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물어주마 - 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다
정봉주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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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열 편을 추려 내었다. 이 팟캐스트도 내가 듣지 않은 것이다. 이전보다 시간이 더 부족해지다 보니 팟캐스트도 책도 편식이 심해지고 있다. 처음 팟캐스트에 이 방송이 올라왔을 때 시간내서 한 번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이 일상 속에서 어느 듯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사실 정봉주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나는 꼼수다> 덕분이다. 그곳에서 정봉주가 보여준 깔데기는 무거운 이야기에 감초처럼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이 방송이 나왔을 때 냉큼 내려받아 듣는 것을 방해했다. 나의 마음속에서 너무 가볍지 않나 하는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꼼수>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방송을 듣고 있지 않다. 다른 방송 듣기도 벅차고, 시간도 부족하고, 그것이라도 제때 듣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송들이 요즘 책으로 한 권씩 나오고 있다. 현재 시세와 어울리는 몇 가지를 뽑아서 새롭게 정리했는데 읽을 때 나의 기억과 지식과 엇갈리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란다. 다른 방송과 시각과 해설이 다른 부분이 나올 때 왜? 라는 의문 부호를 달게 된다. 아마 이 의문 부호가 나에게 이 책이 유익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경제위기까지 이어진다. 내용을 간단하게 보면 전세값, 가계부채, 세월호, 쌍용자동차. 통합진보당 해산, 김영란법, 국정원 해킹사건, 한일협상 등이다. 비교적 출간시점이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이슈를 끌고 와서 편집한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렇게 많은 것을 놓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아픔과 분노와 허탈함과 답답함과 무서움 등이 몰려왔다. 그것이 정치와 역사 부분으로 넘어갈 때 더 심해졌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지식은 갇혀 있던 나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협상은 맞물려 있다. 속된 말로 자기 아버지를 떠받들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과 연결되어 있다.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맺은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국민을 위하는 협상이 아니다. 세월호 1주기 때 남미에 간 것이 단순히 세월호를 비껴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외교 협상이 엮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는 귀찮은 것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으로의 진군을 막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할 때 분노를 넘어 두려움마저 들었다.

 

전세값과 가계부채도 역시 이어져 있다. 물론 가계부채는 생계형 대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불량채권 추심이 어떤 단계를 거쳐 최종 단계로 이어지고, 불량채권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줄 때 한 번 더 놀란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부동산을 떠받들기 위해 펼친 정책의 결과가 어떤 폭탄으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너무나도 아프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얼마나 1%를 위하는지 알 수 있고, 이들을 위해 99%가 피땀을 흘려 떠받들어야 하는지 생각할 때 암담해지고 우울해진다.

 

세월호는 지금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차가운 바다와 아이들의 농담이 겹쳐지면서 순식간에 눈시울이 불어진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려고만 한다. 쓰레기 언론들은 늘 그렇듯이 물타기로 유가족을 매도한다.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없고, 눈을 가리기 위한 대책만 조용히 흘러나온다. 인양조차도 유가족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복마전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읽으면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슴이 아파 이 기록에 대한 책 읽기를 그만두었는데 다시 용기를 내어 정면에서 마주 봐야겠다.

 

쌍용자동차와 통합진보당 해산은 우리의 법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종언을 고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별하라는 조직이 자신을 뽑아준 사람에게 충성을 하는 조직으로 변했다. 증거는 쓰레기를 채택하고, 헌법 정신은 훼손되었다. 이것은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법리나 증거는 권력의 힘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늘 놀라는 것은 그들은 이런 판단과 판결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가끔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때도 있지만 거대한 흐름 속에서 법원은 그 원칙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트리고 있다.

 

국정원 해킹사건은 한국의 낮은 정치 수준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이전 정권에서 보여준 반민주적인 행동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의문으로 가득한 사건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봉주 등이 주장하는 핵심과 논점을 흐려놓았다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누더기법으로 바뀐 김영란법의 역사를 새롭게 더듬어보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 법이 제대로 작용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원래 취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길들이는데 사용될 우려가 생긴다.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해 새로운 정보는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에 빠지면 그리스처럼 극좌파가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얼마 전 유시민의 JTBC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 35%가 너무나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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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탈출하는 방법 - 각자도생의 경제에서 협력과 연대의 경제로
조형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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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종배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한 부분을 정리해서 출간한 책이다. 경제사회학자 조형근 씨가 이 험난한 각자 도생의 경제에서 협력과 연대의 경제로 가지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 열 개의 장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읽다 보면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많이 나온다. 협력하는 경제에서 시작하여 참여계획경제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을 요약하고 현재 진행사항과 대안을 제시한다. 그 바탕에는 항상 민주주의가 깔려 있다. “새로운 대안 경제를 꿈꾸는 일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꾸는 실천과 결함되어 있다.”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 출퇴근하면서 주로 듣는데 부족한 시사 상식이나 경제나 정치 지식을 잘 채워준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 먹는 것에 대한 것이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다른 일을 하다가 집중력이 깨져 제대로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책으로 나오면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팟캐스트는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편력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는데 도움을 준다. 헬조선의 현실에서 자꾸 눈을 돌리려는 나의 마음을 현실로 다시 데리고 오는 역할도 한다.

 

처음 이야기의 문은 대안 경제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연다. 대안을 우리가 바라는 꿈이란 말로 바꾸고, 다시 이것을 경제성장, 분배, 삶의 의미란 세 가지 틀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경제성장과 분배 문제는 늘 보수와 진보가 다른 주장을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GNP와 1인당 GDP의 허구를 짚어주면서 넘어간다. 통계가 주는 허점을 간략하게 다룬다. 그리고 이 대안경제에서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기적인 존재과 이타적인 존재에 대해 인간은 두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몇 가지 예를 든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비교적 쉽게 시작한다. 여기서 다시 강조되는 것은 역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다.

 

사회주의를 실패한 대안이라고 하면서 구 소련의 혁명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지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나중에 다시 체크하고 공부해야 할 대목이다, 사회주의 모델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해주는데 그것이 상당히 날카롭다.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의 관계와 이 두 나라 사이에 다르게 발전한 사회주의가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들려줄 때 대안 경제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독일의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 등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풀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이 하나의 제도나 정책이 어떤 역사와 그 나라의 특수성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스웨덴에 대해 알고 있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재조립되는 과정을 거쳤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고루한 논쟁을 이 스웨덴은 분배 우선으로 풀어내었고, 이것이 높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좌우의 정권교체 속에서 정책이 더 보완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직 우리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스웨덴 복지나 경제의 문제점을 짚어주는데 그 중 하나가 지속적인 고도성장이다.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스웨덴이 모델 중 하나는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복지 때문에 잘 산다는 피상적인 내용 전달이 아니라.

 

2부로 넘어가면 조금 내용이 어려워진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묻고,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핵심은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반드시 영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정의한다. 협동조합에 대해 알고 있던 피상적인 지식을 확장시켜주고,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은 현황과 문제도 같이 말해준다. 특히 놀라운 것은 서구의 협동조합이 사내 유보 이익을 청산시 사회로 환원한다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협동조합이 운영되면서 그 이익이 해산 당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합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놀랍다. 그리고 자본주의 틀 안에 있다 보니 생기는 폐해도 같이 지적한다.

 

흥미로운 현실 중 하나가 지역화폐다. 대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운동은 재미있고, 의미있다. 지역 커뮤니티가 어떻게 그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 한계가 지역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고, 한때 MB정권이 내세운 미소금융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다시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설명은 크게 공감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인구수나 상황들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 하지만 제도나 예산 등을 잘 정비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다루는 참여계획경제는 괜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팟캐스트도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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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의 국경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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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연애 소설이란 말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유희가 보여주는 일탈과 방황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간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 남자 다니엘이 한 달 후 나타나 결혼하자고 했을 때 그녀가 내세운 섹스 파트너는 현실적인 최상의 대안이다. 그녀의 청소년 시절 성적 판타지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였던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이런 장면들이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시댁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아직 유부녀였다.

 

유부녀지만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시댁은 남편의 정계 진출을 위해 1년만 이혼을 미루자고 한다. 대신 노른자위 땅에 있는 건물을 위자료로 주겠다고 한다. 이 제안이 그녀를 뒤흔든다. 이것을 위해 시어머니가 각서까지 준다.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하나의 미끼임이 드러난다. 각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정치에 대해 한 말의 아주 좋은 표본이다. 가슴 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욕망과 현실이 그녀의 자유를 해치지만 아직 그것을 깨닫기에는 세상을 너무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연하남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민중이다.

 

별거중이고 이혼을 앞둔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재료다. 책 후반부에 가서 이것은 아주 큰 분노를 불러온다. 정치와 정치검사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연애 소설에서 피가 곤두서는 분노를 느낀 것은 작가의 치밀한 연출과 기소권 독점을 가진 검찰에 대산 불신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국민을 위하지 않고 소수 권력자에게 봉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가장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이혼하려고 별거중인 그녀도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한끼의 밥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이 일상은 그녀가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그만두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다. 이 또한 정치 술수에 능통한 시댁에게는 아주 좋은 재료일 뿐이다. 그리고 나의 솔직한 감정은 이 상황과 관계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이 관계를 잘 풀어주지만. 삶이 곧 정치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유희는 아직 자신의 감정도 정체성도 제대로 찾지 못한 것 같다.

 

아버지 현우는 소설가다. 문학상을 수상하고 일 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호쾌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베스트셀러 한 편 없는 수많은 소설가 중 한 명이 된다. 다행이라면 인문학 붐으로 문화센터 강의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은 국경에 대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국경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정치가들이 인위적으로 나눈 경계선인 국경은 후반부에 가면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다가온다. 읽으면서 현우의 모습에 작가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유희의 영문은 pleasure이다. 여기서 이중적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주인공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이다. 그녀가 다니엘을 통해 성욕을 깨닫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국경은 그녀가 넘어가야 할 하나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녀가 성욕과 감정에 더 순응할수록 이 국경은 희미해진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연애 소설이란 생각은 현우가 풀어내는 학설과 이야기 때문에 조금씩 무거움을 더한다. 특히 가상의 나라에 대한 설정과 설명은 정말 탁월하다. ‘희망이 있다면 사랑뿐이다.’ 이 한 문장을 위해 참으로 암울한 한국의 현실과 진한 사랑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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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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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올리언스에서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여섯 명을 살해한 도끼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 이 도끼 살인마는 잡히지 않았다. 미궁으로 빠진 살인 사건을 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고 충실하게 시대상을 그려내고 논리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소설로 당장 떠오르는 작품이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다알리아>다. 단순히 생각하면 상상력으로 범인을 추정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지만 이 작업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더 쉽다면 아마도 많은 작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을 것이다.

 

두툼하다. 약 580여쪽에 달하는 장편이다. 한 명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지 않고, 세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파헤친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피해자들을 늘어놓고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그 시대의 모습과 연결시키면서 하나의 개연성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작업 중 하나가 바로 그 시대 그 장소를 제대로 구현해내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배분해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어느 정도란 표현을 쓴 것은 내가 그 시대와 장소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세 명의 인물은 현직 경찰인 마이클, 부패경찰로 감옥에서 복역한 루카, 핑커턴 탐정사무소 직원 아이다 등이다. 여기에 조연으로 루이 암스트롱이 등장한다. 그는 아이다와 함께 이 사건의 한 축을 파헤친다. 루이 암스트롱이 아직 명성을 얻기 전이다. 1919년 뉴올리언스는 재즈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재즈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로운 묘사가 될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정치, 경찰, 부패, 권력, 원한, 성공 등이 엮이면서 뉴올리언스의 기이한 역사가 풀려나온다. 내가 읽었던 몇 권의 소설 속 뉴올리언스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보니 이들의 접점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이클을 교육시킨 것이 루카지만 그는 마피아 마트랑가 일가와 연결되어 있는 부패경찰이었다. 마이클의 내부 고발로 감옥에 5년 동안 있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루카의 복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도끼 살인마다. 시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줘 담당 형사 마이클에게 압력이 가해진다면 출소한 루카에게 이 연쇄살인마를 잡으라고 한 인물은 마트랑가 보스 카를로다. 마피아 보스가 왜 연쇄살인마를 잡고 싶을까? 이것이 미스터리를 푸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이 단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추적한 것을 바탕으로 퍼즐 맞추기 식으로 이어진다.

 

시대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내면서 각자의 삶도 같이 보여준다. 마이클에게는 흑인 아내와 그 사이에 난 자식이 둘 있다. 이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에는 이 시대 분위기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대외적으로 가정부라고 속이고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내부 고발자였던 이력은 루카의 동료였던 경찰들에게 배척의 대상이 된다. 그가 도끼 살인마를 추적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경찰 방식이다. 아일랜드 고아 출신의 케리가 가져온 과거의 유사사건 파일은 또 다른 가능성을 조사하게 만든다. 여기에 하나씩 던져지는 정보는 그가 이 모든 사건의 퍼즐을 풀 수 있는 한 조각에 다가가게 한다.

 

아이다는 홈즈의 열성팬이다. 그녀는 탐정이 되고 싶지만 단순 사무원으로 살고 있다. 이 도끼 살인마가 반등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조사한다. 그녀의 곁에는 루이스가 있다. 흑인이지만 그냥 보면 전혀 흑인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다.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탐정 사무소에서 하나의 단서를 들고 나와 살인마를 잡으려고 한다. 그녀의 추적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 또한 퍼즐의 한 조각을 찾아낸다. 그 과정에 벌어지는 몇 가지 사건은 결코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루카. 출소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마피아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부패경찰일 때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범인에게 다가간 인물이다. 그에게 주어진 단서와 관찰력이 덧붙여지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추리까지 더해지면서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간다. 도끼 살인마가 등장하게 된 이유를 밝혀내지만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른 퍼즐과 맞춰져야만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하나의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니고, 어떤 싸이코패스가 저지른 살인이 아니라면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작가가 주목한 부분도 아마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루카의 이야기가 뼈대를 만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찾아낸 사실들은 힘줄과 살들일 것이다.

 

미해결 사건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게 가끔 살인마의 심리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 소설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약간 아쉬운 대목이지만 섣부른 작업은 현실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뼈에 살을 붙이고, 그 시대의 상황을 조사하고 해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니 아주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액스맨의 재즈란 것도 실제 살인마가 보낸 편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실제 자료를 곳곳에 넣어서 사실성을 높이고,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들의 내면과 행동을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앞부분에 어느 정도 적응이 필요하지만 뒤로 가면서 가독성이 높아진다. 이 세 인물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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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정신없이 보냈다. 연초도 마찬가지다.

이런 바쁜 나의 일상과 상관없이 좋은 책은 계속 나온다. 그 중에서 몇 권 추려본다.

1. 화재감시원 : 코니 윌리스

 작가 이름만 놓고 보면 낯설다. 하지만 그의 장편 <둠즈데이 북>을 감안하면 아주 익숙하다. 시간 여행에 관한 소설로 아직까지 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만 보아도 말이다. 최고의 작가라는 호칭을 받는 sf작가의 작품집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예전보다 비록 sf를 더 적게 읽고 있다고 해도.

 

 

2. 낙원의 캔버스 : 하라다 마하

<카후를 기다리며>란 말랑말랑한 소설은 쓴 작가의 작품이 미스터리 소설 랭킹에 올라갈 정도라면 놀랍지 않은가. 물론 다른 작가들도 이런 모습을 가끔 보여준다. 반대로 역시! 루소와 피카소의 비밀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3. 그들 : 조이스 캐롤 오츠

197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이 두툼한 분량을 생각하면 쉬운 도전은 아니다.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후보에 오르고 있고, 엄청난 다작 속에서도 좋은 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소설이 출간될 때다마 눈길이 간다.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격동의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가 현재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4. 스타타이드 라이징 : 데이비드 브린

개인적으로 스페이스오페라 장르를 좋아한다. 여기에 휴고 상과 네뷸러 상까지 동시에 수상했다면 정말 대단하다. 적지 않은 규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과연 나의 상상력이 그곳까지 도달할지 모르겠다. 지성화우주 시리즈란 것도 궁금한데 이 작품으로 더 많은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5. 울지 않기 : 리디 살베르

2014년 콩쿠르 상 수상작이다. 에스파냐 내전을 입체적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작가가 에스파냐 내전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부모를 두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과연 어디까지 이 소설 속에 녹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좀더 사실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비극 중 하나가 이 책에서 잘 나온다니 요즘 우리 사회와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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