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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 약이 되는 잡초음식 ㅣ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25
변현단 지음, 안경자 그림 / 들녘 / 2010년 6월
평점 :
아침 댓바람부터 뭔가에 이끌리듯이 저수지로 향했다. 명목은 숙취 해소용, 심심타파 용 새벽 산책이었지만 실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현재 25권까지 나온 들녘의 귀농총서 25번.
제법 은은하고 소담스런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시작은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귀농도 그 형태가 무척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게중에서 가장 왼쪽, 급진 좌파형 농부를 만난 것이다.
도시의 일거리를 가지고 가서 타협형 귀촌 생활을 꾸리거나,(<문호리 지똥구리네>) 공동 생산자로 농장을 함께 운영하며 수익을 얻거나(이 책의 저자도 <연두 농장>을 운영하긴 하지만 농장 이야기는 아니다), 자급자족형 친환경 작물 제배에 애쓰거나(<자연달력 제철밥상>), 주말 농장형 텃밭으로 농사의 재미를 알아가는(<나의 애완텃밭 가꾸기>)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른바 '잡초'를 접시에 담자는 것인데, 잡초의 중요성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과가 가르쳐준 것>의 기무라 아키노리는 사과밭에 잡초를 원시림처럼 두거나 일년에 한 두번 이발을 해주면서 여름의 땡볕을 이기고 흙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아얘 어떤 잡초들은 가져다 심어야 할 정도로 잡초의 다양성과 중요성을 일깨웠다. 또 <자연달력 제철밥상>의 장영란도 '무경운 농법'을 한다며 도쿠노가진의 <무농약 채소 기르기>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면 충해가 심하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잡초'역시 생태계의 한 고리로 인정하고 돌봐야 한다는, 알고보면 지당한 주장이다.
헌데 변현단(저자), 작물을 위한 효용성을 넘어 게걸스럽게 풀을 뜯는다. 이 잡초 컬렉션에는 민들레나 가죽나무같은 잘 알려진 식용, 약용 식물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강아지풀, 토끼풀, 개망초(계란꽃) 같은 언감생시의 들풀들도 있었다. 봄에 언땅을 뚫고 납작하게 엎드린 나물들은 대부분 약이 되고 찬이 된다고는 하지만 농사의 방해꾼 잡풀들이 실은 의도적 작물들에 못지 않은 영양과 맛을 가졌다고 자신만만이다.
풀멀칭이나(비닐멀칭 대신) 풀거름으로 잡초를 '이용'했던 친환경 농사의 소박한 권력조차 이 잡초 접시 앞에서 작아졌다. 잡초의 식용 효능은 물론이고 작물농사에서의 중요한 구실들을 절절히 꿰차고 있는 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잡초를 먹어가며 농사를 짓는 '잡초농법'은 작물을 심어 관리하는 '농사의 기원'까지도 조금씩 흔들어댔다.
비닐과 기계에 의존하는 힘겨운 관행 농사가 '석유문명의 대안'이라는 가차없는 판단과 함께, 자연의 사유화가 수직적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말한다. 곡식 농사가 전쟁을 일으켰고, 남성의 힘을 요구하면서 땅의 권력이 생기고, 축적을 통한 '소유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저자는 '작물'조차 인위적인 공사로 변질되고 있다며 사육과 재배를 최소화하길 요구한다. 또 기업에 '소비자'로 내맡겼던 삶을 도로 가져오라는 사명을 부여한다. 2부 '잡초의 향연'이 이 책의 주가 되겠지만 '석유를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1부는 짧지만 격렬한 주장들을 담고 있다. 2부는 그런 주장들의 실효성을 몸소 내보이는 샘이다.
원추리, 꽃다지, 개망초, 쇠뜨기, 큰개불알풀, 피, 명아주, 개여뀌…낯익거나 생소하거나, 어쨌든 길을 오가며 한두번 쯤은 보았을법한 풀들이 버젓히 약효를 자랑하고 맛과 멋을 뽐내고 작물농사를 돕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모르게 몸이 근질거렸다. 풀숲에서 볼일을 볼라치면 엉덩이를 간질이는 풀들이 사랑스러워 못견디는 저자처럼 오늘 아침, 무성한 풀들에 종아리를 내주고자 아이와 채비를 했다.
책의 잡초 세밀화들은 간략하면서도 아름다웠지만 직접 풀을 대면하여 알아차릴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작게나마 사진이 첨부되었더라면, 하는 바램을 직접 이뤄보겠다는 욕구가 슬슬 일었나보다. 50여 가지의 잡초들을 하루만에 모을 수는 없었지만 운좋게도 방치된 과수원의 잡초 원시림에서 발견한 '뱀딸기'만으로도 완벽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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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딸기. 산딸기나 딸기보다 맛은 떨어진다. 사람은 얄팍해서 혀끝으로 먹지만 뱀은 사람보다 영리하게도 천연약재를 찾아 먹은 샘이다. 서늘한 맛으로 인해 가슴과 배의 열이 계속되는 것을 다스리는데 효용된다. 주로 어린잎과 열매를 먹는다. 잎과 줄기에는 항암작용 외에도 항균, 면역기능 증강작용이 있다고 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잼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다.
계란꽃이라 불렀던 개망초. 생리활성에 도움이 되므로 생즙으로 내어 먹어도 좋다. 자체의 풍미를 즐기려면 소금만 넣어서 먹고, 보다 부드럽게 먹고 싶으면 참기름에 깨를 살짝 무쳐 먹으면 된다. 잎이 약간 세다고 생각하면 된장국으로 끓여 먹는다. 꽃이 피면 꽃과 함께 튀겨먹는 게 진짜 별미다. 햇볕에 말려 약재로 사용하면 좋다.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고 독을 치료하며 소화를 돕고 설사를 멎게 하는데 쓰인다.
잎 뒤에 붙은 가시 때문에 옷에 브로치처럼 달고 놀았던 환삼덩굴. 농사꾼에게는 화해할 수 없는 적군이지만 화려한 효능을 자랑한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아토피에 특히 좋다. 환삼덩굴을 진하게 달여 목욕을 한다. 평소에 소주에 담가 놓고 쓰면 여름철 모기 물린데 그냥 바를 수 있다. 삼과인 환삼덩굴은 약성이 뛰어나다. 쌈, 절임, 나물, 분말, 차 소개.
애기똥풀. 줄기를 분지르면 노란 즙이 나와 잘 갖고 놀았다. 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천연 염료로 사용해왔다. 노란즙을 사마귀가 난 곳에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진다.
지칭개. 여태 엉겅퀴인줄 알았다. 엉겅퀴는 가시가 있다. 지칭개는 맛이 맵고 쓰며 성질은 차가워서 열을 내리고 독기를 없애고 뭉친것을 풀어준다. 외상으로 출혈이나 골절상에 지칭개 잎과 뿌리를 짓찧어 붙인다. 소염제및 소독제로 사용한다. 꿇는 물에 소금 약간을 넣고 아주 살짝만 데쳐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된장과 고추장을 섞기도 하고 그냥 된장으로 무쳐도 좋다.
농사에도 쑥을 이용한다. 효소를 담가 놓았다가 어린잎에 영양제로 사용하며, 병아리와 어린 돼지들에게도 먹인다. 7월까지 채취하여 쑥을 먹인 가축들은 면역력이 뛰어나다. 쑥조청, 쑥밥, 쑥단자, 쑥차 소개.
명아주는 심장이 튼튼해지는 대표적인 명약이다. 반찬 외에 효소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음지에서 말렸다가 차로 달여 먹기도 한다. 명아주는 시금치 맛과 비슷하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장을 소독하므로 식이요법을 하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우리 밭에 널린게 요 쇠비름이다. 씻어서 샐러드로 먹고, 된장을 넣어 나물로 먹고, 김치나 물김치를 해먹어도 좋다.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먹을 수도 있다. 한여름 효소를 만들어 식물의 영양제로도 사용한다. 악창과 종기를 치료하고, 뇌활동을 원활하게 하여 치매를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줄여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검은색 글씨가 책의 문장, 오른쪽이 책의 그림)
뱀딸기씨가 이물감으로 입안을 돌며 싱겁기만 한데도 아이는 죄다 뜯어먹고는 또 따러 가자고 성화다. 그래서 잡초가 시들해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고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다시 잡초림으로 들어가 딸기를 따는 동안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맛있다'를 연발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내일 또 따러 가기로 약속을 받아둔다. 마침 뒷마당 뽕나무에 오디가 익고 있어서 그날 아침은 야생 열매식으로 대신한 샘이다.
사실 내가 찍을 수 있었던 위의 잡초들은 도시의 길가에도 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광대나물, 뽀리뱅이, 방가지똥, 소리쟁이, 며느리 밑씻개. 털별꽃아재비, 어성초, 미국자리공, 개여뀌. 그대들을 만나고 싶어 몸이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