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내 인생!>을 리뷰해주세요.
힘내라, 내 인생! - 당신의 일상을 기적처럼 변화시킬 13가지 삶의 아이디어
퍼트리셔 라이언 매드슨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의 제목은 책을 망치고 있다. '힘내라 내 인생'이란 번역 타이틀만 보고 이책의 내용을 짐작해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흠 또 시크릿같은 류의 책이군. 힘낼 필요는 있지. 힘을 내지 않고 어떤 일도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런 식의 책은 자위이상이 될 수 없지. 읽을 때뿐이야. 그냥 좋은 이야기구나 이상이 아니지.

그러나 이책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자위용 서적이 아니다. 이책은 지혜를 담고 있고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가 있다.

번역서의 제목이 그렇게 된 것은 Improvise란 단어 때문이다. 그대로 따르자면 이책의 원제목은 '즉흥연기의 지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는 감흥이 없다. 그러나 번역서의 제목은 완전한 오역이다. 저자가 붙인 원제목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지만 번역한 제목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연극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책에서 자신이 즉흥연기를 하면서 가르치면서 배운 지혜를 말하고 있다. 즉흥연기에 삶의 지혜랄 것이 있을까? 솔직히 즉흥연기가 어떤 것일지는 이책을 읽고 나서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학창시절 연극을 해본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재즈를 떠올려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흑인들의 음악으로 태어난 재즈는 원래 불학무식한 사람들의 음악이엇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의 재즈 아티스트들은  악보를 읽지 못했다. 악보를 읽지 못한다고 연주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들의 음악과는 무언가 다른 공연방식이 필요했다. 그들이 개발한 나름의 방식이 Improvise였다.

재즈의 즉흥연주는 이런 식이라 할 수 있다. 연주자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을 연주한다거나 어느 연주자가 즉석에서 모티브를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모티브가 전개되면서 연주자 각자는 음악의 논리에 따라 변주를 한다. 그래야 음악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연주자들은 그 변주에 맞춰 리듬과 화음을 넣는다. 한 연주자의 변주가 언제 끝나는지는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 변주가 끝났다고 인식할 때 다른 악기의 연주자가 변주의 주도권을 갖고 다시 변주가 시작되고 그 변주에 맞춰 연주자들은 리듬과 화음을 넣는다.

이런 과정은 연극이 즉흥적으로 공연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공연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이런 즉흥연주 또는 연기는 물론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재즈 연주자들은 공연 사이의 시간을 거의 다 연습에 쏟아붇는다. 그렇지 않으면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감각이 사라진다고 한다. 즉석에서 리듬을 맞추고 화음을 넣는 것은 소위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모티브 뿐 아니라 리듬과 화음 자체도 그 순간 순간 마다 변주되고 변주된 것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음악에 반응하고 음악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즉흥연기의 지혜는 아마도 재즈 연주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바로 그 기본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책의 챕터 제목들은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주제들이 열거되어 있다. 긍정적 자세를 가져라. 평범하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 감사하라. 배려하라. 실수는 당연한 것이다. 등등

저자는 그러한 주제들을 자신의 즉흥연기 경험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런 것만으로보면 이책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책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책의 저자가 나열하고 있는 13가지 지혜를 모두 포괄하는 주제는 즉흥연기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이를 이책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두단어로 요약하자면 영어로 흔히 하는 말인 here and now 즉 '지금 여기'란 말로 할 수 있다.

'지금, 여기'라고? 그게 무슨 깊이가 있는 말인가?하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려는 here and now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흔히 하는 말처럼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는 말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는 언제나 평범한 말에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한 말처럼 깨닫기 어려운 말도 없다.

지금 여기란 말은 저자가 책 여러 곳에서 인용하는 선불교의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선불교의 황금기인 당나라 시대 조주선사는 단 하나의 주제만 가르쳤다.

어느날 어린 동자승이 조주선사를 찾아왔다. 동자승을 보고 조주선사가 말했다. "밥은 먹었는가?" "예" "그럼 설거지를 해야지." 그말을 들었을 때 그 동자승은 깨닫게 되었다.

10여년전에 읽은 조주선사의 화두중에서 기억나는 하나이다. 이 화두는 조주선사의 다른 화두들 처럼 평상심을 말하고 잇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설거지에 충실한 것. 그것 이상이 아니다. 이게 무슨 대단한 것인가? 대단한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진제)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보고 느끼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펜 2개가 있다고 하자.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모델이고 같은 색이니 같은 펜이라 봐도 된다. 그러나 두 펜이 동일할까? 물리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무시한다. 그래도 무방하고 그래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를 모두 인식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현실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하고 개념화해 인식한다. 그것은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삶의 문제들은 바로 그 효율성을 위한 단순화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남에게 화가 나고 서운해 하고 억울해하는 경험이 있다. 그러나 왜 화가 나고 서운해 하고 억울해 하는가? 그 이유는 대개 상대에 대해 우리가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마땅히 나에게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대가 어긋날 때 화가 난다. 그러나 나의 기대가 틀린 것이라면? 대부분 우리가 내는 화는 나의 기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화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화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지혜는 바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대로를 이해했을 때 무엇을 할 지 아는 능력이다. 즉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를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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