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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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 클로델은 아직 나에게는 어려운 작가다. 지금껏 읽은 소설들도 나의 이성이나 가슴에 완전히 와 닿지 않았다. 두 번째 소설을 읽을 때 살짝 그 문을 열어주었지만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낯선 지명과 잘 모르는 단어와 수많은 주석은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장과 어우러져 그 속으로 들어가기 더 힘들게 만들었다. 커피숍에 앉아 묵묵히 글을 읽기 한참만에 그 문이 살짝 열렸다. 단순히 피상적으로 느꼈던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추억으로 기억으로 향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머무르는 향기처럼 곧 사라졌다.

 

목차를 보면서 한글 제목만 열심히 읽다가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에세이들이 모두 알파벳 순서대로 쓴 것이란 사실이다. 아카시아와 여행까지. 낯선 외국어와 조급한 성격이 이것을 놓쳤다. 역자 후기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놓쳤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라고?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또 작가는 자신이 자란 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고 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 변한 곳이 많겠지만 오히려 그 변화가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 흔적과 기록이 바로 이 에세이일 것이다.

 

이 예순세 편의 에세이는 모두 향기와 추억을 다룬다. 시간은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같은 동네를 무대로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인지 기억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그들의 소식은 어느 순간 반갑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글인데 조금은 신기하다. 최근의 기억보다 오래전 기억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의 때가 탄 탓일까? 아니면 흥미와 신비로움을 잃어버린 탓일까? 하지만 그 기억을 하나씩 풀어내가는 것은 현재의 그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방점 하나가 그 감정을, 향기를 살포시 품어낸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다섯 가지 감각은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글 속에서도 그렇다. 할머니의 스테이크 맛은 후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여자의 성기를 만지는 촉감은 다시 후각으로 넘어간다. 낡은 오토바이는 소리와 냄새로 이어진다. 아픈 자신의 몸에 어머니가 발라주던 연고의 촉감과 냄새는 나도 모르게 아련한 기억 속 향수를 불러온다. 다른 환경과 시대를 살았지만 몇 가지는 보편적인 것이라 그 느낌과 향기가 ‘나도 그랬지’란 말을 자연스럽게 토해내게 한다. 대표적으로 새 시트와 곰팡이와 묑스테르 치즈 등이다. 물론 상황이나 사연은 전혀 다르다.

 

마늘 이야기에서 할머니가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난 내가 부르단다”라고 할 때는 울컥했다. 너무 자주 듣던 말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할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버지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나라도 시간도 사람마저 달라도 이런 표현과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 문장이 결코 쉽지 않은 이 작가의 에세이를 계속 읽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대충 읽거나 띄엄띄엄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 읽은 지금 다시 펼치면 그때 놓쳤던 이야기나 아직도 남아 있는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작가는 이 에세이에서 보들레르를 자주 인용한다. 아직 나에게는 낯선 그 시인, 시집을 다 읽었지만 한 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 시인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그의 시를 느낄 수 있었다. 향기와 추억이 엮이면서 그 느낌이 살짝 다가왔다. 다시 보들레르를 시집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여행을 갈 때 그처럼 기형도의 시집을 들고 다닐지 모르겠다. 김수영이 더 좋으려나? 아니면 쌓아둔 시집 중 한 권을 들고 가 몇 편이라도 읽는다면 어떨까? 맞다. 한때 시집을 들고 가서 그냥 왔다. 신동엽의 <금강>이었지. 순간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고 간다. 가끔씩 펼쳐 다시 아무 곳이나 읽어도 좋을 듯한 에세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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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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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다. 아니 옛날 중국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름이 먼저 생각난다. 양씨 성을 가진 여자를 그냥 놀리듯이 혹은 장난스럽게 부를 때 양양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게 이때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 에세이를 읽고 한 명의 양양을 더 기억하게 되었다. 무명가수에 무명작가인 그녀. 쓸쓸할 듯한 제목과 분위기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흔한 보통의 에세이처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이 예상은 빽빽한 글자들과 내면을 고백하는 문장들로 더디게 읽혔다. 그녀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날 때 조금은 불편했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적어나간다는 것을 어떤 것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이다. 특별한 것도 없고, 철학적인 깊이도 많이 없다. 살아오면서 마주한 수많은 일들을 감정을 담아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적었을 뿐이다. 화려한 기교도, 억지로 재미를 과장한 사건도 없다. 멋진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나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도 거의 없다. 이 없는 것 투성이 속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자신이다. 양양의 생각, 생활, 친구, 경험, 아픔, 사랑, 그리움, 향수, 만남, 헤어짐, 웃음, 달콤함, 추억, 술 한 잔 등등. 제목처럼 이 글들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그래서 더 더디게 읽혔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중 일부를 같이 읽었다. 조금 더 감성과 이성을 자극하는 것은 이석원이다. 하지만 이 둘의 감성이 어딘가에서 겹쳐진다. 어떤 때는 누구의 글인지 살짝 구분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심리 상태나 행동을 보면 분명 이석원이 더 불안하고 불안정한데 왜 이 둘은 같이 쓸쓸하고 외롭게 다가올까? 그들의 감성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울함이 내 앞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양양은 많이 나은 편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부분만 본다면. 그리고 양양이 더 많이 타인과 교류하고 있다. 커피숍의 낯선 남자와의 대화와 술자리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기억과 추억으로 삶을 되짚어 가는 글은 바로 기억과 추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섯 꼭지로 나눈 것이 마지막에 ‘노래가 된 글’의 제목들이다. 그냥 무심코 읽었던 제목들이 지금 이 순간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쿤밍 기차여행 서른일곱 시간도 아니고 ‘요리생활’과 내 친구 배순호‘ 이야기다. 자취를 그렇게 오래했지만 한 번도 나물을 무쳐 먹을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그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생활이 아쉬웠고 그녀의 도전(?)이 부러웠다. 오빠 배순호의 다양한 불운과 사연은 가슴 한 곳을 아~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이것을 다 넘어갔으니 다행이다.

 

‘두점박이 사슴벌레’ 포장마차는 가보고 싶다. 허름한 옛날 목욕탕 풍경은 아련하다. 도다리쑥국은 나도 어릴 때 엄마가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추억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녀가 경험한 몇 번의 사랑은 노래가 된다. 국밥 한 그릇의 추억 속 그 아이는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게 한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다가 내기 때문에 건 전화로 그 말을 했을 때 돌아온 그 한 마디 “그래, 나도 사랑해”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삶은 늘 지나간 후에 깨닫게 되고 그리워하는 것들이 많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 중 하나다. 이석원의 글과 다른 점이 이제는 더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의 단어가 명사가 아닌 동사인 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일까? 나에게 해당되는 단어들이 수없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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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커피에 빠지다 - 커피향 가득한 길 위의 낭만
류동규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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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가끔 집에서 커피를 내려 먹기도 한다. 하지만 배운 적도 없고,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다보니 커피 맛이 내릴 때마다 다르다. 원두를 갈 때도 있고, 통으로 사놓고 먹을 때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메일 내려먹는 것 같지만 귀찮아서 사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드립커피를 주로 마시지만 그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품종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서 원산지 원두와 그 맛을 표현했을 때 솔직히 부러웠다. 나도 한 번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열다섯 곳의 커피하우스 때문이다. 여행보다 커피하우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국내 여행을 가면 갈 커피하우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첫 여행지인 천안, 아산 이야기를 읽자마자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낯익지만 한 번도 여행갈 생각을 하지 못한 이 도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니 길만 막히지 않으면 금방 갈 수 있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한 번 둘러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새로운 발견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더불어 멋진 커피하우스 정보까지 곁들여 있으니 맛집만 한두 곳 찾으면 최상의 여행지가 된다.

 

여행과 커피를 하나로 묶었지만 주가 되는 것은 역시 여행이다. 잠시 머물다 간 곳 포함해서 열세 곳의 여행지 모두 한 번씩은 가본 곳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몇 시간을 달려간 곳도 있고, 한때는 철만 되면 가던 곳도 있다. 광화문의 경우는 한 달에 몇 번이나 나가던 곳이다. 이런 곳들이지만 신기하게도 열다섯 곳의 커피하우스 중 가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어릴 때는 커피를 찾아 마실 돈도 여유도 없었고, 최근까지는 그냥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나 관광지 근처 조그만 커피숍으로 갔기 때문이다.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곳도 당연히 볼거리와 맛집이 우선이었다. 가끔 블로그에서 좋은 커피숍이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비중을 높게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물론 강릉의 커피하우스 정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접해 낯익지만 그래도 강릉행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국내여행사 대표답게 그가 소개하는 여행지들의 다른 모습은 저절로 눈길이 간다. 과장된 표현이 살짝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유혹은 없다. 본업이 여행사이다보니 그곳을 나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커피하우스에 대한 평가도 역시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사실 그 맛을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와인을 시음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나와 살짝 놀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조금 저렴한 가격의 핸드드립 커피하우스가 나왔을 때는 바로 달려가서 그 맛을 보고 싶었다. 현실은 사무실에서 프렌차이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최상의 호사지만.

 

사라진 커피하우스 대불호텔도 좋지만 인제 춘천 여행 끝에 도착한 춘천의 시실리아가 왠지 가보고 싶다. 낡은 커피숍 소품에 진한 커피향기가 곁들여진 그곳. 소양강 댐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 역할만 했던 춘천. 이제 새로운 목적지가 생긴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가보고 싶은 경주도 눈길을 강하게 끈다. 커피업계 3대 천왕이 있다는 것보다 많은 관광지를 둘러본 후 잠시 숨을 고르면서 진한 커피 한 잔으로 피로를 풀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맛있는 커피 한 잔이면 어디에서나 피로를 풀 수 있지만 여행지에서 특별히 찾아간 곳이라면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 자주 가는 파주의 커피공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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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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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가 10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다. 원제도 10년은 일 단위로 표시한 <3652>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이 책 끝에 그 출처가 하나씩 표시되어 있다. 최근에 이렇게 출처를 표시한 책을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탓인지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짧은 것도 한 쪽짜리도 있다. 그림은 별도지만. 이렇게 일상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다양한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르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이사카 코타로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 생활이 소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낯선 모습에 살짝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한 편 한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황당한 상식 부족이 가끔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을 근두운이 아닌 근두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 일본에서는 이렇게 표기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능청스럽게 이런 실수를 12지 중 원숭이 해의 에피소드로 이 이야기를 그냥 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읽으면서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되었다. 뭐 이런 것 모른다고 재미있는 소설을 못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것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한 편 쓸 능력도 없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수많은 에세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족은 아버지다. 건강요법 마니아에 동네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상한 아저씨에 묘한 설득력을 지닌 말을 하는 아버지 역할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가는 개인적으로 놀랍게도 오에 겐자부로다. 대학 시절 그의 소설 <외치는 소리>를 읽고 반해 하루에 한 권씩 10일 동안 읽었다는 에피소드가 반복해서 나온다.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나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게 읽혔던 작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책과 12간지의 동물들 이야기다. 12간지 동물은 책 출간(2010년) 당시 5마리가 남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편이 남았을까 궁금하다.

 

작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주지만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은 또 다른 재미다. 아예 대놓고 작가와 대표작을 쓴 글도 있지만 곳곳에서 작가와 작품명이 나온다. 이때마다 읽지 않는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위시리스트에 추가할 목록이 늘어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라면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출간된 책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줄 때는 읽었던 작품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뚫고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한 에피소드는 책이 바로 앞에 있어 목차를 뒤져 그 제목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에세이에 나온 책들의 출간 여부를 알려주었다면 좀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책의 기획 중 재미난 것은 각 에세이의 끝에 작가의 간략한 감상이 사족처럼 달려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 등이 적혀 있는데 어떤 에세이에서는 이것이 더 흥미진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한 모습과 일상이 너무 다른 것도 놀랍지만 짧은 글 속에 녹여낸 사연들과 마무리가 왠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연상시키는 순간이 많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의 착각일까? 엄청나게 소심한 그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뜨거운 팬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묘하게 교차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재미있는 책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을 하나 더 더한다면 문화, 풍속, 유행, 언어의 차이 등을 고려하여 삭제한 에세이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 목록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는 글도 적지 않다. 언젠가 모든 글이 다 나오는 완전판이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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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행 - 칭기스 칸의 땅을 가다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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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했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자꾸 몽골에 자주 가? 볼 만한 게 뭐가 있어? 같은 물음이다. 우리는 휴가 등으로 해외로 나갈 경우 같은 나라를 여러 번 가면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늘 새로운 곳과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두고, 해외 나가기가 쉽지 않기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늘 그립고 익숙하고 새로운 곳이 바로 몽골이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고, 가보고 싶은 곳이 넘쳐나듯이 외국도 나가면 실제 며칠 동안에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 관광을 생각하고 외국에 나간 사람과 여행을 간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매년 몽골을 다녀왔다. 그 일정표가 끝에 나온다. 울란바토르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지역을 그렇게 길지 않은 일정으로 다녀온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몇 년 동안 다녀오지 못했다. 이번에는 두 명만 갔다. 이번 여행은 칭기스 칸의 생을 거꾸로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책 곳곳에 나오는 것이 바로 칭기스 칸이다. 한때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그에 대한 숭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몽고인들에게 그가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신성시 하는 곳을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낯설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온다.

 

몽골이란 곳을 책으로 혹은 가끔 다큐멘터리로만 보았다. 그런 내게 이들의 여정을 상상하는 것은 영상 이미지나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아쉬움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 컬러가 아닌 흑백이고,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덕분에 과거 다큐멘터리 영상 이미지나 무협 등에서 상상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와 어떤 괴리가 있을지는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중국 황산에서 밤에 본 별들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갈증을 느낀 것이 바로 이런 간접 경험의 한계다.

 

이 책의 여정은 2012년 10월에 10일 일정으로 다녀온 것이다. 칭기스 칸의 고장 헹티아이막을 일주했다. 이전처럼 러시아 차 포르공을 타고 운전수 새럿과 가이드 겸 통역인 할리온과 함께 이 여행을 갔다. 이 여행을 얼핏 보면 낭만적이다. 포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 특히. 하지만 이런 여행에서 여행객도 힘을 합쳐 힘든 일을 헤쳐나가야 할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고, 차가 늪에 빠졌을 때 전화 한 통으로 금방 보험서비스가 달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일정에 쫓긴다고 자기 앞과 옆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버려두고 갈 수도 없다. 물이 부족하여 매일 샤워는커녕 세수도 쉽지 않다. 또 화장실은 어떻고. 편안하고 볼거리가 많은 관광을 생각했다면 거의 최악에 가깝다. 물론 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최고가 되겠지만.

 

칭기스 칸의 땅을 다녀온다는 목적에 맞게 일정을 짰다. 하지만 몽골의 날씨와 환경이 이것을 쉽게 이룰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다. 적지 않은 곳을 다녀왔지만 변수는 곳곳에 있다. 그런데 이 변수가 여행을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도 고난도 준다. 무사히 돌아온 후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변한다. 여기에 몽골에 대한 애정이 깊고 관심이 많다면 그들의 문화와 의식을 하나씩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보르항 할동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낯선 지역의 게르에서 만난 몽고인들은 유목민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과 실제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가 책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이해하는 과정은 나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몽골인들이 칭기스 칸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광개토태왕의 그 광활한 만주를 그리워하는 것 이상으로. 단순히 이 여행이 자신의 경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같이 녹여내었다. 하나의 문화나 삶을 경험과 엮어 고찰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와중에 드러나는 몽고의 변화는 낯설지만은 않다. 안타까움도 생긴다. 몽고에서 수많은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광활한 초원과 높은 산과 바람과 별은 나의 허세와 낭만을 일깨우지만 실제 가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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