을 때린다. 이때 소녀들 몇몇이 소리죽여 운다. 위안소 속으로 다시 돌아갈 때 하나는 사라지고 사쿠라가 남는다. 그녀 속에 남아 있던 인간성이 사라진다.
언니의 도움으로 끌려가지 않은 아미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제주 4.3사건으로 부모님을 잃고, 살기 위해 경찰 출신과 결혼한다. 제주 4.3사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 당시 어떤 참혹한 일이 있었는지 알기에 아미와 그 마을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에 공감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고, 생계는 해녀의 물질로 유지했다. 남편이 남는 시간 동안 자식과 사랑과 정을 쌓았지만 그녀의 속은 돌처럼 굳어갔다.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남편에겐 일말의 정도 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사실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그녀였기에 자식들은 엄마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가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성 노예가 된 하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나에게 집착하는 모리모토의 존재는 가능하지만 이후 벌어진 상황과 사건이 나에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결과만 놓고 보면 하나의 삶이 아미의 삶보다 평온하다. 물론 단절된 이야기 속에 또 어떤 아픈 과거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악은 벗어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의 하나가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희망으로 마무리한다. 제주로 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미는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살았다. 이것은 한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고 스러질 동안 두 번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끄러움. 목청껏 정의를 외치지 못한 부끄러움. 사는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부끄러움.” 이것이 평생 아미를 지배했다. 그녀가 아픈 몸을 이끌고 위안부 집회에 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언니 하나의 소식을 듣고 싶어서. 결국 마주한 것은 소녀상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소녀상의 소녀는 하나의 사진이란 설정으로 이어진다. 얼마 남지 않는 생명을 부여잡고 그 소녀상 옆에 앉았을 때, 손자가 나중에 소녀상에 절을 할 때 눈시울이 붉혀졌다. 지금도 그 장면들이 떠오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주하기 힘든 역사지만 반드시 정면에서 봐야할 우리의 역사다. 잊지 말고 널리 널리 퍼져야 할 사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