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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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다섯 편으로 구성된 비교적 얇은 단편소설집이다.

오랜만에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검색하다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작가의 장편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몇 권 읽지 않은 것도 단편집이었고, 장편들은 그냥 모셔만 두고 있다.

읽은 단편들도 너무 오래되어 기록을 뒤져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놈의 저질 기억력!

오랜만이지만 단편들을 재밌게 읽었다. 적당한 무게와 재밌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표제작 <스마일>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흔한 아버지들의 말로 시작해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흥미로운 인용과 개성 강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다 한 승객에게 문제가 생기고, 이 승객이 죽으면서 흐름이 바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기내식에 대한 고찰은 읽으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잠시 나의 경우와 비교했다. 달랐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인데 왠지 그 미소가 여운을 남긴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도 읽다가 중간에 예상하지 못한 설정에 놀랐다.

태평양 어딘가에 있다는 플라스틱 섬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등이 모여 섬처럼 된 그곳. 그 섬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

먹은 것을 다시 토한다는 앨버트로스. 그리고 이야기들을 모아 소설로 쓴다는 작가.

이런 연결 고리들이 교차하고 뒤섞이는데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AI이다.

단순히 사람과 대화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선 인공지능이다.

화자로 등장한 AI가 들려주고, 뉴스를 선택해서 알려주는 마지막은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왼>은 왼손잡이에 대한 판타지처럼 다가온다.

신은 왼손잡이란 주장을 내세운 학자와 칼리와 부족을 관찰하러 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왼손잡이다. 춤을 출 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재밌는 점은 부족 두 사람이 결투할 때다. 한 명은 오른손에, 다른 한 명은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부족 사람이 죽으면서 도시로 돌아온 이후 들려주는 현대화와 자본의 탐욕이 빚은 비극은 또 어떤가!

허구와 거짓과 그 뒤에 숨은 사실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차오>는 자동차에 내장된 인공지능이다.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차오와 운전자로 진행되다 해킹으로 다른 사람이 잠시 끼어든다.

운전자는 건축물평가업자다. 그의 보고서에 건축물의 운명이 결정된다.

당연히 로비도 많을 수밖에 없다. 원한을 품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해킹은 이런 사람 중 한 명이 했다.

해킹과 회복, 사실과 거짓말, 개발과 보존 등이 뒤섞인다.

읽다 보면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비극 중 하나가 보인다. 스마트폰 해킹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휴가 중인 시체>를 읽다가 오래전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과 가공을 뒤섞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모두 읽은 지금은 씁쓸하다.

인생에서 언제나 큰 문제는 한 번의 실수에서 비롯한다. 보통은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는 그 실수 말이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전국을 달리는 운전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화자의 관찰은 흥미롭다.

차에 적은 문구 ‘나는 곧 죽는다’는 차를 관이라고 부르는 그의 삶을 대변한다.

그의 차에 적힌 문구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의 행동에 대응하는 운전수의 모습은 숨겨진 사연이 나오면서 조금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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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창비시선 476
이정록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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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76권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는 시인이다. 30여년의 시력을 가진 시인인데도 그렇다.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이다. 긴 세월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시집 출간은 아니다.

비교적 천천히 읽은 시집이지만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집이 아니지만 시어들을 곱씹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똥 싸는 일을 / 뒤를 본다고 쓰는 / 얼간이도 있다마는 // 뒤를 본다는 것은 / 알을 낳는다는 말이다 / 희망을 돌아본다는 약속이다” (<뒤편의 힘> 일부)

이 시를 읽을 때 잘못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희망을 돌아본다는 약속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은 다른 시집보다 작게 소리 내어 읽은 시들이 많다.

시가 잘 읽히지 않을 때, 이해가 전혀 되지 않을 때 소리를 내어 시를 읽는다.

그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한발 더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릎 수술을 한 노인과 버스 기사의 농담을 다룬 시가 재밌다면 <꼬마 선생님>의 시는 눈시울을 붉힌다.

<구명조끼>를 읽으면서 “저수지에 들어간 뒤 쉰 넘어까지 나오질 않았다.”고 한 부분에서 순간 울컥했다.

아주 오래 전 강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나 아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꽃길만 걸어요>에서 꽃길만 걸어라는 편지에 “당신도 꽃길만 걸어요 / 당신도 비단길만 걸어요”라고 했을 때 그 지극한 마음이 가슴에 콕 와닿았다.


“거실까지 따라 들어온 / 구두 한짝이 바짝 엎드려 있다. // 너도 밤새 배가 많이 아팠구나.” (<과음> 전문)

이 간결한 시를 읽고 전날 과음한 시인이 집에 들어오면서 어떤 행동을 했을 지 바로 떠올랐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누군가 그 신발을 정리한 것이다.

<게걸음>도 이 연장선에 있는 시다. 아마 거실에 오기 전 취객의 모습이 아닐까!

<고욤>의 시를 읽으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이 쉽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일곱 마디>란 시에서 “’뚝’과 ‘딱’은 신의 말씀이고 / ‘뚝딱’은 인간의 소리다 // 비는 딱 그치고 / 꽃은 뚝 떨어진다”고 했을 때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성악설>의 전문 “연통 속이 검어질수록 세상은 따뜻해진다. // 속이 탄다는 말, 젖은 목장갑도 희고 둥글게 마른다.”을 읽고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 지 의문이다. 검은 연통과 세상의 따스함을 연결한 감성이 좋다.

구멍 난 파스를 두고 벌어진 대화를 시로 풀어낸 <구멍>이란 시는 또 어떤가. 작은 해학이 묻어있다.

그리고 시 곳곳에 충청도 사투리를 녹여 정감 있게 쓴 시들은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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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6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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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셰계문학전집 396권이다.

보통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이란 긴 이름보다 E.T.A. 호프만으로 표기한다.

같은 제목의 다른 번역본이 세 종 있는데 표제작만 같거나 표제작만 있고 다른 단편을 실고 있다.

<모래남자> 제목으로 나온 것도 있다. 고전의 경우 검색하다 보면 이런 재밌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그나츠 데너>를 번역한 책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팔룬의 광산>은 번역된 것이 있다.

이전에 호프만의 소설을 힘겹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쉽지 않다.

많은 쪽은 아니지만 한 면에 담고 있는 글자가 상당히 많다. 최근 소설에서 보기 힘든 분량이다.


<모래 사나이>는 처음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시점이 바뀐다.

밤 9시가 되면 자러 가라고 말하면서 모래 사나이를 말한다.

졸려서 아이들이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인데 나타나엘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아이들의 눈을 뽑아가는 섬뜩한 괴물처럼 다가온다.

눈을 뽑으려는 코펠리우스와 이것을 말리는 나타나엘의 아버지의 대결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준다.

청우계 장수 코폴라의 존재와 그가 판 망원경은 또 다른 세계로 나타나엘을 이끈다.


아름다운 연인이 있지만 망원경을 통해 본 자동인형 올림피아의 외모에 그는 매혹된다.

인간과 다른 모습이 있지만 매혹된 그는 대답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더 반한다.

이 장면과 코펠라와 코펠리우스를 같이 놓고 모래 사나이 이야기를 한 연인 클라라의 행동은 대비된다.

환상을 지적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클라라의 말이 그에겐 거짓과 잔소리로 들린다.

올림피아의 정체가 알려진 뒤에도 그는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코폴라가 준 망원경을 통해 사람과 풍경 등을 보면서 생기는 왜곡과 환상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비극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그나츠 데너>는 극 중 악당의 이름이다.

경건하고 선한 사냥꾼 안드레스와 사악한 도적 두목 이그나츠 데너가 벌이는 대결 구도를 보여준다.

데너가 처음 안드레스의 집에 나타났을 때는 선량한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그가 베푼 선행과 큰 도움은 안드레스의 아내 조르지나를 병에서 낫게 하고 집안 살림을 풍족하게 한다.

안드레스는 주인 바흐 백작을 구해주었고, 그때 힘들게 일하던 조르지나를 만나 결혼한다.

놀라운 것은 주인이 그에게 준 일이 숲 관리인인데 생계를 제대로 유지할 정도가 아니다.

이때 나타난 데너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된다. 그가 아내에게 보관하게 한 보석 상자는 아내를 홀린다.

신실하고 정직한 안드레스에게 데너의 정체는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이후 펼쳐지는 갈등과 맹세와 숨겨진 사실 등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끈다.

데너의 진실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섬뜩하고, 그 달콤한 유혹은 너무 매력적이다.

안드레스의 굳고 건실한 마음이 더 대단해 보인다.


<팔룬의 광산>은 실화에 바탕은 둔 소설이다.

엘리스 프뢰봄은 원래 선원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큰 상심에 빠진다.

이때 한 늙은 광부가 그를 광산으로 유혹한다. 그가 보여준 환상은 그의 발길을 팔룬으로 이끈다.

팔룬에서 그는 한 아름다운 여인 울라에 매혹된다. 울라도 앨리스를 사랑한다.

앨리스는 열심히 일하고, 견실한 광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광산으로 이끈 노인 광부가 나타난다. 그의 정체는 토르베른이다.

그는 이 광산의 고인물이다. 전설적인 존재다. 실제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행복했던 나날에 비극이 발생한 것은 작은 도발과 장난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실화를 재해석하고 덧붙인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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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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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단 일 년 만에 완성한 소설이다. 책소개를 대충 읽었을 때 BBC 선정 ‘2020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선정 ‘2020년 주목받는 100권’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을 때 최근 작으로 착각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이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된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엽기적인 장면들 때문에 조금 주춤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 느낀 예상 외의 참혹한 장면은 다른 소설을 읽을 때 느낀 감정을 초월한다. 이런 거침없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첫부분은 평범한 가족의 할아버지집 나들이다. 언니와 달리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차에서 힘겨워하지 않는 씩씩한 소녀 나쓰키가 등장한다. 자신을 마법소녀라 말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작가의 다른 소설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사촌인 유우를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할 때도 어린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 정도로 생각했다. 온 친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산속 마을의 풍경은 아직 대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금은 낭만적인 풍경이다. 연인 유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산속의 풍경을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와 달리 언니는 아주 이 상황을 힘들어한다. 엄마가 두 딸을 대하는 방법도 너무 다르다. 작은 딸 나쓰키를 머저리라고 부를 때 잠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우는 고모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유우도 이 사실을 안다. 유우는 자신을 포하피핀포보피아별에서 온 우주인으로 생각한다. 우주선을 찾으면 자신의 별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흔한 소년 시절의 재밌는 상상이다. 그런데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쓰키다. 아주 친해진 둘은 연인이었다가 나중에 서로 결혼한다. 물론 아이들의 결혼이다. 유우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서약서도 작성한다. 그 중에서 눈에 계속 밟히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기’다. 어린 소년 소녀가 왜 이런 단어를 사용해야 했을까? 그리고 나쓰키 엄마가 보여주는 차별과 학대는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나쓰키는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지 못한다. 엄마는 큰딸과 차별하고 학대하고 무시한다. 아빠는 방관자로 겉돌고 있다. 언니의 무시는 또 어떤가. 마음 한 곳이 망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법소녀로 회피하면서 유지한다. 느리고 서툰 그녀에 대한 엄마의 냉대와 학대는 그녀가 성폭행을 당한다고 말했을 때도 결코 사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작가는 엄마가 어떤 기존과 생각으로 나쓰키를 학대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이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펼칠 생각도 못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뒤틀린 현실 도피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유우와의 섹스다. 이 행위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지만 어른들이 볼 때 위험하고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둘은 만나지도 못하고, 나쓰키는 할아버지집에 가지도 못한다.


그날 이후 부모는 나쓰키를 집중 관리한다. 아이가 벌린 황당한 사건이 그들 가족의 삶을 어떻게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 생긴 학원 선생은 이전처럼 아이를 성폭행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학원 선생이 아이에게 구강 성교를 강요하는 장면은 아주 역겹다. 엄마는 도움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유우를 만났을 때도 자신의 입은 오염되었다고 말한다. 나중에 이런 자신의 경험을 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 친구들이 보여준 반응은 또 어떤가. 타인의 경험을 바로 보려고 하지 않고 그냥 다른 경험으로 뒤섞어버린다. 그녀의 삶이 계약 결혼으로 섹스리스 삶을 살게 된 데는 이런 과정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계약 남편 도모오미의 존재는 서로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된다.


인간에게 노동과 번식은 불멸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다. 섹스를 ‘사랑’이란 단어로 미화시키고, 아이를 낳기를 강요한다. 이런 현실을 그들은 공장이라고 부른다. 공장 속에서 자의식을 잃고 살아간다면 그들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각각의 이유로 이 삶을 살지 못한다. 남편 도모오미는 어릴 때 나쓰키가 경혐했던 시골마을 아키시나를 이상향처럼 생각한다. 이 마을에는 어른이 된 유우가 현재 살고 있다. 이후 이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읽으면서 강한 충격을 받은 장면들을 마주한다. 다름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변이는 무섭고 참혹하다. 몇 번에 걸쳐 그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 장면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상상과 비유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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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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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쿠니 가오리의 구작들이 리커버해서 나왔다. 읽은 책, 사 놓은 책이 있어 그냥 넘어갔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작가의 소설들을 매년 한 권 정도 읽고 있다.

나의 취향에 완전히 맞지 않지만 가끔 그 미묘한 심리 묘사와 상황 때문에 눈길이 간다.

언제부터인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이 나오면 눈길을 주고, 기회가 되면 읽는다.

오래 전 이 작가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이 끌리지 않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좋았던 기억들이 손길이 나가게 했다.


세 노인이 섣달 그믐날 밤에 함께 자살했다. 왜 함께 자살했을까?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이유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자살한 이유에 관심이 크게 없다.

이 세 노인이 만나 이야기하고, 자살하기 전까지 장면을 보여주지만 흔한 과거와 일상 이야기뿐이다.

그렇다고 이 세 노인의 자손들이나 지인들이 이 이유를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분명히 아주 큰 사건이지만 일상은 이 일에만 빠져 있기엔 너무 바쁘고 각자의 일로 가득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가까운 곳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본 이들의 삶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소설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이름들 때문에 누구와 연결되는지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저질 기억력을 가진 나에겐 더욱 그렇다.

역자마저도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기를 권할 정도라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세 노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여기에 지인들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누가 누구의 손자인지, 아들인지, 딸인지도 헷갈렸다.

뭐 나중에 자연스럽게 그 관계가 조금씩 들어왔지만 그만큼 앞부분에 놓친 것도 많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죽음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누군가의 아버지나 엄마,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일본어 선생님이었던 노인들이다.

그 후손만큼, 살아오면서 맺은 관계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모두를 다룬다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분량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몇 명을 뽑아내어 그들의 현재 삶을 보여준다.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것 중 하나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들이다. 관계다.

죽음은 가끔 잊고 있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누구나 다르다.

그들이 바란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기억이 더 많은 사람도 있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빨리 잊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일상에 몸을 맡기고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는 작은 도전을 펼치기도 한다.

이 각각 다른 삶의 방식은 또 다른 관계 속에서 이어지고, 끊어진다.

평범한 가족도 나오지만 욕할 수도 있는 가족도 나온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몸에게 맡겨 살아온 사람도 있다. 자식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이런 다양한 삶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알고 욕하기도 한다. 욕하는 것은 쉽다. 그냥 지나갈 뿐이니까.

하지만 그 삶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렇게 쉬울까?

다시 만났을 때 느낌은, 기분은 또 어떨까? 순간 머뭇거리고 어색해는 장면을 볼 때 잠시 숨을 고른다.

함께 수목장을 하면서 만난 각각의 가족들은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누구에게 연락을 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관계와 현재의 삶들이 조용히, 천천히 하나씩 풀려나온다. 복잡한 관계 몰라도 좋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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