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 -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으로 만나는 우리의 고전 시가
김용찬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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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이란 책으로 저자를 처음 만났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옛 서평을 찾아보니 지금 느낀 기분과 비슷한 문장이 많이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학창 시절을 제외하면 옛 노래를 일상생활에서 거의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낯익은 시조나 가사가 나오면 소리 내어 읽어보지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낯익고 반가운 반복 어구는 흥겹고 재미있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낯설기만 하다. 그 때문인지 저자의 글을 따라 가면서 자주 학생 때 기억을 자꾸 되살리려고 한다. 대부분 부정확하고 희미하지만 시험을 위해 읽었고 외웠던 시가 등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모두 네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우리의 옛 노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주고, 그 다음 꼭지부터는 삶의 애환, 사랑, 충성과 자연을 부르는 노래에 대해 설명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은 역시 첫 꼭지다.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가사, 사설시조 등으로 발전해온 우리 옛 노래에 대한 저자의 잘 정리된 설명은 잘 읽혔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건성으로 흘려들었거나 그 시대 해석에 매여 있던 지식을 현재 학설이나 분석으로 풀어내주었을 때 그 사이 조금 자란 나의 지식과 함께 반가움과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반면에 경기체가에 대한 낯설음은 그 설명 끝 무렵이나 제목 때문에 겨우 넘어설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옛 노래들이 학창시절 한 번 정도는 읽은 것들이다. 물론 낯선 것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소리 내어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엉터리 운율을 타게 된다. 아마 이런 경우는 아주 낯익은 노래이거나 소리 내었을 때 더 잘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중간에 그 흐름이 끊어진다. 그리고 옛글을 읽을 때면 그 낯섦 때문에 정확한 발음과 번역의 어려움을 느낀다. 번역이야 저자가 다시 표기해주니 상관없지만 읽기는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학창시절 고문에 대한 공부를 더 철저히 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언제나 문학과 노래는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대에 오게 되면 권력집단의 필요에 의해 생생했던 노래나 문학이 왜곡되거나 삭제되어진다. 이것은 문화재와 서적 파괴로 이어진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수많은 연구가가 아쉬워하고 제대로 된 번역과 해석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향가나 고려가요 등은 아주 흥미롭고 그 시대를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연구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때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감탄한다. 아마 이런 정보가 쌓이면서 현대 문학이나 역사를 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 성장한다.

 

시조나 가사를 읊조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여유를 가진다. 눈으로 글을 따라가는 것과 달리 그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시대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 단어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영화나 사극 드라마에서 노래로 불리는 것을 가끔 듣지만 그 리듬 등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요즘 가요 듣는 것의 100분의 1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읽으면서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가요나 팝송이나 자기 자신이 지은 노래등을 웅얼거리는 것을 보면 삶 속에 노래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청산리 벽계수야~ 로 이어지는 이 대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옛 노래의 숲을 거닐며 자연스레 몸을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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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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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이야기다. 첫 부분을 읽을 때 약간은 도식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진솔한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눈물샘을 자극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한 노인의 도보 여행인데 그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신의 감정과 사람들의 기대가 뒤섞이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흔한 기적 이야기가 아닌 잊고 싶어 하거나 절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삶이자 현재이자 미래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때 이 소설의 감정은 증폭되고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성실하게 일하다 정년퇴직한 해럴드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그 편지에서 모든 일이 시작한다. 그것은 20년 전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퀴니 헤네시의 편지다. 그녀는 암에 걸려 죽기 직전이다. 이때만 해도 그녀에게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주유소 아가씨가 암에 걸렸던 자기 고모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는 직선으로 8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 실제 잘못된 길로 간 것을 포함하면 1000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이다. 우발적인 일에서 시작한 조그만 발걸음이 자신이 모르게 놀라운 순례로 바뀐 것이다.

 

많은 이야기기 해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 배우자인 모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부부는 20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남과 다름없었다. 부부였다는 흔적만 남은 상태에서 둘은 한 집에 살 뿐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둘 사이에 어떤 큰 틈이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틈새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게 될 때 상실을 겪은 두 남녀가 어떤 보호색을 가지게 되는지 보게 된다. 오해와 비난이 자리한 곳에 묵묵한 견딤이 있고, 후회는 삶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결코 이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둘의 틈새는 좁혀지지 않는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던 해럴드에게 이 도보 여행은 새로운 삶에 대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기대를 몇 번이나 저버린다. 기대보다는 예상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겠지 생각하고 읽다보면 그 예상은 산산조각난다. 60대 노인이 충동적으로 도보 여행을 나섰을 때 제대로 여행 도구가 갖춰지지 않았다. 아마 그에게 현금카드가 없었다면 생각보다 더 빨리 여행이 끝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방향의 여행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여행은 무대포다. 준비는 걷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갖춰진다. 동시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현금카드를 비롯해 지갑과 손목시계 등의 물건을 집으로 보낸다. 개인적으로 첫 감동을 받은 대목이자 섣부른 예상을 하게 된 첫 대목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의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데 이것이 언론을 자극한다. 언론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어느새 그의 곁에서 수많은 순례자 무리가 생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무리에서 권력을 쥐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이를 따르는 무리도 역시 나온다. 상업적 목적에 의해 그의 도보 여행이 왜곡된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걸어간다. 이때 다시 한 번 더 변화가 생긴다. 예상하지 못한 대목이다. 이런 예상 못한 장면들이 나오고 그 속에 해럴드의 진솔한 감정들이 솟아져 나올 때 잔잔한 울림은 점점 커진다. 반면에 기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독한 현실의 높은 벽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두 개다. 하나는 아들 데이비드가 물에 떠내려갈 때 해럴드가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럴드와 모린의 첫만남이다. 상실과 상처로 가득한 신발끈이라면 첫만남은 이것들을 깨끗하게 씻어줄 사랑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게 그거였어, 사랑. 별거 아닌 말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행복했기 때문에 웃겼던 거야.”(394쪽)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삶의 수많은 질곡을 겪고 아픔을 견뎌낸 이 노부부에게 별거 아닌 말이 환희에 찬 행복한 웃음을 전해준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흔하게 하지만 가장 그 원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별거 아닌 말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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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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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3부작 시리즈 중 첫 권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다루어져 신선함이 떨어지는 독일 나치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단순히 나치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결과가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의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었는지, 전후 나치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등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읽으면서 설마하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질 때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의 균형을 맞추면서 잘 엮어내었다. 역사와 미스터리와 현실을 유기적으로 섞어 풀어낸 몇몇 장면들은 현실적으로 잘 다가왔다.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과 세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요한 세 명은 월스트리트 젊은 증권 거래인이자 차 사고로 아이를 죽인 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자기를 파괴하는 제레미, 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CIA 요원 재키, 엄청난 육체능력을 가지고 있고 냉혹한 살인자 역할을 맡는 동시에 제레미를 보호하는 모사드 요원 에이탄이다. 세 시대는 당연히 현재와 나치가 유럽을 지배하던 제2차 대전 당시와 감옥에 갇힌 히틀러를 만나러온 일단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기다. 비중으로 따지면 마지막 시간은 한 번 정도 나오지만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만남이다. 이들이 음모의 배후로 활약하는데 음모론을 즐겨보는 나에게 딱인 소재다.

 

제레미의 과거는 행복하지 않았다. 공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모자를 버리고 떠난 후 엄마와 함께 힘들게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었다고 공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공에 도치되어 음주운전을 하다 아기를 쳐 죽인 이력이 있는 그에게 이 소식을 세상으로 나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새롭게 마주한 세상에서 그는 숨겨져 있던 비밀들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 벌어지는 액션은 긴장감은 살짝 떨어지지만 아주 흥미진진하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에이탄의 능력 때문이다.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상태라 더욱 그렇다.

 

제목인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말한다. 방사선과 약물 등으로 인간을 개조하는 실험이다.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 유대인 블레이베르크란 것이다. 나중에 블레이베르크와 그 배후가 나올 때 놀라게 되는데 이것은 예전에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는 글을 읽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서 이 실험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제레미의 아버지가 발견한 정보 때문에 현재로 이어진다. 이 사실은 쫓고 쫓기는 활극과 암호 풀이 등으로 이어지면서 오락적 재미를 고조시킨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거침없는 살인이다. 첩보 스릴러에서 자주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주인공과 관계있는 인물이 너무 쉽게 죽는다. 반면에 조직의 힘이 불명확한 가운데 제레미 일행이 너무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조직의 힘을 개인들이 최대한 이용하는 요즘 설정들을 생각할 때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보다 더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들을 생각하면 왠지 균형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 설정이 비현실적인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약간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덕분에 다양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다. 뭐 개인 취향에 따라 반응은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 끝까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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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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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04년에 출간된 단편집 <불안사회>에 포함되어 있었다. 2010년에 따로 떼어 내 재출간한 작품이다. 단편집에 실린 것이 재출간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다. 132쪽의 중편소설 정도랄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드라큘라의 현대 버전이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좀더 심오한 뭔가가 있다. 죽음과 영생, 자식에 대한 집착, 두려움, 공포 등이 깔려 있다. 물론 희망은 사라져 있다.

 

공포소설의 공식처럼 시작한다. 사장의 의뢰로 이상한 일을 한다. 블라드라는 사장 친구의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이다. 조건이 상당히 이상하다. 집의 창문을 모두 막아달라고 한다. 빛이 차단된 집과 블라드란 이름에서 이미 그 정체를 짐작하게 된다. 길지 않은 중편이니 이 정체는 바로 밝혀진다. 하지만 공포소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흔한 뱀파이어와의 대결이 아니다. 아니 대결이 되지도 않는다. 단지 나바로의 무력한 저항과 가족에 대한 사랑만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집착이 빛을 발한다. 동시에 공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희망이 사라진다.

 

이 소설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나바로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활동적인 소년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엄마는 바닷물을 다 퍼내어서라도 아들을 찾고 싶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게 판단한다. 이 판단이 이성적으로 옳지만 엄마에게는 가슴 한 켠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 부부에게는 또 딸이 한 명 있다. 바로 여기서 부부는 충돌한다. 물론 여기에는 블라드의 마력이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아들을 잃은 엄마의 불안감과 공포다. 언제 딸 마그달레나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 말이다. 이성은 아주 자주 감성에 의해 무너진다.

 

기존 드라큘라 소설이 가진 설정을 빌려 왔다. 하지만 여기에 변화가 있다. 죽지 못하는 악마인 뱀파이어의 지배자에 대한 것이다. 블라드를 영생으로 이끈 존재다. 이 영생은 삶의 힘을 잃어가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비틀린 모성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모든 힘의 근원으로 어린 소녀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무섭고 파괴적이고 두려운 존재인 블라도도 마찬가지다. 블라드의 과거에 대비되는 존재가 어린 소녀인 것은 순수와 희망을 의미한다. 그 소녀가 욕망에 사로잡히면 희망은 조용히 사라진다. 이 소설은 바로 욕망과 탐욕에 의해 희망이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표면적으로 안정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부부 사이도 틈은 늘 존재한다. 그 틈은 언제나 악이 노리는 공간이다. 이 틈 사이로 파고든 악은 둘만의 관계를 깨트리고 단순히 덮어두었던 것을 표면 위로 불러낸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다. 유혹은 은밀한 그림자처럼 아내를 삼키고 남편은 그 두려운 현실과 미래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냥 뱀파이어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는데 언제나 선택은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대가는 분명하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멈춘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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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설렘 크로아티아
감성현 지음 / 미디어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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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사실 유럽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이곳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나에게 유럽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이어지는 지중해 연안 국가만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뭐 요즘은 다른 국가에 대한 여행서적이나 소설 등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크로아티아는 낯설다. 그 낯설음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어떤 매력이 있어 그곳에 갔을까 하는 의문도 같이. 그러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 나라의 매력이 하나씩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이미 많은 여행객이 다녀갔다.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여행 노선이 그려진다. 비록 그것이 현실화될지는 모르지만 이 자체만으로 큰 즐거움이다.

 

책을 받고 잠깐 펼쳐보았을 때만 하여도 금방 다 읽을 것 같았다. 다른 책보다 진도가 잘 나갔지만 간결한 에세이와 감상과 사진들이 나의 시선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잡아 놓았다. 멋진 풍경은 어떻게 담았을까 호기심을 자극했고, 늘씬한 아가씨 사진은 다른 블로그에서도 남자의 관심사인 듯했다. 아마 실제 간다면 나의 눈이 쉴 새 없이 돌아갈 것 같다. 몰래 그 멋진 아가씨 사진 한두 장 정도는 당연히 찍고.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 색감은 구도에 상관없이 매혹시킨다. 가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멋진 풍경을 만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찍지 못한 사진들을 생각하면 그가 부럽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작한 일정은 벨리카 고리차에서 끝난다. 가장 가고 싶어했다는 모토분은 미야자키 하야오 때문에 나 자신도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의 여행 중 가장 중요한 목적지였던 곳임에도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더 적다. 모두 열여덟 도시를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진 탓인지 모토분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실제 보는 것과 사진의 차이는 너무 큰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글 때문에 나의 기대가 더 높아진 탓일까? 그래도 이 책엔 멋진 도시들이 가득하다. 크로아티아가 어딘지조차 모르고 있던 나에게 책 제목처럼 낯선 설렘을 전해주었다.

 

언제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까운 일본부터 동남아 여러 나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혼자 떠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긴 시간을 여행에 할애할 수 없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여행글을 볼 때면 설렘과 열기에 휩싸인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 나의 짐은 정말 가벼웠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면서 여행은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포기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전 여행이 나의 욕심일 수도 있다. 나만의 여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설렘이 여행에 대한 방식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곳곳에 그가 풀어낸 사랑 이야기는 감성을 자극한다. 공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몇 쪽 되지 않는 산문은 그의 여행 경험과 철학이 가장 잘 우러난다. 덕분에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생각의 여백이 에세이나 사진보다 더 작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도중에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보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할 때 그 묘한 감정이 가슴 한 곳을 콕 찌른다. 묘한 울림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 한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여행지에 대해 다른 여행객들과 다른 시각과 행동을 보여주는데 두 개의 생각이 문득 생긴다. 하나는 그렇지라는 공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매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같은 여행지를 두 번 가게 되면 처음과 다른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갈 곳이 많지만 돌아가야만 하는 그의 마음이 간결한 글에 드러날 때, 그리고 도착했다고 말할 때 여행의 향기는 본격적으로 가슴으로 파고든다. 낯선 설렘이 조용히 똬리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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