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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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일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이 몇 편 되지 않는다. 본 영화도 대부분 오락 영화였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전에는 반드시 봐야할 영화였던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다른 것에 시간이 빼앗기면서 이런 영화를 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없다. 하지만 가끔 좋은 소설을 읽고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상영한 영화의 제목은 <어느 가족>이다. 이 소설은 영화를 원작으로 감독이 썼다. 감독이 영화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가족의 비밀과 결정적 순간의 디테일들을 담았다고 한다. 영화를 보지 않아 직접 비교하기 힘들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 않는가. 아마 영화를 보게 되면 더 많은 부분이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그려낸 섬세함과 다른 장면들에 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영상과 소설의 혼합 작용은 늘 있어왔다. 대부분 영화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지만.

 

다섯 명이 한 집에 산다. 할머니 하쓰에.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어머니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등이다. 이런 집에 유리가 들어온다. 여섯 명이 한 집에 살지만 실제 돈을 버는 사람은 노부요와 연금수령자 하쓰에 밖에 없다. 아키도 어느 정도 벌지만 생활비를 내놓지는 않는다. 이런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좀도둑질이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조가 되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다. 적은 돈으로 고르케를 사서 가족들이 나눠먹는다. 이때 한 꼬마가 집밖에서 떨고 있다. 바로 유리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은 린으로 바뀐다.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들은 그 누구도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유리가 이 집에 들어온 것처럼 한 명씩 합류했다. 쇼타가 어떻게 이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나 아키의 집안 이야기 등은 조용히 하나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풀린다. 처음에는 하쓰에와 오사무가 진짜 엄마와 아들 사이인 줄 알았다. 오사무와 노부요도 진짜 부부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이 가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오사무가 말한 것처럼 가슴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진짜 가족 그 이상이다. 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법과 유괴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11살 쇼타와 5살 유리에게 좀도둑질을 시킨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이 가족에게는 그런 윤리적 잣대를 갖다 대면 가족이 성립할 수 없다. 노부요도 세탁소에서 옷 속에 들어있는 작은 물건을 슬쩍 훔친다. 하쓰에도 파친코 구슬을 훔친다. 이 가족에게 작은 도둑질은 일상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쇼타가 아키가 바라는 샴푸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다른 제품을 가져왔을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아주 좋다. 좋고 맛있는 것을 먹지 않지만 작은 배려가 곳곳에 드러난다. 유리가 학대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 작은 아이의 가족이 되어준다. 친부모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쇼타도 마찬가지다.

 

이 가족의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펼쳐진다. 통상의 관점에서 유괴가 이 가족에게는 보호가 된다. 아동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오히려 밝게 만든 것도 이 가족이다. 유리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간 후 보여주는 몇 장면은 아주 상징적이다. 진심과 거짓이 공존하는 이 가족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이것에 대한 답을 작가는 내놓지 않는다. 각 개인의 몫이다. 이 좀도둑 가족도 아주 멋진 바다 여행을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아마 영화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가족을 떠난 두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진한 여운과 불안감을 던져준다. 씁쓸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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