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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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매혹적인 제목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 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직장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회사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회사다. 아니 좋은 말로 포장하는 회사일수록 노동의 강도는 더 강하고, 직원은 하나의 부속품이 된다. 주변에 명예퇴직이란 고상한 표현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보면 회사에 붙어만 있는 것이 승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더 노예가 될 뿐이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짜증과 무력감 등을 쏟아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다르겠지만 그가 사장이 아닌 한 한계는 분명하다. 거기에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마는 신입사원이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나도 아오야마처럼 세상물정을 몰랐다. 부모에게 돈을 받아서 편안하게 대학 4년을 다닌 놈이 무엇을 알겠는가. 물론 그때도 다른 고민으로 암울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과 현실에 대한 불만 등이 엮어 만들어냈을 뿐이다. 어쩌면 그 기분과 기운에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오야마가 세상을 모른다는 예로 나온 에피소드는 현실의 가혹함과 무자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괜히 피곤해지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있는 모양이다.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할까. 아오야마는 이 주말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거래처 불만을 처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이 있다. 아오야마가 그렇다. 신입 영업사원인데 회사는 홀로 일을 하길 바란다. 보통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는데 최소 1년은 걸려야 한다. 그때 겨우 알 수 있는데 이 회사는 다른 모양이다. 세상을 몰랐던 아오야마에게 이 급격한 변화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다 지하철 역에서 선로로 떨어질 뻔한다. 이때 그를 구해주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야마모토다. 일과 스트레스에 짓눌린 그의 생명을 구했다. 야마모토에 이끌려 작은 술집에 간다. 야마모토는 자신을 아오야마의 초등학교 동기였다고 말한다. 이 만남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한 사람이 영업맨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다.

 

야마모토를 자주 만나면서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그가 조언한대로 영업을 하면서 실적도 좋아진다. 이대로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공을 들인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온다. 발주가 잘못 나갔다. 단순한 실수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다가온 사실 하나. 야마모토의 정체다. 그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다. 성이 같고, 당시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리 짐작하면서 생긴 착각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미스터리를 집어넣는다. 뭐 이것 또한 추측하기가 너무 쉽다. 하지만 당사자는 다를 것이다.

 

한 번 추락에서 일어났을 때 다시 추락하면 그 추락은 더 아프다. 아오야마에게 공들인 거래처의 클레임이 바로 그것이다. 선배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지만 부장의 질타와 자책감은 그를 더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옥상 문이 열리면 자살하려는 의지만 강해진다. 무력함과 자책감 등은 몸과 마음을 갉아 먹는다. 옆에서 보면 그냥 회사를 그만 두면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삶의 패배처럼 보인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가족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늘 극단적인 생각은 여기서 일어난다. 이때도 그의 곁에는 야마모토가 있다. 비록 야마모토에게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고 해도.

 

많지 않은 분량에 그렇게 깊은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금방 읽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한다. 이 이야기를 한국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비정규직이 벌 수 있는 돈이 일본과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니트 족으로 살기에는 한국의 시급이 너무 적다. 이런 점은 솔직히 부럽다. 그리고 나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아오야마의 주말 근무는 조금 의외다. 한국보다 주5일 근무가 먼저 시행된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노동 착취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것보다 더 와 닿는 이야기는 ‘달아나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면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것보다 달아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은 일이다. 가족들에게 더 좋은 일이다. 극단의 선택보다. 때로는 극복이란 단어보다 ‘줄행랑’이란 단어가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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