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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정치 - '성공의 역설'과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
서진영 지음 / 폴리테이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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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질문은 중국의 민주화는 어떻게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이다. 답은 뻔하다. 외국의 학자들도 심지어는 공산당 간부들도 내심으로는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중국에서 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가를 답해야 하고 그 답을 하려면 중국의 정치사를 따라가면서 중국의 특수성을 알아봐야 한다.
먼저 저자는 1989년 사회주의가 동시에 붕괴하던 때 왜 중국의 사회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는가? 란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답은 문화혁명 때문이다.
중국은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탈린주의 모델에 따른 국가건설을 시작햇다. 스탈린주의는 경제적 특징을 요약하면 국가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 대신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면서 자본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자본가가 되면서 당과 국가의 관료는 특권계급이 되고 강력한 기득권을 갖게 된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 기득권의 저항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정치개혁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사회주의권의 문제는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으로 경제가 실패했다는 것이었고 고르바초프의 관심 역시 경제에 있었다.
그러나 경제를 개혁하려고 하니 기존의 정치체제에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저항했고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좌절한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경제개혁을 하려면 정치개혁을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에서도 스탈린주의의 결과로 소련과 같은 특권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특권층은 문화혁명으로 약화된다. 문화혁명의 목표가 그들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개혁을 시작했을 때 목표 역시 사회주의 경제의 무능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달리 그 개혁에 저항할 당과 국가의 관료들은 문화혁명 때문에 약화되어 있었고 그의 개혁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화혁명의 유산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산당의 근본이념을 무너트리는 일이다. 그러나 문화혁명은 그 이념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광란의 시절을 겪어야 햇던 중국인들은 공산주의는 물론 어떤 이념에 대해서도 냉소적이 되어 있었다. 이를 중국에선 ‘신심의 위기’라 부른다.
이념에 냉소적이 된 것은 당관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화혁명의 타깃이 되어 숙청당해야 햇던 그들은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문혁 4인방을 정점으로한 당내 좌파들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했고 반좌파연합을 만든다. 당시 당에서 덩샤오핑만한 연륜과 인망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반좌파연합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마오의 유산이 마냥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78년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이 가능햇던 것은 마오의 유산 덕분이었다.
52년 이후 마오는 스탈린식 계획경제로 선회한다. 스탈린주의 경제정책의 특징은 도시화와 산업화이다. 특히 중공업에 올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련도 혁명 당시 후진국이었고 후진국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경제의 기초가 되는 중공업 인프라에 집중했다. 중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오 시절 중국의 경제성장은 당시 개도국에선 대단히 빠른 속도였다. 물론 그런 속도는 모든 자원을 중공업 육성에 몰아넣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마오 시절에 기초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 기초 위에서 덩샤오핑 이후 30년의 고속성장이 가능햇다.
그러나 마오 시절의 문제는 중공업에 올인했다는 것이다. 중공업은 산업의 특성상 스탈린주의의 계획경제와 잘 맞았다. 그 결과 소련과 마찬가지로 농업과 소비재를 만드는 경공업이 희생되었고 가용자원을 중공업에 몰아넣기 위해 내핍을 강요했기에 중국인의 생활수준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경제성장률은 올라가도 ‘빈곤의 평등’이 강요될 수 밖에 없었다.
문화혁명이 낳은 ‘신심의 위기’와 ‘빈곤의 평등’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무너트리는 것이었고 체제위기를 낳았다. 덩샤오핑의 개혁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의 방법이었다. 덩샤오핑의 지지기반인 반좌파연합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마오주의에 대한 반감이었고 마오가 낳은 정당성 위기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위기를 해소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비효율적인 계획경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햇다. 그러나 개혁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이의가 없지만 개혁의 범위에 대한 각론에선 보수와 개혁파가 당내에서 끊임없이 충돌했고 그들의 논쟁과 권력투쟁은 89년 천안문 사태까지 끊이지 않는다.
개혁파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고도성장을 이끌어내어 경제개혁에 관해선 보수파의 입을 다물게 한다. 물론 경제개혁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국가체제 다시 말해 스탈린 체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개혁은 체제의 핵심인 도시와 국영산업이 아니라 농촌과 주변부에서부터 조금씩 진행된다. 그 성과가 눈에 보이면 실적을 근거로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개혁이엇다. 개혁은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내 급진파는 경제개혁을 위해서도 정치개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문화혁명이 낳은 신심의 위기가 낳은 현상이었다. 보수파는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86년 전국적으로 학생시위가 일어나면서 학생들의 명분인 민주화에 동조적인 조자양을 보수파가 공격해 물러나게 한다.
그 뒤를 이어 총서기가 된 후야오방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절충을 시도한다. 그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후에 자오쯔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과 3대 대표론으로 발전한다. 이후 당내 주류 개혁파의 논리를 제공한 후야오방의 이론적 근거는 신권위주의론이다.
신권위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경험이엇다. 권위주의 국가가 정치적 안정을 제공하고 그 안정 위에서 경제발전이 가능햇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인정하여 보수파와 타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신권위주의는 30년동안 중국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의 유신체제에서도 그랫듯이 신권위주의는 위태로운 묘기에 가깝다. 신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은 결과에 의존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만사가 잘 돌아간다. 보통 서구의 학자들은 이런 정치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그랫듯이 신권위주의의 성공은 신권우주의의 무덤을 판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성공의 역설이다.
역설은 두가지이다. 첫째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이 가능햇던 것은 마오주의의 족쇄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마오주의의 족쇄에서 풀려난다는 것은 당국가의 전체주의에서 지방을 풀어주고 개인을 풀어주어 시장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덕분에 경제는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비싼 것이었다.
경제발전에 비용을 대기 위해 중국정부는 무료로 보편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던 교육과 의료, 연금과 같은 혜택을 줄였다. 불평등의 조건을 만든 것이며 이후 덩샤오핑의 선부론(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있으면 되게 해야 한다)은 부의 풀평등을 심각한 수준으로 늘렸다. 상하이, 베이징과 내륙의 소득격차는 10배에 달하며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경고수준인 4.2를 넘어 빠르게 높아지고 잇다(지니계수가 5이면 혁명이 일어날 충분한 조건이라 본다) 후진타오의 조화사회란 말은 바로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불평등만이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혜택으로 입어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은 신권위주의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현재 그들은 당연히 신권위주의의 지지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한국, 대만에서 그랫듯이 그들도 권위주의의 해체를 원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현재로선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현체제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이 현체제에 도전할 힘도 없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저자는 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미약했고 지배 엘리트들이 체제를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했기에 천안문 사태는 위기로 비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에서 그랬듯이 이전까지 국가만 있던 곳에서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사회가 태어나 자라고 잇다는 것이다.
후진타오나 원자바오의 말을 보면 내심으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내 주류인 개혁파들은 공산주의를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어느 당간부 저서의 제목처럼 ‘민주는 좋은 것’이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역시 자신들의 필요를 더 잘 만족시켜줄 체제로 민주주의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길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다. 공산당을 대신할 세력은 중국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가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소련 붕괴 후의 혼란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에 도전할 시민사회의 힘도 자라날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저자는 권위주의에서 민주화가 일어난 사례들을 강한/약한 국가 X 강한/약한 시민사회 의 도식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한다. 그에 따라 4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저자는 중국 역시 민주화의 길로 가는 이행기에 접어들었지만 그 경로는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