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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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로 먼저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생각할 때 제목과 상관없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봤다. 그런데 아니다.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상당히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작소설이지만 고양이가 중심에 놓인 단편이 있는 반면에 시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어떤 공통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몽이란 고양이가 이 3부의 이야기를 이어주지만 말이다. 각 단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전편에서 가진 의문들이 다음 이야기에서 풀린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제1부 <새끼 고양이>는 몽이란 이름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혹은 불쌍하게 생각한 주인이 주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침을 당한 고양이가 다시 집을 찾아오고, 다시 내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노부에의 감정을 풀어낸다. 노부에가 가지고 있는 힘들고 어렵고 어두운 감정은 아기 유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도 추스르지도 못하는 노부에가 몽이란 고양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겹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그냥 살아가고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제2부 <절망이라는 블랙홀>은 5년 전 엄마가 도망간 유키오 이야기다.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화목이나 단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집안 풍경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밥을 제대로 지어준 적도 없고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떼운다. 점심은 800엔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침울해하고 절망하게 된다. 뒤틀린 감정은 결국 엄마와 함께 있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향한다.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키우게 되는 고양이는 유키오의 감정을 순화시켜준다. 그리고 유키오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던 사건 이후에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반응은 유키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 풍경과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간격이 단숨에 좁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공감대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절망의 깊이를 이 단편을 통해 들여다본다. 나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제3부 <멋진 이별>은 노부에의 남편 도지가 20살이 된 몽과의 이별을 다룬다. 고양이 20살은 인간 100세와 비슷할 정도다. 도도하고 난폭하고 마초적인 고양이였던 몽이 점점 힘을 잃고 집에만 머물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점점 쇠약해지는 몽을 통해 간호하는 도지의 모습은 변한다. 최선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내가 죽은 후 몽과 함께 살면서 조그만 위안을 얻었던 그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죽음은 삶이 다하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몽이 자신을 지키면서 살다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을 그냥 무심코 바라보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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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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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경전 <탈무드>에 나오는 36명의 굿맨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있었다. <36인의 아틀라스>다. 개인적인 평을 내린다면 둘 다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36인의 아틀라스>다. 이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다. <라스트 굿맨>의 후반부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단순히 몰입도와 속도감만 놓고 보면 더 좋은데도 말이다.

 

36명의 굿맨이 사라지면 종말이 온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고대 유대민족에서 36명의 굿맨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개인적으로 100배 정도 더 많다고 본다. 이야기의 소재로 이것을 이용한 것은 좋은데 여기에 머물러 버리면 미스터리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물론 이 굿맨들의 역할을 좀더 거창하게 만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 굿맨. 이들은 흔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물론 가짜들도 많을 것이다. 닐스가 베니스 형사 토마소의 연락을 받고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의 굿맨을 찾으려고 할 때 이것은 잘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실제는 평범하거나 권위적인 인물이란 사실을.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바로 그가 마지막 굿맨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속도감은 대단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시간 단위 장면으로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닐스다. 그는 총을 싫어하고 여행공포증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면 공포를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공간이 확장되지만 국경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장치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임무는 교섭인. 그는 강제적인 방법을 싫어하고 배운 것과 경험을 통해 상황을 잘 풀어간다. 누구나 가는 미국 FBI 연수도 여행공포증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다. 도입부에 그가 인질범과 대화하는 장면은 약간 도식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의 능력을 충분히 알려준다.

 

각 나라에서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한 가지 공통점은 등에 문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련의 규칙을 파악한 인물이 있다. 베니스 형사 토마스다. 그런데 그의 역할이 미미하다. 닐스와의 공조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이 파트너로 등장한다. 천재 천체물리학자인 한나다. 굿맨을 찾기 위한 과정에 그녀를 만났다. 이후 그녀는 다른 굿맨들의 죽음에 대한 규칙을 발견한다. 여기에 도입된 것 중 하나가 대륙이동설이다. 약간 진부한 부분이 있지만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제는 굿맨을 살인자로부터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굿맨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미와 속도감은 올라간다.

 

유대 경전에 나온 이야기가 현실로 이어질 때, 그 규칙성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이 감정은 어느 순간 공포로 이어진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하지만 굿맨이라면 어떨까? 이 소설의 후반부는 바로 이 부분을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을 때 이성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튄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성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력한 힘이 작용할 때는 더욱더.

 

나쁘지 않은 소재에 속도감 있는 구성과 재미는 충분히 시선을 끈다. 하지만 기본 설정이 뒤로 가면서 힘을 빼게 만든다. 물론 이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자 재미를 줄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1부 사자의 서에서 인간적인 마무리로 이어졌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닐스와 한나 콤비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콤비가 나오는 소설이 출간된다면 손은 자연스레 나갈 것 같다. 왜냐고? 이 둘의 관계나 한나의 놀라운 추리력을 또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닐스의 여행공포증에 대한 후기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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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랜더 래리 니븐 컬렉션 1
레리 니븐 지음, 정소연 옮김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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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그런데 작품 목록을 보니 낯익은 소설이 보인다. <링월드>. 십 수 년 전 읽었던 sf소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대한 상상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당시 출간작답게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 책을 들고 읽을 때 살짝 <링월드>처럼 거대한 세계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다. sf를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한국 sf 장르에서 가장 번역이 잘 되지 않고 있는 분야다. 그런 점에서는 상당히 반가웠다. 그리고 외팔잡이 길의 성격과 능력은 이 단편집에서 중심에 있으면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sf나 판타지에서 미스터리를 다루려면 나름의 한계를 정하고 설정에서 그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해답을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 때문에 sf 미스터리가 더 힘든지 모르겠다. 잘 쓴다면 일반 미스터리 장르와 다른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지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조금 어렵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개인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시대 배경은 2123년이다. 앞으로 백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세계다. sf 작가답게 그는 지구뿐만 아니라 달과 소행성대도 같이 다룬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길 해밀턴의 이력에 소행성대 바위 캐기가 있다. 흔히 고리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플랫랜더다. 첫 작품 <절정의 죽음>은 바로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이 시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이 비록 충분하지 않지만 읽다보면 나름대로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링월드>가 너무 거대해 제대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세계다.

 

길은 ARM에서 일하는 경찰이다. ARM이 다루는 사건을 일반 사건이 아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는 신체 및 장기나 무기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다. 이 시대는 인구가 이미 지구에 가득 차 산아제한이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재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다. 이 이식 때문에 늘 장기은행은 대체할 장기 등이 부족하다. 이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살인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장기는 법의 적용을 강화시키고 불법 거래를 활성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절정의 죽음>은 길이 소행성에서 같이 일한 동료 오웬 제니슨의 죽음을 다룬다. 이 시대 마약 중 하나가 전류 마약인데 그는 이것을 과다사용한 후 죽었다. 그냥 보면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행성대 사람들과 일했고 그들의 특성과 오웬의 성격을 아는 길이 의문을 품는다. 의문은 조사를 통해 의심으로 변하고 계속된 추리와 조사는 사건의 실체로 다가간다. 다음 작품인 <무력한 망자>와 더불어 이 시대 장기 밀매 등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길의 초능력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와 한계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무력한 망자> 역시 장기 이식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야기는 냉동인간들을 둘러싼 인권과 재산 문제다. 과거에 이런 저런 이유로 냉동 보관된 사람들의 장기를 현재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사용하게 하려는 욕심은 섬뜩하다. 우리가 미래 사람들의 유산을 현재만을 위해 탕진하고 고갈시키는 것 이상의 참혹함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길의 초능력과 이 시대 의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살짝 의문이 생기는 작품이다.

 

<ARM>은 어떻게 보면 가장 SF소설 같다.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SF적이기 때문이다. ARM이 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임무를 확실하게 알려주면서 SF적인 상상력을 미스터리에 강하게 도입했다. 사실 이 때문에 범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이유도 설명해줬을 때 겨우 이해하게 되었다. 길의 상상 손이 가진 엄청난 위력을 다시 한 번 더 경험하게 된다. 거리 제한만 없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다.

 

<조각보 소녀>와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은 무대가 달이다.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은 가장 작은 분량이고 <조각보 소녀>는 가장 긴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작품은 앞의 작품에 비해 재미가 좀 적었다. 특히 마지막 작품의 경우는 이 세계를 조금 더 알려주는 소품 정도로만 느껴진다. 작품이 더 이어지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반면에 <조각보 소녀>는 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인간들의 탐욕이 개입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이 법이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편리를 위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알려준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제목이 주는 의미를 알려줄 때 너무 끔찍했다. 미스터리적 재미보다 각각 다른 문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이 속에 담긴 다양함과 현재와 비교되는 윤리관 등이 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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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일기Z 밀리언셀러 클럽 132
마넬 로우레이로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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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이란 한국 좀비 소설을 읽었다. 왜 다른 소설부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도 갑자기 좀비로 변한 한국을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소설은 비슷한 시작이지만 중반부터 다른 길을 간다. 한국 좀비가 소품으로 축소되어 아기자기한 재미와 약간 황당한 결말로 끝난다면 이 소설은 규모가 훨씬 거대하다. 시리즈 중 첫 권임에도 생존을 위해 이동하고, 그 과정에 악당을 만나고 처절한 투쟁이 나온다.

 

한국 좀비 소설이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좀비 속에서 살아남기라면 스페인 좀비 소설은 생존자들을 찾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적극성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 인간들이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운 하늘 도시가 왜, 어떻게 무너졌는지 보여줄 때 세상이 좀비로 가득하게 된 이유를 조금은 납득하게 된다. 사실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부분이 대부분 생략되었는데 조금은 반가웠다.

 

이야기 진행 방식은 제목처럼 일기다. 아직 세상에 전기가 남아 있을 때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남겼지만 좀비 세상이 된 후는 손으로 일기를 적는다.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아마 자신의 블로그에 먼저 연재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처럼 세상이 인터넷이란 정보망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납득할 만한 설정이 아닐까. 사실에서 시작한 정보가 정보 통제로 가려지고, 가려진 정보가 목격자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 조금씩 밖으로 나오는 설정은 현실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명이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만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불편함보다 두려움을 더 강하게 표현해준다.

 

초반에 주인공은 의도하지 않은 몇 가지 생존도구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 도구들도 영화 속처럼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이미 한국 좀비 소설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유통기한을 잘 나타내주었듯이 고립된 공간에서 계속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그렇다고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 뚫고 다른 생존자를 찾아가기는 더욱 힘들다. 인간의 심리가 안정지향적인 경우가 많은데 주인공 또한 그렇다. 그가 움직인 것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량문제도 아주 중요하다. 더 이상 자가발전을 할 수 없어 냉동 냉장 보관할 수 없다면 소설 속 다른 사람들처럼 자살 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자살자들의 모습은 그 상황에 대한 절망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일기로 표현 방식이 변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을 떠난 그가 택한 것은 보트다. 바다로 나가 섬으로 간다면 안전한 지대가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 기대는 첫 여행지에서 사라진다. 좀비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부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보 통제가 문제를 더 키운 것이다. 여기에 좀비로 변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간성을 기대한 순간 파멸은 더욱 빨라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는 현대 과학 기술로 쉽게 대응할 수 없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급속하게 몰리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설명한 부분에서 현대 문명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식량과 생활환경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설명을 읽으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다.

 

좀비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인간은 곳곳에 존재한다. 절망감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실수로 좀비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협박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중반 이후 이야기는 바로 악당에 의해 다시 좀비 세상으로 들어가서 겪게 되는 대모험과 처절한 싸움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갈 수 있는 무기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정확하게 머리를 쏘아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좀비와 직접 싸우는 것은 바로 죽기 위한 것이다. 조용히 움직이지만 어디나 있는 좀비는 그렇게 쉽게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총소리는 다른 좀비를 부르고 이 상황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좀비 영화나 소설이 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좀비 세상으로 변하면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하나는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발전기고, 다른 하나는 아주 두꺼운 잠수복이다. 특히 외부로 나갈 때 이 잠수복은 필수 아이템이다. 주인공이 좀비의 이빨로부터 목숨을 구한 것이 몇 번인가. 능력이 된다면 큰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좀비가 당장 덤빌 수 없기 때문이다. 낚시에 소질이 있다면 바다에서 꽤 많은 식량을 구할 수 있다. 식수나 다른 식량은 어쩔 수 없이 상륙해서 구해야 하겠지만.

 

시리즈 3부작 중 첫 권이다. 아직 그가 겪어야 고난과 처참한 현실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만큼 독자들의 즐거움도 많이 남았다. 여기에 그가 생각하고 보여줄 좀비세상은 기존 것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수십 세기를 거쳐 만들어낸 과학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려줄 것 같다. 물론 대반격이 있다면 바로 그 과학에서 시작하겠지만. 혼자만의 생존이 아닌 동료가 생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끝까지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다음 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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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아들 1 - 마녀의 복수 일곱 번째 아들 1
조셉 딜레이니 지음, 김옥수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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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로운 영국 판타지 시리즈다.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일곱 번째 아들이란 제목이 붙어있지만 여기에는 일곱 번째 아들의 일곱 번째 아들이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엄청난 자식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는 숨겨진 재능이 있다. 바로 이 재능이 유령사냥꾼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모두가 유령사냥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세 도제 수련의 단계를 거친 후에 유령사냥꾼이 될 수 있다. 당연히 그 과정은 험난하다. 이 책은 토머스가 처음 유령사냥꾼의 제자로 들어가서 겪은 무시무시한 사건을 다룬다.

 

300 여쪽이지만 실제 글자 수는 많지 않다. 마음먹고 읽는다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런 분량에 대상이 비교적 어린 연령이다 보니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보다 간결한 이야기 전개다. 덕분에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다. 도입부도 유령사냥꾼의 제자로 만들기 위한 엄마의 노력에 의해 유령사냥꾼이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부모가 돈을 내놓아야 한다. 일종의 수업료다. 만약 유령사냥꾼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그 직업을 원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유령을 보는 능력을 가진 일곱 번째 아들의 일곱 번째 아들 토마스. 그는 비교적 쉽게 유령사냥꾼의 첫 시험을 통과한다. 그에게 교육을 받지만 그 직업이 결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멀리하고 싶은 능력이다. 그가 음식을 들고 나왔을 때 아이들이 그를 공격한다. 이런 상황에 한 소녀가 다가와 도와준다. 앨리스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유령사냥꾼이 가둬 둔 마녀에게 매일밤 자정에 케이크 하나씩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 마녀는 멀킨 대모고,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순진한 토머스는 그것을 모른다. 그가 준 케이크에는 마녀가 힘을 되찾게 만드는 마법이 들어 있다.

 

시리즈의 도입부이다 보니 앞으로 등장할 주요 인물과 토머스의 첫 모험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신비하게 다가온 인물은 바로 엄마다. 유령사냥꾼이 아니다. 그녀가 내뱉는 몇 마디에는 아주 중요한 단서와 힘이 느껴진다. 그녀가 남편과 결혼하게 된 이유로 일곱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유령사냥꾼의 제자로 만들고자 했다. 중간에 아들이 힘들어할 때 다시 그 길을 가도록 만드는 것도 그녀다. 앨리스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할 때 이것을 해결해준 것도 역시 그녀다. 그리스에서 왔다는 그녀의 정체는 아마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때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들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앞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너무 간결한 이야기 진행이라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멀킨 대모가 나오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강력한 힘을 지닌 마녀를 그냥 죽이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다른 존재로 변해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화형이나 마녀의 심장을 먹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 사냥할 때 사용한 방식이다. 물론 심장을 먹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 설정은 당시 마녀 사냥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요즘 사형 제도를 없애고 무기종신형을 내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마녀를 가두고 있다. 분명 재미있는 설정이다. 이것이 다음 이야기에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도 기대된다.

 

약간 지루한 도입부지만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매력적인 장면들이 많을 것이다. 비교적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생략된 묘사와 설명이 영화 속에서는 좀더 자세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령이나 보가트의 존재는 공포와 흥미를 불러올 것이고, 마녀와의 대결은 긴장감을 고조시켜줄 것이다. 여기에 유령사냥꾼의 재능을 타고난 토머스의 성장과 모험이 곁들어 지면서 좀더 탄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이 지닌 매력이다. 유령사냥꾼이 되면서 그가 겪게 될 가족과의 불화와 다양한 모험과 성장은 다음 권을 기다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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