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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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골랐다면 아마도 저자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쓴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책처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양서를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틀린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이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학부의 전공강의를 책으로 펴낸 ‘정의란 무엇인가’는 간단히 말해 ‘정치철학 101’이라 할 수 있다. 정치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학부생을 위해 정치철학의 ABC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기 보다 저자는 현재 영미권의 정치철학에서 유의미한 3가지 학파를 소개하는데 강의를 집중하고 있다.

이책 역시 마찬가지로 3 학파가 책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강의에선 소개에 집중했다면 이책에선 그 학파들이 실제 정치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정치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미권에서 정치철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본격적으로 대학의 학과로서 받아들여진 것은 19세기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정치철학의 역사는 종교의 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영미권에서 종교의 위기는 1859년 ‘종의 기원’이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고 1867년 영국인의 참정권을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한 2차 개혁법으로 공식화되었다.

신의 죽음과 대중민주주의의 시작은 종교가 정당화 해주었던 개인의 행위와 사회질서가 어떻게 정당화될 것인가란 문제를 낳았다. 무엇이 종교를 대신한 신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대안은 두가지였다.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칸트주의적인 직관주의와 공리주의이다.

두 철학을 간단히 말하자면 ‘선한 동기에 기초한 철학’과 ‘선한 결과를 추구하는 철학’이다. 직관주의는 행위의 정당성을 양심에서, 인간 이성의 직관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직관은 어떻게 정당화될 것인가? 직관주의와 공리주의의 논쟁은 빅토리아식 타협을 낳는다.

“직관주의자들은 효용을 교의와 행위의 최종 시금석으로 확신하게 되었고 공리주의자들은 그들대로 기존의 사회제도들도 결국은 일정한 공리주의적 정당성을 지닌다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융합을 통해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영국 특유의 전통이 지적 정당성을 얻었으며 산업시대와 성공적으로 타협할 수 있었다.”(스키델스키)

이러한 공리주의적 타협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롤스의 ‘정의론’이 이전까지 공리주의적 합의를 뒤흔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리주의적 타협이 가능했던 것은 효용이란 개념이 ‘공동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엇다. 다시 스키델스키의 말을 들어보자.

“지적 종합이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철학적 합의는 논의의 대상이 사회일 때만 가능했다. 문제는 사회적 행위와 개인적 행위의 관계에 있었다. 결국 사회철학과 도덕철학을 비신학적안 하나의 틀 안에서 결합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엇다. 사회철학은 공리주의 없이 성립될 수 없었고, 도덕철학은 공리주의와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철학과 도덕철학의 균열은 공동체가 정치의 근거일 때는 문제가 없엇다. 미국의 맥락에서 보자면 카운티를 단위로 주민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그 카운티들의 합산이 미국이란 연방일 때는,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질감을 느끼는 공동의 삶에 참여하여 자신의 운명을 통제한다고 느낄 때는” 사회철학과 도덕철학의 균열, 다시 말해 사회와 개인의 균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균열이 표면화된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때엿다. 시장의 힘이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초창기 공화주의 분권정치를 구닥다리로 만들었을 때 균열은 표면화되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대규모 제조업에 반대햇다. 농업이야말로 고결한 시민들을 위한 것이며 공동체의 자치를 실현할 때 가장 적합한 생활방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진정한 미덕의 구현이라고 주장햇다. ‘종속관계는 아첨과 굴종을 낳고 미덕의 싹을 짓밟는다.’며 제퍼슨은 대규모 제조업이 독립성이 결여된 무산계급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햇다.”

그러나 19세기 말 제퍼슨이 우려한 대로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국가경제는 지방공동체의 자치권을 축소시켰다. 그러는 동안 점점 더 증가하는 이민자들과 빈곤, 무질서, 비인간적인 도시의 성장은 많은 이들에게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도덕성과 결집의식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앗다. ”

제퍼슨이 우려한 대로 “독점자본은 직접적으로 민주제도를 압박하고 그 통제를 무시하며, 간접적으로는 노동자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훼손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윌슨의 진보주의 시대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은 그러한 도전에 대한 응답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시대에 진보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살아남으려면 경제적 힘이 집중된 것처럼 정치적 힘도 집중되어야”한다고 생각햇다. 그러나 정부의 중앙집권화만으로 민주주의가 구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 역시 국가 단위가 되어 정치공동체 역시 국가적 규모로 커져야 햇다(정치의 전국화). 경제적 삶이 전국화되면서 사회도 전국화되었고 그에 맞춰 정치도 전국화되어야 했다.

정치의 전국화는 뉴딜에 의해 완성된다. “작은 규모의 민주적 공동체들로 이뤄진 고결한 공화국이 가능하지 않다면 민주주의의 차선은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엇다. 그것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정치였다. 국가의 역할은 서로 경쟁하는 이해관계들을 위해 중립적인 틀이 되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현대의 사회, 경제에 부합하는 공동의 삶을 만드는 공동체엿다.”

그러나 저자는 ‘정치의 전국화’ 프로젝트는 실패햇다고 말한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자 국가 공화국은 소멸했다. 전쟁처럼 극도로 예외적인 순간을 제외하면 국가는 그 전반에 걸쳐 공동체에 필수적인 자기 이해를 배양하기에는 너무 광대한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현실이 더 이상 공동선을 위한 것이 되지 않을 때, 효용의 기준이 되는 공동선이 모호해졌을 때 공리주의적 합의는 무너졌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공동체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은 환상에 불과해졋을 때 정치현실은 “선의 정치에서 권리의 정치로, 국가 공화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로 옮아”갔고 정치철학은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는 공공철학에서 공정한 절차를 지향하는 공공철학으로 옮겨간다.”

저자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엇듯이 정치철학의 주류가 공리주의에서 (칸트주의적) 자유주의로 옮겨간 것은 공공의 삶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자유주의가 그리는 삶은 대중사회의 삶이다. 그러면 그 삶은 어떤 모습인가?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한다. “대중사회를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그 구성원들의 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그들을 결집시키고 관계시키고 분리시키는 힘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공동체주의자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자유주의자들도 공동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체는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루소의 ‘사회계약’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런 ‘인공’의 공동체가 과연 현실적인가? 더군다나 자유주의가 그리는 개인이란 어떤 개인인가를 말할 때 상황은 더 끔직하다. 그 개인은 “자유로운 이성적 행위자가 아니라 개성과 도덕적 깊이가 전혀 없는 사람이 그려진다.” 마치 대중사회의 모래알 같은 개인들처럼 말이다.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시대, 자신을 뛰어넘는 무엇과의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가능한 철학은 무엇인가? 공동체주의자들의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저자는 두 철학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같다.

그리고 그런 실패가 예정된 시대에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이책을 읽으며 생각해볼 주제일 것이다. 그런 주제를 생각할 때면 로마제국의 역사가 떠오른다. 명예를 말하고 조국을 말하고 충성을 말하고 의무를 말하던 공화정 시대에서 제정시대로 옮겨갔을 때 로마의 예술은 개인주의화되엇다. 더 이상 제국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더 이상 명예나 국가의 운명 같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오직 사랑 만을 말했다. 개인을 넘어설 수 없을 때 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랑만이 구원일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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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정치 - '성공의 역설'과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
서진영 지음 / 폴리테이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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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질문은 중국의 민주화는 어떻게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이다. 답은 뻔하다. 외국의 학자들도 심지어는 공산당 간부들도 내심으로는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중국에서 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가를 답해야 하고 그 답을 하려면 중국의 정치사를 따라가면서 중국의 특수성을 알아봐야 한다.

먼저 저자는 1989년 사회주의가 동시에 붕괴하던 때 왜 중국의 사회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는가? 란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답은 문화혁명 때문이다.

중국은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탈린주의 모델에 따른 국가건설을 시작햇다. 스탈린주의는 경제적 특징을 요약하면 국가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 대신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면서 자본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자본가가 되면서 당과 국가의 관료는 특권계급이 되고 강력한 기득권을 갖게 된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 기득권의 저항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정치개혁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사회주의권의 문제는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으로 경제가 실패했다는 것이었고 고르바초프의 관심 역시 경제에 있었다.

그러나 경제를 개혁하려고 하니 기존의 정치체제에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저항했고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좌절한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경제개혁을 하려면 정치개혁을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에서도 스탈린주의의 결과로 소련과 같은 특권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특권층은 문화혁명으로 약화된다. 문화혁명의 목표가 그들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개혁을 시작했을 때 목표 역시 사회주의 경제의 무능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달리 그 개혁에 저항할 당과 국가의 관료들은 문화혁명 때문에 약화되어 있었고 그의 개혁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화혁명의 유산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산당의 근본이념을 무너트리는 일이다. 그러나 문화혁명은 그 이념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광란의 시절을 겪어야 햇던 중국인들은 공산주의는 물론 어떤 이념에 대해서도 냉소적이 되어 있었다. 이를 중국에선 ‘신심의 위기’라 부른다.

이념에 냉소적이 된 것은 당관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화혁명의 타깃이 되어 숙청당해야 햇던 그들은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문혁 4인방을 정점으로한 당내 좌파들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했고 반좌파연합을 만든다. 당시 당에서 덩샤오핑만한 연륜과 인망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반좌파연합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마오의 유산이 마냥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78년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이 가능햇던 것은 마오의 유산 덕분이었다.

52년 이후 마오는 스탈린식 계획경제로 선회한다. 스탈린주의 경제정책의 특징은 도시화와 산업화이다. 특히 중공업에 올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련도 혁명 당시 후진국이었고 후진국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경제의 기초가 되는 중공업 인프라에 집중했다. 중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오 시절 중국의 경제성장은 당시 개도국에선 대단히 빠른 속도였다. 물론 그런 속도는 모든 자원을 중공업 육성에 몰아넣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마오 시절에 기초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 기초 위에서 덩샤오핑 이후 30년의 고속성장이 가능햇다.

그러나 마오 시절의 문제는 중공업에 올인했다는 것이다. 중공업은 산업의 특성상 스탈린주의의 계획경제와 잘 맞았다. 그 결과 소련과 마찬가지로 농업과 소비재를 만드는 경공업이 희생되었고 가용자원을 중공업에 몰아넣기 위해 내핍을 강요했기에 중국인의 생활수준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경제성장률은 올라가도 ‘빈곤의 평등’이 강요될 수 밖에 없었다.

문화혁명이 낳은 ‘신심의 위기’와 ‘빈곤의 평등’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무너트리는 것이었고 체제위기를 낳았다. 덩샤오핑의 개혁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의 방법이었다. 덩샤오핑의 지지기반인 반좌파연합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마오주의에 대한 반감이었고 마오가 낳은 정당성 위기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위기를 해소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비효율적인 계획경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햇다. 그러나 개혁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이의가 없지만 개혁의 범위에 대한 각론에선 보수와 개혁파가 당내에서 끊임없이 충돌했고 그들의 논쟁과 권력투쟁은 89년 천안문 사태까지 끊이지 않는다.

개혁파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고도성장을 이끌어내어 경제개혁에 관해선 보수파의 입을 다물게 한다. 물론 경제개혁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국가체제 다시 말해 스탈린 체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개혁은 체제의 핵심인 도시와 국영산업이 아니라 농촌과 주변부에서부터 조금씩 진행된다. 그 성과가 눈에 보이면 실적을 근거로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개혁이엇다. 개혁은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내 급진파는 경제개혁을 위해서도 정치개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문화혁명이 낳은 신심의 위기가 낳은 현상이었다. 보수파는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86년 전국적으로 학생시위가 일어나면서 학생들의 명분인 민주화에 동조적인 조자양을 보수파가 공격해 물러나게 한다.

그 뒤를 이어 총서기가 된 후야오방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절충을 시도한다. 그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후에 자오쯔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과 3대 대표론으로 발전한다. 이후 당내 주류 개혁파의 논리를 제공한 후야오방의 이론적 근거는 신권위주의론이다.

신권위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경험이엇다. 권위주의 국가가 정치적 안정을 제공하고 그 안정 위에서 경제발전이 가능햇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인정하여 보수파와 타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신권위주의는 30년동안 중국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의 유신체제에서도 그랫듯이 신권위주의는 위태로운 묘기에 가깝다. 신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은 결과에 의존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만사가 잘 돌아간다. 보통 서구의 학자들은 이런 정치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그랫듯이 신권위주의의 성공은 신권우주의의 무덤을 판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성공의 역설이다.

역설은 두가지이다. 첫째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이 가능햇던 것은 마오주의의 족쇄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마오주의의 족쇄에서 풀려난다는 것은 당국가의 전체주의에서 지방을 풀어주고 개인을 풀어주어 시장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덕분에 경제는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비싼 것이었다.

경제발전에 비용을 대기 위해 중국정부는 무료로 보편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던 교육과 의료, 연금과 같은 혜택을 줄였다. 불평등의 조건을 만든 것이며 이후 덩샤오핑의 선부론(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있으면 되게 해야 한다)은 부의 풀평등을 심각한 수준으로 늘렸다. 상하이, 베이징과 내륙의 소득격차는 10배에 달하며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경고수준인 4.2를 넘어 빠르게 높아지고 잇다(지니계수가 5이면 혁명이 일어날 충분한 조건이라 본다) 후진타오의 조화사회란 말은 바로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불평등만이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혜택으로 입어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은 신권위주의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현재 그들은 당연히 신권위주의의 지지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한국, 대만에서 그랫듯이 그들도 권위주의의 해체를 원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현재로선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현체제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이 현체제에 도전할 힘도 없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저자는 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미약했고 지배 엘리트들이 체제를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했기에 천안문 사태는 위기로 비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에서 그랬듯이 이전까지 국가만 있던 곳에서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사회가 태어나 자라고 잇다는 것이다.

후진타오나 원자바오의 말을 보면 내심으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내 주류인 개혁파들은 공산주의를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어느 당간부 저서의 제목처럼 ‘민주는 좋은 것’이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역시 자신들의 필요를 더 잘 만족시켜줄 체제로 민주주의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길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다. 공산당을 대신할 세력은 중국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가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소련 붕괴 후의 혼란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에 도전할 시민사회의 힘도 자라날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저자는 권위주의에서 민주화가 일어난 사례들을 강한/약한 국가 X 강한/약한 시민사회 의 도식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한다. 그에 따라 4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저자는 중국 역시 민주화의 길로 가는 이행기에 접어들었지만 그 경로는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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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껫 100배 즐기기 - 2011~2012년 최신판 100배 즐기기
한혜원.성희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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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전에 리뷰한 이 시리즈의 발리편과 푸껫을 소개하는 이책을 비교하면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이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이책의 구성은 인천공항에서의 출국부터 현지 공항에서의 출국, 목적지까지의 교통편의 종류와 비용, 그리고 목적지의 특징, 일정을 어떻게 짤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묶을 숙소와 즐길 레스토랑, 스파, 쇼핑, 나이트 클럽 등이 사진과 함께 업소의 특징을 요점만 골라 낸 간략한 설명 등으로 되어 잇다.

책의 구성이 현지에서 겪게 될 여정을 따라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리즈에 대한 다른 리뷰에서 말했듯이 현지에 가지 않더라도 그 공간의 느낌이 어떨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책을 쭉 훑어보면서 떠 오른 말은 ‘방콕 간다’는 말이다. 방콕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향락가라는 것이다. 에이즈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예전에 있었는데 그 원인이 향락가를 드나드는 외국인 때문이었다. 매춘에다 게이들, 여장남자와 같은 태국만의 특징 아닌 특징은 푸껫을 소개한 이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책에 소개된 다른 곳은 그렇지 않지만 나이트 클럽이 밀집된 빠똥 지역은 방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넓은 푸껫 섬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업체들이 밀집된 빠똥만 그런 것이다. 그러나 조용하고 한산한 편인 다른 지역들도 발리와 비교하면 향락이란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발리도 그렇지만 푸껫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해변 때문이다. 거친 남성적인 바다의 발리와 달리 열대의 바다하면 떠오르는 바닥이 비치는 것 같은 투명한 파란 바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에머랄드빛 물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바다. 이런 바다 덕분에 푸껫이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는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가 없다.

그런 자원만으로는 매니아 사이에만 떠도는 신비의 장소에 그칠 뿐이다. 이책의 대부분 지면을 차지하는 호텔, 레스토랑, 스파, 쇼핑시설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대중적인 명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발리 역시 이책이 보여주는 푸껫만큼 그런 시설이 잘되어 있고 그런 업소들의 사진만 봐서는 발리인지 푸껫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니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물론 인프라만 갖춰진다고 다가 아니다. 그 나라만의 특색있는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푸껫도 그런 문화를 느낄 수 잇다. 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과 풍경, 공연은 이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은 발리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발리와 비교하면 뚜렷한 나름의 컬러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이책을 보면서 느꼈다. 전체적인 느낌은 바다에서 해수욕하고 쇼핑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즐긴다는 것이 다란 느낌이다.

물론 푸껫에 대해 들어본 것이 거의 없고 이책만으로 확인한 것이니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여러권 보아온 경험으로 보면 아마 실제 푸껫의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고 그런 사정이 책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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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 기회를 낚아채는 충동의 힘
닉 태슬러 지음, 이영미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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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와 리스크 매니저(risk manager)에 관해 말한다. 당신은 리스크 테이커인가 리스크 매니저인가? 답을 알려면 다음 실험에 답을 해보자.

500달러를 받을 100% 확률과 1,000달러를 받을 50% 확률의 두가지 옵션이 있다고 하자,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대부분은 확실하게 500달러를 받을 것을 선택한다. 당신도 그렇다면 당신은 리스크 매니저이다. 위험할 것 같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보통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500달러라는 심심한 선택보다는 2배의 보상을 쫓는다면 당신은 리스크 테이커이다.

저자는 리스크 매니저가 더 보편적이라 말한다. 대개의 경우 3/4은 이에 속한다. 그러나 리스크 테이커도 그보다 작지만 1/4이나 되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나온다.

이러한 비율은 일정하다. 비율이 일정하게 나오는 이유는 저자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리스크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통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 유전자는 탐색추구 유전자라 불린다. 이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의 돌연변이이다.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는 두뇌에서 도파민의 적절한 수준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도파민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흥분이 지나치면 좋을 일이 없기 때문에 도파민의 수준은 일정해야 하며 도파민의 수준이 일정수준을 넘어가면 흥분이 공포와 불안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 이 유전자의 기능이다.

그러나 변종 유전자는 도파민의 수준을 조절하는 기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변종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항상 더 많은 도파민을 원하고 도파민을 찾아 새로운 자극을 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주의력 결핍으로 오해받지만 이들의 주의력은 정상이다. 단지 쉽게 지루해할 뿐이다.

새로운 자극을 쫓는 성향 때문에 이들은 나머지 3/4의 사람들과는 리스크를 다르게 평가한다. 리스크란 이익과 위험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란 확률이다. 이익과 위험이 반반이라면 3/4의 사람들은 위험에 가중치를 두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극을 쫓는 1/4의 사람들은 리스크의 위험보다는 이익에 더 끌린다. 위험이 반 이상이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리스크 테이커이다.

이런 성향은 조상들이 살던 아프리카 초원에서라면 딱 죽기 좋은 성격이다. 초원에서 위험이란 생사의 문제이다. 이익을 쫓는 것은 좋다. 그러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성향은 목숨이 간당간당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이런 성격을 갖게 하는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1/4이나 발현되는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득이 잇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 등장한 시기는 5만년전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로 유럽으로 떠나는 ‘모험’을 시작한 때이다. 새로운 것을 쫓고 새로움의 긍정적인 면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의 변종이 나온 덕에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서식처를 확장한 것만이 아니다. 예술도 이때 나왔고 농경도 이때 나왔다.

다시 말해 리스크 테이커들은 혁신자이다. 그들 덕에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를 피해 쫓기는 생활을 접고 짧은 시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리스크 테이커의 잇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맨땅에서 시작해 자신의 힘으로 거대한 부를 이룬 사람,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들은 거의 리스크 테이커들이다.

그러면 리스크 테이커는 언제나 승자이고 좋은 것만 주는가?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앞의 실험에서 1000달러를 선택했다면 확률은 반반이니 1000달러를 받거나 0달러를 받거나 둘중의 하나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 리스크 테이커의 전형적인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테이커와 리스크 매니저의 소득평균은 비슷하다. 단지 리스크 테이커의 소득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양극단에 치우쳐 잇다.

충동적인 그들의 성향은 너무 극단적이다. 그렇다면 항상 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사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빌 게이츠의 예를 든다.

빌 게이츠는 알다시피 잘 나가던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전망도 불확실한 IT 시장에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리스크 테이커의 충동적 행동이다. 그러나 그가 MS라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충동성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별명은 ‘바이너리 빌’이다. 이 말은 게이츠의 이원적 사고 체계를 가리킨다. 게이츠는 충동 그 자체이다. 그는 교통위반 딱지로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회의실을 도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과 관련해서 게이츠는 모험 충동을 자신의 비관주의로 억제한다. 대다수에게 비관주의는 장점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선천적으로 충동적이지 앙ㄶ다.

빌 게이츠는 어떤 아이디어도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조차 특유의 회의주의와 강도 높은 정밀조사를 거치지 않고는 사무실을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충동적 사고가 효과적이려면 ‘방향이 맞아야 한다.’ 이들은 충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할 때만 긍정적이라 말한다.” 저자는 긍정적일 때 기능적 충동성, 부정적일 때 역기능적 충동성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혁신적인데다 자신을 제어할 방법까지 있고 좋은 것만 있으니 대다수 3/4은 그저 평범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 밖에 없는가?

저자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3/4은 역시 리스크 테이커들처럼 혁신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 못지 않게 자신의 충동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뭐라고? 충동성은 리스크 테이커들의 성향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저자는 리스크 메니저들도 충동성이 잇다고 말한다. 조건이 갖춰지면 그들도 충동적이 무모하게 충동적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실험을 뒤집어보자. 1000달러를 읽을 확률이 50%, 500달러를 잃을 확률이 100%인 두가지 옵션이 있다고 하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대다수는 첫번째의 도박을 택한다. 리스크의 이득일 활륙은 무시할 수 잇지만 그 조건이 손실의 문제가 되면 충동적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리스크 테이커들에게 모험은, 도박은 일상이지만 리스크 매니저들에게 모험은 낯선 것이고 경험이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모험을 해야 되는 상황을 만나면 안절부절하게 되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잇다면 충동성을 제어할 수 잇고 리스크 테이커들만큼 대담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저자는 모험에 대한, 리스크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한다면 리스크 매니저도 얼마든지 리스크 테이커만큼 혁신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짐은 지식의 양이 방대하며, 이를 활용해 결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내린다.” 짐이란 리스크 매니저 타입인 임원에 대한 평가이다. 저자는 이것이 열쇠라고 말한다. 지식은 충분한 준비를 말한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리스크를 과감하게 떠안을 수 있게 한다. 저자는 그 예로 통신판매업체였던 시어즈 로벅을 성공적인 백화점 체인으로 변신하게 한 우드의 예를 든다. 우드는 리스크 매니저엿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전직 장교 우드는 숫자에 미친 사람이었다.” 1920년대 미국은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자동차가ㅓ 널리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트렌드를 통계책에서 확인한 우드는 농촌을 상대하는 통신판매업은 저물 것이라는 것을 데이터로 예견할 수 있었다. 그는 숫자에 근거해 통신판매업에서 도시에 매장을 둔 소매업으로 전환할 때라는 것을 읽어냇다.

“로버트 우드의 혁명적 전략은 세심한 성향의 위험관리형이 혁신을 이뤄낼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저자는 리스크 테이커이건 리스크 매니저이건 관건은 현실에 발디뎌야 하며 어느 쪽이 상대와 같이 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리스크 테이커와 리스크 매니저는 자신의 천성을 타고난 것이다. 서로는 서로의 성격으로 바뀔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각 성격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 테이커는 흔히 비전형 리더라 불리는 타입이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무엇을 시작하는데 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키우고 관리하는데는 잼병이다. 그런 일은 리스크 매니저의 일이다. 회사의 경영에서 혁신과 관리는 모두 필요하다. 그러므로 두 성격의 사람이 모두 필요하며 둘의 균형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상당히 새로운 설명이다. 위의 요약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혁신과 관리에 능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은 이책이 처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유형이 유전적 근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성격의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향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이책이 처음이다.

그럼 점에서 이책은 다른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잇다. 그러나 저자가 책의 끝에서 말하듯이 이책에서 제기하고 잇는 리스크 테이커/리스크 매니저의 분류는 시론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기존의 다른 유형분류들 가령 MBTI의 기본 범주인 외향성/내향성, 동조성과 같은 범주와 충동성에 대한 이책의 구분이 어떻게 접합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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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단 노자 - 왕필(王弼)·소자유(蘇子由) 등 선비들의 <노자>풀이
초횡 엮고 씀 . 이현주 옮기고 씀 / 두레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학부 시절 중국학 분야의 기본 서적은 이러했다. 당시 서클이 사서강독을 하던 곳이었는데 그 서클의 기본 텍스트는 이러햇다.

한문 자전으로는 보통 민중서림에서 나온 두꺼운 ‘한문대자전’을 사용했다. 개인적으로는 들고다니기 좋은 사이즈로 나온 금성출판사의 자전을 사용했었다. 그걸 보고 선배가 민중서림의 것을 쓰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보던 기억이 난다. 민중서림의 자전은 지금은 가죽장정에 인디언 페이퍼를 사용하지만 그 당시는 판지장정이었기 때문에 선배들 자전을 보면 너무 자주 펴보다보니 장정이 헤어진 경우가 많았다.

중국학 분야에선 전공이 어떻든 꼭 보아야 하게 마련인 것이 사서였다. 사서의 기본 텍스트는 당연히 주자의 사서집주였는데 강독에 사용하는 판본은 성대에서 사서집주대전을 영인한 것을 사용했다. 종이질은 그리 좋지 않아 갱지였었는데 본문에 더 작은 글씨로 주자가 달리고 그 주자주에 대한 세주가 한칸에 두줄로 달려있었다. 강독을 하려면 여러가지 구할 수 있는 모든 주석을 다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세주까지 보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더듬더듬 해석해야 했던 세주를 논어만이지만 번역한 책이 나온 것을 보니(‘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 세월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날개를 단 노자’란 이상한 제목으로 나온 이책은 그런 서적의 하나이다.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과 마찬가지로 노자를 읽을 때 볼 수 밖에 없는 기본서적을 번역한 것이다.

보통 제자백가의 기본판본으로 유통되는 것은 19세기 일본에서 완성된 ‘한문대계’ 판본이 기본 텍스트이다. 학부 다닐 때 학교에 외서 영인본을 팔러오는 양복 입은 아저씨들을 통해 보통 구입했었는데 시중에선 대만에서 복각한 것으로 명동에 가면 국제우체국 옆에 대만정부가 운영하는 대한문화예술공사에서 낱권으로 싸게 구할 수 있다.

한문대계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과 함께 19세기 일본 중국학의 위업 가운데 하나이다. 서클에선 강독을 사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학 중엔 사기열전, 고문진보를 햇기 때문에 자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대한화사전을 펴보아야 하는데 판형이 백과사전만한 13권짜리 사전으로 동아백과사전보다 글씨는 더 작고 페이지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만큼 되는 인디언 페이퍼에, 영어사전 정도의 글씨로 다단 편집된 엄청난 분량이었다. 한자의 의미를 거의 다 정리했고 그 의미마다 중국고전의 용례들을 찾아 달아놓은 대작이다. 콜린스의 영어사전의 용례를 생각하면 된다. 아직도 이 사전을 넘어서는 것은 나오지 않았고 나올 것같지도 않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문대계는 한문전통에서 기본서적으로 간주되는 서적들을 선정하고 기본이 될 주석본을 골라 전집으로 묶어 인쇄한 것이다. 이 전집이 세기의 업적이 된 것은 그냥 선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두점을 찍고 일본식 토를 달았다는 데 있다. 텍스트의 기본적인 의미를 확정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중국학의 캐논을 확정하고 그 캐논의 기본 해석이 될 주석서를 선정하면서 그 의미까지 정립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일본 중국학의 업적을 모두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작 중국학의 본고장이 되어야 할 중국에서 한화대사전과 같은 사전은 나온 일이 없다. 한문대계와 같은 작업은 20세기 들어 진행되긴 했지만 한문대계의 규모로 진행된 것은 없다. 그와 비견될만한 작업으로는 중국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25사의 편찬작업이 있었다. 80년대에 완료된 것으로 아는 이 작업의 내용은 사기에서 시작해 청사로 끝나는 중국의 정사에 구두점을 찍는 것이엇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책은 한문대계에 노자의 텍스트로 선정되어 있는 老子翼에 대한 번역이다. 대한문화예술공사에서 보통 주석서가 아니라 노자만 달랑 사면 기본 텍스트에 왕필주가 달린 것을 준다. 사서에서 주자주가 그렇듯이 노자는 왕필주가 기본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에 왕필주를 번역한 것이 나왔었고 그후에도 다른 번역이 나왔었다. 그러나 한문대계에 선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자의 기본서적으로 통용되는 노자익은 어쨌든 알아서 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건 전문가의 기본일 뿐이고 그런 사람은 당연히 한문이야 기본능력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보아야 했던, 각자 알아서 능력껏 해석해보던 그 텍스트를 번역했다는 것이 이책의 의의이다.

한문대계의 텍스트가 다 그렇듯이 노자익 역시 그때까지 전해오는 주석서들의 종합이다.

노자익의 성격을 보자면 노자익은 그러나 사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보통 기본주석으로 생각되는 것을 중심으로 보지 않는 주석서들이 선정되었다. 사서의 경우 주자주가 부기되기는 하지만 앞에는 다른 주석들이 채택된다. 노자익도 왕주를 포함하긴 하지만 첫머리에 오는 주석은 대개 소자유의 것이고 왕주는 뒤로 배치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사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주를 아예 빼버린 경우도 있다. 주자학을 정통으로 보지 않았고 대륙의 학풍에서도 자유로웠던 일본의 학풍을 반영한 편집이랄 수 있다.

그러면 노자익의 번역인 이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무난하다. 그러나 어차피 한문대계의 원본 없이 이책만 보기는 그리 권할 만하지는 않다. 번역자 역시 이책만으로 보기 보다는 한문대계의 보조로서 원문을 같이 볼 것을 생각한 것인지 직역 위주이며 주석의 원문을 빠져 있다.

말하자면 대중적인, 교양서로 읽힐 책이 아닌 것이고 시장성이 별로 없는 서적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이 나오기 시작햇다는 것이(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도 그렇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잇다는 것이 그만큼 한국의 수준이 올라가고 잇다는 증거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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