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자의 여행 - 형과 함께한 특별한 길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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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자란 표현에 회사원을 연상했지만 실제 이 글은 쓴 작가는 소설가다. 원제는 Three Weeks with My Brother인데 처음에는 약간 반감이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여행인데 왜 이런 제목을 사용했는가 하는 반감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삶을 더 알게 되면서 이 제목에 점점 동의하게 되었다. 물론 마케팅 측면에서도 ‘형과 함께 한 삼주’란 제목을 붙이면 강한 인상을 주지도 못한다. 실제 내용을 보면 작가는 일중독자처럼 보인다. 아니 일중독자다. 하루 다섯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글쓰기, 아이들 돌보기, 청소 등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가 변하게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형과 떠난 3주 여행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했다. 얼마짜리인지 설명은 없지만 전용비행기를 타고 거의 세계 일주를 하는 상품이다. 페루 마추픽추, 칠레 이스터섬, 호주 에어스록,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 타지마할, 노르웨이 트롬쇠 등을 여행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비해 돌아보는 관광지가 많다. 이 많은 관광지가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실제 여행지 이야기 분량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도착해서 그가 형과 함께 한 짧은 여행을 보여준 후 자신의 인생 역정을 풀어낸다. 한참 읽다가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작가의 자서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연대기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면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보는 활발하고 장난끼 가득한 소년들의 행동 그대로다. 놀라운 점은 이 형제들이 상당히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집에 돈이 없는 것이고, 다음 이유는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이 형제들은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아주 잘 자랐다. 여동생은 여자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이 때문에 남매 사이가 털어질 정도는 아니다. 작가는 세 남매 사이에 낀 둘째다. 그가 어릴 때 받은 부당 대우(?)는 한국에서도 자주 본 것이라 특별하지 않지만 지금의 기준에서 본다면 정말 부당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다.

 

작가는 아이가 다섯이나 있다. 이런 그가 형과 삼주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아내가 승낙해줬다는 것이 놀랍다. 형과의 특별한 관계를 앞에 말했는데 처음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왜 일중독자란 표현이 나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런 공통된 경험을 겪은 후 두 형제는 종교와 관련해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형은 종교를 멀리하고, 동생은 여전히 신을 믿는다. 이 형제들이 둘러본 여행지들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들이다. 맞추픽추에 대한 평가는 영상으로 본 후 실망한 것을 다시 되살려주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둘러싼 이야기는 언젠가 캄보디아 책을 통해 그 비극의 현대사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삶은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다.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형은 더 적게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즐기는 반면 동생은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불의의 사고를 대비한다. 개인적으로 형에게 공감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잠시 휴식을 가져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다 그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 휴식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첫 소설이 성공한 후 연달아 베스트셀러를 내놓고,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거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는 글쓰기를 그만 두지 못한다. 이 일들이 그가 겪은 일들에 대한 도피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여행 가기 전 일상에서 시작한다. 여행을 가서 그곳 풍경과 감상을 다룬 후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 구성은 끝까지 이어지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자서전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 이면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 보여줄 때 가슴이 아팠다. 비극이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될 때 점점 그 기억은 두툼하게 쌓인다. 좋아질 것이란 거짓말도 할 수 없다. 부모님과 여동생만으로 엄청난데 둘째 아들도 장애가 있다. 그가 일에 더 집착한 이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의사들이 진단과 달리 그의 노력으로 아이를 거의 정상인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대단하다. 진단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의 노력의 결과일까?

 

연말 연초에 이 산문집을 들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울음을 보면서 눈물짓고, 악동 같은 행동에 화를 내었다. 엄마의 응급처치에 놀라면서 작가가 과장되게 쓴 것은 아닌지 의심을 눈초리를 보냈다. 비극적인 가족사가 나올 때는 숙연해졌고,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눈물을 수십 분간 흘렸다고 했을 때는 공감했다. 여행지에서 형이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미국인의 나쁜 행동들이 떠올라 불편했지만 솔직한 감상들은 좋았다. 긴 여행 도중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을 때 약간 나쁜 생각을 했지만 그의 삶을 생각하면서 동의했다. 그런데 역자 후기는 그 나쁜 생각을 확인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강하게 흐르는 기조는 꿈과 열정과 굳은 의지와 노력과 가족 사랑이다. 하나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다음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두 형제의 사랑은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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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블레이크의 모험 - 유령선의 미스터리 Wow 그래픽노블
필립 풀먼 지음, 프레드 포드햄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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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을 사 놓았다. 언제나처럼 이 책들은 책더미에 묻혔다. 영화로도 개봉되었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케이블에서라도 자주 방송된다면 볼 수 있을 텐데 너무 오래전 영화인 모양이다. 1부가 영화로 만들어진 후 2부는 아직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흥행에 많은 실패를 한 모양이다. 하지만 워낙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고, 고전이라고까지 하니 언젠가 읽고 싶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이 그래픽노블이다. 한마디로 작가 이름과 그래픽노블이란 형식 때문에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맞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유령선 메리 엘리스호와 이것을 뒤좇는 세계적인 거부 칼로스 달버그가 두 축을 이룬다. 메리 엘리스호에는 존 블레이크가 타고 있다. 이 배는 시간 여행을 한다. 어느 시대를 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배에는 다양한 시간대의 선원들이 타고 있다. 가장 최근 인물은 가족과 함께 요트로 세계 일주하다 물에 빠진 세레나다. 존이 그녀를 구했다. 이런 유령선을 쫓는 인물 중 악당 역할이 딜버그다. 이야기 후반까지 왜 그가 유령선에 집착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현재 시간 속에서 이 유령선에 관심을 두는 대니얼이 있다. 그녀의 정보마저도 달버그는 훔쳐간다.

 

유령선을 시간 여행과 연결한 것은 특이하다. 존 블레이크가 어떻게 이 배에 타게 되었는지는 중간에 알려준다. 그의 아버지가 아인슈타인과 함께 진행했던 실험 때문이다. 실험은 존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놓았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배는 기본적으로 지금과 다르다. 지금도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 배는 더하다. 바다를 항해하다 바다에 바진 사람을 구해 선원으로 키운다. 각 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 해적도 만나고, 그리스 시대의 세이렌의 목소리도 듣는다. 판타지 설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풀어놓았다.

 

읽으면서 세레나의 행동에 화가 났다. 자신의 시대로 그녀를 돌려보냈는데 호기심 때문에 다시 승선한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선택이다. 긴 분량도 아니고 소년의 모험을 다루다 보니 하나의 설정으로 나쁘지 않다. 나중에 그녀가 좋은 활약을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녀와 존이 동시대의 시간대에 나타나 적의 위협에서 달아나는 장면은 또 다른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존의 후손은 영국 해군으로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존이 유령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면 그의 후손은 액션으로 이 모험극에 재미를 더했다.

 

프레드 포드햄의 그림은 단정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쓸 데 없이 화려한 연출은 자제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한다. 덕분에 가독성이 좋다. 하지만 정돈된 그림체가 만화의 상상력을 조금 억누르는 것 같다. 원작이 있기 때문일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주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영화로 만들면 멋진 모험극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직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여행과 존의 후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깔끔한 그림체를 좋아하고, 현대판 판타지를 즐긴다면 더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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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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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회사 회식을 하고 전철을 탄 후 졸다가 종점까지 간 적이 몇 번 있다. 다행이 막차가 끊기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는데 막차가 없다면 난감하다.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데 지금처럼 어플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대기하거나 지나가는 택시가 없으면 무작정 기다리거나 택시가 올만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 단편들 중 몇 편에서 긴 택시 대기 줄을 보고 문득 그 당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야근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마치고 막차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전철의 풍경도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소설 속 이야기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파우치>는 지하철 치한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듯하다가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한 전철역의 인사 사고 때문에 멈춘 후 생각이 이어지는 와중에 치한이 덤빈다. 이를 응징하는 모습은 속이 시원한데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훈훈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데 취향 존중이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브레이크 포인트>는 직장인의 현실적 문제를 다룬다.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프로젝트와 이 일에 투입된 팀장의 걱정 등이 아주 공감을 자아낸다. 휴식을 강제한 후 돌아가는 전철과 작은 운동은 우리 삶에 휴식과 운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이 프로젝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은 지금도 이어진다.

 

<운동 바보>는 사랑 이야기다. 경륜 선수와 사귀는 한 여성의 심리 변화를 다루고 있다. 현실적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프로선수의 경력 때문에 편안한 시간도 가지지 못한다. 하루만 운동을 쉬어도 몸은 그 변화를 알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려고 편지까지 보낸 후 연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식적이다. 동시에 이해된다.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는 일본의 저력으로까지 불리는 가업 이어받기를 극적으로 다룬다. 쇄락하는 이발소와 그곳을 다니는 고객과의 만남, 아버지의 병환, 자신의 일들이 빠르게 펼쳐진다. 새롭게 이발소를 이어받아도 유지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부모와 그곳을 애용하는 손님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고가 밑의 다쓰코>는 전철역 인사 사고 중 하나를 알려준다. 여장 남자 다쓰코의 과거 이야기가 중요한 기본 줄거리지만 시선을 끄는 것은 설치 미술을 통해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빨간 물감>은 불편한 이야기다. 빨간 물감이 필요해 손목을 긋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도 충분할 텐데. 이것보다 더 불편한 것은 선생의 서투르고 무신경한 대처다. 나 자신도 그 선생보다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지만 읽는 동안은 불편했다.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스크린도어>는 역내매장에서 일하는 여성 이야기다. 과거 그녀는 그 역에 떠밀려 떨어진 적이 있다. 전철은 들어오고, 몸은 움직일 수 없다. 이때 한 남자가 그녀를 구해준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길 바라지 않는다. 스크린도어 공사 때문에 매장 철수되기 하루 전 작은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면서 그를 발견한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처음 예상한 미스터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짧은 단편 속에 전철 속 사람들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늦은 밤 전철을 타고 무심코 보던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삶 이야기가 있음을 다시 느낀다. 막차와 사고가 겹쳐지면 그 피해는 승객들이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 멈춰선 전철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 전철 안에서 무작정 대기해야 한다. 이 시간들 속에서 각자의 사연은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그 중 몇 명만 담았는데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된다. 시리즈로 나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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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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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SF에 나오는 것처럼 노화방지물질이 발명된다면 모를까 현재까지는 당연한 자연법칙이다. 이 자연법칙 중 가족을 괴롭히는 질병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치매가 최악이다. 중풍에 걸린 큰아버지들의 모습을 봤지만 제3자의 입장이다 보니 힘들겠구나 정도에 머물렀다. 중풍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힘겨움은 조금 피상적이었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글이나 영상을 보면 혹시 나의 부모님도 이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충분한 여윳돈이 있다면 요양원에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다는 답안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이 작품집은 바로 치매에 걸린 가족을 갑자기 마주한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역자의 말처럼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개인에게 한정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국가에서 충분한 시설과 인원을 갖춘 후 이들을 돌본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돈이 많으면 민간요양병원에 위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고액이다 보니 일반 시민들은 힘들다. 이들을 돌봐줄 인력이 파견되지만 한정적이다. 결국 그 너머의 시간은 가족들이 돌봐야 한다. 가족이 돌볼 경우 누가 돌볼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자식이 혼자면 어쩔 수 없지만 둘 이상이면 이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 단편집은 이런 갈등을 고조시키기보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한 가족의 치매 문제를 다룬다.

 

부모의 치매를 알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아, 어떻게 하라는 거야!”란 문장이 이것을 가장 잘 대변해주지 않을까. 점점 커져가는 불안감은 조금씩 마음을 잠식한다. 자신의 일이 있고,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이 있다면 치매 환자를 돌봐야한다는 사실은 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형, 뭐가 잘났는데?>다. 다섯 형제와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반응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의 문제는 한 다리 건너서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오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치매 환자가 아니고, 노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치매였다면 이 형제들의 행동은 어땠을까?

 

<엄마, 노래 불러요?>는 조금은 이상적인 대응을 보여준다. 남편이 홀몸이자 치매 환자인 엄마를 자신들의 집에 모시자고 한다. 학원 강사를 하면서 시간 여유가 있다보니 아내의 직장 생활을 도우면서 장모를 돌본다. 딸 하루카가 “서로 도와가며 앞으로 잘 지내겠노라”라고 마음먹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이처럼 치매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단편을 제외하면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인물들은 모두 딸이다. 며느리다. 딸 밖에 없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아들은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모조리 맡긴다.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심하다. 여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까지 덧붙여지면서 그 아내를 응원하게 된다. 이 강한 인내를 보면서 일본의 황혼이혼 이유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소설 속에서 치매 환자인지 판별받기 위한 노력과 함께 조금 낯선 용어들이 나온다. 개호인정 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법은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 등을 지정할 수밖에 없다. 등급이 낮으면 가족의 부담이 늘어난다. 공공요양원의 대기가 길다는 것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농담처럼 죽은 후에야 들어갈 수 있겠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노인들을 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홀로 독립해서 산 야오이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본 풍경이 바로 이것이다. 제대로 돌보는 가족이 없는 치매 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잘 보여준다.

 

젊었을 때 어땠는가 하는 것은 치매와 상관없다. 학교 선생이었던, 작은 회사 사장이었던, 홀로 딸들을 키웠던 것들과 관계없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치매에 좋다는 놀이나 운동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알 수 없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치매 환자들은 대부분 초기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나아간 소설도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집에 여러 가지 설치를 하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이것이 무력해지는 순간도 있다. 서로가 계속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무레 요코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막막하고 무거워진 마음을 느낀다. 나도 이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역자의 말처럼 아직 건강한 부모님이 다시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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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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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몽 컬렉션이란 브랜드이름과 오츠 이치란 이름에 먼저 눈길이 간다. 오츠 이치의 소설을 오래 전에 읽고 최근에는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집에 찾아보면 그의 읽지 않은 소설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천재라는 그의 평가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밌게 읽은 기억들이 있다. 이런 기억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목차를 보면 네 명의 작가 이름이 나온다. 각 단편 앞에 이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트릭이다. 실제 이 모든 작가들이 한 명의 대필이다. 이 모든 작가는 당연히 오츠 이치다.

 

읽으면서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표제작 <메리 수 죽이기>에 반했을 뿐이다.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등을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오타쿠의 삶이 절절히 녹아 있다. 팬픽과 동인지에 대한 부분도 들어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가 계속 떠올랐다. 약에 절어 있던 한 학생이 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이 비현실적인 설정에 조금씩 동의하게 된다. 내가 아는(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장르 작가 중 한 명도 이렇게 읽다가 습작을 한 후 유명 작가로 바뀌었지 않은가. 쓰고, 쓰고, 쓴 다음에 이 글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한다.

 

<메리 수 죽이기>는 읽으면서 감정 이입과 절제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마음가는대로 마음껏 쓴 소설이 재밌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 노력의 결과가 소설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실제 작가의 경험을 담고 있다.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은 소년 탐정물이다. 가벼운 소품인데 매력적인 소년 캐릭터를 제외하면 그렇게 강한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진범을 밝혀내기 위해 사용한 트릭도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본 것이다. 냄새를 제외하면 왠지 긴다이치가 떠오른다. 나만의 착각일까? 개인적으로 이 소년 탐정을 더 보고 싶다.

 

<염소자리 친구>와 <트랜시버>는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과 비슷하다. 학교 폭력을 폭력으로 대처하는 학생들의 선택은 공감하지 말아야 하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것은 잘 선도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길을 따라 날아오는 신문 중 하나에 미래 신문 조각이 있으면서 일어나는 <염소자리 친구>는 중첩된 트릭이 있다. 이 트릭보다 마무리가 더 여운을 남긴다. 반면에 <트랜시버>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무너진 삶을 다룬다. 우리에겐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더 알려진 이 사고 후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편은 자학한다. 그러다 폭음을 한 후 트랜시버를 통해 죽은 아들과 대화를 한다. 환상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섬뜩한 공포를 전해주는 마무리로 끝난다. 흔한 마무리지만 그 아버지의 행동에 공감한다.

 

<어느 인쇄물의 행방>은 3D 프린터를 극한까지 몰고 간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 상 결말의 예상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쇄물과 다른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는 화자의 상실과 연결되면서 공감의 폭을 넓힌다. <에바 마리 크로스>는 인체 악기를 둘러싼 이야기다.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화자가 연인 에바 마리 크로스에게서 지역 명사 제임스 번스타인의 유품에 대한 의혹을 듣는다. 번스타인의 아내가 남편 사후 자살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의혹을 조사하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들은 비밀조직의 집회와 닮아있다. 앞에 그가 들은 음악이 겹치고, 새로운 공포가 겹쳐지는 장면은 일반적인 공포소설의 공식이다.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보니 취향을 타는 작품들이 나누어진다. 공포 쪽은 조금 힘이 약하고, 구성 등이 익숙하다. 반면 글쓰기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이야기들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초기작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작가들이 모두 한 명이란 사실을 알고 예전에 읽었던 작품의 서평을 다시 읽었다. 만족한 작품이었는데 오츠 이치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할 작품들이 갑자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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