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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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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도 다시 쳐다봤다. 어제도 그랬고 아주 옛날에도 그랬다. 대놓고 보지 않아야 된다는 묵언으로 흘끗봤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어쩌면 더 힘차게)팔 다리를 내저으며 내 삶, 비장애의 영역으로 되돌아 온다. 나는 이제 그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엄마손을 꼭 쥔 아이는 묻는다. 

"저 사람은 왜 휠체(어)를 타고 있어?" 

그렇다. 전혀 무관하지 않다. 아이를 낳으면 무관심이야말로 특권이 된다. 나와 무관한 일은 거의 없어져버린다. 드세고 대차지지만 아줌마는 물잔을 찰랑거리는 감수성도 가지게 된다. '미담'은 더이상 예쁜 이야기가 아니라 아줌마가 그려야 할 미래의 붓칠이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더블 테이크>가 미담은 아니다. 연하지도, 강인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우스꽝스럽게 꼬꾸라지고 놀랄만큼 담백하다. 두 다리 없이 태어난 20대의 이야기치곤 무척 가뿐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는, 실은 시선을 'take'하는 우리의 눈은 그다지 가볍지 못하다. 굉장한 불운을 목도하는 상대적 안도감일지도 모르고 우리와 다른 신체에 깃든 고통스런 사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정적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어야 하는게 장애 극복기고 더불어 '나도 사는 데 너도 살아라'같은 용기를 채집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원제 'double take' ) 케빈 마이클 코널리/황경신 옮김/달




더블 테이크(double take) ; 「문득 갑자기 다시 돌아보는 것」글자 그대로 또한 상징적인 의미에서,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 또는 사건의 의미에 대해 '문득 갑자기 다시 돌아보는 것'

하지만 이 책, 지금 우리얘기하는 거 맞지? 되돌아보는 우리와 시선을 맞추자는 거지? 왜 쳐다 보냐고 묻는 거 맞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감출수 없는 호기심에 대한 정당한 태클?


아얘 사진까지 찍어두었군. 촛점의 흔들림도 개의치 않고 올려다 본 구도로 찍힌, 두려움과 호기심이 깃든 아이들이나 떫고 노골적인 표정의 어른들. '이것은 다리없는 사람의 스케이트보드입니다'라고 적힌 구르는 판 위에서 이른바 '더블 테이크'를 포착한 수 백 수천 개의 컷 중 18개의 사진이 각 장을 장식하고 있다. (총19장으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 한 장은 저자 케빈이 스키타는 장면이다) 

사실, 이 사실은 명백한 스포일러다! 중반 이후 서서히 밝혀지는 사진의 각도에 정말로 책을 'double take' 했으니 말이다. 말을 꺼냈으니 다시 담지는 않겠다. '이건 '역전'이군.' 속으로 생각한다. 그 사진 속에서 감시자는 우리가 아닌 그다. 그러나 어쩐지 케빈이 통쾌하지만은 않다. 이게 무슨 꿍꿍인지 고민하고, 장애를 '이용'하는 수작이 될까 걱정도 한다. 

'자경단 퍼레이드'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케빈이 속한 팀은 본디 없었던 다리를 이용해 유혈이 낭자할 신체절단 이벤트를 벌일 계획에 들뜬다. 케빈은 팀에 기여하는 자신의 역할에 거의 병적인 자부심에 차 있었고, 약간의 실패조차 예감하지 못했다. 불쾌감이나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던 구경꾼들 덕택에, 자신을 구경거리로 만든 프로젝트에 대해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되묻는다. 

그는 다시 본격적으로 '장애 재활용'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바로 더블 테이크의 시선을 붙잡는 이 사진들이다. 오스트리아, 러시아, 일본..각국의 많은 도시들을 스케이트보드와 맨손으로 누비면서 쳐다보는 사람들을 카메라로 쳐다본다. '뒤 돌아봐'라고 주문을 걸 판이다. 달라진게 있다. 적어도 그가 웃음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감정이 몰려 온다.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복수의 형식이기도 했고, 일종의 치료법, 카타르시스 이기도 했지만 이기적인 목적임을 자각한다. 
 
그 고민들이 명확히 해결책을 찾은 것 아닌 듯 하다. (케빈은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어쨌든 그는 끝까지 갔다. 그가 받은 시선들을 되돌려 주었고,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도 싶었다. 낭떠러지 앞에 서 본 사람은 안다. 이제 반대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힘껏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가 큰다면 성공담 말고, 이런 도전기와 분투기를 권하고 싶다. 게다가 그의 작문실력은  A+++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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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 약이 되는 잡초음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25
변현단 지음, 안경자 그림 / 들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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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부터 뭔가에 이끌리듯이 저수지로 향했다. 명목은 숙취 해소용, 심심타파 용 새벽 산책이었지만 실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현재 25권까지 나온 들녘의 귀농총서 25번. 


제법 은은하고 소담스런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시작은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귀농도 그 형태가 무척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게중에서 가장 왼쪽, 급진 좌파형 농부를 만난 것이다.

도시의 일거리를 가지고 가서 타협형 귀촌 생활을 꾸리거나,(<문호리 지똥구리네>) 공동 생산자로 농장을 함께 운영하며 수익을 얻거나(이 책의 저자도 <연두 농장>을 운영하긴 하지만 농장 이야기는 아니다), 자급자족형 친환경 작물 제배에 애쓰거나(<자연달력 제철밥상>), 주말 농장형 텃밭으로 농사의 재미를 알아가는(<나의 애완텃밭 가꾸기>)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른바 '잡초'를 접시에 담자는 것인데, 잡초의 중요성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과가 가르쳐준 것>의 기무라 아키노리는 사과밭에 잡초를 원시림처럼 두거나 일년에 한 두번 이발을 해주면서 여름의 땡볕을 이기고 흙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아얘 어떤 잡초들은 가져다 심어야 할 정도로 잡초의 다양성과 중요성을 일깨웠다. 또 <자연달력 제철밥상>의 장영란도 '무경운 농법'을 한다며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채소 기르기>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면 충해가 심하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잡초'역시 생태계의 한 고리로 인정하고 돌봐야 한다는, 알고보면 지당한 주장이다.

헌데 변현단(저자), 작물을 위한 효용성을 넘어 게걸스럽게 풀을 뜯는다. 이 잡초 컬렉션에는 민들레나 가죽나무같은 잘 알려진 식용, 약용 식물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강아지풀, 토끼풀, 개망초(계란꽃) 같은 언감생시의 들풀들도 있었다. 봄에 언땅을 뚫고 납작하게 엎드린 나물들은 대부분 약이 되고 찬이 된다고는 하지만 농사의 방해꾼 잡풀들이 실은 의도적 작물들에 못지 않은 영양과 맛을 가졌다고 자신만만이다. 

풀멀칭이나(비닐멀칭 대신) 풀거름으로 잡초를 '이용'했던 친환경 농사의 소박한 권력조차 이 잡초 접시 앞에서 작아졌다. 잡초의 식용 효능은 물론이고 작물농사에서의 중요한 구실들을 절절히 꿰차고 있는 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잡초를 먹어가며 농사를 짓는 '잡초농법'은 작물을 심어 관리하는 '농사의 기원'까지도 조금씩 흔들어댔다. 

비닐과 기계에 의존하는 힘겨운 관행 농사가 '석유문명의 대안'이라는 가차없는 판단과 함께, 자연의 사유화가 수직적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말한다. 곡식 농사가 전쟁을 일으켰고, 남성의 힘을 요구하면서 땅의 권력이 생기고, 축적을 통한 '소유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저자는 '작물'조차 인위적인 공사로 변질되고 있다며 사육과 재배를 최소화하길 요구한다. 또 기업에 '소비자'로 내맡겼던 삶을 도로 가져오라는 사명을 부여한다. 2부 '잡초의 향연'이 이 책의 주가 되겠지만 '석유를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1부는 짧지만 격렬한 주장들을 담고 있다. 2부는 그런 주장들의 실효성을 몸소 내보이는 샘이다. 

원추리, 꽃다지, 개망초, 쇠뜨기, 큰개불알풀, 피, 명아주, 개여뀌…낯익거나 생소하거나, 어쨌든 길을 오가며 한두번 쯤은 보았을법한 풀들이 버젓히 약효를 자랑하고 맛과 멋을 뽐내고 작물농사를 돕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모르게 몸이 근질거렸다. 풀숲에서 볼일을 볼라치면 엉덩이를 간질이는 풀들이 사랑스러워 못견디는 저자처럼 오늘 아침, 무성한 풀들에 종아리를 내주고자 아이와 채비를 했다. 

책의 잡초 세밀화들은 간략하면서도 아름다웠지만 직접 풀을 대면하여 알아차릴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작게나마 사진이 첨부되었더라면, 하는 바램을 직접 이뤄보겠다는 욕구가 슬슬 일었나보다. 50여 가지의 잡초들을 하루만에 모을 수는 없었지만 운좋게도 방치된 과수원의 잡초 원시림에서 발견한 '뱀딸기'만으로도 완벽한 수확이었다.




뱀딸기. 산딸기나 딸기보다 맛은 떨어진다. 사람은 얄팍해서 혀끝으로 먹지만 뱀은 사람보다 영리하게도 천연약재를 찾아 먹은 샘이다. 서늘한 맛으로 인해 가슴과 배의 열이 계속되는 것을 다스리는데 효용된다. 주로 어린잎과 열매를 먹는다. 잎과 줄기에는 항암작용 외에도 항균, 면역기능 증강작용이 있다고 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잼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다.  





계란꽃이라 불렀던 개망초. 생리활성에 도움이 되므로 생즙으로 내어 먹어도 좋다. 자체의 풍미를 즐기려면 소금만 넣어서 먹고, 보다 부드럽게 먹고 싶으면 참기름에 깨를 살짝 무쳐 먹으면 된다. 잎이 약간 세다고 생각하면 된장국으로 끓여 먹는다. 꽃이 피면 꽃과 함께 튀겨먹는 게 진짜 별미다. 햇볕에 말려 약재로 사용하면 좋다.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고 독을 치료하며 소화를 돕고 설사를 멎게 하는데 쓰인다.




잎 뒤에 붙은 가시 때문에 옷에 브로치처럼 달고 놀았던 환삼덩굴. 농사꾼에게는 화해할 수 없는 적군이지만 화려한 효능을 자랑한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아토피에 특히 좋다. 환삼덩굴을 진하게 달여 목욕을 한다. 평소에 소주에 담가 놓고 쓰면 여름철 모기 물린데 그냥 바를 수 있다. 삼과인 환삼덩굴은 약성이 뛰어나다. 쌈, 절임, 나물, 분말, 차 소개.   




애기똥풀. 줄기를 분지르면 노란 즙이 나와 잘 갖고 놀았다. 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천연 염료로 사용해왔다. 노란즙을 사마귀가 난 곳에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진다.  




지칭개. 여태 엉겅퀴인줄 알았다. 엉겅퀴는 가시가 있다. 지칭개는 맛이 맵고 쓰며 성질은 차가워서 열을 내리고 독기를 없애고 뭉친것을 풀어준다. 외상으로 출혈이나 골절상에 지칭개 잎과 뿌리를 짓찧어 붙인다. 소염제및 소독제로 사용한다. 꿇는 물에 소금 약간을 넣고 아주 살짝만 데쳐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된장과 고추장을 섞기도 하고 그냥 된장으로 무쳐도 좋다.  




농사에도 쑥을 이용한다. 효소를 담가 놓았다가 어린잎에 영양제로 사용하며, 병아리와 어린 돼지들에게도 먹인다. 7월까지 채취하여 쑥을 먹인 가축들은 면역력이 뛰어나다. 쑥조청, 쑥밥, 쑥단자, 쑥차 소개.




명아주는 심장이 튼튼해지는 대표적인 명약이다. 반찬 외에 효소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음지에서 말렸다가 차로 달여 먹기도 한다. 명아주는 시금치 맛과 비슷하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장을 소독하므로 식이요법을 하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우리 밭에 널린게 요 쇠비름이다. 씻어서 샐러드로 먹고, 된장을 넣어 나물로 먹고, 김치나 물김치를 해먹어도 좋다.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먹을 수도 있다. 한여름 효소를 만들어 식물의 영양제로도 사용한다. 악창과 종기를 치료하고, 뇌활동을 원활하게 하여 치매를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줄여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검은색 글씨가 책의 문장, 오른쪽이 책의 그림)

뱀딸기씨가 이물감으로 입안을 돌며 싱겁기만 한데도 아이는 죄다 뜯어먹고는 또 따러 가자고 성화다. 그래서 잡초가 시들해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고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다시 잡초림으로 들어가 딸기를 따는 동안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맛있다'를 연발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내일 또 따러 가기로 약속을 받아둔다. 마침 뒷마당 뽕나무에 오디가 익고 있어서 그날 아침은 야생 열매식으로 대신한 샘이다.





 
사실 내가 찍을 수 있었던 위의 잡초들은 도시의 길가에도 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광대나물, 뽀리뱅이, 방가지똥, 소리쟁이, 며느리 밑씻개. 털별꽃아재비, 어성초, 미국자리공, 개여뀌. 그대들을 만나고 싶어 몸이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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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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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서와 철학서를 동시에 들고 들락날락.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원래도 동시 다발적인 독서를 좋아해 연애가 이랬음 얼마나 좋아~뭐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인문 교양남들의 유익함과 도덕성에 쉽게 퇴자놓지 못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외도죠. 간통에 대한 헌제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몰라도 법이 이불속까지 들어올 수 없다는 주장처럼 독서의 유희에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유희라면 단연 '볼거리'입니다. 각잡힌 주장에 진땀이 난다면, 한 줄은 오해하고 한 줄은 포기해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책이라면, 우회하여 꽂히는 화살처럼 그대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우회로는 <한국의 시장>. 


제목만으론 싱싱한 젊음의 유혹도, 독특한 내면도 읽을 수 없을 지언정. 소탈하고 다감하게 다가오는 색색의 '시장사진'들에 팔도를 눈요기로 돌아본 소감이 결코 서운하지 않더라는 말씀.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까지 상경하며 장을 체험하고 온 그녀들이 바리바리 보따리를 한아름씩 풀어놓습니다. 상품보다 사람보다 생생한 사진이 말그대로 시장을 재발견 하고 있군요. 저도 여행가면 '시장 구경'을 빠뜨리지 않는지라 시장통의 진귀한 지역색이 모둠으로 펼쳐지자, 명산, 고승지, 맛집을 소개받은 것마냥 몸이 근질거립니다. 


몇년 전 제주 민속5일장에 갔을 때, 왜 제주녀들의 화려한 작업복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요. 왜 빙떡이나 화산석 돌구이판 같은 건 보지 못했을까요. 그림만 아는만큼 보이는게 아닌가 봅니다. 워낙 전국적으로 공급용 채소와 과일들을 먹는, 이 무한 산업화 시스템이 시장의 지역색도 많이 흐릿하게 했음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장'이 서서 로컬푸드운동의 시초에 감명받는게 아니라면 시장은 변함없이 활기가 넘치면서도 도진개진의 매력만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 책은 지역만의 개성을 부각시키는데 애씁니다. 맞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아마존이 아마존으로 남는 세상은 갔습니다. 저는 보려고 애씁니다. 제주의 미깡을, 벌교의 꼬막을, 병천아우내장터의 충남집을, 동해북평장의 딸기떡을, 주문진 수산시장의 예술달력을. 그들은 더더욱 애씁니다. 지역에 덧칠할 확실한 지역색을 고르기 위해.

'컴퓨터 도장은 위조와 사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병천아우내장터의 수제 도장 좌판의 안내판입니다. '답답한 마음 다 풀어내고 가' 동해북평장의 장터 점집입니다. '당시 시장으로 흘러들어온 대부분의 미군 물품이 통조림' 부산 깡통시장의 내력입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트렌스젠더 복장을 한 아저씨 가슴에 슬쩍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각설이 아저씨는 오히려 옷을 들어 올려 여성 속옷을 착용한 몸을 보여준다.'대구서문시장의 각설이패 풍경입니다. '못골 온에어' 수원 못골 시장의 라디오 방송입니다. '음주 측정기와 기념화폐' 황학동 벼룩시장의 예상치 못한 품목입니다. 






예술, 건축, 문화, 맛집, 도서관, 지역축제 기행에 당당히 '시장'이 추가됩니다.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시장이 안쓰럽다면, 여행가서 시장 살리는 일도 좋은 대안인것 같습니다. 

이 책엔 디자이너 이상봉, 포토그래퍼 권영호, 가수 하림, 연기자 홍석천, 영화감독 박제현과의 시장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게중 가수 하림의 악기 흥정 부분이 참 재밌었습니다.
 


악기 살 때는 흥정을 해요. 예전에 황학동 벼룩시장에 너무너무 좋은 야마하 기타가 걸려 있더라구요. 얼마 주면 되냐고 물으니 "한 60~70만원은 줘야 되지 않을까?"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반값인 30만원을 불렀거든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40만원이래요. 그럼 또 제가 "사실 한 10만원이면 될 것 같은데 그냥 한 번 물어봤다" 그러니 아저씨가 30만원에 준대요. 결국 20만원에 사왔어요. 악기야 저도 전문가니까 흥정을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기념품 살 때는 흥정을 못하는 거죠. 
(사진출처; 문전성시-가는 날이 장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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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다큐 여행 - 국어교사 한상우의
한상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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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끼고 싶은 문장. 낮은 포복으로 쓰기. 




책을 놓는 순간 문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기호에 뜻을 닮을 때 나는 어떤 방식을 써왔는가 말입니다. 저는 유려한 문체의 구분법을 잘 모릅니다. 책에, 뜻에 가장 알맞은 보폭이 한낱 기호들을 춤추게 할 뿐이라고, 가장 합리적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연애편지는 구태스럽고 촌스럽고, 표절로 가득할수록 보편적인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용증명은 차갑게 거세되고 유리하게 단절되야 합니다. 에세이는 촉촉하거나 건조하거나 마르거나 퉁퉁한 생각이 글자를 유유히 흘러가야 합니다. 어떤 삼류소설들은 전혀 낯설지 않은 것들의 익숙한 조합으로 치정을 사랑으로 둔갑시킵니다. 어떤 여시인의 목소리는 기합처럼 단단하고 또 어떤 중견 소설가의 목소리는 머그컵처럼 자주 입술을 대고 싶습니다. 트롯의 문장은 저대로의 문법이 있고, 변주의 범위는 넓지 않습니다. 동시는 예쁘지 않을 때 더욱 예쁘고 어떤 오류에도 너그러워 집니다. 글에 가장 어울린다면 그 문장이야말로 가장 빛나리라 확신합니다. 이런 제게 문장력을 떼어 말할 때, 문장에 대해 탄복하는 상황은 많지 않습니다. 

서툴게 립스틱을 바른 여중생의 입술만 불거져나오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칭찬할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문장이 저혼자 잘난척을 하면 그 기세에 눌려 귀를 틀어막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만한 문장에 그만한 내공을 심은 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만요.

여기, 문장력을 자랑하는 한 국어교사가 있군요. 그는 그 유려한 글씨로 길위의 이정표를 다시 씁니다. 그의 이정표는 온통 글씨로 된 그림입니다. 그에겐 도무지 직설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비유에 지난 며칠 밤을 농락 당하고 맙니다. 이 징후가 젊음의 혼잡스러움이라는 걸, 이전에 읽었던 김용택의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맞추다>를 통해 바라봅니다. 김용택은 원래도 화려한 수사법을 자랑하는 시인은 아니었습니다. 담담하게 아릿한 맛을 전했던 그의 옛날 시들로 그득히 배를 채우고 디저트처럼 읽은 책이었습니다.

시인은 난폭하다시피 시감을 잘라내고 충직한 직언을 일삼았습니다. 여느 누가 내뱉었음 지루하다못해 자리를 털었을 잔소리들을 띄엄띄엄 내놓았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연륜이 쌓이면 사람이 해야할 일은 어쩌면 이런 것일수도 있겠구나'하고 말이죠.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고 시도한 현란한 백덩크에 공이 백 보드에 슬쩍 닿고 림 위를 한 바퀴 굴러 간신히 2점을 내기보단, 순식간에 수비에서 공격자로 무리를 따돌리고, 가지런히 모은 발과 신중히 고른 자세로 시원스런 3점슛을 얻는 전략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국어교사 한상우의 <자전거 다큐 여행>은 '비유'라는 과정이 젊음의 전유물처럼 싱싱하게 다가왔습니다. 알고보면 조금은 늙은 이 80년생 조차도 비유 속에서 젊음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시인 김경주는 '길의 감식가'라는 또 다른 비유의 옷을 선사 하였고, 그의 감식반에는 몸둥이와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몸으로 현장을 들락거리며 좌절과 실패와 소외와 치욕과 고통의 피해자들 편에 서서 진술합니다. 저는 어느 쪽에 속해 있는 줄도 모른채 열렬한 박수를 칩니다. 피해자는 못 될지언정 영광스런 자도 아님을 확인합니다.
 
주체와 객체가 자연스럽게 전도된 그의 글쓰기는, 낮은 자세로 말미암은 높은 문장법으로 이득을 얻습니다. 알뜰하고 가여우며, 사랑하는 동시에 눈을 부릅뜨려는 그가 느껴집니다.



등명낙가사에 당도함으로써 7번 국도가 구비한 오르막의 오랜 시달림에서 겨우 풀려난 자전거는 등명낙가사의 톡 쏘는 약수로 수분을 보충했다. 철광석을 통째로 갈아 넣었는지, 약수는 낯선 광물의 맛으로 삼켜졌다.-p70 에서
 
역사는 이긴 자의 필체로 쓰여진다. 잔혹하고 비정한 이 문장을 우리는 어떻게든 수긍해야 할 것인데, 나는 싫은 사람과 악수하는 기분이다. 궁녀 삼천 명을 절벽으로 밀어낸 건, 의자왕의 향락이 아니라 시 지으며 놀던 조선 문인의 과장된 수사법이었다. -p79 에서

전국 각지의 꽃들이 개화 전에양귀비를 찾아와 요염을 배워 가면 곱절은 더 예뻐지리라. ..복어회를 떠낸 듯 얇은 꽃잎은 반투명하여 오래 들여다보기 민망하였는데, 그 야릿한 꽃잎을 연분홍으로 물들여 입은 치맛자락은 양귀비의 몸 쪽은 하얗고 세상 쪽은 붉었다. ..한가로운 바람이 슬쩍 양귀비를 건드리면, 치맛자락은 모르는 척 뒤집어졌다. -p112에서

사진; "어머니, 참 크지요?"/"그래, 크다 커~"/은진미륵은 슬쩍 발을 곧추세웁니다. -충남 논산 관촉사


바라보는 사물들의 그림자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저는 그가 꾹꾹 눌러쓴 글씨에 갖혀 버립니다. 그의 문장들은 남모를 긴장감으로 사람을 조여옵니다. 소박한 자전거 여행이 고속열차만큼 팽팽하고 바퀴살에 튕기는 돌멩이가 광개토대왕처럼 땅따먹기를 잘 합니다. 무른듯한 사람의 신통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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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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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바보 집에 칼을 든 강도가 들었다. 바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열심히 여기저기를 뒤지는데 바보가 잠에서 깼다. 
"강도여유?"
바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바보는 놀라서 "살려주시우."라고 말했다. 바보로 정평이 나있는 고로 강도가 말했다. 
"그래. 네가 우리나가 삼국시대의 세 나라를 말하면 살려주겠다."
강도가 바보의 배에 칼을 갖다대며 말했다. 
"배 째시려고 그려?"
바보가 물었다. 강도는 "뭐? 백제 신라 고구려? 맞아. 약속은 약속이니 살려주지." 라고 말하고 일어나 나갔다는 이야기.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장영희는 처음입니다.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소문으로만 들었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어떤 연유로 책장에 꽂혀 있긴 하지만 별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실은 <인간극장>류의 극복형 에세이는 별로 제 타입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어리석게 탈출했습니다.) 요새는 더러 <인간극장>을 보기도 하지만 예정된 감동에서 빠진 스릴은 어쩐지 탄력이 없다고 할까요. 구도자에게 주어지는 지난한 길은 아직 제 차례가 아닌가 봅니다. 

아침이 왜 축복인지 저는 문자로만 아는 사람입니다. 실로 아침이 축복같다는 기분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행아 입니다. 꽃비가 예쁜건 알겠지만 황홀한 눈으로 쳐다볼 수 없는 외눈박이 입니다. 의심과 비판과 독설로 채워진 삶이 부끄러워질까봐 미담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 불편한 일입니다. 강한 사람이 오히려 잘 휘어진다고들 합니다. 느낍니다. 전 알맹이보다 껍질이 두꺼운 두리안입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무척 유연하군요. 삶을 대하는 자세만으로도 그의 아우라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혼 도둑이다. 그들의 젊고 맑은 영혼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주는 글거리를 찾는다.'

그가 찾은 글거리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미담 백과사전이라도 지닌 듯, 주제와 문학에 맞는 일화들을 척척 인용합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촉수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예민함 일테지요. 


잘 사는 나라의 딕과 제인이 나비를 잡고 다람쥐를 쫓으며 꿈을 키울 때, 영희와 철수는 파리를 잡고 쥐를 잡으려고 쓰레기통에 앉아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썰매를 타고 산타맞이 '징글벨'노래를 할 때, 우리는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라고, 눈이 공짜로 내리는 떡가루이길 바라며 노래 불렀다.

조교가 문득 물었다.
 "우리말 처음 배운 외국사람이 보고 제일 놀라는 간판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이요." 한다. 맞다 나도 간판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용인 근처에서 본 '남동 생고기'라는 음심점 간판이다.

미담의 따순 온기에 그저 언 손을 맡기고 침잠해 있을 때, 미친듯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두 번째, 세 번째 글이었습니다. 이 외에는 없었습니다. 참새 시리즈로 오인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못 박아 둡니다. 

기발한 일화들 덕분에 거의 지루하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지만, 제 반쪽이 심성으로는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책에 편지를 남긴 박완서님처럼 '실은 그게 나의 삶의 원초적 환희' 였다는 걸 확신할 날이 올까마는 모르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숨겨진 보석,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 가슴 속에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같은 메시지를 문자 이상으로 육화할 수 있을 지 영 자신이 없습니다. 

반면 후반으로 이어지는 장영희가 사랑한 영미문학의 직접 번역 텍스트와 거기에 딸린 짦은 글들은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무언가 '대상'이 있어야 흡족한 이 병은 걸리시지 않는게 좋습니다. 저는 투병 중입니다. 개중 신선하고 발랄한 동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침식사 때
에드거 A. 게스트

우리 아빠는요, 아주 우스운 방법으로 아침을 먹어요.
하루 중 첫 식사 때 우리는 아빠를 볼 수 없지요.
엄마가 음식을 앞에 놓아 드리면, 아빠는 자리에 앉죠.
그러고 나서 신문을 집어 들면, 우리는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죠.
아빠가 커피를 후후 부는 소리, 토스트 씹는 소리는 들려요.
하지만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침신문 같아요.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두 눈으로 확인한 샘입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첫 단독 번역작이라는 <종이시계>를 비롯해 <바너비 스토리>와 <슬픈 카페의 노래>같은 다른 번역작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를 에둘러 만나는 편이 제게 어울리는 처방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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