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 삶의 의미
박상우 지음 / 스토리코스모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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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박상우 소설가의 글을 읽었다.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집에 그의 소설을 사 놓고 묵혀 둔 것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책장 한 곳을 차지하는 책들 중 한 권이 되었지만 장르 소설에 더 집중하면서 점점 뒤로 밀린다.

소설가의 산문집이라 선택했다. 시인의 산문집과 함께 가끔 읽는다.

21세기 인생 지침을 수록한 에세이집이란 소개글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작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크게 넷 꼭지로 나누고, 각 꼭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몇 개씩 풀어낸다.

읽으면서 검색하게 되는 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삶의 의미’다.

작가가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0.26초 만에 웹 문서만 2,250만 개 떴다고 한다.

지금 검색하니 0.37초에 약 23백만 개 정도가 뜬다. 며칠 전보다 시간은 줄고, 문서는 줄었다.

내 삶을 돌아보면 삶에서 특별한 목표나 의미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꿈도 소박했고, 현실에 더 눈길을 주었다. 누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답하지 못했다.

나에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욕심만 더 커진 것은 부끄럽다.


양자역학을 이야기할 때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알고 있던 이야기고, SF소설에서 너무 많이 봤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분기점마다 갈라진 우주가 생긴다면 우주의 엔트로피가 그 용량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단순히 지구의 60억 인구만 놓고 엮어도 무한대로 늘어난다.

만약 다른 행성에서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어떨까? 이 이론에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작품 목록에 <운명 게임>이란 소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노마드’란 단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지구가 하루 생활권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 비용과 소모되는 자원은 감안하지 않는다.

엄지족들이란 칭한 이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두루 돌아볼 필요가 있다.

행복과 욕을 엮어 풀어낸 이야기는 한때 베스트셀러가 된 <미움받을 용기>의 연장선이다.

‘명작’과 ‘교양’에 대한 글은 나의 생각을 새롭게 해주었다.

사치품이 어느 날 명품이란 단어로 바뀌면서 거부감을 지웠다. 뭔 명품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소설의 취향을 명작과 연결하고, 진짜 명작을 생각하게 하는 글은 교양이란 허구에 짓눌린 우리가 가슴에 아로새길 필요가 있다.


마지막 꼭지의 첫 글을 보고 최소한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책과 스마트폰을 바꾼다고? 책을 둘 공간도 부족한데. 스마트폰 속 책들은 어떻게 하고?

운명과 관상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0과 1의 데이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작가가 청춘 시절 노년을 꿈꾸면서 쓴 글 중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표현에 놀랐다.

비교적 체력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 나도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저녁이면 졸렸는데 대단하다.

시대와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담은 중년과 노년이란 단어와 인간의 신체는 생각할 게 많다.

비교적 천천히 조금씩 읽었다. 사람은 평생 학생이란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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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리를 내어 줍니다
최현주 지음 / 라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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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책방 ‘책봄’ 사장님의 에세이다.

가끔 책방 주인들이 내는 에세이를 읽는다. 자주는 아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어려움이 늘 나온다.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줄 때 괜히 미안해진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지 않는 나를 반성하지만 손은 늘 인터넷서점으로 향한다.

쌓인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생각하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동네서점에서 작가들을 불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부럽지만 현실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책을 사면서 사인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젠 그런 욕망들이 많이 사라졌다.

쌓인 책들과 읽으려고 쌓아둔 책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면서 마음을 멈춘다.

그렇다고 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가서 아이가 원하는 책을 산다.

이것도 아주 가끔이다. 학습 만화를 원하는데 시리즈이다 보니 모두 사 줄 수 없다.

한 권씩 사서 주면 금방 읽고 다른 책을 찾는다. 이럴 때 여기에서 저기까지 다 주세요를 하고 싶다.


책봄 책방 주인은 비건에 고양이 세 마리를 집에서 키운다.

비건이 된 이유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사는지 보여줄 때 그 노력과 열정에 고개를 숙인다.

봄, 여름, 겨울. 이 세 마리의 반려묘를 어떻게 키우게 되었는지 말할 때도 고개를 숙인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본가에 들어가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고 했을 때 또 한 번 놀란다.

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볼 때 아주 무례한 사람 한 명이 나온다.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순간 뜨끔했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견주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연한 듯 치우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날 책방 주인이 되었다는 표현에 공감한다.

만약 동네서점으로 성공하겠다고 생각하고 치밀한 준비를 했다면 아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책방 주인이 한가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회사 근처 서점을 거의 매일 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사라졌다.

새로운 책이 들어오고, 반품할 책들을 꾸준히 정리하는 그들을 보기 때문이다.

검색하기 보다 직원에게 바로 물어보는 손님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바쁘게 책 정리하고, 손임 응대하고, 서가 정보들을 입력하는 것을 보면 생각이 싹 바뀐다.

단순히 손님을 기다리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무지한지 알 수 있다.

잘 정리된 서가는 누가 정리하고, 청소는 누가 할 것인가?


동네서점이다 보니 화려한 이야기가 없다. 끈끈한 정과 인연들이 주로 나올 뿐이다.

물론 진상 손님도 나온다. 손님을 직접 마주하는 곳이니 없을 수가 없다.

책봄 손글씨 부분을 읽으면서 아주 많이 부러웠다. 나의 글씨가 점점 날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방이라고 했을 때 ‘뭐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주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왔다.

가끔 카페에서 독립서점용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표지보다는 내용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예 독립 출판물이라면 다르다.


두툼한 책은 아니지만 책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와 운영 이후 마주한 일들이 많이 나온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지난 추석 본가에 가서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던 서점을 보고 추억에 잠시 잠겼다.

다른 서점 한 곳은 문을 닫았는데 ‘책봄’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떠오른다.

아! 잊지 말자고 생각해 놓고 잠시 잊는 것이 있다. ‘지역번호+120’이다.

길에서 죽은 동물 사체를 치워주는 일을 하는 곳 전화다.

이 이야기를 읽고 오래 전 기억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갔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것 하나가 있는데 독립서점에서도 도서상품권 같은 것 받나요?

집에 몇 장 있는데 이것으로 독립서점 책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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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정온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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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K-스토리 공모전 SF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최근 이 공모전 수상작들을 재밌게 읽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세먼지를 드론으로 화학물질을 뿌려 없애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가까운 미래를 여행할 수 있는 간단한 타임머신이 발명된다.

이 기계로 갈 수 있는 과거는 3시간이다. 공식적인 발표는 그렇다.

한국은 이 기계를 하드웨어라고 부르고, 자살한 사람을 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자살자를 구하는 조직은 생명보호처 내 자살 예방 TF팀이다.


회영은 자살 예방 TF팀 팀원이다. 동시에 자살 방지법, 일명 이지은 법의 원인인 이지은의 딸이다.

생명보호처장 수경은 이지은의 친구이고, 그녀가 죽자 회영을 이 팀에 넣었다.

자살 신호가 울리면 이 팀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현장에 달려가 죽으려는 사람을 막는다.

자살이 막힌 사람들은 법에 의해 갇히고, 치료 등을 받는다.

이렇게 이 팀은 3년 이내에 99명의 자살자를 구했다. 하지만 아직은 정식으로 이 팀의 존재가 숨겨져 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이 팀의 존재를 궁금해한다. 말도 많다. 그래서 점심 시간도 살짝 뒤로 밀었다.


엄마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회영은 자랐다.

임신한 그녀는 수경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다.

엄마 지은이 자살한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다른 자살자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딸이 이해하기 쉬웠겠지만 그 이유를 모른다. 밝히지도 않는다.

어쩌면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바꾸면 안 된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하기에 엄마의 자살을 막지도 못한다.

회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를 보는 것 정도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하드웨어의 숨겨져 있던 기능을 발견하고, 그 시간을 최대한 늘렸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이 팀이 어떻게 자살자를 구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구한 사람이 불을 질러 많은 사람이 죽게 하면서 이 팀의 존속 문제가 생긴다.

회영은 불법적으로 하드웨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 먼 과거로 갔다.

이 때문에 회영의 하드웨어 배터리는 다른 사람보다 빨리 떨어진다.

개발자 이선이 이 사실을 말하지만 그녀는 과거 여행을 멈출 마음이 없다.

더 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신입생 이지은을 만난다.

회영에게 이 순간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자신을 낳기 전 엄마의 풋풋한 모습이라니.

둘은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은 배터리 때문에 짧을 수밖에 없다.

몰래 몰래 하드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우울증에 빠진 회영의 곁에는 처장이 준 스마트워치 D가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단순한 시계로 보인다. 

D는 회영의 일상을 관리해준다. 단순한 기능을 넘어 가족과 같은 존재다.

D에 존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상 생활의 편의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불법 시간 여행에서도.

어떤 순간에는 D의 간섭이 싫을 때도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 D는 목소리를 낸다.

이 간섭, 목소리, 함께함 등이 지닌 중요함을 깨달을 때 회영은 한 뼘 더 성장한다.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살을 다루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분위기가 무겁다.

다른 자살을 다룬 소설에서 그 무거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채운 소설들도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 계속해서 회영은 과거에 집착한다. 자신의 탄생에 회의한다.

하드웨어의 숨겨진 기능을 이용한다는 설정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낳는다.

과학적인 문제가 많지만 작가는 이 부분은 생략하거나 간결하게 처리한다. 시간여행의 패러독스 등이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고, 옛날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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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함 강감찬 몽실북스 청소년 문학
박지선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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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북스 청소년문학 첫 권이다.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다.

낯익은 작가 두 명과 새롭게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

개인적 취향과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가는 것은 역시 낯익은 작가 둘이다.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았다. 바로 귀주대첩이다.

강감찬 장군하면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처럼 귀주대첩에서도 수공으로 적을 무찔렀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평지에서 거란족 군대와 격전하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이상했지만 자료를 찾아 확인하니 작가들이 맞았다.


앞의 두 편은 과거의 전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뒤의 두 편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조동신의 <깃발이 북쪽을 가리킬 때>는 귀주대첩 현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 당시 전황과 위험한 평지 전투를 펼쳐야만 했던 이유 등을 설명한다.

사료에 기반한 구성과 작가의 상상력이 맞물려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펼쳐진다.

바람의 방향을 예측한 전술과 고려군의 강력한 의지 등이 이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다.

문관이 상원수가 되어 군대를 이끌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들려줄 때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본다.


박지선의 <설죽화>는 귀주대첩 대승의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여자의 몸이지만 뛰어난 무술 실력을 뽐내면서 적군을 무찌르고, 용감하게 싸운다.

하지만 그 용맹무쌍이. 동료를 구하려는 열정이 죽음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넘어가 그녀의 성장을 하나씩 보여준다.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아버지에게 겨우 허락을 받아 무술을 연마한다.

그녀의 곁에는 거란족 소년 동배가 있었다. 포로로 잡힌 그가 설죽화의 시신을 보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란족의 침입이 그 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니란 것을 과거사 속에서 알려준다.

무난하게 잘 읽히지만 왠지 모르게 툭툭 끊어지는 듯한 이야기 전개라 조금 아쉽다.


천지윤의 <낙성>을 읽으면서 낙성대에서 강감찬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가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멸종 위기에 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 거액이 필요하다. 이때 천억이 걸린 ‘낙성’이란 게임이 오픈한다.

음모와 배신, 숨겨진 비밀과 정의감 등이 엮이면서 문제는 해결된다.

조금 거친 구성과 급박한 전개 등은 개인 취향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전형적인 장면도 곳곳에 보이는데 이것도 아쉽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처음 읽는 청소년이라면 어떨까?


정명섭의 <우주전함 강감찬>은 조금 예상을 벗어났다.

제목만 보고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 이름이 강감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년 전 조난신호를 보낸 우주선의 이름이 강감찬이다.

주인공 철우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이 조난 신호 때문이다. 이때 해적선이 나타나 철우의 우주선을 공격한다.

위기에 처한 철우와 동료를 구해주는 것이 바로 전함 1019호의 인공지능 홀로그램 강감찬이다.

매끄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 간결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왠지 조금 아쉽다.

장편으로 더 많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넣어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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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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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무진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이다.

작가의 단편은 앤솔로지를 통해 만난 적이 있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은 내가 읽지 않은 앤솔로지나 잡지에 실렸었다.

장편 소설도 사 놓았는데 늘 그렇듯이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젠 나쁜 습관처럼 느껴진다.

모두 여덟 편이 실려 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어떤 이야기는 슬프고, 어떤 이야기는 동심을 파괴하고, 어떤 이야기는 웃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들을 뒤에 놓고 나를 놀라게 한 소설도 적지 않다. 장편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그 봄>은 마지막 반전을 보고 나의 머리가 점점 굳어간다고 느꼈다.

매년 두 형제가 머무는 절에 찾아오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형제의 모습이 진하게 그려진다.

읽다 보면 선입견에 빠져 이 두 형제 중 형 시원의 시선을 따라간다.

매일 밤 엄마를 찾는 동생과 그들에게 호의적인 스님. 그리고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듯한 보살들.

<마포대교의 노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포대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자살한다는 사실과 귀신을 본다고 말하는 경찰을 엮었다.

이 노파를 만난 행인이 갑자기 마포대교 밑으로 몸을 던진다. 자살을 유도하는 악귀 같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작가가 꽁꽁 숨겨둔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마포대교 위에 적힌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왜 적었었지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폴론 저축은행>은 온 가족 자살 시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얼마나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할까? 삶의 의지는 최후의 순간 멈춘다.

다시 살아보자 생각하고 택시 운전을 하는 그에게 한 노인이 이상한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미래에 생길 돈을 예측해 돈을 주는 은행 아폴론 저축은행이다. 선이자 뗀 후 9억5천만 원이 입금된다.

행복해야 할 삶이 몇 가지 불행한 가능성 때문에 뒤엉킨다.

마지막 장면은 억지 같지만 삶의 다양한 현실과 과거의 궤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상사화당>은 조선시대로 넘어간다. 독을 만드는 노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임진왜란 이후 몇 년이 흘렀고, 많은 도기 장인들이 왜국으로 끌려갔다.

그에게 잘 깨어지지 않는 튼튼한 옹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 사내가 한다.

이 옹기에 들어갈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섬뜩해졌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참혹함이 드러난다.

옹기 만드는 장면이 약간 더디게 읽히지만 곳곳에 깔아 둔 설정이 마지막에 크게 터진다.


<서모라의 밤>은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 이야기다. 황당하고 재밌다.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냈다. 그런데 그는 불로초를 먹고 난 후 죽지 않는다.

그리고 서복의 황당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는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고 말한다.

타임머신인 런닝머신의 배터리가 떨어져 번개로 충전하려고 할 때 황제를 만났다.

이 황제에게 그가 만들어 준 음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약 떡볶이다.

진시황은 이 떡볶이에 중독되었고, 이것을 가져오라고 동남 동녀와 배를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약 떡볶이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고,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다.

<비형도>도 신라의 전설을 현재와 엮었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고, 욕망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든다.

급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재밌지만 환상이 사라진 후 현실은 조금 힘이 빠진다.

연작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이중 선율>은 소방사의 힘든 현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시체를 실고 장례식장이 있는 전라도 광주까지 달려가는 구급차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예상은 뒤로 가면서 확인 가능하다.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여자 소방사가 들려주는 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안전을 둘러싼 두 가지 이야기가 병행하는데 하나는 해결되었지만 다른 하나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제목의 의미가 마지막에 드러날 때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피,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나기> 이후를 좀비식으로 풀어내었다.

원작의 동심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그 순수한 감정을 어느 선까지 남겨두었다.

소녀가 소년을 찾아와 벌이는 행위들은 너무 강렬하다. 순수한 듯하면서 잔혹하다.

이 소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마지막 장면은 현학적이고 스산하고 코믹하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가장 많이 채운 이미지는 개울가에서 소녀를 업고 건너가는 소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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