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임의 맛

 

  이번주 책이 도서관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읽다보면 여긴 누가 좋아하겠다 싫어하겠다 키득거리면서 같이 읽어야지 싶은 마음, 자식같이 내놓은 다음달 후보책을 누구라도 골라주었으면 하는 바람, 어떤 말주제를 골랐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운 얼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책을 같이 읽고 있었으면 하는 욕심, 반가운 얼굴이 책과 함께 환하게 앉아있을거라는 믿음, 오늘 갑자기 사람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가만히 앉아 타인이 기꺼이 내놓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마음껏 훔쳐듣는 자유, 같은 책을 읽고 와닿은 부분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놀라움, 내 생각과 다른 말에도 공감하고 고개 끄덕이며 박수치는 기적, 다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들에 헤어지기 아쉬운 발걸음,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어떻게 하나의 글로 남겨질까 하는 기다림, 그다음엔 또 새로운 이번주 책이 도서관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읽다보면 이건... 매주 반복되는 아는 맛이란 이렇게나 무서워서 제가 모임에 돌아오도록 한번씩 양심을 찔러주신 두분께 특히 또 모임을 지켜준 좋은 책들을 골랐던 수많은 리더님께 또 가끔씩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대화를 풍성하게 채웠을 모든 참석회원분들께 고마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300회가 넘는 그많던 수요일에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같이 읽는 책한권의 호흡이 짧고 2시간정도라는 시간의 제한 덕분에 독서모임하면 떠오르는 깊이있는 공부나 격렬한 토론보다 책과 자기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되도록 주제책에 한해 이야기하고, 읽으며 떠오른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어쩌면 감춰놓았던 이야기들도 스스로 기꺼이 풀어놓고, 타인의 삶과 얘기들에 웃고 울고 귀기울이면서 누군가 가져온 책 너머 주제에 닿은 지식과 생각거리가 있을 때는 감사히 배웠습니다. 차례차례 이야기를 하며 작가의 말 나의 말을 타인에게 눈빛으로 표정으로 말로 공감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이란것도 조금씩 생기고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요일이 편안한 대화의 장이었던 건 아닙니다. 모두에게 열어놓는다는 점,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참석한다는 점, 민주적으로 다양한 책을 선정한다는 점이 우리 모임을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가치이지만 반대로 언제든 책모임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든다는 점이 대화를 풍성하게 했지만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면서 자기 자신의 말만 가르치려하는 사람들도 섞여들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는 점이 오랜만에 참석해도 가볍게 나올 수 있게 했지만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나오지 않는 수요일도 있었습니다. 혼자라면 평생 읽지 않았을 새로운 책들을 읽으면서 인식의 경계를 넓힐 수 있었지만 가끔 모임의 포용성을 과신하는 책들이 단독으로 후보에 올라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더 많은 경청자들, 역대 회장님들을 포함해 역할을 바꾸며 자리를 지켜온 파수꾼들, 사람을 끌어당긴 좋은 책들이 오늘의 수요일을 만들었습니다.

 

  7월 말에 함께 읽은 대변동은 위기에 대한 책이었어요. 개인이 자발적으로 모인 우리 책모임에도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 내부적 요인에 위한 위기, 급진적 변화에 의한 위기, 점진적 변화에 의한 위기가 모두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주 수요일도 함께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2개월간 슬기롭게 책모임을 지켜준 H회장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말로 다하지 못하는 고마운 마음은 13개월째에 부탁드리는 일이 없도록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8살된 이 횃불을 기꺼이 이어받아준 G님과 S님에게도 감사드려요. 이 횃불이 꺼지려고 하지 않는지, 횃불든 사람들이 숨가쁘지 않은지 역시 모두 함께 마음썼으면 해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집단으로 상상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화, 종교, 계급같은 것들, 오늘날의 국가와 회사같은 것들까지. 우리 책모임의 실체가 뭘까? 네이버 밴드인가? 회장인가? 여기 같이 밥먹는 사람들인가? 수요일 저녁의 카페인가? 생각해봐도 모두 아닌 것 같아요. 실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던 책모임의 맛을 경험한 개인이 오늘 책 한번 나가서 같이 얘기해볼까? 생각하는 마음의 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랄 때 가장 큰 걸림돌인 자기자신과 겨루어 이기며 소중한 자기존재감을 스스로 올리는 기회를 매주 수요일 맛보시길. 책이 주는 지식과 함께 나누는 대화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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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가을겨울 회장 이·취임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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