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1~3 세트 - 전3권 에세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심민화.최권행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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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몽테뉴의 <수상록>이란 문고판을 읽은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하고, 후대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해서 읽었었다. 어려웠다.

고전에 대한 환상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던 시절이라 도전했었다.

솔직히 말해 실패였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역시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방대한 분량과 고전을 인용해서 풀어낸 글들이 역시 쉽지 않다.

거의 2000쪽에 달하는 분량에, 세월에 의해 덧붙여진 내용들이 단숨에 읽는 것을 방해한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나의 독서법과 잘 맞지 않고, 그가 풀어낸 주장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옮긴이의 말’은 꼭 읽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수상록>으로 한 권 정도의 책으로만 알고 있던 나 같은 독자에게 이 책이 어떤 책이 살짝 알려준다.

‘10년의 번역, 5년의 검수’란 소개가 거짓이 아니란 것을 일기 시작하자 마자 알게 된다.

보르도본과 A, B, C 표식에 관한 것도 오랜 세월에 걸친 수정의 결과다.

당연히 이런 부분을 모두 실었는데 덕분에 나 같은 독자는 더 어렵게 읽을 수밖에 없다.

그냥 한 번에 읽으면 되는데 이런 표식이 있으면 괜히 지엽적이 것들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왜 제목을 익숙한 <수상록>이나 ‘에세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말한다.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도 검색하면 <몽테뉴의 수상록>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들이 보인다.


어마어마한 분량에 다양한 저자의 생각들은 피상적인 에세이의 이미지를 단숨에 박살낸다.

얼마나 풍부한 자료가 이 글들 속에 담겼는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역사와 고전 등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을 찾아내어 글 속에 풀어놓는다.

대부분 낯선 이름과 역사들이다. 그 시절 역사와 고대사를 모르면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다.

각 글들의 분량은 또 어떤가? 모두 제작각이다.

짧은 글은 2쪽으로 끝나고, 긴 글은 거의 300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런 분량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책 읽다 보면 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많다.

지루하거나 전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일 때 더욱 그렇다.


처음에 책의 목차 순서대로 읽었다. 습관적이고, 조금 안이한 접근법이었다.

1권을 3분의 1정도 읽었을 때 역자들의 말이 떠올랐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그 말.

관심이 가는 제목에 우선 눈길을 주었다.

<말의 공허함에 관하여>에서 수사학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과 “로마에서 웅변술이 번성한 것은 사태가 최악이었던 때, 내전의 폭풍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때였다.”란 문장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고대인의 검소함에 관하여>에 나오는 나의 상식을 살짝 깨트렸다.


<주벽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책에 관하여>을 읽다가 “이 에세들은 나의 변덕스러운 생각이요, 그것들을 통해 내가 하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읽다가 어려운 부분을 만나도 나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다. 두세 번 공략해 보다 내버려 두고 간다.”라고 할 땐 나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두세 번의 공략이란 것이다.

<레몽 스봉을 위한 변명>은 가장 긴 장이자 몽테뉴 사상적 변전의 중심축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몽테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병법에 관한 고찰>에서 카이사르를 ‘군사술의 진정한 최고 수호 성자’라고

말한다.” 낯선 표현이다.


이 책에 대한 극찬들을 읽다 보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글들이 보인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에 대한 이해도 차이일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는 베르길리우스의 시들보다 다른 시들이 더 많이 인용된다.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해 쓴 글들이 더 나의 시선을 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글도 보인다.

<헛됨에 관하여>에서는 “헛됨에 고나해 이렇게 헛된 글을 쓴 일보다 더 확실하게 헛된 것은 아마도 없으리라.”라고 적었지만 분량이 100쪽이 넘는다. 뭐지?

<외모에 관하여>에서 자신을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을 보면서 잠시 고민한다.

이 글을 쓰면서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냥 대충 훑었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시간 조금씩, 한 장씩, 혹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은 내버려둔 결과다.

언제 다시 조금씩 읽으면서 기억과 지식을 새롭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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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선 보급판) 디 에센셜 에디션 4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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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단편은 대학 시절 산 단편집 이후 처음이다.

그때 읽었던 단편 중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지만 <킬로만자로의 눈>은 확실히 생각난다.

아마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 때문일 것이다.

다시 읽은 느낌은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다른 부분에 더 눈길이 간다.

죽음 앞에 선 화자의 감정 변화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 등이 특히 그렇다.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이야기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다.

아프리카 사냥을 기본으로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와 복잡한 감정이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냥과 현실에서 마주한 사냥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보여준다.

사자가 자신을 향해 달려올 때 그 공포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부자와 미녀 아내, 아내의 불륜, 떠나지 못하고, 떠날 수 없는 관계. 현실적이다.

사자 사냥의 실패 이후 다른 사냥의 성공으로 매코머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는 또 다른 공포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인디언 부락>은 짧은 이야기인데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은 나의 이해를 넘어섰다. 그냥 그대로 볼 뿐이다.

<깨끗하고 밝은 곳>은 늦은 밤 카페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 풍경이 낯설다.

<빗속의 고양이>는 여행 온 부부와 고양이에 관심을 둔 아내의 심정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책을 보는 남편, 문을 두드리는 호텔 직원과 고양이 한 마리.

<때늦은 계절>은 여행객의 강 낚시 가는 풍경과 심리를 간단하게 묘사했다.

불법 낚시로 경찰에 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 놓고 온 도구, 안도감. 이 감정 표현이 좋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인과 바다>는 다른 곳에서 읽었고, 너무나도 유명해 생략.

에세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떠난 리옹 여행>은 미국 현대 문학의 두 거장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흥미를 자극한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나이가 더 많고, 문학의 선배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리옹으로 여행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생긴 일들이 무엇인지 등을 보여준다.

결코 평탄하다고 할 수 없는 여행 도정에 생긴 일들은 소설보다 더한 장면들도 많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외모에 대한 찬사와 마지막에 나오는 <위대한 캐츠비>의 감상은 아주 강렬하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여전히 단편은 읽고 난 후 이해가 되지 않고 낯설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그 장면들과 감정 묘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래 전 기억 하나가 늘 헤밍웨이 소설에 따라다닌다.

바로 그 간단한 문체다. 만연체에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 이 문장은 얼마나 낯설고 힘들었던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제 그 문장과 문체는 익숙해졌다. 나도 그 문장을 따라 하려고 한다.

다시 읽은 헤밍웨이의 단편은 분명히 이전과 달랐고, 다른 단편으로 관심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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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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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2022년 신작이다. 아직 읽지 않은 기타기타 시리즈 중 신작이다.

현재 기타기타 시리즈는 두 권 나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편을 읽지 않아 의문이 생기는 대목도 있고, 살짝 풀어놓은 이야기에 혹한 부분도 있다.

문고상 기타이치의 활약과 정체가 불명확한 기타지의 존재는 책을 다 덮은 지금 여운으로 남았다.

일본 시대극이다 보니 그 시대의 의상과 문화와 계급 등에 대한 설명이나 주석이 상당히 많다.

덕분에 속도를 내다 잠시 늦추고, 다시 속도를 올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반 이후는 나름 요령이 생겨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재밌다.


모두 3화로 구성되어 있다. 요 앞에 읽은 <인내상자> 덕분에 세 편의 중편 소설집으로 생각했다.

1화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다 읽을 때까지도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2화와 3화가 이어지면 이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생각하지 못한 구성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문고상 기타이치다. 소설을 읽으면 문고상이 어떤 직업인지 잘 몰랐다.

편집자 후기를 읽은 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대한 미야베 월드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을 보면서 잠시 고개를 끄덕인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조금 정리해서 언젠가 도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어진다.

이전 시리즈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번 편집자 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한 편의 장편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1화만 놓고 보면 독립적인 단편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가 이어진다.

기타이치라는 평범한 인물을 내세워 그 시대의 풍경과 삶 등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시대극에서 큰 활약을 한 모양이다.

편집자 후기만 거의 40여쪽에 달해 그 방대한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 시리즈들을 읽다 보면 이 후기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보선 그림과 등을 돌린 변재천 님이 엮이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상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림이 아기를 부른다고 했다가 그림이 아기의 죽음을 데리고 온다고 한 부분은 감정적이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가 사람이기에 상황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기타이치가 임신을 불러오는 그림으로 문고본을 만들려고 했을 때 반대한 이유도 이것이다.

임신을 한 여성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기가 죽으면 복이 화로 변한다.

기타지가 주은 그림과 영험하다고 한 그림이 대비된다. 인간의 욕망이 다른 해석을 불러온다.

마지막에 진상에 도달한 결론은 씁쓸하다.


2화와 3화는 바로 이어져 있다. 2화의 소제목이 <짱구머리 속에 든 것>이다.

짱구가 다른 시리즈에 등장했다고 한다. 편집자 후기에 의하면 기타기타 시리즈에서도 한몫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은 모모이 도시락 가게의 일가족이 독으로 죽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쉽게 판단하면 일가족 자살이지만 검시관 구리야마에 의하면 타살의 가능성이 더 높다.

작가는 법의학 상식을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몇몇 묘사가 닮았다.

사건 현장에 다른 신발을 신게 하거나 머리를 묶거나 족흔을 기록하거나 등.

누가 먼저 죽었는지도 밝혀 내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물론 나중에 어떤 식으로 사람을 독살하게 되었는지 기타지의 가설이 나오는데 섬뜩하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구시대의 범죄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물리적 증거나 상황에 대한 수사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을 우선하는 사회의 문제를 직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자백이 아니라 ‘고문’에 의한 자백이다.

당연히 그 자백은 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한다.

모모이 가족 살인 사건도 유력한 용의자가 잡은 후 고문했고, 자백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잔혹한 고문 때문에 죽었다. 법적으로는 사건이 해결되었다.

이런 사건을 누군가가 다시 파헤친다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묘한 문제들이 나온다.

결국 진실은 기타이치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관찰로 단서를 찾아낸다.

언제나처럼 일본 시대극은 초반 진입이 어렵다. 중반 이후는 역시 미미 여사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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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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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15권이다.

이 시리즈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읽은 것은 단 한 권 <아이 틴더 유>뿐이다.

단 한 권 읽은 것 때문에 이 시리즈가 경장편만 다룬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제대로 표지도 보지 않았다.

이번 책은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다룬다는 소개 글이었다.

이전에 나온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판타지 설정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것도 역시 오판이었다.

착각과 오판으로 시작했지만 소설은 잔잔하지만 재밌는 설정으로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는 처음 읽으면서 빵 냄새 가득한 카페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저승차사가 나타난다.

이승에 있는 부모가 영혼 결혼식을 시켰다는 것이다. 배우자는 게이인 천주안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귀신은 고양미다. 먼저 저승으로 온 선배다.

영혼 남편 천주안에게 사후 세계를 알려준다. 아! 영혼 결혼식을 올린 두 귀신이 이혼할 수도 있다.

단편 속에 자세한 이야기를 요약하고, 두 사람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나온다.

양미는 게임을 하다가 옆집에 불 난 것도 몰라서 죽었고, 천주안은 부모의 결혼 강요에 홧김에 자살했다.

둘 모두 황당하다. 그리고 영혼이 어떻게 소멸하는지 알려준다.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부모나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면 소멸한다. 양미가 PC방에 자주 가는 이유다.


<마음소라>도 기발한 발상을 보여준다. 처음 대충 봤을 때 ‘마음소리’인 줄 알았다.

이 마음소라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평생 하나 만들어지고, 마음소라의 주인이 진심을 담아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소라 속 마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음소라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양고미에게 도일이 이 마음소라를 주고 사랑을 고백했을 때 얼마나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있었을까?

불타는 청춘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둘의 사랑은 진실했고, 그 기한은 다른 청춘과 별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마음소라의 소리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서로 헤어진 후 이 마음소라를 찾은 것은 도일의 아내 천양희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듣지 못하지만 달라고 한 양희, 그 이면에 있는 감정은 또 어떤가.

간결한 이야기 이면에 담긴 씁쓸함과 아련함 등이 마음 한곳에 파고든다.


<페어리 코인>은 놀라운 부동산 사기 수법 하나를 먼저 보여준다.

확정일자를 하루 지난 후 받았는데 그 사이에 매매를 한 후 대출을 받았다.

사고 팔고 중계한 모두가 짠 사기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는 말에 아득해진다.

재밌는 것은 사기 당한 이 부부에게 요정이 있다는 것이다. 화자인 나의 오랜 친구다.

아주 오래 전 할머니의 할머니가 산에서 발견하고 딸들에게 물려준 요정이다.

요정이니 당연히 이것을 팔라는 요청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팔지 않고 함께했다.

그런데 남편 우진의 친구 현철이 페어리 코인을 만들어 사기를 치자고 한다.

자신들이 당한 사기에 대한 복수다. 모든 것은 현철이 준비하고 요정만 데리고 무대에 나오면 된다.

수많은 코인 사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간결하게 요약해서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에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과거 기억 하나가 우진에게 떠오른다. 여운을 남긴다.


세 편 모두 판타지 설정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설정 뒤에 담기 이야기는 현실의 우리 삶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기억하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당한 것에 좌절하고, 복수에 힘을 낸다.

그리고 앞의 두 편의 주인공은 애너그럼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고양미, 양고미.

에세이 <이유리위원회 산하 의문규명위원회의 어떤 오래된 어젠다에 관하여>도 한 편의 소설 같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설정을 가져온 듯한 도입부가 시선을 끈다.

몇몇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의 오래된 어젠다를 보면서 “나도 그런 부분이 있지” 말한다.

아주 짧은 단편집이지만 끝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이 작가의 데뷔작과 앤솔로지 참여작들을 한 번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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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골 - 축구 역사를 빛낸
Aczel 지음, 서지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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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카투니스트 Aczel이 축구 역사상 가장 멋진 최고의 골 장면을 일러스트로 그리고 해설한 책이다.

여덟 장으로 나누어 최고의 골부터 최고로 이상한 골까지 230개의 골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 골들이 선택되었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내가 못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으로 표기된 골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멋지게 그려내었다.

일러스트이다 보니 내가 보지 못한 골들 대부분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몇몇 장면은 인터넷 검색으로 그 대단한 골을 확인해야 했다. 대단한 골들이다.


누구나 꼽는 최고 중의 최고 골은 마라도나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영국과의 8강전 골이다.

최고의 골 장면을 꼽을 때면 항상 나온다. 왜 마라도나가 최고의 선수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 골과 함께 항상 따라다니는 골이 있다. 바로 ‘신의 손’이라 불리는 골이다.

저자는 이 골을 최고로 이상한 골로 꼽았다. 만약 올해 마라도나가 카타르 월드컵에 뛰었다면 노 골이다.

판정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보다 심판의 권위가 우선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업사이드 판정 때문에 첫 경기를 패한 아르헨티나 팀이 떠오른다.


그 다음 순서로 즐라탄의 태권도 슛이다. 30미터 오버헤드킥이다. 이 거리에서 오버헤드킥이 되다니.

3위로 메시가 바로셀로나 시절에 넣었던 마라도나와 닮은 꼴 골이다. 왜 메시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4위로 카를루스의 바나나킥이다. UFO 킥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이 슛이 아주 자주 방송에 나왔다.

5위는 지단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넣은 발리 킥이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이 슛보다 더 멋진 골이 많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게임의 중요성, 리그의 수준, 골의 대단함 등을 감안해서 정한 것 같다.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더 대단한 골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후에 나오는 골들은 앞의 네 골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저자는 단순히 골 순간만, 그러니까 어시스트 순간만 다루지 않는다.

그 골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다 보여준다. 선수들의 움직임과 골의 궤적, 수비수 등의 위치 등.

멋진 패스를 발리 슛으로 마무리하거나 오버헤드킥으로 넣거나 UFO처럼 날아가 들어간다.

지루의 전갈 킥은 또 다른 모습의 슛이다. 이후 이런 슛은 적지 않게 나온다.

심지어 골키퍼가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기도 한다. 날아서 발 뒤로 골을 넣는다. 최고의 골키퍼 골 참조.

골키퍼 자책골 중 하나는 영상으로 보면서 장난 아닌가 했던 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진짜다.

황당한 자책골들은 또 다른 기억들을 불러온다. 영상으로 찍힌 순간 그 골들은 영원히 박제된다.


내가 생중계로 바로 본 골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축구를 특별히 찾아볼 정도의 팬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때 손흥민의 경기는 열심히 찾아봤다. 그때 푸스카스상을 받은 골을 바로 봤다. 대단했다.

골키퍼의 선방으로 몇 골을 놓친 후 폭풍의 질주 후 넣은 골이다.

아마 나처럼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들의 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끔 채널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프리미어리그 골 장면만 모아 보여주는 방송이 나온다.

이때 넋을 잃고 볼 때가 많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런 경험을 그림으로, 상상으로 해 본 책이다.

몇 골은 영상이 없지만 거의 대부분 영상이 남아 있어 찾아볼 수 있다. 시간 나면 몇 골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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