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 - 아이와 나누는 종교적 대화, 2008년 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프리드리히 슈바이처 지음, 손성현 옮김 / 샨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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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지?
왜 죽어야 하지?
내가 맘놓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지?
왜 다른 사람에게 잘해줘야 하지?
왜 어떤 아이는 다른 종교를 믿어요?

저자가 뽑은 종교와 관련된 어린이의 다섯 가지 질문이다. 부모 혹은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위의 질문들은 여전히 ?로 남아있다. 답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지만 결국 초라한 답안지는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내게도 무척 호기심어린 시선을 주었던 <아이와 나누는 종교적 대화-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은 추리소설만큼이나 결론이 궁금했다. 저자가 다다른 종착역은 '아이들의 종교권리'와 '올바르게 사용되는 종교의 힘'이다. 하지만 결론이 중요한 류의 책은 아니었다. 
 
책이 지향하는 종교가 하나님을 내세운 권위나, 신적인 경이, 도덕적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힘겨운 독서를 마치게 해주었지만 어린이의 질문만큼이나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유럽의 종교적 배경과 우리나라의 경우가 적지않은 차이를 두고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적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육아서로써 접근했던 시작부터 뭔가 틀렸던 거다. 나의 아이에게 어떻게, 어떤 종교를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엄마가 읽어야할 개운한 실용서는 절대 아니다. 또 기독교에 대한 일말의 지식이나 접근을 당연시 하고 있어서 불교이거나 남여호랑교^^인 부모들에게 적합한 참고서도 아니다. 

내 기대감은 모두 무너졌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해법들이 있었다. 어린이와 나눈 대화의 예시들은 아이들의 질문이 얼마나 진지한 것이며 어른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는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어떤 것이든 존중 받아야 마땅하며 아이 나름대로의 일관성과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보다 중요한 본론은 아이와 함께 종교적인 질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태 위의 질문들은 뭣모르는 아이의 철없는 물음이거나 '죽음은 삶의 일부야'라는 정도의 추상적인 답변 혹은 어른도 모르는 '하늘나라'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급작스런 마무리로 대체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계일 뿐 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른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이런 질문에 미리 대비하고,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을 멈추지 말길 기대하고 있다. 


아이(여섯 살) : 하나님은 공기야?
부모 : 아니, 하나님은 공기가 아니야. 하지만 조금은 공기 같기도 해.
:
아이 : 왜 하나님은 모양이 없어?
부모 : 하나님은 어떤 생각 같아. 생각이 어떤 모양이 있어?
아이 : (잠시 가만히 있다가 웃으면서)없어.
부모 : 거봐. 하나님은 어떤...아주 강력한 생각 같기도 해.

이런 예시는 이 책이 부모들에게 충분히 쉽게 다가갈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실용적 소스를 얻어내기엔 조금 난해하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로 아이를 인도하고 싶거나 영적인 질문에 대해 폭넓은 대비를 하고 싶은 부모라면 도전해 볼만한 인문학 서적이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처럼 느껴지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아이의 질문에 답을 주는 건 어른도 성경도 아니다. 바로 대화와 소통이며 느낌으로 전달되는 강력한 메세지이다. 아이들이 영적인 발전영역에서 단절을 느끼지 않고 충분히 파고들 수 있도록 어른은 더 깊은 고민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던질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있을지언정 답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또 한가지 귀기울일 말은 '아이들의 종교권리'이다. 요새 아이들은 종교를 가지지 않을 권리만 만연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방치 속에서 고민할 권리를 빼앗긴다는 지적은 꽤 의미있어 보인다. 역시 어른들의 세심한 접근이 꼭 필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에 좋아서 인지, 책 자체의 연구적 성격 때문인지 유독 인용문이 많다. 인용문에 이어지는 저자의 의견을 들으면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육아에 꼭 필요한 이렇게 좋은 주제에 대해 학문적인 접근만 있는 것 같아서다. 다른 버전의 풀어쓴 책이 한 권 더 있다면 더 많은 부모들이 책을 펴들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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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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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위에 집어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 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기형도 전집에서

소설의 한 단락처럼 느껴지는 <여행자>라는 시는 조금은 자기비하에 빠진 주인공이 있고
그에게 무슨일이 생겼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묻고 싶은, 잘린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시 안에 들어앉은 서사가 시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시의 다양한 해석의 여지는 난해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하지만
크게 해석이 필요한 구절이 눈에 띄진 않는다. 그저 이 상황을 내 몸 속에 통째로 집어넣으면
어딘가에 꼭 맞는 기억이 존재할 법하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여행자로서 느꼈을 한 지점을
시인의 예민한 촉수로 더듬어 준다.
어디로 가야할 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지만 우리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살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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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는 중년
이상춘 지음 / 한문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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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 해로 나이 서른을 채웠지만 <다시 태어나는 중년>을 재밌게 읽었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야금야금 읽는 걸 보다 못한 엄마가 차라리 들고가서 보란다. 이렇게 선물은 도로 우리집으로 왔다. 
급하게 골라 보내긴 했지만 사실 몇 년 전 부터 이 책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선뜻 사두기도 부담스러운 가격에 두께의 압박까지 겸비한 선본을 만나고 대략의 내용은 썩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장사일로 일 분 일 초가 바쁜 엄마에게 선물 하기엔 좀 폭력적^^이지 않을까 싶어 그만 둔 적이 있다. 물론 당시 몸과 섭생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젊은 내게도 꼭 읽어두고 싶은 책이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았다. 

몇 년 후-크리스티나 노스럽 박사의<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의 한국판-이라는 부제를 단 <다시 태어나는 중년>을 만난 건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으니, 이 한국판은 그야말로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가격과 사이즈로 재 탄생 하였다.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번역한 이상춘씨가 한국판의 저자로 되물림 되어 선본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분명하겠다.
내가<폐경기..>를 읽어두기에 여의치 않았던건 사실 다른 사정이라기보단 전문성과 진지함이 좀 부담스러웠다. 당시 꼭 필요한 책도 아니었고 말이다. 지금도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나는 <다시태어나는 중년>을 출가(결혼^^)한 모든 여성에게 권하고 싶다. 중년을 예습하고, 우리의 엄마를 이해하고, 젊음으로 방치된 우리의 몸도 살펴보자. 중년을 탐구 하는데 젊은 시절과의 연계는 필수 불가결하다.
나이 마흔에 뭍어두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시처럼 번역 공부를 시작해서 <폐경기..>를 번역하게 된 중년 여성 이상춘씨의 한국적 시각도 매우 편안한 동시에 설득력 있다. 전문적 지식이 빠진 중년의 화이팅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 진정 중년에게나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준다.

<폐경기..>를 바탕으로 제공됬을 전문적 지식이란 현대의 노화를 전담하고 있는 의학 지식이 아니다. 이 점이 이 책을 정말 특별하게 만든다. 의학적으로 자궁 근종, 안명 홍조, 요실금, 갑상선 기능저하, 비만등을 다루고자 한다면 의사가 써야할 책인 동시에 중년은 병원으로 가는 편이 낳겠지만 이 책은 열정으로 폐경기를 극복한 평범한 중년의 여성이 쓴 책이다.
<다시 태어나는 중년>은 병원에 가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의 치유를 돕는 훨씬 건강한 병원이다. 중년에 나타나는 증상들은 대부분 마음의 병이 발현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과학적 통계적 접근을 통해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홧병 뿐 아니라 한갖 질병으로 의식했던 다른 증상들 역시 그럴듯한 원인으로 해부되면서 중년을 적극적으로 치유하고자 한다. '동맥을 좁아지게 만드는 주범은 동물성 단백질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과 적개심이다'라는 식으로 의학적 심리적 이유를 모두 동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의학 전반에 걸쳐서도 매우 올바른 해법으로 느껴졌다.

책 중에 카를 융의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은 질병을 통해 우리를 찾아 온다' 이 말은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대신하는 말이기도 하다. 신진 대사가 활발하지 못하고 호르몬 분비의 균형이 깨지면서 중년의 여성은 오히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가족을 위해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살아왔던 삶만큼이나 많이 남은 여생을 위험하고 용기 있게 써보자며 부추긴다. 이 모든 것은 중년이 맞은 신체적 정신적 위기를 통해서 라는 점이 용기를 주는 대목이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고 오만했던 감정이 심장을 통해 경고를 보내고 분출되지 못한 분노가 자궁내 문제를 만들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치유의 기회를 잃는 중년의 여성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오는 것은 여성에게 남성 호르몬 양이 증가 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호르몬 양을 조절해 배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호르몬의 변화가 중년 여성의 진취성을 확보하는 방편이 되어 준다는 사실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도 있는 가를 짚어준다. 
정말 책처럼 노화가 주는 질병들이 우주의 섭리이며 우리는 그것을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면 늙어감이 두려운 일만은 아닐것이다.
실제로 친정 엄마는 이 책을 받고 활기를 얻은 것 같았다. 주변 친구 누구누구에게 이 책을 권했고 또 한 번 읽어야 겠다며 벼르고 계시다. 내게도 즐거운 일이다. 잠시 멋진 딸로 변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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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도 못 되는 그놈의 양반 - 박지원의 한문 소설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1
김수업 지음, 최선경 그림 / 나라말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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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는 문학선생님을 사랑하는 진부한 우를 범했지만 교과서의 문학작품까지 사랑하진 않았다.시를 탐독했지만 김소월 한용운의 시를 시라고 여기진 않았다. 늘 교실 밖에서 문학을 찾아 떠돌았고 님의 침묵을 개구리처럼 해부하는 국어 시간은 과학시간보다 흥미롭지 못했다. 문학소녀가 사랑하는 문학선생님도 별 수 없이 탁월한 분석력을 뽐내며 주제를 일갈했다. 문학소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문학에의 도피였으리라.

자유롭게 문학의 뒤를 쫓을 수 있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러서도 이육사 박목월 한용운 이라면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반 쪽짜리 哀詩가가 되버렸다. 이렇게 반신불수 문학 애호가를 만든 우리나라 교육형태에 먼저 성토할 일이지만, 십 년이 흘러서라도 다시 위대한 그들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발판 역시 교과서 이기에 할 말을 잇지 못한다. 

박지원 이라면 조선시대 실학자로 '외우고'있고, 그의 작품 역시 교과서에서 한 두편 봤음직하다. 분명 주제와 의미를 찾아내느라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그었을테고, 선조의 지혜에 강요된 감탄을 했을 터이다. 어째서 이 특별 할 것도 없는 이 사람의 한문 소설이 내 눈에 다시 띄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와서 새삼 감동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마 어른들의 이런 눈으로 교과서에 실렸을 테지. 

 신간 <국어시간에 고전 읽기>시리즈로 나온 이 소설집은 표지만으로 날 유혹하기 충분했다. 한 눈에도 풍자적인 연필화로 옛 이야기의 즐거움을 시시하지 않게 전해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박지원의 이야기가 재미 또한 갖추지 않았었나 해서, 선뜻 집으로 모셔온다. 옛말도 많고 한문 소설을 옮긴 것이라 현대 소설만큼 쓱쓱 넘어가진 않았지만 그에 견주어도 비기지않을 매력이 넘쳤다. 오히려 이백녀년 전의 이야기가 근래의 것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필치는, 책의 소개대로 뛰어나고 남달랐다. 또 익히 알고 있는 호질이나 양반전의 원문을 보고 되새기는 과정이 유익하게 느껴졌다.(도데체 어디에 유익한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교과서의 내용은 두겹 세겹의 원문을 벗겨낸 것이다. 사실 더욱 복잡한 풍자성이 깃들여 있다는 걸 알게되는 순간 그의 재주와 지혜에 이제서야 진심으로 응하게 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단편소설집쯤 되는 이 책은 아기자기한 재미는 물론이고 풍자및 과장법의 다양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누구든 한 수 배워도 좋을 것이다. 글과 글 사이에 시대적 배경까지 간결히 곁들여 있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무릇 저잣거리에서는 이득이냐 손해냐 하는 것으로 사람을 사귀고 얼굴을 맞대고는 아첨으로 사람을 사귀지 않느냐! 그래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차례 손을 벌려 청하면 누구나 멀어지게 되고 , 아무리 묵은 원한이 있어도 세차례 도와주면 누구나 친해지기 마련이지. 그러니 이득과 손해로 사귀면 오래 가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어도 오래 갈 수가 없다네. 커다란 사귐은 꼭 얼굴을 마주해야 할 까닭이 없으며, 아름다운 벗은 꼭 가까이 두고 지낼 까닭이 없지. 다만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의로 사귀는 길일세. 으뜸 벗은 천고의 옛사람과 사귀어도 아득하지 않고,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살아도 멀어지지 않는다네." (예덕선생전)

그의 말발이 대단하지 않은가. 시대를 아우르는 사유가 곳곳에 넘치니 시간 많으신 분은 옛글이라 폄하말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하하 재미있게도 이 책은 중 고등학생들을 위한 도서로 기획되었는지 책의 마지막에 연습문제 같은 것이 있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또 박지원에 대한 마지막 평가에 조금은 놀라서 소개할까 한다.


우선 박지원은 그의 눈앞에서 역사의 주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백성의 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조선 왕조의 집권 양반에게 찾는 것이 지나친 바램이겠지만, 박지원같이 뛰어난 사람에게서조차 그런 자취를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깝스니다. 이미 보잘것없는 백성들까지 한글로 온갖 삶을 담아내고 있었으나, 박지원은 끝까지 한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한문에만 매달려 왕실과 양반 쪽에 서서 흔들리는 세상에 대한 걱정을 소설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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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 야야 내 딸이야 버린 딸 바리데기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201
조원희 지음, 신동흔 엮음 / 나라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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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가 유명하길래 나도 바리데기를 읽었다.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아니라 원래 바리데기, 우리의 무속신화가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시리즈의 한 편으로 나왔다. 박지원의 <한 푼도 못 되는 이 놈의 양반>에 이어 이 시리즈가 가진 매력에 빠져 볼 생각이다. 부담없는 분량에다 이야기에 맞춤옷을 입힌 그림들이 '고전'에 대한 고지식한 틀을 깨트려 준다. 
   
이 책의 제목은 <야야 버린 딸 내 딸이야 바리데기야>다. 제목부터 운율이 느껴지니 슬픈이야기임이 감지되어도 들썩들썩 흥이 났다. 영어테잎의 챈트에 입을 맞추면서도 우리말의 운율을 잊고 산지 오래렸다. 거- 장단 한 번 맞춰 놀아보자.


그 날 밤 초경 이경 태기 있어 그달부터 태기 있어
한 달 두 달 피를 모아 두 달 석 달 입맛 궂히는데
밥에서는 비린내 나고 장에선 날장내, 물에선 흙내 나고
뒷동산 개복숭아를 말말이 섬섬이 먹고 싶다.
그달을 다 보내고 다섯 달 반짐 걸어 일곱 달이 되니
사방 칠성을 불어넣을 적에 실대부인 거동 보소
앞 남산은 불러지고 뒷 남산은 낮아진다

임신한 열 달을 재밌게 그려낸다. 무당이 하는 궂으로 전해지는 무속 신화가 바리데기의 본래라 하니 이런 노래가락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서술과정에서도 숨겨진 운율이 소리를 듣는 듯 편안하고 읽기가 쉽다. 우리 신화뿐 아니라 세계 신화의 특징인 과장법이, 리얼리즘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때도 많다. 아무리 이야기가 슬프다 한들, 바리데기가 고생고생을 하는 모양을 '가랑이가 삽살개 털 모양으로 다 해졌다'하니 감정 이입을 기대하기는 커녕 반대로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이런 면이 고전 읽기의 진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슬픔을 슬피, 기쁨을 기삐 여기는 것은 인간사 당연한 이치일 테니 어디 한 번 웃어나 보자,는. 


노인 죽어 짝찌고개 할머니 죽어 망령고개
총각 죽어 몽달고개 처녀 죽어 보따리고개
시아버지 죽어 호령고개 시어머니 죽어 잔소리고개 
아들 죽어 유세고개 손자 죽어 사랑고개
며느리 죽어 조실고개 사위 죽어 도둑놈고개

바리데기가 넘는 열 두 고개의 이름은 우리의 신화가 얼마나 서민 가까이에 살을 부비고 있었나 하는 점에서 그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난다. 또 원문의 수준 높은 문학성은 이미 확석영이란 대단한 작가에 의해 재조명 되기에 이른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장대한 교훈이나 진리를 담지 않아도 충분한 맛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품으로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바리데기 이야기 외에도 다양하고 이채로운 자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구전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공간들을 지도처럼 그려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이야기 반 자료 반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데 고전을 좀더 가까이 두고 보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다행히 신선하다. 

문학 사랑의 출발이 학창시절 고전을 만나면서 부터 이루어진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고전을 멀리하고 읽어 온 문학 속에서 뒤늦게 고전을 발견한다해도 즐거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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