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와자키 탐정이 돌아왔다. 1년 간의 외유 끝에 빗속을 아홉 시간 이상 운전해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친절한 탐정이 아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탐정 사무소에 누군가 있다. 노숙자 마스다다. 그런데 평범한 노숙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밖보다 안락한 실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사와자키가 돌아오면서 휴식처 한 곳이 사라졌다. 동시에 매일 사와자키에게 전화해야 한다. 노숙자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뢰인이 남긴 전화번호로 연락을 한다.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사건이 시작된다.

 

의뢰인 우오즈미가 찾아왔을 때 만나지 못했다. 명함은 마스다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그가 남겨진 명함을 가지고 의뢰인을 찾아간다. 쉽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탐정이 아니다. 우오즈미를 만나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연락처와 탐문을 통해 하나씩 단서를 연결해서 그를 만난다. 그가 바란 것은 11년 전 죽은 누나 유키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미 경찰이 자살로 판명했고, 목격자까지 있는 사건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분명한 사건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작가는 이 과정을 건조하면서도 견고한 문장으로 하나씩 풀어낸다. 당연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벌어진 것은 11년 전 고시엔 고등학교 야구 8강전이다. 우오즈미 아키라는 부상당한 에이스대신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탁월한 기량으로 팀을 8강까지 올려놓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실력이자 성과다. 이런 그에게 누나를 통한 승부조작 요청이 들어온다. 이 사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그의 가방에 든 돈 5백만 엔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 요청을 거부했지만 경기는 대패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누나가 자살한다. 자신이 거부한 승부조작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누나도 6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사건이 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11년 동안 그의 삶은 누나의 죽음이 주는 ‘왜’에 짓눌려 있었다.

 

‘왜’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한 그가 사와자키를 만났을 때 흔쾌히 조사를 의뢰하지 않는다. 그를 찾는 동안 든 비용을 정산하고 떠난다. 얼마 후 노숙자 마스다가 나타나 아키라가 다쳤다는 말을 전한다. 심한 부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한다. 이때 아키라는 왜에 대한 답을 찾길 원한다. 이제 본격적인 사건 조사가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자살을 목격한 증인 3명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난 증인들의 증언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아키라에 대한 공격과 부정확한 증언이 어떤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복잡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 속으로 독자가 끌려들어간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되고, 사실이 은폐되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쉽게 풀릴 수 있는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한 소년이 11년 동안 삶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 채 살았다. 하지만 이 꼬인 이야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알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진실에 다가가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고요했던 과거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파편처럼 깨어져 있던 사건과 사고가 하나씩 이어질 때 사와자키의 집중력과 추리력이 힘을 발휘한다. 동시에 그의 매력도 극대화된다. 살인청부업자들의 위협에 살짝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소설은 90년대 일본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신문 기사를 통해 시대상을 드러내고, 등장인물들의 직업과 활동을 통해 그 사회를 조금씩 알게 만든다. 사와자키가 전문가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때 그 깊이와 폭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장 가뱅 불법 비디오에 대한 에피소드는 일본의 저작권 풍경을 알려주고 그 당시 나의 행동이 떠오른다. 이런 간결한 에피소드와 묘사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잔잔하고 냉철하게 묘사된 감정의 흐름들은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진실을 마주할 때 그 반전과 숨겨진 진실에 더 깊게 빠져들게 한다.

 

전작부터 이어져 오는 와타나베에 대한 야쿠자와 형사의 집요한 추적과 협박이 이어진다. 어쩌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일한 공통점일지 모른다. 물론 이전 사건에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는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야쿠자와 형사가 그를 괴롭히고 압박을 가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것도 탐정 사와자키 시즌 1의 완결판이란 소개처럼 끝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과 전개다. 몇 번이고 등장한 인물이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님을 알려줄 때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이야기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 또한 소설 속 사건과 함께 읽는 재미를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