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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섬뜩하고 섬세하면서 반전이 있다. 섬뜩함은 24년 전 악마주의에 빠진 오빠가 막내 여동생 리비를 제외한 엄마와 여동생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섬세함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교차하면서 시간 단위로 나누고 엄마 패티와 아들 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는 점이다. 거기에 살인범에 대한 예상을 무참하게 깨트리면서 그 사건이 단순한 일가족 살인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와 언론과 거짓말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려준다.
유일한 생존자 리비는 그날 밤 사건을 피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몇 개 잃었다. 하지만 더 크게 잃은 것은 가족이다. 겨우 일곱 살인 그녀에게 큰 그늘이 사라지고 가십을 노린 언론과 이에 동조한 기부자들만 주위에 가득했다. 물론 이모도 있었고, 그녀의 기금을 관리하는 관리인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날의 기억 속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 언론의 주기적 방송으로 얻게 된 기부금은 그녀가 일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더 많이 흐르고 세상은 새로운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녀는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돈도 점점 떨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점점 더 돈이 절실해진다. 이때 한 남자가 그녀가 오기만 하면 오백 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가 바로 라일이다.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에 총무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모임들은 단순히 한 사건만 다루지 않는다. 사건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있다. 라일이 속한 모임은 리비 일가족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하고 추론하면서 오빠 벤이 살인자가 아니라 아빠 러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하지만 돈이 절실한 리비에게 이들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구성은 현재 리비의 생활이 한 축이고, 사건 전날 아침에서 그날 밤에 있었던 그 순간까지 엄마 패티와 벤의 시점이 한 축이다. 두 축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리비다. 리비가 오빠 벤을 처음 면회하고 정보를 하나씩 수집한다면 과거의 두 모자는 그날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단위로 끊어서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이 과정에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혹시 범인이 누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반전이 놀랍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 한발씩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다. 일곱 살 리비는 절대 몰랐을 과거를 하나씩 파헤치면서 이 거대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동시에 긴장감도 같이 고조된다.
리비가 돈을 위해 진실을 찾아가듯이 과거 속 두 모자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다. 엄마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벤은 가난 때문에 남들에게 무시된다. 엄마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에 벤을 둘러싼 아동 성추행 소문까지 퍼지면서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무력하고 술에 절어있었던 전 남편에게서 모두 네 남매를 낳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삶의 시련이다. 삶의 수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고 그 흐름 속에 한 개인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그녀를 따라가면서 그날의 현실과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벤은 10대다. 겨우 열다섯 살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다. 여기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의 임신은 또 다른 고민이다. 늘 돈이 궁해 무료 급식을 먹고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반면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는 돈을 팡팡 쓴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끌린다. 하루란 시간 속에 벤의 과거가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 과거가 현재에 다시 살아날 때 그날 밤 살인 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과 거짓과 소문이 뒤섞이고, 목적을 위해 왜곡되고 유도된 살인사건의 진실이 말이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날 밤 사건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몇 가지 조건만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살아남은 자는 어둠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하고,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진실을 찾게 만드는 것이 돈이란 점이다. 그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돈인 것처럼. 또 사실과 거짓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흡입력이 재미가 <나를 찾아줘>보다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