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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증보판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김상철.최정임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의 마지막 챕터 제목이기도 한 ‘9.11 vs 11.9’만큼 이 책의 주제를 잘 요약해주는 말도 없다.
이책의 주제인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1월9일이었다. 이책 이전에 저자가 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란 책은 11월 9일 이후의 세계화에 대해 쓴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책이다.
그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세계화의 상징으로서 렉서스 자동차였다. 세계적 차원의 공급사슬로 공급된 부품을 세계적 차원에서 조립해 세계적 차원에서 팔리는 렉서스 자동차를 세계화의 상징으로 저자는 꼽았다. 후에 쓰여진 이책에서도 그러한 기업들에 의한 경제적 세계화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그 책을 쓴 이후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아 세계화는 차원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책의 서두는 저자가 방갈로르를 방문해 골프를 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공을 IBM 건물 쪽으로 치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이책의 시작이다. 저자가 찾은 방갈로르의 골프장 주변에는 IBM, MS, HP, TI, Epson 등의 지사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저자는 여기가 인도가 맞는지 캔자스시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진부해진 단어들이고 저자가 이책을 쓸 때도 진부해진 단어인 아웃소싱이 인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쓸 때와 달라진 점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덕분에 렉서스를 만드는 제조업만 세계화된 것이 아니라 세계화가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던 콜센터나 회계업무, 의료, 연구개발, 디자인 과 같은 서비스업까지 세계화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직업인 기자 직업까지 인도로 아웃소싱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PC와 그 PC를 기반으로한 인터넷, 그리고 누구에게나 소스코드가 공개된 오픈소스는 의지와 재능만 있다면 인도에 살건 미국에 살건 평등하게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평평한 경기장(level field)’을 만들어 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의 제목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만이라면 이책은 진부한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세계화 책일 뿐이다.
이책의 장점은 전작인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처럼 세계화라는 흐름에 저항하는 힘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저항의 상징이 바로 9.11이다.
어떤 일에든 반대는 있게 마련이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WTO와 다보스 포럼이 있을 때마다 떠들석 했던 반세계화 데모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 저항을 낳는 힘과 원인에 대해 저자는 자세히 다룬다.
이책은 1/3정도를 인터넷으로 세계화가 어떻게 가속되고 있고 거기다 모바일로 더 빠르게 가속되는 현상에 대해 할애하고 잇다.
다음 1/3은 그런 트렌드에서 개인과 기업이 어떻게 대비해야하는가를 설명한다. 이부분에서 저자는 세계화가 좌초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계화로 경기장이 평평해졌다는 것은 경쟁이 더 심화된다는 말이고 그만큼 압력이 가중되고 긴장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된다.
그 낙오자들은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넘쳐나고 잇다. 청년실업이라든가 갈수록 빨라지는 퇴직연령, 잦은 이직이 그것이다. 개방정도가 높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격화되는 세계적 차원의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뒤쳐지고 낙오되는 것이다.
그런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세계화는 중단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그것을 ‘온정적 평평주의’라 말한다. 세계화에서 살아남는 것은 실력이 있는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남보다 앞서 더 빨리 움직여야 살아남는 것이다. 앞서는 방법은 무수히 말해지는 지식이라는 말, 즉 지식이 가능하게 하는 혁신을 말한다.
혁신적일 수 있는 국가와 기업, 개인은 더 큰 보상을 받고 그렇지 않은 낙오자는 뒤쳐진다. 저자는 그에 대한 대책으로 대처 이후 말해지는 생산적 복지를 언급한다. 즉 실직자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것보다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나 뒤쳐지지 않게 자신을 계발할 환경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에게 환경을 제공하는 국가적 차원에선 과학기술의 교육과 같은 혁신의 원천력을 준비하는 것 같은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진부하긴 하다. 책의 나머지 1/3에서 말하는 9.11로 상징되는 반세계화에 대해서도 사실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알 카에다와 같은 광기가 나오는 것은 세계화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중동의 모멸감 때문이라 말하면서 저자는 세계화에 그들을 더 끌여들여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고 거기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 말한다. 북한에 대해 햍볕정책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진부하다. 왠만큼 세계경제의 흐름과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으면 다 아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책이 그런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주목받고 널리 읽힌 것은 책 한권에 세계화의 모습을 모두 담아내는 능력과 그 모습을 저널리스트의 능력을 발휘해 발로 뛰면서 인터뷰하고 세계화의 현장을 발로 누비며 자료를 구한 저자의 성실함 때문이며 그 자료들을 묶어 알기쉬운 그림을 그려내는 저자의 능력 때문이다.
두껍지만 그 두꺼움에 비해 쉽고 빠르게 읽히는 이책의 미덕은 그런 저자의 능력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이책에 담긴 세계화의 모습은 이책이 출간된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게 세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