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 야야 내 딸이야 버린 딸 바리데기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201
조원희 지음, 신동흔 엮음 / 나라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바리데기가 유명하길래 나도 바리데기를 읽었다.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아니라 원래 바리데기, 우리의 무속신화가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시리즈의 한 편으로 나왔다. 박지원의 <한 푼도 못 되는 이 놈의 양반>에 이어 이 시리즈가 가진 매력에 빠져 볼 생각이다. 부담없는 분량에다 이야기에 맞춤옷을 입힌 그림들이 '고전'에 대한 고지식한 틀을 깨트려 준다. 
   
이 책의 제목은 <야야 버린 딸 내 딸이야 바리데기야>다. 제목부터 운율이 느껴지니 슬픈이야기임이 감지되어도 들썩들썩 흥이 났다. 영어테잎의 챈트에 입을 맞추면서도 우리말의 운율을 잊고 산지 오래렸다. 거- 장단 한 번 맞춰 놀아보자.


그 날 밤 초경 이경 태기 있어 그달부터 태기 있어
한 달 두 달 피를 모아 두 달 석 달 입맛 궂히는데
밥에서는 비린내 나고 장에선 날장내, 물에선 흙내 나고
뒷동산 개복숭아를 말말이 섬섬이 먹고 싶다.
그달을 다 보내고 다섯 달 반짐 걸어 일곱 달이 되니
사방 칠성을 불어넣을 적에 실대부인 거동 보소
앞 남산은 불러지고 뒷 남산은 낮아진다

임신한 열 달을 재밌게 그려낸다. 무당이 하는 궂으로 전해지는 무속 신화가 바리데기의 본래라 하니 이런 노래가락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서술과정에서도 숨겨진 운율이 소리를 듣는 듯 편안하고 읽기가 쉽다. 우리 신화뿐 아니라 세계 신화의 특징인 과장법이, 리얼리즘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때도 많다. 아무리 이야기가 슬프다 한들, 바리데기가 고생고생을 하는 모양을 '가랑이가 삽살개 털 모양으로 다 해졌다'하니 감정 이입을 기대하기는 커녕 반대로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이런 면이 고전 읽기의 진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슬픔을 슬피, 기쁨을 기삐 여기는 것은 인간사 당연한 이치일 테니 어디 한 번 웃어나 보자,는. 


노인 죽어 짝찌고개 할머니 죽어 망령고개
총각 죽어 몽달고개 처녀 죽어 보따리고개
시아버지 죽어 호령고개 시어머니 죽어 잔소리고개 
아들 죽어 유세고개 손자 죽어 사랑고개
며느리 죽어 조실고개 사위 죽어 도둑놈고개

바리데기가 넘는 열 두 고개의 이름은 우리의 신화가 얼마나 서민 가까이에 살을 부비고 있었나 하는 점에서 그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난다. 또 원문의 수준 높은 문학성은 이미 확석영이란 대단한 작가에 의해 재조명 되기에 이른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장대한 교훈이나 진리를 담지 않아도 충분한 맛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품으로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바리데기 이야기 외에도 다양하고 이채로운 자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구전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공간들을 지도처럼 그려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이야기 반 자료 반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데 고전을 좀더 가까이 두고 보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다행히 신선하다. 

문학 사랑의 출발이 학창시절 고전을 만나면서 부터 이루어진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고전을 멀리하고 읽어 온 문학 속에서 뒤늦게 고전을 발견한다해도 즐거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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