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가득찬 어둠
주위
충만한 빛
보잘것 없는 작은 별
-떨림과 울림, 김상욱

반짝거리는 시간이 담겼던
당연해 소중한 줄 몰랐던
언제나 예정된 즐거움
밖으로 걸어나가면
다시 더 차가운 밤
다시 새까맣고
고요한 시간
단 하나의
마음속
작은



어려운 물리학하는 사람이 무슨 글을 이리 다정하게도 잘 쓰는지 몰라요. 세상 불공평하게.
아닌가 세상은 공평한가. 결국은 이런 사람이 이렇게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보면.

ㅂㄲㅂㄲ라는 이름. 신입회원들이 오면 소리내 말하기 부끄럽다고.
부끄부끄라고 ㅋㅋ 수줍지만 또이또이 얘기하시던 모습들이 생각나요.
따뜻하게 뜨뜻미지근하게 언제 끓었는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 남은 온기에도
벌써 2020년 11월 추운 가을날이네요.

저는 12년 6월 처음 이 도시에 왔어요. 퇴근이 빠를 때라 책모임이나 하나 할까 했죠.
'향연'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전 촌스러우니까 책모임은 역시 손글씨지 하면서 손으로 구인광고를 만들었어요.
는 한 장 쓰고 후회했어요. 손이 너무 아팠어요.
열 장은 써붙여야 할거 같은데.
귀찮아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에 독서모임을 검색했어요.
이름이 좀..ㅋㅋ 별로였는데 하나 있더라고요.

저는 2012년 11월 28일 <정재승의 과학콘서트>가 첫 모임이었어요.
사실은 21일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가 첫 모임이 될 뻔했거든요.
도시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무슨 일 생겨도 도움 청할 곳 없다는 생각에
수상한 모임이 아닌가 먼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근데 매주 한다던 모임장소에 갔는데
(가입한다고 연락해보기 전에 염탐을 하러 감 수상하면 향연 전단지 붙일라고)
아무래도 책모임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날이 딱 모임장소가 ㄷㅇㄼㄹㅇ으로 바뀌던 주였어요.
계획과 다르게 염탐도 하지 못하고
수상한 곳일수도 있는데 연락처도 노출하고
얼굴까지 노출되게 생겨서 대단히 스트레스가 심했어요.ㅋㅋ

(그러니까 ㄷㅇㄼㄹㅇ 가게 사장님은 한번씩 바뀌었는데
2012년 11월부터 ㅂㄲㅂㄲ가 거기서 모임을 한 게 되네요.
카페 사장님이랑 직원들도 들고나고
저도 이사오고 가고 오고 들고나고
ㅂㄲㅂㄲ만 수요일 저녁마다 거기 그대로 있었나봐요)

암튼 그래서 할수없이 무방비로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모임에 갔어요.




2003년판. 제가 읽었던 표지죠.

2011년판. 이 표지로 모임을 했어요. 어쩔 수없이 다본책을 샀죠. 그때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던 20대 시절이니까 무슨 다큰 어른들이 이런 책을 읽나 했죠.ㅋㅋ
는 철회합니다.ㅋㅋ 마음이 넓은 분은 이제라도 이해해주세요.

2020년 7월판. 개정판이 또 나왔어요. 부러워라.
저는 2012년에 모임에 가서도 이 과학자는 똑똑해서 연구도 잘하고
글도 잘 쓰냐고 부러워했는데 8년뒤인 올 가을도 엄청 부러워하고 있어요.ㅋㅋ

아 암튼 그래서 모임에 갔는데 자기소개는 책 이야기 끝나고 제일 마지막에 한다는 거에요.
어떻게 알았지? 제 스타일이었어요.
왜냐면 염탐을 못했기 때문에 이상한 모임이면 자기소개는 대충 하고 사라지려고 했고
괜찮은 모임이면 적당히 자기소개하려고 했죠.(이름이라던가 그리고 이름이라던가 그리고 이름이라던가..? 간단하고 인상에 남지 않는 자기소개 있잖아요.)

솔직히 이제 세월이 한세월인데
모임이 어땠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ㅋㅋ 기대하지 않았죠?)

암튼 그래서 자기소개시간이 되었는데
프리스타일로 소개하고 싶은 만큼 알아서 소개하더라고요.
어떻게 알았지? 제 스타일이었어요.
촌스럽게 나이는 몇살이냐 어디사냐 무슨일하냐 결혼은 했냐 호구조사당하면
아무리 괜찮아도 때려칠 생각이었거든요.

암튼 그렇게 저는 ㅂㄲㅂㄲ에 님님거리면서
영원히 신입들을 경계하고 기다리면서
어물쩡 고이게 되었다는 이야기.
(영원히 고이게 되었다가 아니고 영원히 경계하고.)




아, 옛날 얘기 꺼냈다고 해체식 운 뗀거 아니에요.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아, 다른 사람들 모임 왔던 첫날 얘기가 궁금한 건 맞아요.
들어도 들어도 기억안나고 또 재밌으니깐.ㅋㅋ
처음 왔던 날 무슨 책이었는지.
무슨 책이었는데 그냥 참고 와봤던 건지.
첫날부터 안 읽고 가도 되나 하면서도 왔는지.
1등으로 도착해서 장소가 여기 맞나 걱정했는지.
아무리 부인해도 결국은 타는 목마름으로 왔었다고.
정말 꿈처럼 놀라운 책모임이 거기 있었다고.
막내딸래미 결혼식 전날밤 누워서
그 딸래미 걸음마 떼던날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이 있었는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노부부 느낌으로.


오늘 수요일이었네요.
다음주 수요일 저녁에 ㄷㅇㄼㄹㅇ에서 오랜만에 책이나 보러 다녀오려고요.
자주는 못가고 한 달에 한번 바람쐬러 나다닐까
요즘 줌을 하도 많이 써서 카메라도 새로 샀는데.
<배움의 발견>은 아.. 이제 내용 다 까먹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본거라 집에 책도 없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징하게 먹먹하고 두꺼웠다는데.
띄엄띄엄 궁금한 목소리들 좀 들리려나
조용히 읽다 오려면 책을 여러권 싸들고 가는게 안전하려나
역시 두꺼운거 한권 가져가면 충분할까
어떻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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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했던 송년회 책교환을 미리 했다.

송년회를 앞두고 E언니가 휴가를 갔다가 블라인드 책방이란 신문물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책이 안보이게 싸서 책에 대한 설명을 보고 사는 방식이었다.

신박했다!

가게가 덕잘알이네 우리도 하자~~

E언니는 신나서 쿠팡에 포장지를 주문했다.

M언니는 쓰레기 생성되니까 포장은 하지 말자고 했다.

ㅋㅋ

나도 신나서 포장지를 살뻔 했는데

단호박 M언니의 온화한 얼굴이 떠올라 동네책방 종이가방에 넣기로 했다.

사실 요즘은 크라프트지 한장 사기도 쉽지 않다.

송년회의 책교환이란

시작했던 큰 의미는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짝에도 쓰잘데기없는 책들을 처분하자는 뜻이었다.

꼴보기싫은 책들을 방출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조금씩 변질되어

책을 사서 가져오는 사람이 슬쩍 생기더니

세상에 마침내 포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준비한 건 다 다르지만 표현하는 방식도 다 다르지만

인기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하다.

ㅋㅋㅋ


다큰 여자들끼리 인기있는 종이짝을 차지하기 위해

까르르하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시원하게 초장부터 꼴찌가 됐다.

다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다 궁금하긴 했지만

마음속 1등과 2등을 골랐다.

2등은 가위바위보 전부터 이거 꼴등거네~ 란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느긋했다.

ㅋㅋㅋ

반전은 없었다.

마음속 2등은 나의것!!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책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책들은 딱 맞춤한 새 주인을 찾아갔다.

이기호의 책은 짝이 이기호의 팬인 사람에게.

따뜻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책은 갑자기 혼자서 벼랑에 선 듯한 사람에게.

신간의 여파인지 이슬아의 책이 두권이나 등장했는데

한권은 다음책 정말로 롤랑바르트를 강행한다면 쉴거에욧 하는 사람에게.

한권은 새주인 찾아가자마자 바로 읽어버린 사람에게.

전쟁X경영책은 전쟁사 팟캐같은거 들어보고싶다 들어보고싶다 생각만 하던 나에게.

클라이막스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다.

쿠팡이 보내준 포장지에 고이고이 트렌디하게 예쁘게 정성껏 포장한 책은

제로웨이스트를 좋아하는 M언니에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올해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카톡으로 책모임을 해봤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모임의 시작과 끝에 다른 물리적인 준비와 마무리가 필요하지 않아서 좋아했고

(세수하고 잠옷을 입고 원하는 맥주나 원하는 차를 옆에 놓고)

타자치는 게 말보다 느려서 평소보다 총시간을 늘려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해서 아쉬워했다.

(모임장소까지 앞뒤 이동시간을 포함해서 모임을 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책을 위한 카톡방을 따로 만들어서 고스란히 기록이 남아서 좋아했고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먼저 자버려도 재밌는 얘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같이 얘기하고 있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건 모니터뿐이어서 좀 아쉬워했다.

(같이 이야기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도 미묘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다시 물어본다.)

그래도 영상이나 이미지같은 걸 바로 띄워서 함께 볼 수 있어 좋았고,

그냥 같이 읽고 함께 얘기하는 게 좋았다.

마무리 오프모임은 책모임없이 모임만 했다.

시즌2를 할건지

어떻게 할건지

누구랑 할건지

이야기해야 했다.

시즌2를 어떻게 할 건지 대충 카톡에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쉬 정해지지 않았다.

지혜로운 누군가가 다음 책 얘기를 먼저 꺼냈다.

책이 정해지면 다들 하고 싶겠지.

그래서 책을 먼저 정했다.

6명 중 4명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투표했다.

왜때문이죠?

참사를 막기 위해 나는 이번에 사랑의 단상 실물을 준비했다.

다행히 모두(?) 한마음으로 없던 일로 했다.

우선 다들 아쉬운 척 했다.

ㅋㅋㅋ

우린 정말 아쉬웠던 게 맞다.

사실 시즌2를 어떻게 할건지 얘기가 진행되지 않은 건 이유가 있다.

E언니랑 H언니가 쉰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둘이 쉬 쉬게 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하기로 정한 걸 미룬다.

책을 바꾸고, 얼굴을 보고, 맛난 걸 먹고, 이야기를 했다.

은근슬쩍 다함께 다음달에 시즌2가 시작된다.

12월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1월까지 쉬자는 사람도, 야심차게 1월부터 시작하자는 사람도 있다.

은근슬쩍 또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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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가득찬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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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빛

보잘것 없는 작은 별

-떨림과 울림, 김상욱


반짝거리는 시간이 담겼던

당연해 소중한 줄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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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차가운 밤

다시 새까맣고


고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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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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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M언니, Y언니, D언니, Y언니와 함께 오프 모임을 했어요.


다들 나름나름의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Y언니가 불러주어서 고마워했어요. H언니를 깜빡해서 아쉬워했고, 비하인드로 멤버들을 부르기전 고민도 듣고요. 참 신기한 건 저라면 고민하는데만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고 고민하는거 자체에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을 거 같아요. 근데 초혼을 시작하면서 안되면 또 다르게 해보지뭐 했다는 게 참 Y언니다웠어요ㅋㅋ 그래서 우리가 어제 각설탕을 많이많이 지어낼 수 있어서 고마워요♡


한달동안 개성이 다른 많은 차들을 마셨는데 어땠을까? 어떤 차가 맛있었을까? 어떤 차가 뛣이었을까? 어떤 차가 새로웠을까? 어떤 차에 반했을까? 궁금했었어요. 차는 3g이지만 각설탕은 무제한이니깐.. 어떤 차 마시징??? 하는 설렘, 이건 무슨 맛일까나~~ 하는 두근거림으로 3분을 기다리는 것. 찻잔에 코를 박고 마음껏 향기를 누려보는 것. 인생의 첫 모금을 한입 가득 채우고 차를 느껴보는 것. 사소한 것들을 내려놓고 차를 한모금 한모금 마시는동안 세상과 분리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그리고 고무장갑끼고 설거지하면서 다음에 또 시간내어 나를 위해 한잔 마시고 싶다는 느낌. 모두 선물하고 싶었어요. 


차는 종류도 많고, 맛도 다르고, 끝이 없어요. 하나하나 특색이 강한 차들이 많다보니 마시다보면 몰랐던 내 취향이라는 걸 하나씩 하나씩 캐나가게 돼요. 그런 과정들 자체도 의미가 있는 취미라고 생각해요. 가격과 상관없어요. 언제나 맛있고 저렴한 차가 좋은 차에요. 대중의 취향과 상관없어요. 오롯이 나에게 맛있는 차가 좋은 차에요. 맛의 중심, 취향의 중심, 공간의 중심, 시간의 중심으로. 나를 나자신으로 돌아가게끔 도와주어서 마실수록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함께 마신다고 생각하니 더더.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게 요즘엔 타이밍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저는 싫어하던 차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품에 안게 되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낯설어서 싫어했던 건가 싶기도 하거든요. 타이어 탄내가 나는 랍상소우총, 날카롭고 신 맛의 히비스커스, 향수냄새같은 얼그레이, 곡차같이 구수한 동정우롱ㅋㅋ 엄청 많죠? 그전엔 도대체 뭘 마셨나 모르겠어요ㅋㅋ 지금은 모두 사랑해요. 비내리는 날 랍상소우총도 먹고싶고, 쨍쨍한 한여름 얼음 쨍글한 히비도 먹고싶고, 나른한 오후에 기분전환으로 얼그레이도 먹고싶고, 시간 여유가 좀 있으면 동정우롱도 먹고싶어요. 책읽기도 참 차마시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취향의 발견.


예쁜 홍차책을 함께 보고 홍차 이야기를 하자고 모였지만 홍차 얘기보다는 다른 얘기를 더 많이 했던 날이었어요. 사실 더 궁금했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낼지. 그래서 홍차의 마법이 제대로 걸린 것 같아 좋았어요. 홍차는 거들 뿐이니까.(는 빙수먹다가 정신팔려서 이야기나눈거 까먹음ㅋㅋ) 이제 기록하지 않는 건 기억으로 남지 않는데.. 빠뜨린 이야기들은 마음속에 각설탕으로 따뜻한 느낌적 느낌으로 잘 담아두었다 한달간 야금 야금 녹여먹으며 각자의 일상을 꾸려나가봐요. 각자의 색 그대로 더 풍부한 스펙트럼으로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저녁이었어요.


같지만 다르게. Natural 本 책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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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모임의 맛

 

  이번주 책이 도서관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읽다보면 여긴 누가 좋아하겠다 싫어하겠다 키득거리면서 같이 읽어야지 싶은 마음, 자식같이 내놓은 다음달 후보책을 누구라도 골라주었으면 하는 바람, 어떤 말주제를 골랐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운 얼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책을 같이 읽고 있었으면 하는 욕심, 반가운 얼굴이 책과 함께 환하게 앉아있을거라는 믿음, 오늘 갑자기 사람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가만히 앉아 타인이 기꺼이 내놓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마음껏 훔쳐듣는 자유, 같은 책을 읽고 와닿은 부분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놀라움, 내 생각과 다른 말에도 공감하고 고개 끄덕이며 박수치는 기적, 다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들에 헤어지기 아쉬운 발걸음,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어떻게 하나의 글로 남겨질까 하는 기다림, 그다음엔 또 새로운 이번주 책이 도서관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읽다보면 이건... 매주 반복되는 아는 맛이란 이렇게나 무서워서 제가 모임에 돌아오도록 한번씩 양심을 찔러주신 두분께 특히 또 모임을 지켜준 좋은 책들을 골랐던 수많은 리더님께 또 가끔씩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대화를 풍성하게 채웠을 모든 참석회원분들께 고마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300회가 넘는 그많던 수요일에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같이 읽는 책한권의 호흡이 짧고 2시간정도라는 시간의 제한 덕분에 독서모임하면 떠오르는 깊이있는 공부나 격렬한 토론보다 책과 자기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되도록 주제책에 한해 이야기하고, 읽으며 떠오른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어쩌면 감춰놓았던 이야기들도 스스로 기꺼이 풀어놓고, 타인의 삶과 얘기들에 웃고 울고 귀기울이면서 누군가 가져온 책 너머 주제에 닿은 지식과 생각거리가 있을 때는 감사히 배웠습니다. 차례차례 이야기를 하며 작가의 말 나의 말을 타인에게 눈빛으로 표정으로 말로 공감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이란것도 조금씩 생기고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요일이 편안한 대화의 장이었던 건 아닙니다. 모두에게 열어놓는다는 점,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참석한다는 점, 민주적으로 다양한 책을 선정한다는 점이 우리 모임을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가치이지만 반대로 언제든 책모임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든다는 점이 대화를 풍성하게 했지만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면서 자기 자신의 말만 가르치려하는 사람들도 섞여들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는 점이 오랜만에 참석해도 가볍게 나올 수 있게 했지만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나오지 않는 수요일도 있었습니다. 혼자라면 평생 읽지 않았을 새로운 책들을 읽으면서 인식의 경계를 넓힐 수 있었지만 가끔 모임의 포용성을 과신하는 책들이 단독으로 후보에 올라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더 많은 경청자들, 역대 회장님들을 포함해 역할을 바꾸며 자리를 지켜온 파수꾼들, 사람을 끌어당긴 좋은 책들이 오늘의 수요일을 만들었습니다.

 

  7월 말에 함께 읽은 대변동은 위기에 대한 책이었어요. 개인이 자발적으로 모인 우리 책모임에도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 내부적 요인에 위한 위기, 급진적 변화에 의한 위기, 점진적 변화에 의한 위기가 모두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주 수요일도 함께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2개월간 슬기롭게 책모임을 지켜준 H회장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말로 다하지 못하는 고마운 마음은 13개월째에 부탁드리는 일이 없도록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8살된 이 횃불을 기꺼이 이어받아준 G님과 S님에게도 감사드려요. 이 횃불이 꺼지려고 하지 않는지, 횃불든 사람들이 숨가쁘지 않은지 역시 모두 함께 마음썼으면 해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집단으로 상상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화, 종교, 계급같은 것들, 오늘날의 국가와 회사같은 것들까지. 우리 책모임의 실체가 뭘까? 네이버 밴드인가? 회장인가? 여기 같이 밥먹는 사람들인가? 수요일 저녁의 카페인가? 생각해봐도 모두 아닌 것 같아요. 실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던 책모임의 맛을 경험한 개인이 오늘 책 한번 나가서 같이 얘기해볼까? 생각하는 마음의 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랄 때 가장 큰 걸림돌인 자기자신과 겨루어 이기며 소중한 자기존재감을 스스로 올리는 기회를 매주 수요일 맛보시길. 책이 주는 지식과 함께 나누는 대화는 덤입니다.

 

19828

2019 가을겨울 회장 이·취임에 감사드리며

링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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