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평점 :
제목만 보면 왠지 철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조금 묵직한 소설 같다. 묵직한 것은 맞지만 철학을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삶이 나온다. 물론 이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트랜스젠더고, 이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한 나약한 대학생이 고등학생의 먹이처럼 다루어지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그를 괴롭히는 악마같은 고등학생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인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무력하고 겁에 질려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인우와 그의 엄마의 삶을 보여준다.
인우와 같이 살고 있는 엄마는 사실 아빠였었다. 여성의 영혼에 남자의 피부를 덧씌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그 당시 어느 부모가 이것을 인정했겠는가.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이혼한다. 아들을 자신이 키운다. 다섯 살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지만 그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수술에 필요한 돈이 없다. 태국에서 하는 수술도 쉬운 것이 아니다.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가슴 수술도 해서 옷 밖으로 여성처럼 보이지만 아직 성기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그를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등이 방송에 나온다고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현실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직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우는 정상적으로 잘 자란 것 같아 보이지만 늘 불안감을 품고 있다. 하나는 자신도 아버지였던 엄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 엄마와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첫 번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두 번째는 아직도 그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이 소설 속에 일어나는 많은 위악적이고 혐오스러운 일들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이 나약하고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이유 대신 핑계를 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1505호 고등학교 퇴학생에게 강간을 당하고, 돈을 빼앗기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과 1504호 아줌마의 놀라운 공격이 대조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트랜스젠더에 나이까지 많은 엄마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해바라기라는 성 소수자 카페에서 일하지만 겨우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을 정도 밖에 벌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을 대학에 보낼 정도의 노력은 한다. 다만 아들에게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자퇴생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아들인 인우는 보신탕집에서 죽은 개를 태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죽기 직전의 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개를 데리고 오면 보신탕집 주인이 죽이고, 그는 개털을 태워 식당에 가져다준다. 이 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겨우 70만 원 정도다. 왜 이런 일을 할까? 의문이 들었다. 다른 알바도 많은데 하고. 나중에 작가는 그가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나열하면서 도시 생태계 최하층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알려준다.
읽으면서 욕이 나오고 분노했다. 1505호 악마가 보여준 행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줄 때나 인우가 너무 쉽게 무너질 때 그랬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체를 밖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엄마의 문제로 뒤덮으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아주 연약한 초식동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외모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곱상함이 있는 모양이다. 악마와 그 무리들이 뒤에서 덮칠 정도다. 읽으면서 환경과 조건만 맞다면 꽃미남 연예인이 될 외모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작가는 그의 외모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주변에서 그를 노리는 여자들만 보여줄 뿐이다.
연약하고 예쁜 초식동물은 언제나 포식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1505호 악마가 바로 그 포식자다. 그를 피해 다니지만 항상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을 악마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들려줄 때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일말의 가능성이 무서운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의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더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인지 모르겠다. 인우의 삶이 힘겹고 무겁고 달아나고 싶을 때 읽는 나도 같은 감정의 깊이를 살짝 느낀다. 모두 읽은 뒤에도 불편함과 불쾌함이 여운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