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생태보고서 -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
한나 홈스 지음, 박종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용이 새롭거나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해봐야 진화생물학자들이 인간을 다룰 때면 다들 말하는 주제들이다. 내용 상으로 이책이 뛰어난 점이라 해봐야 다양한 논문들을 요약해 보여준다는 정도인데 그것도 논문 하나에 짧막하게 반 페이지 정도이거나 길어야 한 두 페이지 정도 할애되는 정도이고 ‘카더라~’ 투로 정리하는 정도다. 물론 다루는 분야가 생물학부터 인류학, 고고학, 의학까지 걸치니 저자의 전공인 동물학을 넘어서 있고 전문가로서 논평을 하기는 힘든 일이니 당연하긴 하다. 그 정도로 방대한 논문을 정리할 능력이 된다는 자체가 평가받을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라는 것이 범위는 넓지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관점이다.

저자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잘 다룬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어린 인간은 동물과 같기 때문이라 말한다. 부모 역시 동물학자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살아온 저자는 동물과 어린 인간을 마찬가지로 다룬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어린 동물과 같아서 본능과 충동을 숨기지 못한다. 만일 어떤 동물이 나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구태여 억지로 붙잡으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며녀 내 몸짓을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나는 눈을 돌리고 뭔가 관심을 끌 만한 것을 보여준다. 어린 ‘인간’에게 접근할 때도 겁먹지 않게 하면서 무너가 긍정적인 느낌을 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망설임, 의심이나 위험의 신호를 감지한다.”

물론 인간과 동물, 특히 성인 인간은 동물처럼 다룰 수 없다. “성인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고 싶다면 동물적 본능보다는 그들이 가진 ‘합리성’을 이용해서 일을 풀어가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들이 나머지 동물들과는 다른 특별한 생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무엇인가? 동물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차이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저자의 질문이다. 동물학자가 동물을 연구하듯 인간을 동물로서 다루어보자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인간이 까마귀와 달리 영역에 집착하지 않는 유형리라면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도 영역에 대한 권리가 없다. 우리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근거지로 돌아올 때 다른 사람들 또한 은신처를 찾아 미친 듯이 밀려들 것이다. 당연히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영역을 원한다. 경비가 있는 높이 솟은 현관문으로 한 때의 영장류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영역에 대한 점유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괜찮은 거주 장소를 찾으려면 이렇듯 몇 시간을 헤매야 한다. 낮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사무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인간이 그날 가장 많은 액수가 적힌 임금수표를 거머쥘 것이고 늦게 온 영장류는 뭐 쓸만한게 없나 쓰레기통을 뒤져 동전 몇 푼이라도 주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는 결코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불완전하더라도 확고한 자신만의 영역에 정착하고 싶어한다.”

채식주의니 콜레스테롤이 해롭니 섬유질을 먹어야 하느니 등등 식단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동물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동물이 ‘난 뭘 먹어야 해?’라고 물어야 한다면 그건 참 서글픈 일일게다. 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인간들 중에는 그런 일로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아무거나 몸이 원하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이 운전이라는 일은 내가 속한 종이 가지고 있는 협력적인 천성의 결과물이다. 만일 오소리가 차를 몰고 있다면 정지 신호에서 기다리지 않으리라. 단독으로 생활하는 동물들은 상대를 신뢰할 필요가 없다. 윤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허비할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오소리라면 교차로를 그냥 통과할 것이다. 이에 항의하는 동족 오소리를 그대로 깔아뭉개고.”

재미있다. 이책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다. 익숙한 경험을 동물학자의 논리로 보니 새로운 읨가 드러나고 재미있게 보인다. 그러나 새로울 것은 없다. 이책이 ‘벌거벗은 원숭이’가 나왔던 시절에 나왔다면 참신한 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인간을 다루는 책은 그 책 이후 많이 나왔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다루는 범위가 넓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책만큼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책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그 약점은 앞에서 지적한대로이다. 그보다 이책의 장점은 역시 관점이다.

저자는 동물학자가 다른 종을 관찰하듯이 인간을 기술하지 않는다. “한 종은 궁극의 대원숭이로 진화했다. 그게 바로 나다.” 이책은 저자 자신의 생태를 동물로서 기술한다. 저자는 자신이 과체중인 이유를 동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속한 인간이란 종은 왜 특출한 장거리 선수가 되었는가? 나는 왜 화장하는 동물인가? 내 남편과 나는 왜 뇌 구조가 다른가? 나는 왜 당분과 지방질에 사족을 못쓰는가? 등등 자신을 동물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이책의 문체는 사적으로 치우치며 수다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식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은 전부 내 환경의 미비함에 대한 것 아니었던가? 커서도 아주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수다가 많이 줄어들곤 했다. 요는 이렇다. 나는 엄마 품 속에서의 의사전달을 통해 엄마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잘 이해하게끔 하고 엄마를 움직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동물학자로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식이다.

“오호라 잠시 생각을 해보자. 총을 가진 침팬지 군단이 불구대천 원수의 영역으로 이주할 때 적들을 쏘아 죽이는 일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 범고래는 그럴까?/ 음, 아니. 늑대는 어떨까? 그럴 리 없음. 아니다, 오직 우리 종만이 위험한 포식자들을 쓰러트릴 수 있음에도 ‘도덕적인 근육’을 동원해서 살려 보낸다. 이런 태도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잘 사는 문화권들에서 보이는 태도다. 많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서식처를 그 동물들과 공유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잇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이 자신들과 경쟁하는 포식자들의 편을 든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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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가끔 인간이란 동물의 생태에 대해 궁금해하곤 했어요.
'본능'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의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구요.

친절하고 상세한 소개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Lulu 2011-04-19 16:34   좋아요 0 | URL
얼마만의 댓글인지 기억도 아나는군요. 감사합니다. ^^

진화심리학이나 행동학 서적들이 많이 읽히는데 그런 재미가 잇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능대로라면 사람 사는게 비참할겁니다. 그게 순자의 성악설의 요점이지요.