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램지의 불놀이 - 슈퍼 쉐프 고든 램지의‘핫’한 도전과 성공
고든 램지 지음, 노진선 옮김 / 해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런 류의 성공기를 보다보면 이런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저자가 은퇴하지 않은 상태이고 지금 그일을 하는 중이라면 까다로워진다. 왜냐하면 그런 저자가 쓴 책은 대개 홍보용이기 때문이다. 즉 그 책에 그려진 저자 자신은 화장을 한 상태이다.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일까를 글만 가지고 행각에서 읽어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상은 그려질 수 있다. 적어도 그 책이 대필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쓴 책이라면 말이다. 이책은 최소한 저자가 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축구선수로 짧은 기간을 뛰다 기본교육만 마치고 바로 요리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자답게 글의 문체는 품위있고 고상한 글쓰기 교육을 받은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서가 아니라 번역을 통해 보더라도 파악이 된다.
 
이책의 여기저기에는 입이 거친 사람들의 말이 튀어나온다. 영어로 하자면 F 워드, 우리말로 하자면 쌍 ㅅ 이 들어간 말이 많은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고상한 계층이 쓰는 말은 아니다. 특히 책에서는 말이다.

그런 글 너머를 보면서 느껴지는 저자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주방의 열기와 쏟아지는 주문과 싸우면서  군대에서 쫄병을 부리듯 빠릿빠릿 보조들을 뛰어다니게 몰아치는 주방장이다. 그러나 입이 건 사람들이 많은 경우 그렇듯이 뒷끝이 없고 펑펑 기분내키는대로 쓸 줄 아는 호인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 그런 사람이 대개 그렇듯 좋은 차에 돈을 부어대고 허영심도 많다. 그 허영심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고 후회도 많이 하며 배우는 것도 많다. 다음에는 겸손해야지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다.

그런 사람들중에서 실력이 있고 운이 따라 성공한 경우 대개 그렇듯이 이런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열정과잉이다. 이책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운영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책의 저자는 요리사이다. 그러나 요리사이면서 경영자이다. 즉 칼을 잡기도 하지만 주판을 잡을 때가 더 많은 사람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식당은 메슐렝 별 3개 이상의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것도 별 5개짜리 호텔에 자리잡은 고급 레스토랑을 여러개 거느린 지주회사를 운영하는 요식업계에선 거물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책은 그런 식당왕국을 어떻게 만들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이책에선 그가 만지는 칼도 가스렌지도 양고기도 와인도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경영자로서 바라본 요식업의 세계가 그려질 뿐이다.

그러나 그 왕국의 시작은 운과 함께였다. 재능은 있지만 돈은 없었던 그에게 적은 투자로 고급 레스토랑 자리를 인수할 수 있는 건이 들어왔고 그는 그 기회를 무리를 잡았으며 이후 줄줄이 식당을 개업해나간다.

이책에서 배울 것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은 일화들이며 그 일화들에 얽힌 요식업의 노하우들이다. 그러나 그 노하우들에는 어떤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식당의 성공은 입지, 요리사, 분위기, 서비스로 결정된다. 저자는 좋은 입지를 발견해서 식당을 새로 업할 때마다 누구를 주방장으로 투입할 것인지 인테리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그 공사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할 것인지 접대 서비스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4가지 갖춰진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공의  조건이 되는 것이지만 성공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공은 평판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개업식과 같은 오프닝을 담당하고 언론을 상대하는 홍보회사를 고용한다. 그러나 홍보와 광고의 효과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가 식당을 오프닝하면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실패해 철수하는 경우도 있고 간신히 운영하는 곳도 있다. 대부분은 성공이다. 그러나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듯이 실패한 경우엔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된다.

이책에서 배울 것은 그런 요식업 경영의 실제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전략적 판단 이외에도 어떤 사람을 쓸 것인지, 어떻게 그들을 판단할 것인지 등 모든 경영자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사정들도 이야기되고 있으며 호텔경영진과의 협상과 같은 것들도 보여진다. 그리고 세무조사와 같은 흔히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도 나온다.

이상과 같이 이책는 요식업에서 나름의 자리를 굳힌 저자가 사업을 어떻게 해나가는지가 비교적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 체계적이지는 않다. 그냥 나는 이렇게 사업을 운영해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책의 질을 떨어트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말했듯이 이책에선 실제 요식업의 경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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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4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4권으로 원서의 1권이 끝난다. 1권은 다음 권들을 위한 이야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주인공이 황제가 되는 것을 그린다. 그러나 1권이 예비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1권의 후반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예지능력을 자각하면서 이 시리즈 전체의 주제가 드러난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를 바꿀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아는 행위 자체가 미래를 만드는 변수들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예지력으로 보는 미래는 시나리오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수많은 분기점이 있고 분기점마다 다른 미래가 예시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보는 미래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들이다. 그가 보는 미래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진로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미래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본 미래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수많은 변수들을 압도하는 인류의 종족의지가 만들어낸 힘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주인공을 낳게 된 것 자체가 종족 의지의 결과였다. 오랜 시간과 넓은 공간으로 인류가 퍼져나가면서 종족적으로 정체된 상태가 되었고 종족 의지는 강한 유전자만 남는 활성단계로 진입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멸해갈 것이다. 주인공 자신이 그런 종족 의지를 실현하려는 무의식적 동기에 따라 실행된 유전자 계획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러한 혼란의 상태를 어떻게든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정도를 낮추거나 늦출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가 보는 미래가 그렇듯이 미래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황제가 되는 주인공이 1권의 마직막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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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3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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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권에선 2권에서 시작된 2장이 끝난다. 2장의 내용은 하코넨과 황제의 손길에서 도망친 주인공 폴과 그의 어머니가 사막 한가운데로 도망쳐 그의 전사들이 되어줄 프레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정을 얻어 그들 안에 자리를 잡는 과정을 그린다.

2장에서 눈여겨 볼 것은 프레멘들의 독특한 문화이다. 물이 거의 없어 시체에서도 물을 재활용하고 이방인을 죽여 물을 탈취하는 그들의 절대적인 물의 부족때문에 만들어진 문화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저자가 묘사하는 프레멘 문화는 중동의 문화와 비슷하다. 물의 부족으로 즉 사막이란 환경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화를 그리기 위해 저자는 중동의 문화코드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물론 가끔은 비가 오는 중동의 사막과 달리 아라키스엔 비가 오지않는다. 비, 바다, 강이란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곳이니까.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그리는 프레멘의 문화는 중동의 문화를 연상시킨다. 절대적인 생존이 우선되는 환경에서 장식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뼈대를 보이는 문화. 기독교와 회교의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뉘앙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흔히 외부인들이 말하는 베드윈들의 잔인성과 야만성도 보인다.

그러나 베드윈들이 스스로의 문화에 대해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농경정착민족을 경멸하듯이 프레멘들 역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이책에서 그리는 그들의 삶에는 나름의 존중해 주어야 할 품위가 느껴진다.

한가지 더 언급할 것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대모가 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신비주의적 과정이다. 이슬람의 수피 전통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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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2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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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에서 예고된 아버지 레토 공작의 최후가 일어난다. 2권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레토 공작이 원수 하코넨 가문의 계략에 어이없이 죽게 되고 1권에서 예언된 대로 어머니와 함께 아들 폴이 사막으로 피난하는 여정이 그려진다.

1권부터 2권까지의 플롯구조는 전통적인 설화의 스타일을 따른다. 고귀한 출생 또는 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잃고 적에게 쫓겨 시련을 겪게 되고 그후 성공한다는 플롯구조이다. 고주몽 설화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너무나 뻔한 구조이고 익숙한 구조이지만 많은 대중소설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그 플롯구조의 매력 때문이다. 성공이야기가 잘 팔리는 이유도 그렇다. 대개 잘 팔리는 성공담이 무일푼 맨주먹으로 성공하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플롯구조를 단순하게 차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소설이 명작으로 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1권부터 2권까지 저자는 모든 고난이 예언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1권 처음부터 그의 아버지에겐 죽음 뿐이고 아들에겐 삶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아버지의 몰락이 배신자 때문이며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도 보여준다. 추리소설 기법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지만 도대체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는 과정을 궁금하게 하는 기법.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러한 기법을 채용한 이유는 운명이란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출생이 고귀하다(방계황족)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족차원의 의식이 부여한 운명을 걷는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기법이다.

이러한 느낌은 주인공이 사막으로 도망가면서부터 예지능력을 갖게 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의 미래를 본다. 아무 감정없이 그저 미래를 읽는다.

그러나 갑자기 그런 감각을 느끼게 된 주인공은 당황한다. 미래를 걷는 자라는 의미의 퓨쳐워커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미래를 읽는 이책의 무녀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미래를 본다. 그리고 그 미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퓨쳐워커에서 무녀는 자신이 끔찍한 미래를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기에 되찾아야 한다고 울부짓는다. 그러나 듄의 주인공에게 미래를 읽는 능력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2권에서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의 부분은 주인공이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받아들이면서 겪는 혼란을 주 내용으로 한다.

한가지 아쉬움은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졸속으로 처리된 것같다는 것이다. 1권부터 2권까지 레토 공작이 보인 모습은 귀족의 모범이었다. 부하를 사랑할 줄 알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며 죽을 자리일줄 알면서도 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 아버지를 그렇게 설정한 것은 주인공 가문의 가풍으로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그런 사람의 최후이면 휠씬 웅장한 비극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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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내 인생!>을 리뷰해주세요.
힘내라, 내 인생! - 당신의 일상을 기적처럼 변화시킬 13가지 삶의 아이디어
퍼트리셔 라이언 매드슨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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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제목은 책을 망치고 있다. '힘내라 내 인생'이란 번역 타이틀만 보고 이책의 내용을 짐작해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흠 또 시크릿같은 류의 책이군. 힘낼 필요는 있지. 힘을 내지 않고 어떤 일도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런 식의 책은 자위이상이 될 수 없지. 읽을 때뿐이야. 그냥 좋은 이야기구나 이상이 아니지.

그러나 이책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자위용 서적이 아니다. 이책은 지혜를 담고 있고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가 있다.

번역서의 제목이 그렇게 된 것은 Improvise란 단어 때문이다. 그대로 따르자면 이책의 원제목은 '즉흥연기의 지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는 감흥이 없다. 그러나 번역서의 제목은 완전한 오역이다. 저자가 붙인 원제목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지만 번역한 제목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연극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책에서 자신이 즉흥연기를 하면서 가르치면서 배운 지혜를 말하고 있다. 즉흥연기에 삶의 지혜랄 것이 있을까? 솔직히 즉흥연기가 어떤 것일지는 이책을 읽고 나서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학창시절 연극을 해본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재즈를 떠올려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흑인들의 음악으로 태어난 재즈는 원래 불학무식한 사람들의 음악이엇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의 재즈 아티스트들은  악보를 읽지 못했다. 악보를 읽지 못한다고 연주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들의 음악과는 무언가 다른 공연방식이 필요했다. 그들이 개발한 나름의 방식이 Improvise였다.

재즈의 즉흥연주는 이런 식이라 할 수 있다. 연주자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을 연주한다거나 어느 연주자가 즉석에서 모티브를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모티브가 전개되면서 연주자 각자는 음악의 논리에 따라 변주를 한다. 그래야 음악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연주자들은 그 변주에 맞춰 리듬과 화음을 넣는다. 한 연주자의 변주가 언제 끝나는지는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 변주가 끝났다고 인식할 때 다른 악기의 연주자가 변주의 주도권을 갖고 다시 변주가 시작되고 그 변주에 맞춰 연주자들은 리듬과 화음을 넣는다.

이런 과정은 연극이 즉흥적으로 공연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공연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이런 즉흥연주 또는 연기는 물론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재즈 연주자들은 공연 사이의 시간을 거의 다 연습에 쏟아붇는다. 그렇지 않으면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감각이 사라진다고 한다. 즉석에서 리듬을 맞추고 화음을 넣는 것은 소위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모티브 뿐 아니라 리듬과 화음 자체도 그 순간 순간 마다 변주되고 변주된 것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음악에 반응하고 음악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즉흥연기의 지혜는 아마도 재즈 연주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바로 그 기본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책의 챕터 제목들은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주제들이 열거되어 있다. 긍정적 자세를 가져라. 평범하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 감사하라. 배려하라. 실수는 당연한 것이다. 등등

저자는 그러한 주제들을 자신의 즉흥연기 경험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런 것만으로보면 이책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책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책의 저자가 나열하고 있는 13가지 지혜를 모두 포괄하는 주제는 즉흥연기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이를 이책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두단어로 요약하자면 영어로 흔히 하는 말인 here and now 즉 '지금 여기'란 말로 할 수 있다.

'지금, 여기'라고? 그게 무슨 깊이가 있는 말인가?하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려는 here and now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흔히 하는 말처럼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는 말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는 언제나 평범한 말에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한 말처럼 깨닫기 어려운 말도 없다.

지금 여기란 말은 저자가 책 여러 곳에서 인용하는 선불교의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선불교의 황금기인 당나라 시대 조주선사는 단 하나의 주제만 가르쳤다.

어느날 어린 동자승이 조주선사를 찾아왔다. 동자승을 보고 조주선사가 말했다. "밥은 먹었는가?" "예" "그럼 설거지를 해야지." 그말을 들었을 때 그 동자승은 깨닫게 되었다.

10여년전에 읽은 조주선사의 화두중에서 기억나는 하나이다. 이 화두는 조주선사의 다른 화두들 처럼 평상심을 말하고 잇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설거지에 충실한 것. 그것 이상이 아니다. 이게 무슨 대단한 것인가? 대단한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진제)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보고 느끼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펜 2개가 있다고 하자.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모델이고 같은 색이니 같은 펜이라 봐도 된다. 그러나 두 펜이 동일할까? 물리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무시한다. 그래도 무방하고 그래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를 모두 인식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현실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하고 개념화해 인식한다. 그것은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삶의 문제들은 바로 그 효율성을 위한 단순화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남에게 화가 나고 서운해 하고 억울해하는 경험이 있다. 그러나 왜 화가 나고 서운해 하고 억울해 하는가? 그 이유는 대개 상대에 대해 우리가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마땅히 나에게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대가 어긋날 때 화가 난다. 그러나 나의 기대가 틀린 것이라면? 대부분 우리가 내는 화는 나의 기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화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화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지혜는 바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대로를 이해했을 때 무엇을 할 지 아는 능력이다. 즉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를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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