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 헌터스 2 : 재의 도시
카산드라 클레어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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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보다 더 쉽게 읽힌다. 아마 전편에 자세하게 설명한 설정들이 힘을 발휘한 모양이다. 그리고 번역자도 바뀌었다. 이 차이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동안 언더월드에 사건이 발생한다. 각 종족의 아이들이 하나씩 죽는다. 피가 모두 사라진다.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은 당연히 흡혈귀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발렌타인이 나와 아들 제이스가 만나고 사라진 천사의 검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려줄 때 명확해진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몇 가지 설정도 역시.

 

전편에 이어서 펼쳐지는 대결 구도는 발렌타인과 그의 아이들이다. 강한 악의 축 발렌타인을 뒤좇고 세상을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것도 역시 그의 아이들이다. 즉 클라리와 제이스 둘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들이 발렌타인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려고 할 때 어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고착된 사고에 빠져 핵심을 놓친다. 이번에는 과거 악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신문관을 등장시킨다. 그녀는 발렌타인을 증오한다. 이 증오가 그의 아들 제이스에게 이어진다. 그 다음은 괴롭힘과 억압이다. 십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이런 장치는 도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은밀한 탈출이 또 다른 모험과 사건을 만든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인물 관계도가 더 복잡해진다. 새로운 비밀도 조금씩 더 나온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발렌타인이 자기 아이들에게 심어둔 능력들이다. 이번 이야기에 이 능력들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능력의 비밀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설정으로 변한다. 시리즈를 만들 때 이런 설정의 연속은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 비밀이 하나씩 벗겨질 때 감탄하고 또 다른 설정에 빠져든다. 최고의 장면은 역시 이번 권 제일 마지막 문장일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려준다.

 

판타지 소설의 공식을 따라가면서 남매 사이의 은밀하고 끈적하게 펼쳐지는 로맨스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사이먼과의 삼각관계는 또 다른 재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숨겨진 감정들이 풀려나오고, 감정이 흔들리고, 명확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변한다. 이런 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위험이 다가온다. 이 위험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게 한다. 특히 두 남매가 순간의 열정에 사로잡힌 그 순간 이 둘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시리즈가 후반에 가면 이 둘 사이의 감정이 제대로 정리될 텐데 아직은 그 은밀함과 아슬아슬함이 주는 재미가 상당하다. 물론 너무 길게 끌어 어느 순간엔 지루한 느낌도 있다.

 

십대가 주인공인 판타지를 읽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어른들은 뭘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제대로 된 어른 역할을 하는 인물은 루크 하나 밖에 없다. 늑대인간인 그만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모든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물론 여기에 조력자가 있다. 대마법사 매그너스다. 개인적으로 등장하는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매그너스다. 그가 있음으로 인해 어린 섀도우 헌터스들이 발렌타인과 싸울 수 있다. 아직 시리즈의 2권만 읽은 상태라 앞으로 어떤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음 권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클라리의 엄마 조슬린이 깨어난다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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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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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성경의 천지창조 7일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이 시작하는 앞부분에 창세기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그럼 이 소설도 그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리고 맞다. 창세기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주인공 양페이가 아버지 양진바오를 저승에서 발견하는데 걸린 시간과 관계가 있다. 정밀하게 들어가면 더 많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것까지 파악하기에는 아직 나의 노력이 부족하다. 다만 양페이의 삶과 그가 만난 사람들의 삶이 가슴 한 곳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양페이. 그의 탄생과 죽음은 일반적이지 않다.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화장실에서 낳았는데 철로에 떨어졌다. 그를 키운 것은 철로에서 일하던 아버지다.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그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사고로 양페이가 죽은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낼 때 부자 사이의 강한 사랑과 연대가 느껴진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쩌면 이 7일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한 시간이자 그 사이에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시간이다. 이 이야기들은 현재 중국이 앓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파편들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강한 현실성과 우리의 기준을 넘어선 현실에 놀라게 된다.

 

기본적으로 깔아놓고 진행하는 설정이 있다. 그것은 살아있을 당시의 지위가 저승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화장터인 빈의관의 풍경을 통해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죽은 자에게 무덤이 없으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없다. 요즘 한국도 무덤의 가격이 점점 올라가면서 화장을 한 후 납골당에 그냥 모셔둘 뿐인데 중국도 역시 엄청난 가격에 무덤이 거래된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사연들 중 하나는 안타까움과 함께 강한 연민을 불러온다. 죽은 자의 안식도 돈이 없으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이 더 강하게 머릿속에 와 닿는다. 요즘 중국 소설을 읽으면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의 최근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심한 것도 있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죽은 후 화장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세다. 한국이라면 죽었으니 모두가 똑같다는 평등의식이 드러날 텐데 여기에선 그대로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아마 현실에 대한 풍자이자 은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가 가져야 하는 평등이 깨어진 현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계급이 죽은 후에도 적용될 사회라면 현실은 얼마나 강할 것인가. 또 급속한 산업화와 개발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풍경은 우리와 너무 닮아있다. 큰 사고가 생겼을 때 문제를 덮고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면 요즘 우리의 뉴스가 떠오른다.

 

부조리한 사회의 풍경은 기본이다. 그 사이 사이에 현실의 높은 벽 앞에 무너진 사람들이 나온다.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오해가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도 자신이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바로 이런 현실을 작가는 이승과 저승이란 두 경계를 통해 보여준다. 정말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에 슈메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축제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과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페이가 아버지를 만난 후 돌아가는 곳도 바로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재미있고 계속 여운이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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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디비전 1 샘터 외국소설선 10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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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의 새로운 시리즈다. 새로운 시리즈라고 했지만 주인공은 바뀌었다. 존 페리의 입대 동기 해리 윌슨 중위가 주인공이다. 해리가 주인공이라고 했지만 그가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구성은 하나의 큰 줄기를 따르는 연작소설에 더 가깝다. 아직 2권을 읽은 상태가 아니라 전체적인 윤곽을 제대로 잡을 수 없지만 2권의 목차에서 1권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단편처럼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 구성이지만 그 밑에 흐르는 개척연맹과 콘클라베를 둘러싼 음모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마 2권에서 그 핵심이 드러날 텐데 기대된다.

 

모두 일곱 에피소드다. 첫 에피소드 <B팀>은 이 소설의 핵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분량도 가장 많다. 이 에피소드에서 벌어진 사건이 이후 다른 에피소드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물론 어떤 에피소드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각 에피소드를 읽을 때 어떤 단서가 있는지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대부분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에피소드가 주는 재미에 빨려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어떤 연관성을 가진 것인지 발견하지 못한 두 번째 에피소드 <널판을 걷다>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개척 행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작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이것을 꼬아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SF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인간과 권력과 욕망 등이다. 기술적 과학적 외피를 벗겨내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극이나 그 어떤 사실적 소설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과거의 인종주의자가 우주로 나가서는 또 다른 인종주의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어려운 과학을 힘들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설명하는 기술은 장르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리가 콘클라베 무역선을 이끌고 지구에 온 이후 개척연맹의 거짓이 드러났다. 신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개척연맹의 일부가 분명히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 첫 이야기가 <B팀>에서 시작한다. B팀도 A팀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뭐 나중에는 그들의 활약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면서 특별팀으로 불려야하겠지만 말이다. 아직 퍼즐 맞추기의 초반전이다. 그래서인지 에피소드 각각이 독립적으로 보인다. 해리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아 살짝 불만이 있지만 후반부에 가면 각 에피소드가 하나로 이어질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복잡한 듯한 구성이지만 재미있게 흘러간다. 과학소설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경험이 있다면 더 재미있겠지만. 이전에 우주에서 펼쳐지는 전쟁을 더 선호했는데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조금 다른 재미를 알게 되었다. 단편 SF걸작선들을 읽을 때 느낀 재미와 유사하다고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해리와 슈미트, 슈미트와 아붐웨, 해리와 콜로마 등의 관계는 갈등과 협력 관계를 아주 잘 만들어내는데 읽으면서 어떤 방향으로 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제를 해결한 후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시리즈물의 특징이다. 그 덕분에 독자는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그리고 언제쯤 소르발이나 가우와 해리 윌슨이 만날지도 궁금하다. 이들이 만나면 음모의 핵심에 도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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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의 열두 빛깔 소설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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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가 쓴 첫 단편소설집이다. 최근에 한국 단편소설도 잘 읽지 않는 내가 이 단편집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녀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에세이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유명하고 호평이 이어졌다. 이런 간단한 정보만 가지고 읽은 이 단편집은 역시 단숨에 읽히지 않았다. 낯선 문화와 간단한 에피소드들이 긴 호흡에 익숙해진 나에게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짧은 순간의 재미에 빠져 감탄한 작품도 있다. 어쩌면 한 편을 읽은 후 잠시 그 단편을 돌아봐야 했는지 모른다. 좀더 꼼꼼하게 읽어야 했던 작품도 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단숨에 단편을 모두 읽은 다음이면 늘 생긴다.

 

열두 편이다. 표제작인 <순례자들>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들의 농담과 질주가 그 어떤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크의 말> 또한 서로 다른 감정과 생활 습관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나만의 지점을 찾지 못했다. 그 감정의 고저가 만들어내는 심리 묘사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동쪽으로 가는 엘리스>는 두 남매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남자 형제들이 살아온 삶을 보면서 황당한 느낌이 들면서 그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그녀 앞에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새 사격>은 허세 가득한 한 남자의 행동으로 가득하다. 그 허세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

 

<톨 폭스>는 길을 마주한 두 술집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부부가 따로 운영하던 술집 중 남편 것이 문을 닫는다. 그 집을 다른 사람이 인수했는데 그곳을 방문한 아내가 그곳에서 본 것을 기억과 연결해서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착륙>은 새로운 삶을 꿈꾼 한 여자의 행동이 제목과 겹쳐진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 문장은 그들의 미래를 암시한다. <와서 이 멍청한 녀석들 좀 데려가게>는 부자 친구에 기생해 살고 있던 남녀들의 위험한 파국을 보여준다. 위험한 상황을 만든 것을 증오하는 감정의 증폭은 인간의 심리 중 가장 즉흥적이면서 사실적이다. <데니 브라운이 몰랐던 많은 것들(15세)>은 순수함과 사랑이 느껴진다. 이야기 면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 중 한 편이다.

 

<꽃과 여자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가장 몰입도가 좋았다. 한 노화가의 과거 추억을 풀어내는데 그 순진함과 패티쉬적인 상황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튈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란 단어가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현재와 과거도 의도적인 설정으로 재미있었다. <브롱크스 터미널 청과물 시장에서>가 더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허리 다친 지미의 노조 위원장 도전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다. <‘명성 자자한 자르고 붙여 불붙이기’ 담배 마술>은 가장 재미난 단편 중 한 편이다. 광기와 마술이 뒤섞이고, 재능이 꽃피우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더 없이 참한 아내>는 역설적이다. 수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했지만 그 어떤 감정의 질척임이 없다. 환상으로 펼쳐지는 그녀의 마지막 운행은 어떻게 보면 황당할 수 있지만 아주 기쁨으로 가득하다. 실제 현실에서 이 상황이 펼쳐지면 온갖 사건, 사고가 다 벌어지겠지만.

 

지나간 시간을 간결하게 줄이고 하루나 그 순간을 포착해 풀어낸 단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삶이나 행동이나 심리가 나에게 모두 공감을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상상하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하루키가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작가도 이 단편 한두 편 정도는 단편으로 더 이야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 결과라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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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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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회화란 제목이 들어간 것을 보면 그림 관련 미스터리다. 뒤편을 보면 위작, 도난, 밀매, 그리고 인생역전! 이란 단어가 보인다. 여기에 고흐의 명화 <가셰 박사의 초상>을 둘러싼 사기 게임이란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대충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 짐작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사라진다. 일반적인 미술품 미스터리와 전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실은 가려져 있고 사기와 욕망과 오해 등이 복잡하게 엮여 정신없이 흘러간다.

 

도입부를 볼 때만 해도 어느 경매장 풍경과 다름없다.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원하는 한 외국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낙찰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일본 버블 경제가 절정기를 달리던 1990년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말던 시기다. 당연히 머니 게임에서 그는 패한다. 이 그림은 일본돈 180억 엔에 일본인에게 낙찰된다. 이 낙찰 정보가 흘러나올 때만 해도 이 그림을 훔치는 치밀한 작전이 펼쳐지겠지 하는 예상과 함께 요즘 중국인들이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이 되었다는 소식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뭐 이 둘은 소설 속에서 아무 관계가 없지만.

 

시골 부자집 장남으로 경영 감각이 없는 소스케는 당연하게도 사업에 실패한다. 그의 과거를 보면 전형적인 겉멋 가득한 사업가다. 이런 사람의 결과는 거의 대부분 정해져있다. 집에서 오는 지원이 끊어지면 사채에 손을 벌이고, 다시 집에 애원하는 수순을 밟는다. 어머니가 몰래 생활비 등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달했다. 이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주식 사기로 돈을 벌고 있던 야쿠자 야부키다. 주식 사기에 소스케를 끼어주겠다고 말한다. 필요한 돈은 천만 엔이다. 최소 3배, 많으면 10배 이상 벌 수 있다고 말한다. 딱 봐도 사기다. 그러나 돈이 궁한 그에게 이것은 다시없을 기회다. 어머니에게 어렵게 부탁해 천만 엔을 입금한다. 그 후 당연히 야부키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카네. 긴자 호스테스 출신이다. 거품 경제 시기 아주 잘 나갔다. 업소 탑을 다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도 거품의 끝자락에 빚 때문에 야반도주한다. 10년 간 지방을 돌아다니며 작은 가게를 겨우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그녀가 떼먹은 빚에 이자까지 갚으라는 전화다. 이자가 이자를 쳐서 원금 천만 엔을 넘어 3천만 엔 이상된다. 이때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있던 한 남자가 주식 사기에 대한 정보를 준다. 최소 천만 엔이 필요하다. 그가 5백만 엔을 도와준다. 나머지는 그녀가 가게 담보 대출을 채운다. 역시 이것도 사기다. 채권자에 대한 공포와 욕심이 엮이면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기 당한 두 사람이 만난다. 서로를 의심한다. 이때 아카네 가게로 찾아오곤 했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시로타다. 그는 엄청난 도난극을 제시한다. 그의 계획은 무모하고 대범하고 직선적이다. 이 계획을 보면서 왜 이들을 계획에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단순히 사기 당한 것에 대한 회복이라고 말하기엔 둘은 너무 평범하다. 의문은 의심으로 바뀌고, 그 순간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계획이 품고 있던 원래 설계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복잡하게 엮이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친절한 설명으로 전체 윤곽을 하나씩 이해하게 된다. 아마 이 부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허공에 붕 뜬 상태에서 끝났을 것이다.

 

소스케. 아카네. 시로타. 세 명 중 둘은 장기판의 단순한 말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인물은 따로 있다. 이 거대한 계획을 기획하고 진행한 인물은 다른 사람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인물이 등장하고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가 알려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와중에 거품경제 시기 고액의 미술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아카네의 빚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알려준다. 보통 사람들의 감각과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불가능의 세계에 대한 반전을 노리고 펼쳐지는 이야기가 바로 대회화전이다. 이것은 제목이자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전시회 광고이자 미술품 시장에 대한 풍자다. 진정한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읽고 난 후에는 미술세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동시에 거품경제가 어떤 것인지 조금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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