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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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실수해서 한 마을에 바보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마을은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이다. 실제 지명은 존재하지만 이야기 속 마을은 가상의 마을이다. 이 바보들만 모여 사는 마을을 떠올리면서 악마와 바보들의 마을을 소재로 한 단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다. 읽다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이 정말 바보란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몇 편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답답했다. 이성이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현명한 해결책이 나올 때도 있지만 아주 일부다. 그러다 문득 몇몇 이야기에서 우리 삶의 모습이 보였다.

 

17세기부터 동유럽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짧은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 작가가 새롭게 재창작한 우화들과 그 이야기들에 영감을 받아 작가가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작가의 말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내가 이해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 삶을 그 속에 대입해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헤움 사람들처럼 바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것과 비슷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런 바보가 있나.’하고 말하다가도 움찔 놀라게 된다.

 

마흔다섯 편의 우화는 생각보다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믿는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우화와 우리의 삶을 비교하는 시간을 자신도 모르게 가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를 읽으면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말장난들이 떠올랐고, <바보들의 인생 수업>에서 4대강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연상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과 행동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한데 단순히 잠깐 동안 눈을 가리기 위한 행동을 펼치는 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물론 이런 행동에 동의하는 바보들이 늘 있다.

 

읽으면서 나는 바보가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다 읽은 지금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헤움 사람들처럼 수많은 바보짓을 한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거나 최선이었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바보 같은 행동을 적지 않았다. 내 욕심에 눈이 가려져 앞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름 지혜로운 대처였다고 생각한 것도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보면 다른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었다. 가끔 바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이익 우선이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바로 헤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 배우고 싶은 것도 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들의 해결책은 황당하고 바보 같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진심과 열의는 진짜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기 위한 마음이나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 등이다. 그냥 보기에도 간단한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며칠을 토론하는 모습은 논쟁을 피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우리의 삶과 대비된다. 이것 또한 읽으면서 바보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이 우화들은 읽은 이후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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