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 엄마가 되다 - 개성 강한 닭들의 좌충우돌 생태 다큐멘터리
김혜형 지음, 김소희 그림 / 낮은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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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철망 안에 닭들을 빽빽하게 집어넣으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닭들이 서로를 쪼아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는데, 그걸 방지한답시고 어린 병아리의 부리 끝에 아예 뭉툭하게 잘라 버린다죠. 닭의 부리에는 우리의 손톱 밑처럼 아주 예민한 말초신경이 뻗어 있어서, '부리 자르기'를 당한 병아리는 한동안 모이조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느낀대요.'(101쪽)

 

'세상의 수많은 닭들이 흙을 밟으며 살고 있지는 못해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비좁은 철망 안에 빽빽하게 갇혀서 갖가지 약품으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고, 밤낮도 분간할 수 없는 환한 불빛 아래서 빠른 속도로 달걀을 뽑아내다가, 쓸모없어지면 일찌감치 죽임을 당한다지요. 기분 좋은 몸짓으로 흙을 헤집으며 흙 목욕하는 우리 닭들을 바라보다가 그런 대규모 공장식 사육장의 닭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착잡해져요.'(33쪽) 

 

요즘 또다시 광우병에 관한 뉴스로 시끄럽다. 처음 광우병에 대해 알게 될 즈음 닭이나 돼지 같은, 사람이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동물들이 어떻게 길러지는지에 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몇몇 장면이 생각났다. 가령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여 알을 낳을 수 없는 수컷은 바로 폐기되어 지는 것을 보고 이보다 더 잔인한 동물은 이 세상에 인간 외에는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크지 않은 판형에 사진과 글의 적절한 편집으로 아이들이 딱 좋아할 구성과 내용이다.

봄이 무르익다 못해 요 며칠은 여름을 느끼게 한다.

이런 봄이면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노란 병아리를 한 번씩 사 들고 들어온다.

언젠가도 환하고 기쁜 얼굴로 껌정 비닐봉지에 노란 병아리 한 쌍을 신나게 들고 오던 딸아이.

엄마들은 그 생명이 오래가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딸 아이처럼 마냥 달뜬 얼굴로 맞아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길러야하면서도 꼭 한마디를 남긴다. 금방 죽을거라고.

예상대로 힘없이 픽픽 쓰러져가는 병아리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이후 또다시 병아리를 손에 들고 왔음에도 왜 병아리가 죽는지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듯했다. 안타깝고 가엽다는 생각만 했다. 이렇게 한참이 지난 후 비로소 왜 병아리가 금방 죽는지를 알게 되는 무심함과 무지함이란.ㅠㅠ

어린 병아리는 스스로 체온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 고로 병아리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저체온증 때문이다. 상자 안에 60촉 백열등만 켜 놓아도 살 수 있는 것을....

진즉 알았더라면, 이라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또 그렇게 중닭이 되고 어미닭이 된들 반갑기만 했을까.

재미있어~하며 읽지만 순간순간 화가 치밀었다.

각종 항생제나 산란촉진제 등이 함유된 사료를 먹은 닭이나 달걀을 다시 우리가 먹게되는데 과연 괜찮을까? 조금씩 누적된 약품이 인간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무정란인줄도 모르고 암탉의 본성대로 알을 품으려 했던 꽃순이나 순둥이는 결국 알을 낳고 병아리를 키워 낸다. 또 흙마당을 마음껏 뒹굴었던 저자가 키운 닭들은 그래도 닭으로서는 행복한 삶이지 않았을까?

미처 어른으로 성장해 보지도 못한 채 고기로 팔려나가는 육계들이 과연 행복을 알기나 할까?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 잎싹이 알을 품어보고 싶은 본성을 억제하지 못해 닭장을 탈출했고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했었을 그 마음이 느껴져 울컥한다.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그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고 생각할 꺼리를 많이 주는 책이다. 물론 재미도 보장하고.^^

다른 책들처럼 정보를 따로 팁박스처리 하여 곳곳에 배치하여 지식을 전달하는 책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효과를 충분히 냈다. 의도하지 않은 듯 살짝살짝 꽤 많은 내용을 텍스트의 색을 달리하여 스토리에 녹여냈는데 정말 짱이다!

생태 다큐멘터리의 부제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사진찍고 기록한 수고가 느껴진다. 무슨 책인들 안그러겠냐만 이런 책은 아이들도 느끼지 않을까....더불어 닭에 대한 애정도 담뿍 드러난다. 그런 애정이 없이 이런 책을 만들수도 없고 설령 만들었더라도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았으리라.

강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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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잔인하다. 부리를 꼭 잘라야하나 싶은게.
요즘 애들도 닭같은 신세죠 뭐. 학교에 갇혀 주입식으로 공부 공부 공부~ 오로지 공부를 위해 태어난 애들 같잖아요. 닭들이나 애들이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는지..이러면서도 울 아들 중간 고사 때 공부 안 한다고 잔소리는 하게 되던데요. 완전 이번 시험 개판~ 다음엔 잘 보자 했는데, 진짜 어떻게 해야할런지 모르겠어요. 강압적으로 시켜야하는지.

희망으로 2012-05-03 21:56   좋아요 0 | URL
암수 구별이 끝나면 바로 버려지는 것도 있는걸요...
맞아요. 네모난 교실에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게 마치 닭장 속에 갇힌 닭 같은 느낌이 들긴 하네요.
초딩 시험이랑은 많이 다르잖아요. 지문도 굉장히 길고요. 울 아들은 중1은 내신 안들어간다고 내리 놀더니 3년 내내 놀았다죠.ㅠㅠ
공부가 뭔지.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어려운 숙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