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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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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주인공은 케이, 한국명 한경희다. 처음 1부를 읽을 때만 해도 이 소설의 무대가 뉴욕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케이가 귀국하면서 무대가 바뀐다. 한국, 서울, 그중에서 홍대 근처. 이 장소는 케이가 생활하는 공간이자 꿈꾸는 곳이다. 이 이동을 통해 그녀는 천국에서 연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지옥 같다. 한동안 그녀가 뉴욕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에 파묻혀 생활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선택한 남자도 뉴욕에서 태어난 연상의 백수 재현이다. 좋은 부모를 만난 그의 생활은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과 너무나도 다르다. 천국을 꿈꾸는 케이에게 그가 쿨하고 멋지게 보인 것은 당연하다.

 

천국을 그리워하는 케이에게 한국은 너무나도 볼품없고 지루한 곳이다. 베이글은 맛없고 우디 앨런의 영화도 없다. 그녀의 환상은 이미 뉴욕에 맞춰져 있다. 모든 생활의 기준이 바로 뉴욕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녀가 잠실 친구를 만났을 때 보여준 행동과 그녀 집안과 과거는 이것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사회 경제 양극화의 심화 과정에서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진 그녀 집안의 상황이 그녀를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만이 단순한 이유는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녀를 더 압박하고 있다. 잠실 친구가 보여준 행동은 가진 자의 전형적인 여유다. 여기에 대응하는 그녀의 행동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다가온다. 단순히 비겁하다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황, 좌절, 상실, 불안, 공포, 허세, 절망, 무력감 등의 감정과 행동들은 이 소설 읽는 내내 드러난다. 허영에 찌든 재현과의 관계를 보면 그녀의 삶 또한 허영으로 가득하다. 이것을 벗어난 후 선택한 또 다른 사랑은 현실의 무거움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진다. 대학생과 공돌이란 두 신분의 벽은 삶이 진행될수록 더 높아지고 두터워진다. 그가 한 달 야근해야 버는 돈을 케이가 과외로 벌고, 노는 곳이 홍대 등을 바뀌면서 이 괴리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순수한 감정은 힘없이 무너지고, 관계는 깨진다. 이것은 케이와 지은의 대화 속에서 이미 그 파국이 보인다. 지원이 느꼈을 좌절과 불안과 절망은 케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비슷하다.

 

곳곳에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허영과 허세가 드러난다. 가식적인 그들의 행동은 교묘한 말로 가려져 있다. 멋진 말과 비평으로 사람을 뒤흔들고 깨우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밝혀지는 실체는 한 명의 비루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풀어낸 수많은 이야기가 한때 우리 문학을 지배했던 후일담의 변주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아주 낯익다. 이런 무용담은 또 재미있다. 케이가 이 이야기에 혹해서 광주에 다시 찾아온 것은 그녀 주변에 이런 정도의 사람조차 없다는 의미다. 물론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가 만든 논평의 거대한 틀이 산산조각나지만.

 

언제나 삶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것은 모든 것을 인정할 때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거듭 생각하고 무력감이 더 깊어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찰나의 깨우침 같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스하게 멈춰 선 풍경이 그녀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산산조각낸다. 이때까지 천국을 그리워하며 멈춰 있던 그녀의 발걸이 앞으로 나간다. 천국이 있을지, 지옥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가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앞에서 그녀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들이 바로 이것을 위해 존재한다. 너무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싸울 수 있다. 아주 힘들고 어렵고 지루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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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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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작품이다. 출간 연도를 먼저 쓴 것은 이 소설이 지닌 가치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요즘은 쉽게 야설과 포르노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 속 표현이 그렇게 야하고 외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1973년이라면 어떨까? 그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아니 최근까지도 한국 문학계에서 이런 표현을 적나라하게 사용하는 작가는 몇 명 없었다. 그들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거기에 비해 이 작품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와 판매고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개인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사도라 윙.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유대인이다. 첫 결혼이 실패한 후 정신과의사와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빈의 정신과학회에 참석한다. 그 시작은 빈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느끼는 공포와 정신과의사에 대한 기억들이다. 처음엔 그냥 평범한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환상, 즉 ‘지퍼 터지는 섹스’ 이야기가 나오면서 노골적인 단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포르노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이런 순간은 가볍게 지나간다. 단순히 포르노였다면 좀더 노골적이고 외설적이면서 끈적였을 텐데 간결하면서도 농축적인 문장이 쉽지 않은 내용과 결합해서 집중력을 요구한다.

 

구성은 이사도라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현재에서 새로운 남자 에이드리언과 불륜이 벌어진다면 과거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표현된다. 이 과정 속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론과 학설과 주의ㆍ주장은 왜 이 소설에 수많은 거장들이 호평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 알려준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학설과 이론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론 등이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새로운 인물상을 제대로 구현해내었을 때 가능하다. 이사도라의 행동과 심리 묘사는 노골적이면서 실질적이고 솔직하다. 이 때문에 읽을수록 그녀의 다음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다. 바로 이 부분들이 모여 이사도라 윙을 만든다.

 

정신분석학에서 시작한 듯한 이야기는 여성의 환상으로 넘어가고 어느덧 페미니즘의 흔적이 드러난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성 해방을 온몸으로 실천하지만 그 속에서 추구하는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사랑과 욕망이 뒤섞여 흘러가는데 결국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홀로 설 수 있는 자신.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의존적인 성향을 더 많이 보여준다. 글쓰기 능력은 스스로 폄하하고, 두 번째 남편 베넷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한다.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아실현이나 성장은 여자에게 너무 힘든 일인지 모른다. 환경이 계속 억압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음탕한 것 같은 그녀의 행동도 남자들의 것으로 바꾸면 플레이보이란 단어로 윤색되어지는 현실이 떠오른다.

 

노골적이고 외설(?)적인 묘사와 설명은 어느 순간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표현들이 숨겨진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내준다. 그녀의 환상이 단순히 환상이었음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는 상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가끔 이런 차이를 알지 못한 남자들의 폭력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여줄 때 우리의 바닥은 쉽게 드러난다. 그리고 에이드리언과 베넷을 두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녀가 왜 둘을 함께 가질 수 없는가 물을 때 현재 사회제도가 지닌 불합리함과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또 곳곳에 나오는 철학과 정치에 대한 단상들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고 반가웠다. 놀란 것은 노골적이고 외설적인 표현들 때문이고 반가웠던 것은 깊이 있는 문장과 사유들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인생에는 각본이 없다’ 등이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표현들인데 이 소설에서 처음 다루어진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눈길을 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려움을 잃어버린 그녀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때까지 지나온 삶의 흔적을 생각할 때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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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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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자키 탐정이 돌아왔다. 1년 간의 외유 끝에 빗속을 아홉 시간 이상 운전해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친절한 탐정이 아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탐정 사무소에 누군가 있다. 노숙자 마스다다. 그런데 평범한 노숙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밖보다 안락한 실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사와자키가 돌아오면서 휴식처 한 곳이 사라졌다. 동시에 매일 사와자키에게 전화해야 한다. 노숙자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뢰인이 남긴 전화번호로 연락을 한다.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사건이 시작된다.

 

의뢰인 우오즈미가 찾아왔을 때 만나지 못했다. 명함은 마스다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그가 남겨진 명함을 가지고 의뢰인을 찾아간다. 쉽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탐정이 아니다. 우오즈미를 만나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연락처와 탐문을 통해 하나씩 단서를 연결해서 그를 만난다. 그가 바란 것은 11년 전 죽은 누나 유키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미 경찰이 자살로 판명했고, 목격자까지 있는 사건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분명한 사건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작가는 이 과정을 건조하면서도 견고한 문장으로 하나씩 풀어낸다. 당연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벌어진 것은 11년 전 고시엔 고등학교 야구 8강전이다. 우오즈미 아키라는 부상당한 에이스대신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탁월한 기량으로 팀을 8강까지 올려놓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실력이자 성과다. 이런 그에게 누나를 통한 승부조작 요청이 들어온다. 이 사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그의 가방에 든 돈 5백만 엔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 요청을 거부했지만 경기는 대패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누나가 자살한다. 자신이 거부한 승부조작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누나도 6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사건이 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11년 동안 그의 삶은 누나의 죽음이 주는 ‘왜’에 짓눌려 있었다.

 

‘왜’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한 그가 사와자키를 만났을 때 흔쾌히 조사를 의뢰하지 않는다. 그를 찾는 동안 든 비용을 정산하고 떠난다. 얼마 후 노숙자 마스다가 나타나 아키라가 다쳤다는 말을 전한다. 심한 부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한다. 이때 아키라는 왜에 대한 답을 찾길 원한다. 이제 본격적인 사건 조사가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자살을 목격한 증인 3명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난 증인들의 증언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아키라에 대한 공격과 부정확한 증언이 어떤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복잡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 속으로 독자가 끌려들어간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되고, 사실이 은폐되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쉽게 풀릴 수 있는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한 소년이 11년 동안 삶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 채 살았다. 하지만 이 꼬인 이야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알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진실에 다가가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고요했던 과거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파편처럼 깨어져 있던 사건과 사고가 하나씩 이어질 때 사와자키의 집중력과 추리력이 힘을 발휘한다. 동시에 그의 매력도 극대화된다. 살인청부업자들의 위협에 살짝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소설은 90년대 일본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신문 기사를 통해 시대상을 드러내고, 등장인물들의 직업과 활동을 통해 그 사회를 조금씩 알게 만든다. 사와자키가 전문가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때 그 깊이와 폭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장 가뱅 불법 비디오에 대한 에피소드는 일본의 저작권 풍경을 알려주고 그 당시 나의 행동이 떠오른다. 이런 간결한 에피소드와 묘사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잔잔하고 냉철하게 묘사된 감정의 흐름들은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진실을 마주할 때 그 반전과 숨겨진 진실에 더 깊게 빠져들게 한다.

 

전작부터 이어져 오는 와타나베에 대한 야쿠자와 형사의 집요한 추적과 협박이 이어진다. 어쩌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일한 공통점일지 모른다. 물론 이전 사건에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는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야쿠자와 형사가 그를 괴롭히고 압박을 가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것도 탐정 사와자키 시즌 1의 완결판이란 소개처럼 끝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과 전개다. 몇 번이고 등장한 인물이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님을 알려줄 때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이야기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 또한 소설 속 사건과 함께 읽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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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들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김성훈 옮김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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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수사반 Q 두 번째 이야기다. 전작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에서 칼과 아사드 콤비가 멋지게 사건을 해결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한 명 더 특별 수사반 Q에 합류한다. 로즈다.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체력과 다른 문제로 될 수 없었던 그녀가 경찰 비서가 된 것이다. 그런 그녀를 이 특별한 수사반에 넣은 것은 어쩌면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반장 입장에서 당연할 일일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베테랑들은 경찰을 떠나는 현실에서. 칼은 당연히 처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수사반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어떻게 내좇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매력을 뽐내며 조용히 한 역할을 차지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하게 만든다.

 

전작에서 여성 정치인이 엄청난 인내력과 생명력을 뽐내며 나를 감탄시켰다면 이번에는 키미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도망자였다가 반격을 가하는 그녀의 활약은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도살자들이 펼쳐둔 조사의 그물을 벗어나 움직이면서 조금의 멈춤도 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그녀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점점 드러나는 과거는 연민을 자아내기보다 오히려 혐오와 공포를 불러온다. 그녀가 도살자들 무리와 함께 벌린 사건들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에 죽음에 이른 인물이 몇 명이고, 삶이 파괴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금전적 보상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그때의 공포에 짓눌려 있지만.

 

키미가 하나의 흐름을 이루면서 도망자이자 공격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디틀레우 일행은 현재까지도 폭력과 살인의 쾌감에 사로잡혀 생활한다. 덴마크 상류사회의 일원이자 엄청난 부를 가진 이들의 과거와 현재는 결코 깨끗하지도 존경스럽지도 않다. 자신들을 짓눌러 오는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폭력과 살인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이 거부될 때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은 그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풀려왔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가끔 우리 언론을 통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재벌가 자식들의 행동이 떠오른다. 물론 소설 속 설정은 이보다 훨씬 강하다. 어떻게 저렇게 꾸준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현실에서는 더 할 수도 있지만.

 

모든 수사의 시작은 칼의 책상 위에 올라온 하나의 파일이다. 1987년에 있었던 열일곱, 열여덟 살 소녀 소년 오누이 구타 살인 사건이다. 이미 범인이 자수한 사건이다. 종결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 파일이 그를 흔든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수사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 그리고 결국 그 파일이 어떻게 자신의 사무실에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사건은 단순한 의혹에서 의심을 거쳐 확증된 것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죽음과 폭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빗나간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작에서 보여준 두 콤비의 활약은 변함없다. 이번에도 아사드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여기에 로즈의 활약이 덧붙여지면서 이 수사반의 힘이 더 강해지고 빨라진다. 제대로 된 팀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또 키미의 과거와 복수가 겹쳐지면서 긴장감과 긴박감이 더해진다. 전편의 여성 의원과 키미를 보면 이 시리즈는 여성이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들이 보여준 인내력과 용기와 대담함이 너무나도 돋보이기 때문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단순한 피해자였던 그녀가 복수를 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또한 진실이 드러날 때 통쾌함보다 답답함과 혐오감이 더 크게 자리한다. 그것은 바로 키미의 과거 때문이다. 그녀가 피해자였지만 한때는 잔혹한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지막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이 시리즈 이제 겨우 2편이지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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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니 보얀주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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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만나기 힘든 이스라엘 소녀와 군대 이야기다.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낯설고 힘들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왔거나 군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었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낯선 것은 역시 군 생활이다. 한국 군대에서 가장 힘든 것이 내무반 생활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녀들이 겪은 군 생활은 여유롭다. 물론 대치 상황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강한 긴장감이 흐른다. 누가 더 힘든가보다 고민의 방향이 다르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세 소녀가 돌아가면서 등장한다. 그녀들이 겪고 있는 군 생활과 현실과 미래의 고민이 같이 다루어진다. 야엘, 아비샥, 레아 등이다. 각각 다른 부대에 배치되고 다른 경험을 한다. 이 경험들이 과거와 맞물리고 역사와 사건과 엮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낯선 흐름은 문화 차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놀랍다. 10대 소녀가 미국 드라마나 영화 등에 열광하는 것은 낯익은 풍경이지만 성적 자유도와 군 생활의 여유는 놀라울 정도다. 국가가 안고 있는 대치 상태와 긴장감이 그녀들에게는 아주 약하게 나온다. 뭐 이런 것은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볼 때도 늘 있는 것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잘 모르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제껏 읽은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소설은 가리키는 방향이 달랐다. 이스라엘의 거장은 자신들의 삶에 집중했다면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삶과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스라엘을 같이 다룬다. 덕분에 팔레스타인이 주인공이면 이스라엘은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언론에 비쳐지는 현실의 풍경도 역시 약자인 팔레스타인에게 힘을 실어준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있을 경우는 다르다. 이 테러에 대한 것도 역사와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까지 들어가면 너무 심한 논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이 소설 속 한 장면도 사실과 관계없이 언론에 의해 왜곡된 사건이 나온다. 피상적이었던 두 나라의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다.

 

세 소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다루는 군 생활은 한국보다 편안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군대다. 2년이란 시간은 이스라엘 남녀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 군 복무를 마친 후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전 세계를 여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소설에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군대 월급을 모아서 다녀온다는 사실에 부러웠다. 물론 그들도 그 후 취직이나 대입 등의 고민을 안고 있다. 단지 우리보다 조금 약할 뿐이다. 그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예루살렘의 높은 집값과 임대료 문제는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명하복과 기수별로 나누어지는 선임과 후임의 관계가 한국 군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이들은 조금 느슨해 보인다. 이 느슨함은 보기에 따라서 군의 기강과 연결될 것 같지만 이스라엘 군의 강함을 생각하면 표현의 차이로 다가온다. 물론 그녀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긴장도가 떨어지는 곳일 수도 있다. 수많은 군인들이 함께 근무하는 우리의 부대와 달리 이들이 있는 곳은 몇 명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같은 일이 벌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더 심한 경우도 있겠지만. 팔레스타인과 대치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 에피소드는 우리와 너무 다르다. 레아가 매뉴얼을 따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단계를 높여가는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흔히 팔레스타인 배경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아비샥 오빠 댄이 군대에 갔다온 후 자살한 첫 장면은 이후 이 소녀들이 군에서 겪게 되는 부조리한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댄을 사랑했던 야엘이나 환상을 가지고 국경에서 근무하던 레아나 모두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서 폭력과 죽음을 마주한다. 옆에서 근무했던 동료가 전쟁에서 죽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부모가 자식들이 군대갈 때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현실이 떠오른다. 지금 인기 얻고 있는 <진짜 사나이>란 예능이 군을 살짝 미화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내면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공감을 불러오는 장면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우리의 군인들과 닮아 있다. 혹은 파괴되거나.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면서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입대를 두려워하는 한 소녀의 목소리는 여운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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