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람의 시간
김희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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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살에 그는 처자식을 한국에 두고 홀로 무작정 스페인 마드리드로 갔다. 잘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 두고. 스페인어도 모르는 그가 낯선 곳으로 갔다.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가 떠올랐다. 그 소설 속 주인공도 아내를 두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났지 않은가. 하지만 저자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길지 않은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이 유학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되어 가는 일과 자라는 자식들을 두고 언어도 모르는 먼 타국으로 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무모하기 그지없거나.

 

저자 김희곤은 불과 한두 해 전의 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내지 않았다. 2천 년대 초에 그곳에 머물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기록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하나의 사건이나 일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풀려나온다. 그래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낯선 나라에서 자신이 좌충우돌하면서 경험했던 것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흔하게 만나게 되는 여행 에세이나 재미 위주의 외국 체류기와 완전히 다르다. 글 속에 묵직함이 담겨 있어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집중하면서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단순히 스페인 체류기나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저자가 머물던 시기와 지금은 분명히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여행의 정보나 도시 등의 정보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 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중년의 남자가 맨몸으로 현지에 적응하고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배우는 것의 어려움이다. 이렇게 적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 생활에서 이것보다 힘든 것이 없다. 맨몸으로 부딪히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고, 이것을 즐기는 젊은이도 많다. 하지만 중년이라면 어떨까? 언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대학원 등록까지 한다면? 비록 자신이 전공했던 분야고, 유창한 언어가 덜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읽는 내내 나의 현재와 계속해서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건축가다. 이 직업은 이 책을 쓰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나온다. 그가 이전에 낸 책들을 생각하면 더욱 분명하다. 이런 직업병이 이 책 속에도 적지 않게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읽을 때 건축가들이 부럽다. 건축물을 보는 시각이나 방법이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 등의 수식을 넘어선 표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뭐 이런 것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간단하게 들려주는 가우디나 몇 명 건축가와 건축물에 대한 감탄과 그 의미 등은 나중에 스페인 여행을 할 때 하나의 안내도가 될 것 같다.

 

그의 글에서 가장 아슬아슬하면서 밋밋한 부분은 바로 열정적인 여자들과의 만남이다. 만약 그가 이혼을 하고 홀로 산다면 과연 여기에서 멈추었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중년이라고 하지만 아직 성욕과 열정이 남아 있는 나이를 감안하면 길지는 않다고 해도 잠시 동안 불꽃은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낭만적 추측일 뿐이다. 그가 묘사한 수많은 여인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아내의 편지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글을 넣어 이런 위험을 피해간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무모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 그의 용기는 대단하다는 감탄을 먼저 자아내게 한다. 그가 스페인에 머물면서 돌아다닌 곳과 경험한 것들은 계속해서 나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며칠 동안 그곳을 머물다 혹은 지나간 것을 가지고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데 그는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배운 것 등을 함께 녹여내었다. 여기에 자신이 삶의 철학도 같이 곁들여 이야기에 무게감을 더했다. 육신은 중늙은이지만 그의 열정과 삶을 대하는 자세는 청년과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어쩌면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그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안주하려고 하는 나 자신과 비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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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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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를 기억하는 것은 오래 전에 사놓은 <핑거스미스>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보다 소설 제목을 기억하고 있다. <핑거스미스>라는 소설은 기억하지만 작가는 잘 몰랐다. 인터넷으로 제목을 검색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 아! 하고 감탄하고, 위시리스트에 책을 집어넣는다. 이 책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자주 말하는 몇 명의 작가를 제외하면, 특히 많이 나오지 않는 미국과 유럽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작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실제 나의 생활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제목만 기억하고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세라 워터스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은 늘 다른 독자의 서평이나 책 소개글을 통해 얻은 것이다. 미스터리와 동성애라는 두 개의 코드가 나에게 강하게 인식되었다. 여기에 워낙 좋은 평을 받은 것 때문에 단숨에 이 두꺼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했다. 실제로 앞부분을 조금 읽었을 때는 자신감과 그 어떤 기대감으로 예상한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예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가면서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거의 3분의 2정도를 지나면서 그 재미를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읽는 속도가 올라갔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화자는 워릭셔의 대저택 헌드레즈홀에서 유모로 일했던 엄마를 둔 닥터 패러데이다. 그는 열 살 때 처음 헌드레즈홀을 보고 반한다. 소설의 첫 문장도 바로 이것이다. 그는 부모의 헌신적인 도움과 자신의 능력으로 의사가 된다. 하지만 이 시대 평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치의는 그렇게 부자가 아니다. 그러다 그에게 이 헌드레즈홀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 원래 이 집의 주치의가 아파 대신 가게 된 것이다. 환자는 어린 하녀 베티다. 베티는 아픈 것이 아니라 이 집의 기이한 분위기에 놀라 꾀병을 부린 것이다. 이 꾀병이 그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그렇게 원했던 헌드레즈홀에 들어오게 만든다.

 

이 거대한 저택에는 단 세 명의 에어즈 가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엄마와 딸 하나와 아들 한 명이 전부다. 거부의 젠트리 계급이었던 이 가문은 어느 순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헌드레즈홀 전성기에 수십 명의 하녀들을 두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한 수준이다. 2차 대전 후 물자가 부족한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들의 삶은 결코 풍요롭지 못하다. 거대한 영지를 운영할 능력도 없고, 돈도 없다 보니 집의 보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 나중에 장례식 때문에 온 친척이 이 집을 공포영화에 나오는 집이라고 말할 정도다. 거기다 유일한 남자인 로더릭은 전쟁 기간 동안 부상을 입은 상태다. 다리를 절면서 이 대저택을 힘겹게 꾸려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에게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큰딸 캐럴라인은 예쁜 얼굴이 아니다. 키도 크다. 그 시대 기준으로 보면 결혼적령기를 지났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동생의 부상이 그녀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렇다고 집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집의 몰락과 함께 그녀 자신도 조금씩 가라앉는 중이다. 그러다 패러데이와 엮인다. 소설 끝까지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는 존재이자 다 읽은 후 이 소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후반부에 나로 하여금 책 속에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작가는 명확한 답을 내려놓지 않지만.

 

에어즈 부인은 이 집의 영광을 마지막으로 누린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이전에 수전이라는 딸이 있었다. 수전은 죽었고, 그 후에 캐럴라인과 로더릭이 태어났다. 만약 이 소설을 고딕풍 호러 소설로 이해한다면 제목의 작은 이방인은 이 수전일 가능성이 높다. 에어즈 부인이 환상에 사로잡혀 말할 때나 집에서 발견된 몇 가지 낙서는 이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또한 분명하지 않다. 작가가 이 존재를 아주 가끔 드러내고, 화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경험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등골이 서늘한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존재인데 작가는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1인칭 시점 때문에 이야기는 어느 한곳으로 기울지 않는다. 그가 이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풀어내었다면 하나의 미스터리가 될 것이고, 실제 사건을 의사의 입장으로 이해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호러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몰입하는데 방해했다. 패러데이의 방문과 헌드레즈홀의 일상이 약간은 지루하게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화자와 로더릭의 존칭과 평대가 뒤섞인 대화를 읽으면서 원문도 과연 이런 식인지 의문이 생겼다. 충분히 가능한 대화방식이지만 눈에 살짝 거슬렸다.

 

후반부에 노골적으로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에어즈 부인이 죽은 후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반응은 이 리틀 스트레인저를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것 또한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이때 몰입도는 최고조에 도달했다. 그 어떤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딱 거기에서 멈추면서 나의 기대도 멈추었다. 앞에서 말한 이 1인칭 시점이 진실을 파악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믿을 수 없는 화자란 말에 동의한다.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경험에 따라 이것은 바뀔 것이다. 전체적으로 미친 듯한 몰입감을 주지 못했지만 후반부의 몇 가지 이야기가 아주 긴 여운을 남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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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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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왠지 철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조금 묵직한 소설 같다. 묵직한 것은 맞지만 철학을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삶이 나온다. 물론 이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트랜스젠더고, 이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한 나약한 대학생이 고등학생의 먹이처럼 다루어지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그를 괴롭히는 악마같은 고등학생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인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무력하고 겁에 질려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인우와 그의 엄마의 삶을 보여준다.

 

인우와 같이 살고 있는 엄마는 사실 아빠였었다. 여성의 영혼에 남자의 피부를 덧씌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그 당시 어느 부모가 이것을 인정했겠는가.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이혼한다. 아들을 자신이 키운다. 다섯 살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지만 그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수술에 필요한 돈이 없다. 태국에서 하는 수술도 쉬운 것이 아니다.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가슴 수술도 해서 옷 밖으로 여성처럼 보이지만 아직 성기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그를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등이 방송에 나온다고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현실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직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우는 정상적으로 잘 자란 것 같아 보이지만 늘 불안감을 품고 있다. 하나는 자신도 아버지였던 엄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 엄마와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첫 번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두 번째는 아직도 그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이 소설 속에 일어나는 많은 위악적이고 혐오스러운 일들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이 나약하고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이유 대신 핑계를 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1505호 고등학교 퇴학생에게 강간을 당하고, 돈을 빼앗기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과 1504호 아줌마의 놀라운 공격이 대조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트랜스젠더에 나이까지 많은 엄마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해바라기라는 성 소수자 카페에서 일하지만 겨우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을 정도 밖에 벌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을 대학에 보낼 정도의 노력은 한다. 다만 아들에게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자퇴생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아들인 인우는 보신탕집에서 죽은 개를 태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죽기 직전의 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개를 데리고 오면 보신탕집 주인이 죽이고, 그는 개털을 태워 식당에 가져다준다. 이 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겨우 70만 원 정도다. 왜 이런 일을 할까? 의문이 들었다. 다른 알바도 많은데 하고. 나중에 작가는 그가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나열하면서 도시 생태계 최하층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알려준다.

 

읽으면서 욕이 나오고 분노했다. 1505호 악마가 보여준 행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줄 때나 인우가 너무 쉽게 무너질 때 그랬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체를 밖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엄마의 문제로 뒤덮으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아주 연약한 초식동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외모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곱상함이 있는 모양이다. 악마와 그 무리들이 뒤에서 덮칠 정도다. 읽으면서 환경과 조건만 맞다면 꽃미남 연예인이 될 외모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작가는 그의 외모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주변에서 그를 노리는 여자들만 보여줄 뿐이다.

 

연약하고 예쁜 초식동물은 언제나 포식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1505호 악마가 바로 그 포식자다. 그를 피해 다니지만 항상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을 악마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들려줄 때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일말의 가능성이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의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더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인지 모르겠다. 인우의 삶이 힘겹고 무겁고 달아나고 싶을 때 읽는 나도 같은 감정의 깊이를 살짝 느낀다. 모두 읽은 뒤에도 불편함과 불쾌함이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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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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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읽는다. 이전 수상작들을 찾아보니 제목을 아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딱 그 정도다. 소설 <혼불>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이 문학상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만 <혼불>이 재간되기 전 절판되어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원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장르 소설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대하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진득하게 작품을 읽기에는 끈기가 너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늘 좋은 대하장편소설을 욕심내고 형편이 되면 산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했다. 요즘처럼 국정교과서로 역사 문제가 시끄러운 이때, 이 소설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동학농민혁명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단순히 동학도가 남도에서 흥기하여 무작정 한성으로 진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그 당시 조선과 조선을 둘러싼 나라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간결하게 다루었다. 실제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인물 등을 생각하면 한 권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는 많은 가지를 쳐내고, 핵심 되는 내용과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재현해내었다. 그 속에는 동학농민군을 무식하고 미신에 휩싸인 무리였다는 속설을 뒤집는 것도 적지 않다. 아니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의지가 더 굳건하게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의 부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전봉준과 대원군의 만남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상대와 힘을 합치고, 권력을 잡은 후 다시 내부적으로 싸우려는 의도가 나올 때 병법의 기본 원칙이 느껴졌다. 이렇게 소설은 조선 조정과 그곳을 둘러싼 권력의 관계자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다른 한 축은 전봉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내용을 가득 채운다. 개인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전봉준 측이 아닌 일본의 힘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김교진 등의 세력이다.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소설을 조금 힘겹게 읽었다. 문체나 문장이 그렇게 가독성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취향에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에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읽는 속도가 떨어진다. 최근 나의 독서가 이런 종류와 동떨어져 있다 보니 더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주연 및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씩 사라졌다.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데 그들이 개인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비중 있게 나왔다면 그 어떤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통찰력 있는 인물이었던 이철래가 너무 힘없이 사라졌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힘의 역학 관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자신의 양심 때문에 고뇌하던 그는 시대를 앞선 모습이었다.

 

녹두장군, 전봉준. 민요로도 남아 있는 그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의 모습은 아주 인간적이다. 동학 접주들을 만나 세를 규합하고, 그들을 이끌고 봉기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전봉준을 한양까지 끌고 가는 과정을 다룬 한승원의 <겨울잠 봄꿈>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아주 짧게 다루지만 두 작품 속 전봉준과 그들 둘러싼 사건들이 조금은 다르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그들의 의지와 노력과 혁명이 역사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결과를 아는 작가의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큰 아쉬움은 분량이 적어 충분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한국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머어마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으로 세밀하게 채워 넣을 이야기가 너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의 심리와 그 당시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다루었다면 아주 멋진 정치 소설이 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의 많은 가지를 쳐내면서 적절하게 풀어낸 것에는 박수를 치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비교하고, 분석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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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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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소설을 좋아해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최근에는 액션이나 추리 등의 장르물에 더 눈길을 두지만 그 이전에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중심으로 읽었었다. 물론 지금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소설을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읽었고, 유명한 작가라서 읽었고, 재미있다고 해서 읽었었다. 그 당시에 엔도 슈사쿠의 소설 중 한 편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한 편도 읽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하고 약간 의심도 해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침묵>도 나 스스로 자신할 수 없다. 몇 번이나 살 기회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다음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란 점 때문에 사지 않았다. 읽은 것에 대한 진실은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이 에세이는 엔도 슈사쿠가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한 것을 묶어서 내놓은 것이다. 지면 사정이나 그 당시 요청에 따라 분량이 모두 달랐던 모양이다. 긴 것은 몇 쪽에 달하고 짧은 것은 두세 쪽에 불과하다. 이 분량 차이가 가끔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끝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2~30년 전 작가의 생각과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때와 지금의 문화나 사회 분위기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상당히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볍게 풀어내었다. 병으로 힘들게 산 듯한데 글은 그 무게를 대부분 지워내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편은 읽다가 크게 웃었다.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그 중 한두 가지만 소개하자. 한 잡지의 어떤 학생이 원고 청탁을 가면서 먼저 전화를 해주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작가에게 집 앞 쌀가게에서 전화를 하면서 원고를 부탁한다. 황당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작가가 이 요청을 수락하고, 그 잡지는 다 팔린다. 이 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소변 검사용 컵에 똥을 담아온 친구에 대한 것이다. 왜, 어떤 생각에서 이런 일을 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주 즐겁게 웃게 만든다.

 

노작가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곳곳에 드러난다.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낸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재미있지만 전자도 유념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2~30년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현재 우리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도쿄 대학 진학에 힘쓰는 모교에 대한 글이나 빛바랜 경로의 날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기념일 등이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노력과 즐거움은 눈길을 끈다.

 

소설가라서 받게 되는 편지나 영어 실수담으로 경쾌하게 시작한 글은 마지막에 병문안과 인생관으로 마무리된다. 앞이 유쾌하고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뒤의 글은 곱씹어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병문안에 대한 이 글은 잘 몰랐던 부분이다. 나의 욕심이 환자를 힘들게 한 적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이 ‘괴로운 즐거움’인데 이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작가 나름의 표현방식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도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의 이 표현은 개인적으로 삼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즐겁고 유쾌하게 읽었다. 엔도 슈사쿠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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