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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평점 :
알레산드로 바리코, 낯선 이름이다. 이 이름보다 더 낯익은 것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다. 물론 이 영화 본 적이 없다. 거의 20년 전 영화이다 보니 봤다고 해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저자의 이력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아! 그 소설의 작가다. 태국 여행 중 아주 재밌게 읽었던 그 소설. 다른 소설들을 번역해 주었으면 했던 그 작가. 그런데 이번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 좀 그렇다. 1인극을 위한 모놀로그다. 이 부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노베첸토. 정식 이름은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다. 그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났고 평생 배 위에서 살았다. 피아노 위에서 발견되었고, 선원 대니 부드먼 손에 키워졌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그 어떤 신고서에도 그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버지니아 호와 사람들의 소문 속에만 존재한다. 그는 천재 피아니스트다. 너무나도 뛰어난 연주를 하는데 그의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은 감정의 홍수 속에 파묻힌다. 1등실 손님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매일 3등실로 내려왔다. 이런 소문은 멀리 퍼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실존 인물인 ‘젤리 롤 모턴’과 피아노 경합을 벌이게 된다. 이 장면은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 이미지를 그려보지만 음악은 머릿속에서 재생되지 않는다. 불협화음 가득한 재즈 몇 가락이 전부다. 영화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런 음악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면 늘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음악이면 이런 감정들을 불러올까 하고. 만약 이런 음악을 듣게 되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벤트가 하나 펼쳐진다. 그것은 고정되지 않은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파도에 따라 배가 기우는데 그 움직임 속에서 그 어떤 충돌도 없이 멋진 연주를 한다. 마지막에 유리가 파손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아주 멋진 영상이 재생된다. 비현실적이지만 환상적이다. 이렇게 이 모놀로그는 아주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노베첸토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배에서 내릴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날이 되자 몇 발자국 내딛은 후 포기하고 배로 돌아온다. 그 앞에 펼쳐진 더 넓은 세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와 피아노는 한계가 있는 곳인 반면 세상은 그에게 무한으로 다가왔다. 불안감이 그를 배에 묶어두었다. 88개의 건반으로 무한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가 세상의 넓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제2차 대전과 선박의 마지막이다. 버니지아 호가 폐선 처리될 때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고. 하지만 불안한 예측은 현실이 된다. 마지막 장면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다.
모놀로그란 것을 의식하는 동시에 영화적 연출을 생각한다. 문장을 읽을 때는 모놀로그를, 이미지를 떠올릴 때는 영화다. 이런 의식적인 행동은 이 짧은 글에 다양한 재미와 깊이를 제공한다. 만약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나중에 본다면 영화의 이미지가 이런 상상력을 제한할 것이다. 또 작가는 장면과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강하게 힘을 주거나 연극적인 음성으로 읊조린다. 당분간 노베첸토의 이미지가 일상 속에서 불쑥 불쑥 떠오를 것 같다. 명확하지 않고 실체도 없는 음악도 이미지로 다가온다. 짧은 글이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