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인문학 하기 - 랩과 힙합 속 인문 정신을 만나다
박하재홍 지음 / 탐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 힙합은 거칠고 직설적이다. 욕을 섞어쓰는 갱스터 랩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랩이나 힙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한때 힙합을 좋아했던 딸의 경우 교사가 직접 아이를 불러놓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던졌다. 급기야 딸은 학교를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치욕적인 말이라 차마 옮기진 못한다. 남자였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다. 섹스를 언급할 만큼 힙합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가진 그 교사는 나이든 꼰대도 아니었다. 젊은 미혼의 처녀였다는 사실도 실망스러웠다.

처음 나 역시 딸애가 좋아하는 힙합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날 아침 학교의 만류에도 책임지겠다며 아이들 데리고 집으로 가지 않고 시내의 서점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책을 보고 또 힙합 씨디를 사주었다. 이후 <한국힙합>이란 책을 사 주기도 했지만 힙합이 딱 내 취향은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그 책이 집에 없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 겹칠 것 같다.

아마 딸애가 아니었다면 트렁큰타이거나 윤미래 정도만 알았지 가리온이 누군지 MC가 뭔지 그야말로 듣보잡이었을 거다. 그렇다고 잘 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이름은 들어봤다는 거지. 도대체 MC가 뭐길래 딸애는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 했는지 의문만 가졌더랬다. 그때는 한창 질풍노도 사춘기의 가운데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었기에 친절한 대답을 듣기 어려운 때였다.

어쨌거나 이 책으로 나는 또 딸애와의 더 많은 얘깃거리가 생겼다. 어떤것이든 열정적으로 빠진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젊음의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하고 있는 현행의 방식으론 아이들이 행복해질리 없다. 또한 무거운 스트레스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도 딱히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이 랩을 통해 가슴속에 쌓인 불만이나 묵힌 앙금들을 토해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랩의 가사는 솔직을 전제로 해야 하고 은유나 비유보다는 직설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태워 완전 연소시키면 어떨까.

처음엔 불편하게 들릴지라도 결국은 모두 후련해지지 않을까. 오래전 DJ DOC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 잘 먹나요'나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를 떠올려보라. 후련하지 않은가. 이들의 유쾌한 반격에 누가 태클을 건단 말인가. 제 안에 쌓인 울분이 힙합을 만나 힐링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꾼다.

 

낭독의 두드림을 통해 문장 속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운율과 장단을 어떻게 만드는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라임을 살려서. 잘 쓰고 귀에 쏙쏙 박히게 들리도록 발음을 정확하게 구사할 것을 강조한다. 관심이 없을 때는 래퍼들이 발음을 흘려서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전혀 아니였다. 이것도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듯하다. 여튼 대중문화에 주류와 비주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다양성의 인정과 유연함은 힙합이 앞서는 것 같다.

2008년 서울 강남구(갑) 국회의원 기호 8번 무소속으로 나온 김원종,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세를 떨친 김디지는 비록 낙선했지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국회의원 출마하니 전직 국회의원 나에게로 다가와서 한다는 말이 "야 임마 정치가 장난이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국회의원 출마하는 기호 18번 김디지 궁금해서 물어보지 "그럼 전직 국회의원 폭탄주에 성추행은 장난 아니고 정치냐?" 18대 국회의원 후보 김디지 김디지를 국회로! 나이 많은 능구렁이 뇌물 받는 국회의원 꼰대들을 제끼고서 출마한다 국회의원! 어차피 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인데 차라리 디지를 국회로 보내 김디지를 국회로 국회 의사당으로 다 같이 김디지를 국회로 국회 의사당으로....'

이렇듯 많은 래퍼들의 토해낸 가사는 아주 매력적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글자에 색이 입혀진 랩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랩퍼가 된 것처럼 속으로 재밌게 읽느라 속도는 조금 더뎠지만 신났다. 이 얘기를 딸에게 했더니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나도 제어가 안되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자동적으로 읽히는 걸 어째^^

랩이 이렇게 재미난지 몰랐다. 어떤 잔소리도 랩으로 하면 통할 것 같은 착각도 일시적으로 들었으니깐.ㅎㅎ

랩의 장점을 이용하여 문학을 즐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뒤에 실린 1318들의 랩 가사들이 바로 내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서 더 마음에 닿았을지도.

랩퍼의 가사 속에 들었다는 인문학은 차치하고.^^

 

한가지,

74쪽과 168쪽의 'ㅅ'인쇄가 매우 불량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랩하는 박하 2012-09-0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박하재홍 입니다. 책이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네요 ^^* 책에 예시로 든 음악들을 제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려 놓았으니 따님과 함께 들어보세요~ 불량인쇄까지 알려주시고, 꼼꼼한 서평 감사합니다!

희망으로 2012-09-07 00:20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기쁘지요. 직접 댓글까지 달아주시구요^^
많은 사람들이 힙합을 랩을 열린 생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고3인 딸이 있어서 그런가 오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소개서를 글로 작성하는 것보다 랩으로 하면 어떨까하구요.ㅎㅎ
저도 좋은 책 써주셔서, 블로그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의집 2012-09-1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님 작가에게 이런 댓글도 달리고...좋겠다. 그리고 저 색글, 시원합니다~ 맞는 말이고요.

희망으로 2012-09-18 13:29   좋아요 0 | URL
그쵸, 속 시원하게 뱉어내는 게 랩의 매력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