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했던 송년회 책교환을 미리 했다.

송년회를 앞두고 E언니가 휴가를 갔다가 블라인드 책방이란 신문물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책이 안보이게 싸서 책에 대한 설명을 보고 사는 방식이었다.

신박했다!

가게가 덕잘알이네 우리도 하자~~

E언니는 신나서 쿠팡에 포장지를 주문했다.

M언니는 쓰레기 생성되니까 포장은 하지 말자고 했다.

ㅋㅋ

나도 신나서 포장지를 살뻔 했는데

단호박 M언니의 온화한 얼굴이 떠올라 동네책방 종이가방에 넣기로 했다.

사실 요즘은 크라프트지 한장 사기도 쉽지 않다.

송년회의 책교환이란

시작했던 큰 의미는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짝에도 쓰잘데기없는 책들을 처분하자는 뜻이었다.

꼴보기싫은 책들을 방출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조금씩 변질되어

책을 사서 가져오는 사람이 슬쩍 생기더니

세상에 마침내 포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준비한 건 다 다르지만 표현하는 방식도 다 다르지만

인기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하다.

ㅋㅋㅋ


다큰 여자들끼리 인기있는 종이짝을 차지하기 위해

까르르하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시원하게 초장부터 꼴찌가 됐다.

다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다 궁금하긴 했지만

마음속 1등과 2등을 골랐다.

2등은 가위바위보 전부터 이거 꼴등거네~ 란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느긋했다.

ㅋㅋㅋ

반전은 없었다.

마음속 2등은 나의것!!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책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책들은 딱 맞춤한 새 주인을 찾아갔다.

이기호의 책은 짝이 이기호의 팬인 사람에게.

따뜻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책은 갑자기 혼자서 벼랑에 선 듯한 사람에게.

신간의 여파인지 이슬아의 책이 두권이나 등장했는데

한권은 다음책 정말로 롤랑바르트를 강행한다면 쉴거에욧 하는 사람에게.

한권은 새주인 찾아가자마자 바로 읽어버린 사람에게.

전쟁X경영책은 전쟁사 팟캐같은거 들어보고싶다 들어보고싶다 생각만 하던 나에게.

클라이막스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다.

쿠팡이 보내준 포장지에 고이고이 트렌디하게 예쁘게 정성껏 포장한 책은

제로웨이스트를 좋아하는 M언니에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올해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카톡으로 책모임을 해봤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모임의 시작과 끝에 다른 물리적인 준비와 마무리가 필요하지 않아서 좋아했고

(세수하고 잠옷을 입고 원하는 맥주나 원하는 차를 옆에 놓고)

타자치는 게 말보다 느려서 평소보다 총시간을 늘려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해서 아쉬워했다.

(모임장소까지 앞뒤 이동시간을 포함해서 모임을 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책을 위한 카톡방을 따로 만들어서 고스란히 기록이 남아서 좋아했고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먼저 자버려도 재밌는 얘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같이 얘기하고 있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건 모니터뿐이어서 좀 아쉬워했다.

(같이 이야기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도 미묘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다시 물어본다.)

그래도 영상이나 이미지같은 걸 바로 띄워서 함께 볼 수 있어 좋았고,

그냥 같이 읽고 함께 얘기하는 게 좋았다.

마무리 오프모임은 책모임없이 모임만 했다.

시즌2를 할건지

어떻게 할건지

누구랑 할건지

이야기해야 했다.

시즌2를 어떻게 할 건지 대충 카톡에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쉬 정해지지 않았다.

지혜로운 누군가가 다음 책 얘기를 먼저 꺼냈다.

책이 정해지면 다들 하고 싶겠지.

그래서 책을 먼저 정했다.

6명 중 4명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투표했다.

왜때문이죠?

참사를 막기 위해 나는 이번에 사랑의 단상 실물을 준비했다.

다행히 모두(?) 한마음으로 없던 일로 했다.

우선 다들 아쉬운 척 했다.

ㅋㅋㅋ

우린 정말 아쉬웠던 게 맞다.

사실 시즌2를 어떻게 할건지 얘기가 진행되지 않은 건 이유가 있다.

E언니랑 H언니가 쉰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둘이 쉬 쉬게 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하기로 정한 걸 미룬다.

책을 바꾸고, 얼굴을 보고, 맛난 걸 먹고, 이야기를 했다.

은근슬쩍 다함께 다음달에 시즌2가 시작된다.

12월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1월까지 쉬자는 사람도, 야심차게 1월부터 시작하자는 사람도 있다.

은근슬쩍 또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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